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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살벌한 독설/이명박 바로세우기

이명박 시대의 '집단 지성'이 만들어낸 어록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3. 2. 26.


주) '기획회의'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이명박 시대의 '집단 지성'이 만들어낸 어록


어록은 필연적으로 사족을 내포한다. 사족이 없다는 것은 맥락이 없다는 것이다. 맥락이 없으면 오해의 여지가 생긴다. 그 오해가 뜻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맥락은 어록에 힘을 더하고 수명을 연장시킨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의 어록을 맥락을 바탕으로 들여다보았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나타난 특징 중 하나는 어록의 일반화다. 어록이 더 이상 유명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공유물이 되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보편화 되면서 일반인들의 어록도 SNS에서 빛의 속도로 전파되며 힘을 발휘했다. SNS의 강은 어록의 사금을 캐는 말의 젖줄이었다. 


이런 식이다. “<추노>의 성공원인은 비정규직 1000만, <아바타>의 성공원인 용산참사, <아이리스>의 성공원인은 삼성공화국이다” “이명박식 솔루션, '학원비 대책은 EBS' '전세 대책은 월세' '등록금 대책은 장학금' '저출산 해결은 미혼모' '중소기업 대책은 대기업 살리기'” “이명박은 강이 썩었다며 한강(4대강)을 살려야 한댄다. 오세훈은 그 한강물이 깨끗하다며 아리수를 만들어 판다. 누가 거짓말을 하는거냐?”


2011년 말 스티브 잡스의 사망 때 그의 인생을 가장 잘 요약한 말도 트위터에서 발견했다.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회사의 지휘자로, 각 부서의 책임자들과 파트너십을 체결한 회사나 개발자들을 소개하는 사회자로, 관객들의 흥을 돋우는 엔터테이너로, 소비자의 머리에 저건 꼭 사야 하는 경이롭고 믿을 수 없는 제품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최면술사로, 그리고 경쟁업체의 전의를 상실케 만들어버리는 선봉장으로 각인된다.”


트위터 촌철살인마들의 말펀치는 특히 정치권을 풍자할 때 빛을 발했다. 18대 국회의 기형적 정치지형에 대해 한 트위터 이용자는 이렇게 묘사했다. “한나라당 친이 친박은 '한 지붕 두 가족',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은 '두 지붕 한 가족',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도 '두 지붕 한 가족', 친박연대와 창조한국당은 '결손가정' 자유선진당은 '독거노인'”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에 자유선진당 의원 6명 삭발로 항의. 그런데 이회창은 왜 안 미냐? 두상이 안습이라? 아님 박근혜랑 패키지로 '백설공주와 일곱 빡빡이' 될까봐? 밀어라. '가발천국 흑채지옥'이니라.” 


정치권에 대한 비판 어록만큼 언론에 대한 비판 어록이 많았다. 특히 종합편성방송 특혜 허가를 받으며 이명박 정부와 궤를 같이 한 조중동 3사에 대한 어록이 많이 나왔다. 이런 것들이었다. “조중동은 스스로를 조중동이라 부르지 않는다. 조선은 '조동중'이라고 부른다. 중앙은 '중조동'이라고 부른다. 동아는 '동조중'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그거 아니? 그게 칭찬하는 순서가 아니란다.” 


SNS의 집단 지성은 표현력의 발전도 가져왔다. 한 사건에 대한 생생한 표현이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2010년 2월, 수도권에 약한 지진이 일었을 때의 일이다. 트위터에 ‘지진이 느껴졌느냐’고 묻자 기상천외한 답변이 쏟아졌다. 몇 개 소개하면 이렇다. ‘무교동입니다. 의자가 안마의자로 변신한 줄 알았습니다.’ ‘서교동입니다. 건물이 약 1초 동안 후두둑 하고 움직였습니다. 마치 발마사지 기계에 발을 얹어 놓은 것 같았습니다.’ ‘은평구입니다. 집 전체가 한번 우르릉~ 했네요. 강도는 소변 본 후에 드는 오한 정도였습니다.’ ‘용인시 수지구입니다. 아파트 16층인데 윗집에서 설날 때 온 아이들 3명 정도가 뛰는 강도였습니다.’ ‘동교동입니다. 자동차 타고 가다가 과속방지턱 넘을 때처럼 건물이 울렁했습니다.’


