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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살벌한 독설

집회와 시위에 대한 예술을 체포하는 나라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3. 8. 11.



조습 작가의 10-26 패러디 작품조습 작가의 10-26 패러디 작품



서울은 주장할 것이 많은 도시다


서울은 집회와 시위의 도시다. 시내 중심가에서 어느 방향으로 길을 걷더라도 선전판을 걸고 있는 우울한 1인 시위자를,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억울한 집회자들을, 사옥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힘없는 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다. 이제 이런 모습들은 제법 자리를 잡은 서울의 풍경이다. 


그래서 서울은 다양한 주장의 도시다. 그 대상은 국가가 되기도, 자본이 되기도, 그리고 때로는 다른 국민들이 되기도 한다. 호소력을 높이기 위해 그들은 때로 흐느끼고, 때로 언성을 높이고, 때로 증거를 폭로한다. 기자들이 경찰서 형사계에서나 볼 수 있었던 삶의 각박한 풍경을 이제 거리에서 누구나 볼 수 있다.   


집회와 시위의 도시 서울에서 볼 수 있는 주장과 호소의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 중의 한 곳이 바로 대한문 옆이다. 지하철 시청역 출구가 있고 시청 앞 서울역 광장을 마주보는 이곳은 집회와 시위의 명소다. 이곳엔 제법 이슈가 되었던 주장이 둥지를 틀고 있다. 거의 성지나 다름없다. 



조선일보 보기에 마땅치 않으셨으니...


그런데 그것을 지켜보는 것이 조금 불편했던 사람들이 있었나 보다. 대한문 옆은 조선일보 기자들이 시청에서 본사로 갈 때 지나쳐야 하는 곳이다. 조선일보 간부들이 시청 근처 맛집을 가기 위해 지나쳐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통행을 방해하고 시선을 어지럽히는 농성자들이 보기에 좋지 않았던지 조선일보는 기사와 사설로 그들을 공격했다. 

 

도시 미관과 보행권에 대한 조선일보의 집착에 중구청장이 화답했다. 박정희기념공원 건립으로 충성심을 과시하려다 대통령의 만류에 새로운 충성방식을 찾던 중구청장은 강력한 단속과 철거로 도시 미관과 보행권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부각했다. 비슷한 목적을 가진 남대문경찰서장도 철거를 도왔다.  


조선일보와 중구청장과 남대문경찰서장의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집회와 시위에 대해 무제한의 권리가 있다고도 보지 않는다. 사회는 복잡하고 권리는 충돌하기 마련이다. 집회와 시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 합의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이제껏 나온 적이 없었다. 



목소리가 크다고 주장이 큰 것이 아니다


목소리가 크다고 주장이 더 큰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더 큰 농성장을 짓는다고 그 주장이 더 힘을 받는 것도 아니다. 이제 스스로 화두를 던질 때다. 시내에서 농성을 할 때 어느 정도 넓이에서 어떤 방식을 사용해도 될지 농성자가 시민에게 물어야 한다. 다양한 의견을 들어야 한다. 그래서 합의를 만들어내야 한다. 


한국을 유행의 나라라고 한다. 집회와 시위와 관련해서도 유행이 있다. 1인 시위와 촛불집회 유행을 지나 지금은 고공농성 유행의 시기다. 1인 시위가 너무 남발하고 촛불집회가 과잉단속으로 힘을 잃을 때 김진숙씨의 고공농성이 한진중공업 사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을 보고 새로운 유행으로 자리 잡았다. 


고공농성은 군사정권 시절의 분신에 필적하는 집회와 시위의 극한이다. 바리케이트가 쳐진 고공농성장에 홀로 혹은 2~3명이 고립되어 시위를 하는 모습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나 고행하는 석가모니의 모습과 흡사하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첨탑 끝에 걸려있다는 것을 그들은 몸으로 증거한다. 



그 많던 예술 집회는 어디간 것일까?


우리의 집회 시위 문화가 이처럼 위험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밀려날 때 세계의 다른 곳에서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집회문화가 선보였다. 전쟁을 방불케하는 거친 시위를 하는 곳으로 유명한, 축구의 나라 브라질에서는 해변가에 축구공을 묻는 퍼포먼스를 통해 월드컵 개최에 항의했다. 


집회 시위와 관련해 최근에 주목할 곳은 터키다. 세속주의 정권이 붕괴된 후 다시 이슬람 원리주의로 회귀하는 것을 막기 위해 키스 시위가 벌어지는 등 다양한 시위방식이 선보이고 있다. 공원에서 노래를 부르는 시위자, 44시간 동안 책을 읽는 시위자 등 자신만의 방식으로 목소리를 냈다. 행위예술가 에르뎀 귄뒤즈는 8시간 동안 탁심광장에서 침묵시위를 하기도 했다.  


