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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설닷컴 이슈 백서/집중분석, '강남좌파'를 말한다

대치동 엄마가 전교조 후보를 찍었던 이유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8. 10. 3.


 

<독설닷컴> 연속기획,
‘강남좌파를 말한다’ 제5편
(글-김은남, 시사IN 사회팀장)



문제적 강남좌파 2인

- 까르띠에를 찬 강남좌파
- 전교조 후보를 찍은 대치동 맘





 

■자칭 ‘강남 좌파’의 분열적 자기 고백
 

폴로 셔츠에 CP컴퍼니 재킷, 450만원짜리 까르띠에 시계. 엔터테인먼트 관련 중소기업체 사장으로서 거래처를 접대하느라 고급 일식집과 룸살롱을 내 집처럼 드나들고, 한 달 접대비로만 2억원 넘게 쓰기도 한다는 최만수씨(41, 가명). 그는 스스로를 ‘강남 좌파’라 부른다.
 
말로만이 아니다. 그는 민주노동당 창당 때 당원으로 가입하고, 민노당이 분당한 뒤에는 진보신당에 당비를 꼬박꼬박 납부하는 진성당원이다. 비록 2002년 대선 때는 권영길 후보 대신 노무현 후보를 찍는 ‘배신’을 감행했지만 지난해 대선에서는 권영길 후보를 찍었다.


  그는 사람들 틈에서 스스로를 ‘고립된 섬’처럼 느낄 때가 많다고 말했다. 거래처 사람과는 정치 얘기를 하지 않는 것이 상책. 자칫하면 쌈박질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아니라 ‘전부’가 한나라당 지지자인 이들 사이에서 그는 별종으로 통한다. 대학 다닐 때 함께 운동했던 친구들 사이에서조차 그는 ‘정치적 린치’를 당한다. 대기업 해외 지사장이 된 친구나, 유력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된 친구나 촛불집회에 나가는 그를 보고 철이 덜 들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가증스럽다고도 한다. 외제차 몰고 다니면서 하룻밤 술값으로 노동자 평균 임금 서너 배를 쓰면서 좌파라니, 가당키나 하냐는 힐난이다.


  그 또한 딜레마를 느낄 때가 많다. 그가 주식을 산 유망 기업에서 장기 노동쟁의가 벌어졌을 때 그는 ‘어느 편을 들어야 하나’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진보 정당 당원이지만 진보 정당이 정권을 잡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율배반적이다. 융통성이 없고 대안 제시 능력이 떨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우리 사회 20~30%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하고, 보수 정당을 견제하는 것 정도가 진보 정당이  일이라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무늬만 좌파? 스스로도 의심스러울 때가 있지만 그는 곧 반격에 나선다. 나처럼 제대로 돈 벌면서 부유세·종부세 내겠다고 큰소리 치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있는 사람이 먼저 나누려고 해야 내 딸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도 열리지 않겠느냐고. 그나마 위안이라면 요즘 들어 자기를 공격하던 ‘골수 한나라파’의 기세가 현저히 꺾였다는 것인데, 종부세 논란 이후 이들의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게 그는 영 못마땅하다. “자기를 찍어준 서민과 샐러리맨을 위한 포퓰리즘적 정책을 펴도 시원찮은 마당에 상위 1%를 위한 정책 먼저 추진하는 게 말이 되느냐”라는 그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 실정이 임계점에 달했다고 판단하면 생업을 잠시 미뤄놓고서라도 다시 촛불을 들겠다고 말했다.



■MB 미워 전교조 후보 찍었다는  ‘대치동 맘’

 
이화영씨(41)는 이른바 ‘대치동 맘’이다. 각각 중학교 1학년·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 둘을 두었다. 대학 연구 교수이면서 평론가이기도 하다. ‘강남 엄마=반(反)전교조’란 통념과 달리 지난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그녀는 이른바 전교조 성향으로 알려진 주경복 후보를 찍었다. 전교조가 좋아서가 아니었다. 한나라당 성향인 공정택 후보(현 교육감)가 너무 ‘후지게’ 느껴져서였다.


  말만 21세기를 지향하지, 0교시 및 일제고사 부활로 상징되는 공정택 교육감의 교육 마인드는 1970년대에서 한치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이씨는 비난한다. 서울시 교육청이 야심차게 밀어붙이는 국제중·영재고 등도 미심쩍기는 마찬가지다. 이씨는 최근 열린 영재고 입시 설명회에 갔다가 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 영재고 전환을 앞둔 학교 교장이 “우리는 시설에 투자할 돈이 없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서였다. 국제중도 마찬가지다. 특수 교육을 뒷받침할 예산과 시스템도 갖추지 않은 채 무작정 우수한 학생들을 싹쓸이해두려는 듯한 서울시 행태를 보면 이씨는 “차라리 명문고를 부활시키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하라”고 종주먹을 들이대고 싶어진다.


  이씨에 따르면, 공정택 교육감은 ‘MB(이명박) 축소판’이다. 임기 안에 실적을 내야 한다는 욕심과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사교육비는 더 폭증할 테고, 월 300~400만 원을 사교육비로 쓰는 대치동 엄마들도 버티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이씨는 전망한다.


  그렇다고 이씨가 진보 세력에 큰 기대를 거는 것은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 대신 정동영 후보를 찍기는 했지만 기꺼이 찍은 것은 아니었다. “한쪽(민주당)은 답답하고, 한쪽(한나라당)은 꼴보기 싫고 해서, 그 중 답답한 쪽을 택했다”라고 이씨는 말한다. 1987년 6·10 민주화 항쟁이라는 역사적 경험을 공유한 세대로서, 양심상 친일과 독재에 뿌리를 둔 정당을 지지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