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는 이미 정해졌다. 끝장을 보겠다.”
"현재 우리의 결의 수준은 최고점이다."
"명분이 확실하고 결의가 높으면
일을 성사시킬 지혜는 자연스럽게 나온다."
- 노종면 전국언론노조 YTN 지부장
처음 노종면 전국언론노조 YTN 지부장을 봤을 때, 그는 노조 사무실에서 혼자 쭈그리고 앉아 종이비행기를 접고 있었다. 정부가 내려 보낸 ‘낙하산 사장’을 격침시킬 ‘촛불 요격기’를 시민들과 함께 날리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것이었다. 중년 남자가 혼자 쭈그리고 앉아 종이비행기를 접는 모습은 ‘지지리 궁상’ 말고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낙하산 사장 선임을 위한 날치기 주주총회가 열렸을 때 그는 완전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주주총회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앞에 선 그는 대주주 위임을 받고 낙하산 사장 선임을 돕기 위해 온 간부들을 맹렬하게 질타했다. 전임 노조 집행부가 조합원들에게 불신임을 당하고 퇴진할 때 YTN 메인뉴스 앵커 자리를 포기하고 구원투수로 나섰다.
그가 노조위원장으로 취임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던 사측은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고 노조는 다시 세를 규합해 전열을 가다듬었다. 수려한 외모 때문에 노 위원장은 ‘YTN의 손석희’ 혹은 ‘훈남 노조위원장’으로 불리며 국민적 인기를 얻고 있기도 하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YTN 건물 이곳저곳을 오르내리며 ‘낙하산 사장’과 맞서고 있는 그를 만나보았다.
구본홍 사장(뒷모습)의 출근을 막아선 노종면 노조위원장(가운데)
- 지금 상황은 희망적인가? 절망적인가?
희망적이다 혹은 절망적이다 하는 판단은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한다. ‘조합원의 결의가 어느 수준인가’에 대한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현재 우리의 결의 수준은 최고점이다.
- 지금도 사장실 앞을 점거하고 있는 것인가?
점거한 것이 아니라 사장실 앞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곳은 사원들의 공간이기도 하다. 비조합원과 간부들도 출입이 가능하다. 구본홍씨만 안된다.
- 노조위원장에 선출된 뒤 초기에는 구본홍 사장과 대화를 시도하기도 하지 않았나?
‘끝장투표’를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되었다. 조합원의 총의가 구본홍씨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으로 모아지면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이 안을 구본홍씨에게 설명하기 위해서 만났다. 노조가 입장을 후퇴한 것이고 합리적인 제안이기 때문에 구씨가 받아들이리라 생각했다.
- 구본홍 사장의 반응은 어땠나?
‘논리적 성립 여부’는 인정한다고 했다. 그러나 주주가 선임해준 사장 자리를 무책임하게 내던질 수 없다며 일단 일을 해보고 중간평가를 받겠다고 했다.
- 구 사장의 ‘중간평가’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었나?
‘중간평가’도 노사협정이나 사규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사항이다. 그때는 되는데 지금은 안된다는 것은 논리적 일관성이 없다. ‘끝장투표’를 받아들일지 말지는 구씨가 결단해야할 문제다.
- 대치 상황이 길어지는데 충돌은 없었나?
조합원들이 절제력을 잘 발휘하고 있다. 사측의 도발에도 별다른 충돌 없이 잘 참아주었다. 얘기치 않은 충돌이 공권력 투입의 명분을 줄 수 있으므로 경계하고 있다.
- KBS에서처럼 공권력이 투입될 가능성은 어느 정도로 보는가?
공권력을 절대 못 들어온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결코 못 들어온다. 사측이 들어오라고 해도 들어와서는 안된다. 이것은 공권력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다.
- 회사측이 소송과 징계로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느 정도인가?
12명에 대해서 소송을 제기했고 22명을 징계하기 위해 인사위원회에 회부했다. 노조 핵심들을 인사를 통해 자신의 고유 업무에서 배제하는 ‘보복인사’를 했다. 그러나 우리는 구씨를 사장으로 인정하기 않기 때문에 인사권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측의 인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 조합원 투표로 파업이 결의되었다. 파업은 언제 쯤 돌입할 예정인가?
파업 결의를 하기는 했지만 파업 돌입과는 다른 문제다. 파업 돌입은 마지막 수순이다. 전면 실질 파업으로 가지 않고도 다양한 수단을 통해 압박할 수 있다고 본다. 일단 파업을 결의한 것을 가지고 회사를 압박할 생각이다.
- 파업이 결의된 후 사측의 변화가 있는가?
