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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좌판 위원회/행복한 책꽂이

2013년이 가기 전에 읽어야 할 네 권의 책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3. 12. 25.


한 해 마무리를 책으로 하려는 분들을 위해...

최근 출간된 책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책 4권을 소개합니다. 



'현대 인도 저항운동사'의 저자 한형식 부소장



우리가 몰랐던 ‘골 때리는’ 인도 역사

<현대 인도 저항운동사>/그린비 펴냄


아랍에서 재스민 혁명이 시작된 지 3년이 지났다. 대규모 시위로 독재 세력을 몰아냈지만 그 나라들이 확실하게 민주화되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군부가 재집권한 나라도 있다. 얼마 전 <시사IN> 천관율 기자와 장일호 기자가 이집트와 터키를 찾아 아랍의 민주화가 더딘 까닭을 취재하고 오기도 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우리의 민주화 과정은 더 답답했다. 영구 집권을 획책한 박정희가 사망하고 13년이 지나서야 문민정부가 들어섰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지 20년이나 지나고도 정보기관과 군의 불법 대선 개입이 자행되었다.


<현대 인도 저항운동사>를 읽고 처음 든 생각은 속된 말로 ‘골 때린다’였다. ‘이 나라 정치인들 정말 웃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섬뜩했다. 생각해보니 우리도 똑같았다. 웃을 일이 아니었다. 정말 부끄럽도록 닮아 있었다.  



“인도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사회운동의 전시장”


정치인들은 무슬림에 대한 반감을 선거에 활용하기 위해 힌두교도들의 무슬림 공격을 묵과하며 ‘종교 감정’을 부추겼다. 인도 역시 외교의 최우선 과제를 미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에 둔다. 부유층에 대해서는 낮은 과세를 해서 정부 재정지출 규모를 줄이려고 정부 투자와 복지 지출을 줄인다. 지방 세력가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리인을 내세워 정치를 하는 ‘브로커 정치’가 판을 친다. 소수의 무슬림 세력을 적으로 돌려 카스트 간의 내부 갈등을 봉합한다. 보수와 진보 정치 세력 간 핵심 정책의 차이는 거의 없이 원칙 없는 합종연횡으로 권력만 탐한다. 우리가 거쳤던 모든 문제를 인도도 거쳤다. 


<현대 인도 저항운동사>에는 우리가 기대했던 인도의 모습은 없고 우리를 부담스럽게 하는 인도의 모습만 보인다. 간디는 카스트 제도를 혁파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카스트 제도 외의 천민을 제5의 카스트로 편입시키는 수준의 개혁을 추진했다는 것, 4대에 걸쳐 인도를 이끈 네루 가문이 어떤 협잡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했는지, 중국 공산당 못지않게 공산당원이 많은 인도 공산당이 어떤 ‘사이비 사회주의’ 정책을 취하는지도 보여준다. 


이 책의 대표 저자인 한형식 당인리 대안정책발전소 부소장은 인도에 다녀온 적이 없다. 책은 그가 주도한 세미나의 결과물이다. ‘세미나 네트워크 새움’ 회원들과 그는 책과 자료로 인도를 공부했다. 한 부소장은 “2011년 한 해 동안 인도의 저항운동사에 대해 세미나를 했다. 아시아 공산주의 운동에 대해 들여다보다 인도의 사례가 흥미로워 집중적으로 살폈다. 윤리적 관점이 아니라 그 사회의 실질적 경제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는지 들여다보았다”라고 말했다. 


서구의 성공 모형만큼 인도의 실패 모형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도 중요하다며 한 부소장은 “인도는 거의 모든 저항운동이 일어난 사회운동의 전시장이다. 요즘 한국 사회운동의 핵심 축으로 떠오른 사회적 경제와 협동조합도 인도에서는 이미 2004년 무렵 전성기를 이뤘다. 국가 주도 경제 모형에서 신자유주의 모형으로 이행하면서 나타난 것인데, 어떤 성과를 거두고 어떤 한계를 보였는지 살폈다”라고 말했다. 




