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기스가 없어서 나는 문학은 못한다, 라고 생각했다가...
시사저널 파업을 겪어보면서... '아 나도 충분히 기스가 난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때 사장/회장 시다바리 하면서 인생 밑바닥 까지 가는 직원들 모습을 보면서... '내가 저 인간 심리에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면 문학을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안 되었다. 그래서 계속 기자질을 하고 있는데...
베르나르도 베루톨루치 감독의 <순응자>를 보면서 그것을 완벽하게 해내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파시스트 비밀경찰의 심리 안으로 완벽하게 들어가서 이탈리아의 현대사를 응시했다.
파시스트 비밀경찰 마르첼로의 멜로물처럼 영화는 진행된다. 뭔가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남자의 스타일리시한 연애이야기 같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며 아름다운 여인들과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같이 느끼며 보게 된다. 옛 스승과 철학 논쟁도 즐기고....
그러나 시선을 바꿔 보면 그는 대학 은사를 암살했고 그의 젊은 아내를 범했다. 그것도 아내와 함께 만나면서 말이다. 그리고 파시스트가 밀려날 때는 동료들을 배신해 살아남았다.
<순응자>를 보면 자연스럽게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떠올리게 된다. 악의 평범성... '보통의 존재'들이 '보통의 삶'을 쟁취하기 위해 하는 악을 경험하게 된다.
평범한 가운데 그로테스크하고 키취적이다. 진짜 그로테스한 것은 기괴한 가운데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판이 튀듯 일상에서 접하는 낯선 한 순간 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맥락 밖으로 잠시 벗어나는 튀는 장면들은 긴장의 고삐를 죄며 의미를 파악해 보라고 재촉한다.
1970년 영화인데 너무나 현재적이다. 다시 베르톨루치 감독 작품들을 다시 챙겨봐야겠다.
조중동 혹은 종편에 근무하면서, 나는 생각은 진보적인데 다만 직장이 좀 보수적이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
예술지원단체에 종사하면서 정권이 싫어하는데 어쩔 수 없지 않느냐, 라며 창작품을 검열하는 사람.
과도한 법집행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 사회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공무원들.
반면... 국민의 저항에 대해서는...
저들의 목소리는 존중하나 저 경박한 말투와 천박한 행동거지를 보라, 라며 선을 긋는 사람.
나는 저들을 지지하지만 저들 옆에 서는 비루함은 맛보고 싶지 않다는 사람.
저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존중받게 하기 위해서는 목소리를 내는 방식을 좀더 세련되게 해야 한다고 훈수 두는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순응자들>(1월28일 개봉)을 보여주고 싶다.
스승을 암살하고, 그의 아내를 취하고, 나만 살겠다고 배신하면서도...
스스로를 로맨티스트라고, 지성인이라고, 절도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진정한 당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아이히만의 '악의 평범성'이 와 닿지 않는다면...
이 영화를 보고 거울을 보라고 .
그러면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위험한 보통의 존재'와 대면할 수 있을테니...
(쓰고 보니... 남 얘기처럼 썼네요. 나도 뭐 잘난 것 없고... 부끄러운 것 투성이인데...)
<순응자> 시사회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시사일정: 1/22(금) 저녁 8시
*시사장소: 아트하우스 모모
*응모기간: 1/15(금) ~ 1/20(수)
*당첨발표: 1/21(목) 개별 통보
*초대인원: 10명(1인 2매, 총20석)
신청방식 : '우리시대의 순응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제 SNS 계정에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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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dogs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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