간부들이 변하고 있다. 현장에서 구본홍씨를 옹호하고 두둔하는 발언의 수위가 현저히 낮아졌고 발언하는 사람 숫자도 줄었다. 최근에는 조합원들이 보는 앞에서 구씨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회사 밖에서도 ‘민영화’나 ‘재승인’ 문제를 가지고 노조를 압박하고 있다.
민영화나 재승인 문제는 이전부터 언급되던 것이어서 조합원들에게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겼다. 조합원들이 사측의 치졸한 압박수단이라는 본질을 꿰뚫고 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다.
- 출근 저지 투쟁이 길어지면서 조합원들이 많이 지쳤을 것 같다.
YTN의 노조 전임자는 위원장과 사무국장 두 명뿐이다. 집행위원들이 취재와 투쟁을 병행하고 있다. 이들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자신의 역할을 잘해내고 있는 덕에 별 무리 없이 지금껏 버티고 있다.
- 전임 노조집행부가 물러나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다. 내홍이 있지 않나?
이번에 상처받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모두가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노동조합 내부의 상처는 이제 극복해 나가고 있는 과정이다. 집회에 새로 동참하는 노조원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간부직 선배들과의 문제는 조금 다른 것 같다. 후배들이 다치고 내몰리는 동안 이들은 철저히 방관하고 구씨를 도왔다. 이들과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구본홍 사장이 노조 집행부를 경찰에 고발하자
노종면 위원장은 구 사장에게 시로 화답했다.
을지문덕 장군이 살수대첩 전에 수나라 장수에게 보냈던
'여수장우중문시'를 읽고 구 사장이 낙담한 채 돌아서고 있다.)
- 시민들이 많이 도와주는 것 같다.
도와준다는 표현보다 시청자 주권 운동을 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우리는 방송 주권 운동을 하는 것이고, 권력에 의한 부당한 간섭을 막는다는 것에서 궤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모두의 문제다. 우리의 일이 우리 시청자의 일이고 우리 시청자의 일이 우리 사회 전반의 일이다.
- 이명박 정부의 언론정책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는가?
나는 YTN 노조위원장으로서 YTN의 문제만 논하겠다. 대통령 후보 특보를 지낸 분이 YTN 사장으로 추천되고 날치기 주주총회에서 선임되어 스스로 사장이라고 주장하는 상황, 이것이 언론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생각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프레스 프렌들리’라는 것은 언론과 친하게 지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친한 사람으로 언론을 장악하겠다는 의미였다.
- 386세대인데, 학생운동 경험이 있나?
1987년 대학을 입학했다. 시대에 대한 고민은 했지만 그 시절에 그런 고민을 안 하고 산 사람은 없었다. 지금까지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왔다. 노조위원장으로 나서니까 한 선배가 두 가지를 물었다. 구속될 각오가 되어있느냐는 것과 대학 다닐 때 운동경력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앞은 ‘예스’가 뒤는 ‘노우’라고 했더니, 그 선배가 ‘네가 끝장을 보겠구나’라고 말하더라.
- 노조가 ‘지략 싸움’에서 앞서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지략 싸움’이 아니라 명분과 결의의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명분이 확실하고 결의가 높으면 일을 성사시킬 지혜는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이해관계에 얽혀, 혹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 적극적으로 싸우겠는가. 승부는 정해졌다.
- 기자들이 ‘낙하산 사장 퇴진’ 뱃지와 리본을 달고 리포팅을 했지만 편집 과정에서 화면이 삭제된 것으로 알고 있다. 사측도 나름대로 순발력있게 대응하는 것 같다.
뱃지와 리본을 노출시키지 않으려다 보니, 어제 기자 리포팅 중에는 ‘온 마이크 컷(기자가 직접 화면에 등장해 리포팅하는 컷)’이 하나도 없었다. ‘온 마이크 컷’은 방송기자에게 신문기자의 ‘바이라인’과 같은 것이다. 기자가 자신의 리포팅에 책임을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것을 지웠다. 우리의 자존심을 지운 것이다.
- 앞으로 어떤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가?
회사가 결코 막을 수 없는 방법을 여러 가지 생각해 두고 있다. 투쟁 전술이라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했던 방법을 안 쓰고도 충분히 이슈화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놓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풀어갈 생각인가?
앞으로의 일을 예단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떤 상황을 만들겠다는 것은 없다. 어떻게 대처하겠다는 것은 있다. 무리한 욕심일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주장을 지켜내고 조직 내부의 상처까지 치유하고 싶다.
노종면 노조 위원장(왼쪽)과 YTN 구본홍 사장(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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