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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종과 콜라보 했던 클래식과 국악 버스킹 여행 후기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20. 8. 4.


한예종과 콜라보 했던 클래식/국악 버스킹 여행 후기

 

기획을 배신하라, 기획기사의 핵심이다.

기획대로 된 기사는, 좋은 기사가 아니라 평범한 기사.

?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내용이니까. 그래서 새롭지 않으니까. 진실은 현장에 있으니까.

현장의 진실을 바탕으로 기획을 배신할 때 좋은 기획기사가 나온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계획은 계획일 뿐이다.

천시(기후)’지리(지형)’인화(참가자)’를 반영해서 그때그때 유연하게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날씨가 맑을 수도 있고 흐릴 수도 있고, 지형이 험할 수도 평탄할 수도, 사람들이 지쳐있을 수도 기운생동할 수도 있으니, 그에 맞춰 일정을 바꿔가야 한다.

 

신발보다도 더 자주 나라를 바꿔 신으면서, 라고 표현했던 브레히트가 생각날 정도로

신발보다도 더 자주 무대를 바꿔가면서이뤄진 클래식/국악 버스킹 여행을 마쳤다.

여행을 통해 '무대 밖 지휘'를 한 셈인데,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비는 모든 계획을 앗아갔다.

예정된 무재에서 이뤄진 공연은 하나도 없었다.

비와 바람을 피해 평창의 이 언덕 저 언덕을 넘나들었다.

 

한예종 케이아츠크리에이티브 팀의 클래식 비긴 어게인국악 비긴 어게인을 관객으로 수행하는 여행은 말그대로 쪽대본 여행이었다.

폭우 때문에 공연 장소와 시간이 수시로 바뀌었고 지체되기 일쑤였다.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 여행의 메인이었기 때문에 다른 일정을 모두 이에 맞춰 조정해야 했다.

 

그런 변덕스러운 일정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팀워크 덕분이었다.

장소가 바뀌면 얼른 음식점을 바꿨고,

일정이 늦춰지면 근처의 좋은 카페를 섭외해 잠시 쉬었고,

지연되면 우리끼리 자리를 펴고 국악/클래식 알쓸신잡수다를 떨면서 기다렸다.

 

암튼 변화무쌍한 상황 덕분에 여행 연출력을 기를 수 있었다.

이런 쪽대본 여행에 여행의 본질이 극대화 된다. 심지어 예약했던 숙소마저 폭우로 문을 닫으면서 잘 곳마저 사라졌다. 가려고 했던 여행지도 있고 식사하려고 했던 맛집도 있었지만 포기해야 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1도 당황하지 않았다. ? 여긴 한국이니까.

 

하나 더, 이곳을 잘 아는 여행친구들이 도와주니까.

내가 여행작가들이 아닌 현지 전문가를 여행감독으로 캐스팅하는 이유다.

현지 대표 코스만 알고 있는 여행작가들에게는 플랜B를 기대하기 힘들다.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다.

하지만 현지 전문가와 상의하면 천시와 지리와 인화를 감안한 플랜B를 마련할 수 있다.

 

(허영만의 <식객>을 보고 맛집을 찾지 말고

허영만에게 그 지역 맛집을 추천했을만한 현지 전문가와 상의하는 것이 좋은 여행 기획을 세우는 방법이다.)

 

한예종이 기획한 공연답게 공연팀은 최고의 라인업이었다.

이 여행 기획에 내가 구상한 인간의 한 수는 양승열(양마에) 지휘자와 김문성 국악평론가를 공연을 풀어줄 해설가로 캐스팅한 것이다.

소리꾼에게 고수가 필요하듯이 좋은 공연에는 좋은 해설가가 필요하다.

 

공연이 끝나고 감상 구라를 이끌어 줄 모더레이터가 이 여행을 격조있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양마에와 김문성 선배를 섭외했고 이들 덕분에 클래식 알쓸신잡국악 알쓸신잡이 구현되었다. 소리꾼을 이끄는 고수처럼, 이들은 낮의 공연에서 느낀 감동을 더욱 절절하게 풀어주었다. 우리가 감동을 받은 지점이 어디에 연원하는지를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마지막 비결은 좋은 여행친구들의 존재다.

나를 믿고 기다려 줄 여행자 플랫폼의 멤버들이 있어서 무리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변경되는 공연 장소와 스케줄에 맞춰, 식사 장소를 바꿔 가고 때로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그것도 어려우면 한쪽에 자리를 펴고 우리들만의 수다방을 열며 기다렸다.

 

누구에게나 기약 없는 기다림은 지루하다.

하지만 공연이 끝나면 감동만 남는다.

불편한 사치는 그렇게 완성된다.

여행의 맛에 예술의 맛이 더해지니, 그야말로 최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