부러운가? 부러워할 것 없다. 우리도 다 해본 것들이다. 2008년 촛불집회는 거대한 행위예술의 전시장이었다. 십자가를 메고 고행하는 예수를 흉내 낸 행위예술가 시위자도 있었고 매일 밤 새로운 방식의 시위 예술이 선보였다. 의자와 책상을 들고 와서 광장에서 공부를 하는 퍼포먼스를 벌인 학생도 있었다(이 학생은 나중에 국민대 총학생회장이 되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 서울시청 앞 노제는 어땠나? 외국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검정 드레스를 입고 나온 젊은 여성들이 노란 만장 뒤에 도열해서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김명곤 전 문화부장관은 국립국악원 단원들을 불러와 우리 전통방식의 초혼의식으로 고 노무현 대통령의 혼을 달랬다. 


2011년 반값등록금 집회는 어땠나? 하루하루가 잔치였다. ‘가장 확실한 연대는 입금’이라는 구호 아래 그들의 선배들이 보내준 군자금으로 하루는 치킨집회를 하루는 피자집회를 열며 잔치와 축제의 판으로 바꿨다. 하루는 기증받은 수천 권의 책을 읽으며 시위를 하기도 했으며 함께 구호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플래시몹을 하는 것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도 했다. 


용산 남일당과 제주 강정마을은 어떤가? 하나의 예술제였다. 시인과 음악가와 무용가와 화가들이 희망의 벽돌을 보탰던 남일당과 강정마을은 시가 되고 노래가 되고 춤이 되고 그림이 되었다. 아무도 동원된 사람은 없었다. 외면할 수 없어서 제 발로 찾아온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예술작품이었다. 



집회와 시위에 대한 예술을 체포하는 나라


그러나 이런 새로운 흐름은 큰 강을 이루지 못했다. 정권의 방해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새로운 힘을 갖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시가 되고 노래가 되고 무용이 되고 그림이 된 주장과 함성이 갖는 힘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흐름을 막기 위해 행동에 나섰다. 


이명박정권 하에서, 경찰은 그들이 이전에 행하던 나쁜 행동에 대한 기억을 되살렸다. 그들은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 시위 군중을 욕 먹이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것을 기꺼이 활용했다. 시위대를 자극해 폭력적으로 행동하게 하는 법, 통제를 느슨히 해 기물을 파손하게 하는 법 등을 적용했다. 


경찰의 오랜 노하우는 확실히 효과를 발휘했다. 시위대 속의 숨은 좀비와 같은 이들이 전면에 나와서 폭력을 휘둘렀다. 경찰은 기다렸다는 듯이 역습에 나섰다. 그들을 핑계로 선량한 시민들까지 잡아들였다. 평온한 시위 문화와 새로운 시위 예술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강경진압’ 네 글자가 뒤덮었다. 


경찰은 예술가들의 상상력도 규제했다. 이명박을 비꼬는 것이 죄가 되었고 박근혜를 비난하는 것도 역시 죄가 되었다. 시인과 화가가 법정에 불려갔다. 그런 그들의 행위는 충분히 비웃음을 샀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들은 예술가들을 겁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그들은 상상력을 옥죄었다. 시가, 노래가, 춤이, 그림이 죄가 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경찰은 모든 것을 망쳤다. 신명나는 축제와 같은 시위는 이제 암울한 제사가 되었다. 정말 그것은 축제였다. 축제가 없는 도시 서울의 새로운 축제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시장 시절 곤룡포를 입고 한류스타들을 병풍처럼 세우고 입장했던 하이서울페스티벌은 축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행사일 뿐이었다. 그가 대통령이 되는 것 말고는 기원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원하는 것이 명확한 서울의 축제는 승리를 염원한 월드컵과 민주주의를 주창한 촛불집회였다. 



시인이 시만 생각하는 나라가 좋지 아니한가?


최근 안도현 시인은 '박근혜가 대통령인 나라에서는 시를 쓰지 않겠다'라며 절필 선언을 했다. 그것을 지켜보며 ‘왜 뭔가 하지 않는 것이 뭔가를 하는 것이 되고, 뭔가 하는 것은 뭔가를 하지 않는 것이 되는 것인가?’하는 생각을 했다. 헤밍웨이는 <무기여 잘 있거라>로 말했고 피카소는 <게르니카>로 말했는데, 왜 박근혜정부와 싸우겠다는 시인은 시를 버릴까? 


안도현 시인의 절필선언에서는 맥락이 느껴지지 않았다. 박근혜정부가 한 구체적 잘못이 아니라 그 정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 시인이 자신의 가장 큰 무기인 시를 버리는 것, 시 대신 트위터를 통해 정제되지 않은 거친 말을 쏟아내는 것, 모두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거친 사회가 시인마저 극단의 선택을 하게 강요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시인이 시로 말하고, 음악가가 노래로 말하고, 무용가가 춤으로 말하고, 화가가 그림으로 말하는 그 시대가 다시 와야 한다. 거기서 더 나아가 시인이 시만 생각하고, 음악가가 노래만 생각하고, 무용가가 춤만 생각하고, 화가가 그림만 생각하는 그 시대로 가야 한다. 그런 세상이 좋지 아니한가?



주) <문화+서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