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잘 찍고 싶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책 4권
사물을 찍을 때 - 구본창, <공명의 시간을 담다>
풍경을 찍을 때 - 김진석, <걷다 보면>
사람을 찍을 때 - 권철, <가부키초>
사건을 찍을 때 - 이상엽, <최후의 언어, 나는 왜 찍는가>
<공명의 시간을 담다>
구본창 글·사진, 컬처그라퍼 펴냄
사진이 흔해진 시대에 작품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전 국민이 사진가를 자처하는 시대에 사진가가 할 일은 무엇일까? 사진가 구본창의 사진 에세이 <공명의 시간을 담다>에서 어렴풋이나마 답을 찾을 수 있다. 관건은 인물과 사물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얼마나 더 섬세하게 교감하고 얼마나 더 깊이 읽어내느냐가 평범한 사진과 비범한 사진을 가른다.
<공명의 시간을 담다>는 사진 에세이로는 드물게 텍스트를 중심에 두었다. 사진이 허술하게 다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텍스트를 설명하는 데 작은 사진들이 보조적으로 쓰이기도 한다. 할아버지가 손자 손녀에게 설명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덤덤히 들려준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유학 가서 사진을 공부하던 시절처럼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사진에 관한 철학을 풀어낸다.
그는 사물이 내는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라고 조언한다. 잘 보려고 하기보다 잘 듣는 것이 사물의 본성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사진을 찍게 이끈다는 것이다. 사물과의 교감이 일종의 에너지처럼 필름 속에 스며들어야 공명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런 그가 가장 귀 기울이는 것은 바로 내면의 목소리다. 그는 어떤 사진가보다도 많은 ‘셀프 포트레이트(자기를 찍은 사진)’를 즐겼다. 사진 찍히는 것을 어색해하는 다른 사진가들과 달리 그는 자신의 모습을 계속 찍으면서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독일에서 유학한 그는 카메라가 아니라 미니멀리즘(소수의 단순한 요소로 최대 효과를 이루려는 사고방식)을 받아들였다. 그는 천재보다 차라리 둔재가 되라고 충고하며 “학생 시절 독일에서의 수업은 주로 한 주제를 깊이 파고드는 연작 위주의 작업이었는데, 그 목적은 우연히 잘 찍은 한 장의 사진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그 주제를 깊이 연구하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했는지를 보는 방식이었다. 반짝 눈에 띄는 작품을 내놓기보다 꾸준히 준비하고 시도하여 좋은 결과물을 내는 학생들이 더 칭찬받았다”라고 말했다. 카메라를 메고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사냥꾼처럼 도시를 헤매는 ‘거리의 사진가’들이 새겨들을 만한 충고다.
그는 사진이 사진가의 내면을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말한다. 사진에서 사물을 대하는 방식이 바로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는 “인물 사진이란 그 인물과 사진가의 교감이 일어나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므로 사진가의 성격이나 취향에 따라 인물을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모습으로 읽고 싶어하는지가 그 인물의 특징이 될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의 얼굴에 끌리는 순간은 어떤 상처나 슬픔 같은 정서가 드러날 때, 즉 ‘사연이 있는 얼굴’을 발견하는 순간이다”라고 말했다.
사진가 구본창이 빛나는 지점은 서양의 미니멀리즘과 우리 전통의 미감을 잘 조화시켰다는 것이다.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는 우리의 전통 미감을 그의 사진에서 읽어낼 수 있다.
빛을 사포로 갈아서 쓰는 것처럼 섬세한 사진을 찍는다는 평가를 받는 저자의 대표작 중 하나가 바로 백자 달항아리 사진이다. 자신을 화려하게 드러내기보다 조용히 관조하는 태도가 사진에 고스란히 드러나서 그의 사진 역시 백자 달항아리처럼 편안하면서도 풍부한 느낌을 준다. 단순함이 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사진으로 증명했다.
<걷다 보면>
김진석 글·사진, 큐리어스 펴냄
제주올레와 같은 걷기 코스를 걸을 때 가장 큰 방해물은 바로 대형 카메라다. 단순히 무거워서만은 아니다. 좋은 사진을 탐하다 보면 걷는 호흡을 잃고 길을 벗어나게 된다. 끝없이 멈춰 서서 사람들이 풍경 속으로 들어오길 기다리고, 길을 벗어나서 길의 전경을 담으려 하기 때문이다. 풍경을 포기해야 풍경을 얻는다.
