주) <광해, 왕이 된 남자>가 대종상 15개 부문을 석권하고
<피에타>는 '심사위원 특별상'으로 밀리면서...
대종상에 대한 이런저런 비판이 나오네요.
10년전 대종상 편파 심사 문제에 대해서 썼던 기사를 올려봅니다.
그때의 문제가 전혀 개선된 것이 없는 것 같네요.
추락하는 상은 날개가 없다
연예계 비리 수사의 불똥이 튀면서 말 많고 탈 많던 대종상의 공정성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서울지검 강력부(노상균 부장)는 배우 하지원씨의 매니저가 2000년 제37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하씨가 신인 여우상을 타도록 감독을 통해 심사위원에게 로비 자금 8백여만원을 건넸다고 발표했다. 하씨는 실제로 그 해에 이재은씨와 함께 신인 여우상을 공동 수상했다.
1962년 문교부 고시로 제정된 대종상은 우리나라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영화상이다. 그러나 대종상 40년의 역사는 그대로 한국 영화 오욕의 역사이기도 했다. 군사 정권 시절에는 반공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정권 홍보 영화가 상을 받았고, 수상작에 한해 외화 수입 쿼터를 주기 시작하면서는 비리로 얼룩졌다. 1987년부터는 영화인협회(이사장 신우철)가 행사를 주관하고 있지만 심사위원이 부정 심사를 폭로하는 양심 선언을 하고, 시상 결과에 의혹을 제기한 감독이 검찰에 투표함 증거보전 신청을 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과감하게 옷 벗은 용기 기특하니 상 주자”
<박하사탕>이 작품상을 받은 2000년 제37회 영화제는 비교적 무난하다는 평을 들었다. 그러나 당시 본선 심사 회의록을 살펴보면 심사가 얼마나 엉성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신인 여우상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한 심사위원이 이재은씨에게 상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 이유가 어이없는 것이었다. ‘요즘 여배우들은 벗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씨는 영화에서 과감히 벗어주었기 때문에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서라도 상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종상 문제가 외부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계기는 지난해 제38회 영화제였다. 그동안 영화제를 주관했던 영화인협회는 공정성 시비를 해소하기 위해 소장파 영화인 모임인 영화인회의(이사장 이춘연)와 영화제를 공동 주관했다. 영화제를 공동 주관하며 영화인회의 활동가들은 처음으로 대종상 문제를 내부에서 들여다볼 기회를 가졌다.
가까이서 들여다본 대종상 영화제는 문제투성이였다. 당시 사무국에서 영화제를 준비했던 영화인회의의 한 활동가는 “대종상은 최고 권위의 영화제도, 영화인들의 잔치도 아니었다. 영화인협회와 산하 기관들의 1년 살림 밑천을 챙기는 행사에 불과했다”라고 회고했다. 그는 “각 산하기관들은 본선 진출을 빌미로 후보자들에게 협회 가입을 종용하고 회비를 받아냈는데 사무국에서는 이런 관행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분위기였다”라고 말했다.
영화인회의의 추천으로 본선 심사에 참여했던 심사위원들이 체감한 문제는 훨씬 더 심각했다. 심사 기준이 터무니없는 데다가 심사 과정이 너무나 비민주적이었기 때문이다. 심사에 참여했던 영화 평론가 양윤모씨는 “심사위원들이 먼저 이력서를 보고 족보부터 따졌다. 누구의 아들이고 누구의 후배인지부터 살폈는데 정말 어이없었다”라고 말했다. 역시 심사에 참여했던 황철민 교수는 “전혀 토론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죽여버리겠다고 위협까지 하면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작품을 선정하라고 강요했다”라고 밝혔다.
