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시선>은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의 전작 <액트 오브 킬링>과 쌍을 이루는 영화다. 오펜하이머 감독은 <액트 오브 킬링>에서 1965년 인도네시아 군부의 대학살의 주요 학살자 중 한 명인 안와르 콩고를 중심으로 가해자의 시선을 그렸다. <침묵의 시선>에서는 희생자 람리의 동생인 안경사 아디의 시선으로 피해자들이 침묵했던 시간에 대해 그렸다.
오펜하이머 감독은 원래 실험적인 극영화를 제작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인도네시아 대학살을 다루게 된 계기는, 대규모 농장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 농업인들이 노동조합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영화 제작법을 알려주러 갔다가 대학살에 대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벨기에 회사가 운영하는 농장인데 그곳 여성들은 주로 제초제와 살충제 뿌리는 일을 했다. 그런데 농약 성분이 호흡기로 들어가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가 계속 발생했다. 그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어 회사에 방화복 지급을 요구했다. 그런데 고용주인 벨기에 회사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판체실라 유스’라는 단체에 노동조합을 진압해달라고 의뢰했다. 그러자 노조원들은 노동조합을 곧바로 포기해버렸다. 그들의 부모와 조부모들이 노동조합원이라는 이유로 그 단체에 학살당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감독은 농약의 독성보다 두려움이 더 무섭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이 대학살에 관한 영화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해서 제작에 착수했다.
<침묵의 시선>의 백미는 아디가 가해자들에게 “당신들이 죽인 사람들 중에 내 형이 있었다. 람리를 기억하는가?”라고 묻는 순간이다. 대학살에 대해 “공산주의자를 죽인 것이니까 우리는 좋은 일을 한 것이다”라며 마치 무용담을 늘어놓듯이 학살을 묘사하던 가해자들은 순간 눈빛이 떨린다. 미세한 감정적 동요가 화면을 통해 전달된다. 그러나 그들은 이내 자신을 변호한다. 가해자의 자식들 역시 ‘왜 다 지난 일을 꺼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드느냐’고 항의한다.
감독은 가해자들이 학살을 자랑스러워하는 것만큼이나 피해자들이 진상 규명을 포기하고 과거를 묻어두려고만 했던 것에 대해서도 파고든다. 인도네시아인들이 과거를 드러낼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처벌받지 않고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감독은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느낌은 자존감에 대한 문제라며 사람들이 ‘관심 없다’며 무감정 상태로 회피하는 모습을 추적한다. ‘그때 그곳’에서 벌어진 그들의 이야기지만 ‘지금 여기’ 우리의 상황을 환기시킨다.
인터뷰 -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
1965년 인도네시아 군부에 의한 대학살을 다룬 <액트 오브 킬링>과 <침묵의 시선>을 연출한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은 다큐멘터리계의 젊은 거장이다. <액트 오브 킬링>으로 2013년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 관객상을 수상하는 등 70여 개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고, <침묵의 시선>으로 2014년 베니스 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비롯해 5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액트 오브 킬링>에서 그는 가해자들을 중심으로 학살을 재구성한다. 그들의 논리를 들어주고 그들의 느낌을 전한다. 피해자들이 오히려 가해자들을 숭배하는 그들의 판타지를 보여준다. <침묵의 시선>은 피해자의 동생이 사건을 파악해가는 과정인데, 마치 구도의 과정처럼 서정적으로 묘사한다. 이런 방식을 통해 그는 50년 전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진 일을 지금 내 주변의 일처럼 생생하게 느끼도록 만든다. 다큐멘터리계의 새 지평을 연 그를 직접 만나보았다.
<액트 오브 킬링>은 가해자들의 시선으로 대학살을 재구성한 방식이 독특했다.
보통 가해자들을 만나게 되면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게 아니라고 부인하거나 아니면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그런데 이 가해자들은 자신들이 한 일을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괴물이 저질렀다고 할 만큼 끔찍한 일을 벌였지만 너무나 태연하게 얘기한다. 그런데 촬영하면 할수록 그들 또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도 자신들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주위에서 자신들을 칭송하고 영웅으로 만들어주니 그런 것을 감당하기 위해 심리적인 방패막이가 필요했다. 학살의 주체가 아직까지 정권을 쥐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나치 정권이 계속 독일을 지배하고 전 세계인이 홀로코스트를 잘한 일이라고 했을 때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생각해보면 된다.