'피부색깔 = 꿀색'의 저자 전정식 씨.



한 만화가의 36년, 그 그림이 아프다

<피부색깔=꿀색>/전정식 글·그림/박정연 옮김/길찾기 펴냄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최악은 내가 왜 불행한지 이유를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무의식적으로 죽음을 원했던 게 아닌가 싶다. 입양아 유리는 훨씬 빠른 방법을 택했다. 그는 권총으로 자살했다. 역시 입양아인 유리의 누나는 마약 과용으로 죽었다. 다리가 짧았던 입양아 브뤼노는 목을 매달았다. 입양아 안느는 혈관을 끊어서 죽었다. 입양아 미셸은 오랫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이 모든 한국인 입양아들은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았고 모두 같은 학교를 다녔다.”


벨기에 입양아 출신 전정식 작가가 그린 자전 만화 <피부색깔=꿀색>의 내용 중 일부다. 거친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 태어난 곳을 찾아가는 연어처럼 많은 입양아들이 어른이 되어 한국에 돌아와 부모를 찾는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좋은 양부모 만나 번듯하게 자라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며 안심한다. 그러나 그들은 20만명이 넘는 해외 입양아 중 살아남은 일부다. 많은 입양아들이 정체성 혼란을 겪으며 불행하게 삶을 마감한다.


전씨가 입양아를 표현하는 말들은 적나라하다. 고급 승용차처럼 벨기에 부유한 부부의 상징 코드, 다른 사과까지 썩게 만드는 양동이 속의 썩은 사과, 얼굴에 멍이 들어 있으면 반품되는 하자 있는 상품, 망가지고 질리면 쉽게 버리는 장난감…. 입양아들끼리는 서로 말을 걸지 않으며 마주치는 게 싫어서 길을 돌아갔다는 저자의 말은 우리를 씁쓸하게 한다. 


자라면서 동양적인 것에 끌리던 저자가 빠져든 것은 한국 문화가 아니라 일본 문화였다. 사무라이와 제국 기병의 늠름함에 반했고 일본산 전축으로 일본 음악을 들으며 일본 문화에 빠져들었다. 저자는 “진짜 내 선조, 한국의 선조들에 관해서는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나를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보냈으니, 선조들이 나를 배신한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 용서할 수가 없었다”라고 그 심정을 표현했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안시’에 공식 초청 


만약 한국에 남아 있었더라면 분명히 강제징집을 당했을 거라고, 아니면 거리에서 굶어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스스로를 위로한다. 제법 자란 후에 입양되었던 그는 홀트아동복지회에서의 생활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홀트에서는 급식 시간 동안 소란을 피우는 법이 없었다. 식기 부딪치는 소리와 씹는 소리만 났다. 너무나 배가 고파서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먹고 난 그릇은 늘 거의 깨끗했다.”


입양된 지 36년 만에 그는 고국을 찾았다. 누가 권하지도 않았는데 왜 쌀밥이 당기는지 알기 위해서, 위벽에 구멍이 날 정도로 매운맛에 집착하는 이유가 뭔지 알고자, 나무뿌리를 좋아하는 자신의 진짜 뿌리를 찾아서, 청소년 시절 마약에 취해서 보았던 돌고래 환영 속의 엄마를 찾아서 그렇게 한국 땅을 밟았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꿀색 피부의 사람들을 만났지만 자신의 근원에 대한 명확한 답을 얻어가지는 못했다. 


<피부색깔=꿀색>은 2009년 국내에 출판되었던 책이다. 이번에 저자의 한국 방문기가 추가되면서 개정증보판이 나왔다. <피부색깔=꿀색>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2012년 안시 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 공식 초청되었다. 그의 한국 방문기는 <피부색 꿀>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되기도 했다. 