'홍상수 <오 수정>은 영화도 아니다'
'송강호는 인민군 역할을 했으니 주연상을 주면 안 된다'
대종상 영화제 심사위원 선출 방식은 영화인협회가 집행위원을 선발하고 집행위원이 다시 예선과 본선 심사위원을 선발하는 구조이다. 그런데 심사위원이 60∼70대 원로 영화인 위주로 구성되다 보니 당대의 영화계 정서를 담아내지 못했다. 특히 1990년대 중반 이후 달성한 한국 영화의 눈부신 성취를 파악하지 못한 일부 심사위원들은 젊은 영화 관객의 감수성과 동떨어진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지난해 영화제 심사에 참여했던 소장파 심사위원들이 부딪힌 벽도 바로 원로 영화인들의 닫힌 시각이었다. 심사에 참여했던 한 심사위원은 “국제 영화제에서도 호평을 들은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을 영화도 아니라고 폄하하고 <공동경비구역 JSA>의 송강호가 인민군 장교 역할을 했기 때문에 주연상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할 정도로 영화에 대한 시각이 보수적이었다”라고 말했다. 당시 한 심사위원은 <친구>가 상을 하나도 수상하지 못한 이유를 해명하면서 “사람을 수십 차례나 칼로 찌르는 영화를 어떻게 상을 주느냐”라고 말해 영화팬들의 비난을 사기도 했다.
새로운 영화를 발견하는 데는 지극히 눈이 어두운 대종상은 그러나 옛날 영화의 미덕을 찾아내는 데는 유난히 눈이 밝았다. 대종상은 영화발전공로상, 특별기술상(2), 특별연기상(2) 등 무려 5개 부문에 공로상을 남발하고 있다. 전형적인 나누어먹기식 시상이다.
일선 영화 제작자들도 대종상에 심각한 문제 의식을 느끼고 있다. 조우필름 조종국 대표는 “대종상은 영화인들의 단합을 저해하고 불신 풍조를 조장한다. 일선 제작자들 사이에서는 영화제를 보이코트하자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원로 중심 심사위원단, 당대 영화계 정서 못읽어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김혜준 정책실장은 대종상에 대한 일선 제작자들의 이런 반발이 단순한 감정 차원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386세대가 주축인 그들에게 영화인협회로 상징되는 원로 영화인들은 존경할 대상이 아니라 극복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는 “일선 제작자들은 원로 영화인들을 독재 정권에 협력하고 외화 수입 쿼터를 확보하기 위해 영화를 제작했던 사람들이라고 본다. 이들의 반발심은 봉합할 수준을 넘어서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대종상의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그동안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3년 제31회 영화제와 1994년 제32회 영화제 때는 소장파 영화인들이 주축이 되어 개혁에 나섰다. 그러나 대종상을 개혁하려던 이들의 노력은 공정성 시비를 벗어나려는 기득권 세력의 물타기에 이용될 뿐이었다. 대종상을 개혁하려 했거나 대종상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은 영화제의 회생 가능성에 대해 대부분 회의적이다. 대종상 사무국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한 영화인은 “영화인협회가 기득권을 내놓지 않으면 대종상의 공정성은 결코 확보될 수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영화계 안팎에 대종상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일면서 영화제의 위상은 급속히 추락하고 있다. 영화인회의는 올해 대종상을 공동 주최하자는 영화인협회의 제안을 거절했다. 전성기 때 10억원을 넘었던 영화제 예산도 협찬사가 나타나지 않아 이제는 3억∼4억 원 규모로 줄었다. 대종상은 또 3대 영화제 중에서 유일하게 공중파로 중계 방송이 되지 않는 영화제이다. 올해는 배우들도 많이 불참해 영화제의 쇠락을 확인해 주었다.
협찬사도 다 떨어져 나가 올해 영화제 사무국은 영진위의 지원금만으로 영화제를 치러냈다. 그러나 공정성 시비가 계속될 경우 영진위도 지원을 계속하기 힘들기 때문에 영화제는 지금 존폐 기로에 서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영화인협회측은 개혁에 둔감하다. 심사위원의 금품 수수 사건에 대해서 협회 관계자는 “로비 자금으로 건넨 돈이 불과 8백만원이다. 예심과 본심 심사위원이 20명이므로 한 사람당 40만원을 받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 돈 때문에 심사위원들이 표를 주었을 리는 없다”라고 말했다. 향후 대책에 대해서도 심사위원 숫자를 50명 정도로 늘리는 것 외에는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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