가해자들은 왜 반성하지 않고 그들의 행동을 자랑스럽게 얘기했다고 보는가?
가해자들이 학살을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설명하려는 것은 어떤 절박감에서 나온 행동이다. 자신들이 과거에 한 잘못을 알지만 승자로 추대되었기 때문에 승자의 언어로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자녀나 손자들 옆에서도 자랑스럽게 학살을 이야기한다. <액트 오브 킬링>을 찍기 위해 처음 만난 날 그들은 건물 옥상의 살해 현장으로 나를 데려갔다. <침묵의 시선>을 만들 때도 첫날 가해자 두 명이 나를 학살이 일어난 강가로 데려가서 어떻게 죽였는지를 보여주었다.
너무나 잘살고 있고 반성할 의지도 없는 가해자들을 찍으면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
가해자들이 처벌받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게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사랑하는 아들을 죽인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사는 게 어떤 것인지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들은 50년 동안 침묵했고 그래서 제대로 애도하지도 못하며 살아왔다. 반면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학살을 자랑스럽게 떠벌렸다. 나는 이것을 심판하려 하지 않고 그냥 보여주려 했다. 학살자 안와르는 자랑스럽게 학살을 이야기하지만 그러고 난 뒤에는 고통을 느낀다. 자신이 꾼 악몽에 대해 터놓고 얘기함으로써 고통을 공유한다. 완성본을 본 뒤 그는 ‘이 영화는 나로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액트 오브 킬링>은 구성 또한 독특하다. 현실과 판타지를 계속 오간다.
나는 <액트 오브 킬링>을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열병을 다룬 논픽션(Nonfiction Fever Dream)으로 생각하고 제작했다. 가해자들은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판타지에 기댈 수밖에 없다.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합리화하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어떤 거짓말을 하는지, 그래서 어떻게 더 끔찍한 상황으로 빠져드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다큐 중간에 자주 풍경을 넣었다. 그냥 풍경이 아니라 죽은 자의 혼령이 머물고 있는 공간이다. 거기서 그들은 학살자들을 숭배한다. 그런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학살자로 산다는 게 어떤 것일까 생각해보기를 바랐다.
반면 <침묵의 시선>은 피해자의 동생이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으로 구성되었다.
피해자 중심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은 클리셰(관습화된 제작 방식)가 가득한 지뢰밭을 지나는 것과 같다. 관객 처지에서는 보기 수월할지 모르지만 빤한 결론밖에 얻지 못한다. 작품을 만들 때 신파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주의했다. 큰 그림을 그려주는 것보다는 구체적으로 파고들어 사건을 자신과 가까운 사람의 일로 느끼게 만들고 싶었다. 대학살 전체를 보여줬다면 거리감을 느끼고 사건을 추상적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학살에서 형을 잃은 아디의 시선으로 내 형제, 내 부모에게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보게 만들고 싶었다.
제작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희생자 람리는 유일하게 살해 현장이 목격된 경우다. 죽은 피해자들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다른 가족들은 제대로 확인도 되지 않았다. 집집마다 희생자가 있는데 누가 죽였는지도 대부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람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가해자들과 같은 마을에서 수십 년 동안 살아야 했던 그의 부모와 동생 아디도 만났다. 그런데 3주일 만에 군부 정권에서 이를 알고 압력이 왔다. 아디가 우리는 찍을 수 없으니 가해자들이라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가해자들을 다룬 것이 먼저 제작되었다. <액트 오브 킬링>과 <침묵의 시선>을 함께 보아야 가해자와 피해자의 양쪽 측면에서 사건을 바라볼 수 있다. 두 작품은 별개가 아니라 하나다.
시사IN 영화제에서 <침묵의 시선>을 상영합니다.
9월16일(일요일) 오전 10시, 이수역 아트나인
예약은 이곳에서 ==>
http://www.megabox.co.kr/?menuId=theater-detail®ion=10&cinema=1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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