우리 디자인의 ‘오래된 미래’

<오래된 디자인>/컬처그라퍼 펴냄


저자는 스스로를 두루 넓게 알지만 얕게 아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본 대로 생각나는 대로 썼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책을 읽어보면 두루 알면서도 참 깊게 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참 본 것도 많고 생각하는 것도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는 ‘오래된 디자인’에 대해서 썼다. 우리의 전통 문화유산을 디자인적으로 재해석했는데,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식으로 해석하자면 전통 디자인은 우리 디자인의 ‘오래된 미래’다. 고려 시대 청자참외모양 병이 어떻게 청자 모티브 드레스로 바뀌는지, 인류 최초의 도구 중 하나인 뗀석기(타제석기)의 모양과 인간이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 물방울다이아몬드 모양이 어떻게 유사한지를 보여준다.


<오래된 디자인>의 저자 박현택씨. 저자의 질문은 좀 더 근원적이다. 단지 우리 전통에서 디자인 패턴 몇 가지 가져오고 그 응용 사례를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 전통 디자인의 철학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저자는 “서구 디자인은 산업혁명의 결과물이다. 역사적 인과관계에서 조형 정신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나타난다. 우리는 이것이 없다. 이것을 밝혀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전통 디자인을 활용해 명품을 만들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다. 색감과 패턴을 도입해 새롭게 디자인했다. 그러나 저자는 디자인 과잉 시대에 그런 방식보다 수백 년 다듬어온 쓸모의 재발견이 중요하다며 이렇게 썼다. “요강은 결코 예술가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다. 당연히 예술이고 싶어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예술을 극구 부정한 것도 아니다. 더욱이 그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말하자면 생활의 한 도구가 경지에 이른 것뿐이다. 그러한 단계를 우리는 예술이라 부른다.”


저자가 전통 디자인에서 ‘오래된 미래’를 읽어내는 방식은 비교다. 선비들이 쓰던 서안이나 경상과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코란 받침대를 비교하고 우리의 새 토템과 서구의 독수리 휘장을 비교한다. 그 비교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우리다움을 잃어가는 과정을 환기시킨다. 정리하자면 우리는 우리다움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무엇이 멋있는 것인지도 알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북디자이너로 활동한 저자의 ‘디자인 이야기’


이 책의 서문을 써준 도올 김용옥은 우리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아름다움의 ‘아’은 우리말의 고어에서 ‘나’의 뜻을 지니는 명사로도 해석될 수 있다. ‘아름답다’는 ‘나답다’이다. 아름다움은 객관인 동시에 주관이며 궁극적으로 나의 체험의 요소 간에 발생하는 느낌이다. 아름다움은 나다운 것이며 나의 느낌화되는 것이다.” 저자는 시간의 강을 거슬러가며 열심히 우리다움을 찾는다.


북디자이너로 활동한 저자의 전문가적 분석력이 엿보이는 부분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편지글에 덧붙인 그림이라는 것을 논증해내는 부분이다. 저자는 세한도의 레이아웃을 분석해서 세한도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덧붙인 것이 아니라 편지를 쓰고 그린 그림이라는 것을 설명하며 달인의 경지에 이른 추사 김정희의 즉흥적인 구성미가 어떤 공간 분할을 통해 구현되는지 분석해서 알려준다.


저자는 ‘디자인은 상식’이라고 말한다. 사용하기에 편하고, 보기에도 좋고, 그러면서도 적당히 주변과 어울리고, 나름 정돈된 형태나 구조를 지향하려 하고, 그렇게 되도록 바라고 고민하고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이 디자인이라고 말한다. 그 고민을 우리 조상은 수천 년 동안 해왔고, 저자는 그 결정체들을 포착해서 우리에게 전한다. 




한명기 교수(왼쪽)와 유하령 작가 부부.



이 부부의 식탁에는 병자호란이 오르네

<역사평설 병자호란 1, 2>/푸른역사 펴냄


최고의 해석은 사실의 완벽한 복원이다. 명지대 한명기 교수(사학과)의 <역사평설 병자호란 1, 2>는 사실만 한 해설이 없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준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사료까지 꼼꼼하게 살펴서 입체적으로 복원했다. 복원된 사실은 소설 이상의 박진감을 느끼게 만든다.