‘길 위의 사진가’로 불리는 김진석의 사진이 마음에 드는 것은 그의 사진이 길을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길을 걷는다는 것의 의미를 아는 사진가다.
길을 걸으면 처음엔 풍경이 보인다. 그러나 압도적인 풍광도 계속 보면 지겨워진다. 다음에는 사람이 보인다. 사람들 모습이 익숙해질 무렵 드디어 내면의 풍경이 보인다. 오래 걸어본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시선의 변화다.
작가는 트레일 코스에서 사진을 잘 찍는 방법으로 ‘열심히 걷기’를 추천한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면 길 위의 풍경이 스스로 카메라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이다.
사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 내공이다. 길을 걸을 때 느꼈던 자신의 감정을 풍경을 통해 표현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호흡으로 걸어야 한다. 그래야 선입견을 벗어난 자기만의 시선으로 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대형 카메라를 성능 좋은 창이나 총처럼 메고 다니며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어설픈 ‘풍경 사냥꾼’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가부키초>
권철 글·사진, 안해룡 옮김, 눈빛 펴냄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당신은 충분히 다가가지 않은 것이다.” 사진가 로버트 카파의 말이다. 충분히 다가갔다면? 그다음은 시간이 문제일 것이다.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당신은 충분한 시간 동안 찍지 않은 것이다”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충분히 다가가서 충분한 시간을 들여 찍었다면 기대해볼 만한 사진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사진가 권철의 사진집 <가부키초>는 이 가설을 만족시켜주는 르포르타주 사진집이다. 일본에서 가장 화려한 곳이지만 또한 가장 범죄가 많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도쿄 가부키초다. 욕망과 욕망이라는 신기루를 채워주는 유행, 그 유행에 기댄 가짜, 그 가짜를 형식적으로 단속하는 공권력 등 일본 사회의 모순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가부키초를 무려 16년 동안 카메라에 담았다. 일본인은 아니지만 ‘가부키초 공식 사진가’를 자처하며 당당하게 담았다.
처음 그가 가부키초를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 것은 야쿠자와 경찰 50여 명이 서로 뒤엉켜 난투극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 난 후다. ‘인간의 욕망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인간극장’이라는 생각이 들자 그때부터 줄곧 가부키초를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경찰도, 야쿠자도, 호객꾼도, 노숙자도, 가출 여학생도 그가 가부키초를 기록하는 공식 사진가라고 착각할 만큼 당당하게 기록했다.
최후의 언어, 나는 왜 찍는가
이상엽 글·사진, 북멘토 펴냄
세월호 참사를 담은 사진가 이상엽씨의 카메라는 실종자 가족에게 충분히 다가가지 못했다. 그는 진도체육관의 원경과 현장 취재기자들의 뒷모습을 덤덤히 담았다. 물리적으로는 다가서지 못했지만 대신 마음으로 다가갔다.
‘사진가를 위한 양자역학’ 강좌를 여는 저자는 대표적 ‘사유하는 사진가’로 꼽힌다. 진보 정당에서 정치 활동을 하는 그는 카메라 앞에서 늘 고뇌한다. 그의 카메라는 사냥꾼처럼 포착하기보다 학자처럼 사유한다. 그는 “카메라는 사고하지 못한다. 사고는 사진을 찍는 사람의 몫이다. 하지만 어떤 카메라가 어떤 히스토리를 갖고 내 품에 들어와 사진을 찍어주고 있는가 하는 것도 여전히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좋은 풍경보다 풍경의 그늘에 주목하는 그가 시베리아 타이가 숲에서 제주 강정마을까지 찾아다니며 주목했던 것은 가림막이다. 그는 “내가 지난 수년간 작업한 것은 이 땅의 파괴와 소외였다. 그 소재 중 하나가 가림막이다. 무언가를 은폐하고 음모하기 위해 쳐놓은 것이 가림막이다. 재개발지구에서, 4대강에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가림막을 보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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