대선후보 TV토론이 벌어진 뒤에 SNS에서는 매번 토론평 백일장이 벌어졌다. 그들은 진정 요약의 달인이었다. ‘이정희: 나는 잃을게 없다 / 박근혜: 나는 읽을게 없다 / 문재인: 나는 낄 데가 없다’ ‘이정희-최고의 토론자(이번엔 뭘로 골려주나) / 박근혜-최고의 낭독자(이번엔 뭘 읽어야 하나) / 문재인-최고의 관람자(난 언제 끼어들어야 하나)’ ‘이정희: 나는 혼을 다했다 / 박근혜: 나는 혼이 나갔다 / 문재인: 나는 혼자였다’ ‘이번 토론은 도대체 뭘 보고 뽑아달라는 거였죠? 이정희의 공격력? 박근혜의 방어력? 문재인의 은신능력?’ 


SBS 예능프로그램 ‘짝’을 패러디해서 ‘말을 잘 못하는 여자 1호(박근혜)는 여자 3호(이정희)가 밉다. 그리고 여자 3호는 남자 2호(문재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남자 2호는 사실 다른 남자(안철수)에게 관심이 있다’라고 정리한 사람도 있었고 임재범의 노래 <너를 위해>의 가사를 따서 ‘내 거친 생각과~(이정희) 불안한 눈빛과~(박근혜) 그걸 지켜 보는~(문재인) 전쟁 같은 토론’이라고 평한 사람도 있었다. 


일반인들의 어록이 얼마나 빛나는 말의 성찬이었는지는 정치인들의 망언과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춘향전은 변사또가 춘향이를 따먹는 이야기”(김문수 경기도지사, 2011년 7월) “요즘 룸에 가면 오히려 ‘자연산’만 찾는다고 하더라. 요즘은 성형을 너무 많이 하면 좋아하지 않아, 자연산을 더 찾는다고…”(안상수 전 의원, 2010년 12월) “아나운서가 되려면 다 줄 생각을 해야 한다”(강용석 전 의원, 2010년 7월) “‘현지에서 오래 근무한 선배는 마사지걸을 고를 때 얼굴이 덜 예쁜 여자를 고른다더라’며 얼굴이 덜 예쁜 여자들이 서비스가 좋다”(이명박 대통령, 2007년 8월)


이런 정치인들의 줄을 잇는 망언에 트위터 이용자들은 쿨하게 응수했다. ‘안상수 함부로 까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고 큰 웃음 준 적이 있더냐’라는 옹호론도 제기되었고 ‘안상수 까지 마라. 그러다 안상수 입조심하는 수가 있다’라는 신중론도 올라왔다. 비루한 정치인들을 비난하면서 똑같은 수준으로 비루해지지 않고 시크하게 꼬집었다. 


어록과 관련해서 또 하나 들여다볼 것은 대형 사건이다. 2008년 촛불집회와 2009년 용산참사를 비롯해 이명박 정부 하에서 많은 사건이 있었다. 큰 사회 이슈마다 어록이 깨알처럼 쏟아졌다. SNS에서 어록이 양적으로 확장되었지만 이런 큰 이슈를 통해서 어록은 깊이를 더했다. 


특히 우리 시대의 아우슈비츠였던 용산은 많은 말을 남겼다. <두 개의 문>을 연출한 김일란 감독이 했던 말이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를 보고 친구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3년 내내 너는 기억하며 살았구나. 이걸 부여잡고 살았으니 힘들었겠구나’라고. 돌이켜보니 2009년 1월20일이 끝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우리도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유가족은 어떨까? 얼마나 수없이 그 순간으로 돌아갈까?’라고 생각하니 먹먹해졌다.”


언론장악에 맞서다 피해를 입은 언론인들의 절규도 애잔한 어록을 남겼다. “체포된 자이든, 체포한 자이든 체포가 부당하다면 모두 피해자이다. 그래서 나는 부당함을 주장하되 나를 체포한 이들에게 따뜻한 웃음을 던진다”(노종면 YTN 전 노조위원장 - 2009년 구속 즈음) “저들이 믿는 하나님이 있고, 파업 조합원들이 믿는 하나님이 따로 계시는 게 아니라면 머지않아 이 싸움은 하나님의 뜻대로 끝날 것이다.”(조상운 전 국민일보 노조위원장 - 2011년 해직 이후)


정권과 대중이 맞선 치열한 싸움의 와중에, 옳고 그름을 논하는 나그네, 논객들도 많은 어록을 남겼다. “힘센 놈 피하는 것은 비겁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자꾸 피하면 우울해진다. 그래서 보여주고 싶었다. 할 말 다 하고도 우리가 말짱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증명하고 싶었다.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쫄지마’라는 것이다”라며 ‘나는 꼼수다’의 김어준은 건투를 빌었고, “논객의 생명은 즉자성이다. 싸움이 붙었을 때 바로 참전하는 것이다. 뜸 들이지 않고. 반면 '지식인'은 버스 지나간 뒤에 떠들기 시작한다. 광복절 다음날부터 독립운동을 하는 격이다”라며 진중권은 보수의 골대를 향해 맹렬하게 드리블했다.  