한 교수는 병자호란 이야기를 안단이라는 포로의 탈출기로 시작한다. 1636년 병자호란의 와중에 청군에게 붙잡힌 안단은 포로가 되어 중국 심양으로 끌려간다. 주인을 따라 북경으로 갔던 그는 붙잡힌 지 38년 만에 탈출을 시도한다. 천신만고 끝에 의주에 도착한 그를 의주부윤 조성보는 청나라 칙사들에게 넘긴다. “고국을 그리는 정이 늙을수록 더욱 간절한데 왜 나를 죽을 곳으로 내모느냐”라고 호소하는 안단을 끝내 외면한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동아시아 패권국이자 ‘슈퍼파워’였던 명나라가 쇠퇴하고 청나라가 발호하던 정묘호란·병자호란 시기에 두 적대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던 조선의 처지가 지금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우리의 처지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강대국 사이의 약소국이 어떤 처신을 해야 하고 무엇을 스스로 길러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400년 전 조선의 방황에서 찾는다. 여전히 ‘복배수적(腹背受敵:배와 등 양쪽에서 적이 몰려오는 형국)’의 지경인 우리가 감안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역사의 교훈을 들려준다. 저자는 병자호란을 우리가 다시 들여다봐야 할 이유가 ‘G2(미국과 중국 양강 체제) 시대의 비망록’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400년 전 조선은 두 쪽으로 갈려 있었다. ‘중화국인 명을 섬기고 오랑캐인 청에게 맞서야 한다’는 척화파와 ‘명을 위해 조선의 존망까지 걸 수는 없다’는 주화파가 대립했다. 저자는 어느 주장이 맞고 어느 주장이 틀리다는 해석보다, 이들의 대립이 사실관계를 정확히 따진 후 맞선 것이 아니라 맞서기 위해 사실을 자의적으로 해석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의견 대립은 어디든 있다. 그 의견 대립이 망국을 낳았던 것은 의견 대립의 근거와 방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적을 몰랐던 조선은 자신에 대해서도 무지했다. 저자는 “조선은 청의 침략을 감당할 역량이 없었다. 병력의 수, 군사들의 훈련 상태와 전투 경험, 군량미 등 군수 지원 역량, 지휘관의 작전 능력과 책임감 등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요소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청보다 나은 점이 없었다”라고 지적한다. 



아내는 병자호란 다룬 소설 펴내


조선이 무모한 전쟁에 나선 이유를 저자는 인조반정에서 찾았다. 반정을 일으키고 ‘금수의 땅이 다시 사람 사는 세상이 되었노라’고 선언한 인조는 반정의 명분을 위해 명에 치우쳤다. 떠오르는 청을 견제하기 위해 조선을 최대한 활용해야 했던 명은 인조의 책봉을 늦추며 조선을 흔들었다. 저자는 중국 쪽 사료를 살펴 당시 중국에서도 명분론을 내세우며 광해군의 복위를 주장했던 관료가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병자호란은 1636년 12월9일에 시작해 1637년 1월30일에 끝났다.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남겼다. 삼전도(三田渡)에서 인조는 청 태종에게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세 번 절하면서 그때마다 세 번씩 머리를 땅에 조아리는 것)’를 행했다. 9년 전 정묘호란을 겪었고 44년 전 임진왜란을 겪었지만 조선의 위정자들은 어떠한 교훈도 얻지 못했다. 


병자호란으로 인해 50여만 조선인이 청에 붙잡혀갔다. 한 교수의 부인 유하령씨는 그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썼다. 남편의 병자호란 연구 성과를 이야기로 풀어낸 것이다. 스무 살, 열일곱 살 나이에 청에 끌려간 남녀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은 역사소설 <화냥년>은 한겨울에 끌려가다 얼어 죽고 맞아 죽고 병들어 죽고 압록강에 뛰어들어 스스로 죽은 포로들의 이야기를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