치열한 좌우갈등의 와중에 조용히 위무하는 이도 있었다. 160여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이외수 선생이다. 그가 새벽에 트위터에 올리는 글은 잠 못 이루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깊은 산속 옹달샘에 토끼가 세수하러 왔다가 왜 물만 먹고 갔을까, 라는 질문을 올렸다. 그랬더니 누가 ‘내가 세수한 물을 다른 토끼가 먹을까봐’라는 답을 주더라. 우주를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이다.”


'Dress Classy, Dance Cheesy'(옷은 고급스럽게, 춤은 저렴하게) 가수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인기를 얻은 후 미국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한 말이다. 대중문화는 여전한 어록 공장이다. 특히 어록과 관련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드라마와 영화, 연극이다.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력을 보여준 작품의 어록에 시청자와 관객은 열광했다. 그 중 몇을 소개한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당시 개복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직 살아있지 못할 겁니다. 오늘 살아 있어야 내일도 있습니다.” “환자 아직 살아있어. 그걸로 된 거야” “지금은 좋은 것과 나쁜 것 중에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쁜 것과 덜 나쁜 것 중에 선택해야하는 상황이다. 의사에겐 가장 괴로운 일이지”(드라마 <골든타임>)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식견이 얄팍하다는 이유로, 신분이 미천하다는 이유로, 하극상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이유로, 나라 기강이 문란해진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이유로 백성들의 입을 막는다면 과인은 대체 백성의 소리를 어디서 들을 수 있단 말이오.”(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이명박 정부 들어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연예인이 많아지면서 ‘소셜테이너(사회참여 연예인)’라는 말이 널리 쓰였다. 그들의 남긴 말들도 큰 울림을 주었다. 고 노무현 대통령 노제 사회를 보면서 ‘김제동 어록’을 만든 김제동씨는 “더 이상 정치가 젊음을 굴리는 것이 아닌 젊음이 정치를 굴리게 해야 한다”라고 말하며 20대의 투표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다. 


“마술사는 진실의 가면을 쓴 환상을 보여주지만 배우는 환상의 가면을 쓴 진실을 보여준다. 셰익스피어의 말이지. 나는 권력의 가면을 쓰고 너희들의 욕망을 보여주지. 그런 의미에서 난 마술사에 가까워...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뽑아놓고 왜 지랄들이야. 내가 치사스럽게 선거를 조작했니, 투표함을 바꿨니, 돈을 뿌렸니? 나, 이래 보여도 정정당당하게 권력을 차지한 놈이야. 코르마 공화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래 니들이 뽑은 거야.”(연극 <아큐, 어느 독재자의 고백>)


대중문화 콘텐츠 자체가 이슈가 되면서 어록을 남기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나는 가수다>의 ‘김건모 재도전 논쟁’이다. 탈락한 김건모에게 재도전 기회를 주자 이를 결정한 제작진과 이를 제안한 연예인에게 비난이 빗발쳤다. 현실에서 구현되지 않는 ‘공정사회’를 시청자들은 연예프로그램에서 구현하려고 했다. 이명박 정부의 숱한 비리와 의혹에 침묵하던 대중이 갑자기 들불처럼 들고 일어섰다. 


<나는 가수다>를 패러디 한 <나는 꼼수다>를 만든 김어준씨는 이때의 상황을 “(재도전 제안을) 제작진이 거절했다면 김건모는 쿨하고, 김제동은 착하고, 이소라는 섬세하고 제작진은 단호하게 보일 수 있었다. 또 프로그램은 김건모조차 떨어뜨리는 최고의 권위를 확보하는 세계최고의 방송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김건모는 찌질이, 김제동은 오지랖, 이소라는 땡깡부리는 것처럼 비춰졌다. 1등의 의미는 없어지고, 평가단은 바보가 되고, 프로그램은 난리가 나고, 시청자는 화가 났다”라고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