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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설닷컴 이슈 백서/집중분석, '강남좌파'를 말한다

강남 좌파는 왜 이명박 정부를 거부하나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8. 10. 2.



 

<독설닷컴> 연속기획,
‘강남좌파를 말한다’ 제4편


강남좌파의 문제적 커밍아웃
(with 김은남, 시사IN 사회팀장)


표 - 강남좌파 4인의 성향분석






9월25일 오후 7시. 서울 강남역 6번 출구. 촛불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한다. 벌써 3개월째다. 다음 카페 ‘강남촛불(cafe.daum.net/agorakn)’ 회원들이 일일 촛불집회를 시작한 지. 지난 7월3일 ‘서울시청 앞뿐 아니라 강남에서도 촛불을 알려내야겠다’는 생각에 인터넷에서 헤쳐 모인 사람들이 강남역 앞에서 첫 촛불을 점화할 때만 해도 이 집회가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추석 전야, 다들 웃으면서 ‘여기서 명절 인사까지 할 줄 몰랐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어쩌면 새해 인사까지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르겠다”라고 카페지기 김승태씨는 말했다. 

 
이들 카페 회원은 1400여 명. 날마다 집회에 꾸준히 참가하는 인원은 20~40명 정도다. 이들이 모두 강남 주민인 것은 아니다. 강남에 사는 사람, 그리고 다른 데 살면서 강남에 있는 직장을 다니는 사람. 양자가 섞여 있다. 초반에는 전자와 후자 비율이 2:8쯤이더니 요즘은 5:5 수준이라고 김씨는 어림잡았다. 강남 사는 사람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늘었다는 것이다.


이름하여 ‘강남 좌파’, 이들이 화제가 되고 있다. 촛불집회 현장만이 아니다. 인터넷 공간에서도 새롭게 출현한 강남 좌파들이 주목을 끌고 있다. 인터넷 토론 사이트로 잘 알려진 서프라이즈(www.seoprise.com). 요즘 이곳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강남아줌마’ ‘변호사의 아내’ ‘내과의사’ 같은 닉네임을 가진 논객이다. 이들은 강남 부유층에 속함을 굳이 감추려 들지 않는다. “평소 쇼팽이나 듣고 살았고” “미국 시민권이 있는 아이”(‘변호사의 아내’)를 둔 기득권층이지만, 그럼에도 “강남에 다른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강남아줌마’)라며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한다.


강남 좌파는 지난 18대 총선에서도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당시 강남을에서 출마한 민주노동당 김재연 후보와 진보신당 신언직 후보가 얻은 표를 합치면 10.1%. 당선권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했지만 진보 정당이 예상한 득표율을 훌쩍 뛰어넘은 이같은 총선 결과는 진보 진영 내에서도 ‘일대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촛불이 끌어낸 강남 좌파의 ‘커밍아웃’
 

강남 좌파란 용어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몇 년 전부터이다. 학계와 언론을 중심으로 2005년께부터 쓰기 시작한 이 용어에 대해 강준만 교수(전북대․신문방송학)는 이렇게 개념화를 시도했다. “생각은 좌파적인데, 생활 수준은 강남 사람 못지않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한국생활문화사전>). 다시 말해 그의 정의에서 ‘강남’은 실제 거주 지역이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생활 수준을 향유하는 계층’을 상징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강남에 거주하고, 강남 기득권층이라는 자각이 있으면서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는 강남 좌파가 새롭게 대두하는 것이다. 진보 계열의 한 언론은 이를 두고 ‘강남 좌파의 커밍아웃’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들의 커밍아웃을 독려한 것이 촛불 정국이었다는 데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다. 이전에도 진보 성향을 지닌 강남 부유층은 존재했겠지만, 촛불 정국을 거치며 이들이 사회적으로 각성하고 실천에 나서게 됐다는 것이다.


단, 이들을 ‘좌파’라 이름 붙이는 데는 논란이 따른다. 취재에 응한 이화영씨(41, 가명)는 “나는 시장경제주의자이다. 단지 상식적인 주장을 할 뿐인데 내가 왜 좌파인가”라고 반문했다. ‘강남촛불’ 회원 김대성씨는 “우리 사회에서는 좌파라는 표현 자체가 폭력적인 낙인찍기”라고 주장했다. 촛불집회를 계기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주부 유진아(57)는 ‘보편적인 가치에 무게를 두고,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꿈꾸는 강남 거주자’로 자신들을 불러달라고 주문했다. 사실, 엄격한 학문적 잣대로 따지자면 이들을 좌파라 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계급 정치의 맥락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김헌태 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은, 그런 의미에서 이들을 좌파라기보다 이른바 ‘수도권 진보’의 한 블록으로 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럼에도 이 글에서는 ‘강남에 거주하면서 진보 성향을 지닌 고학력·고소득 계층’인 이들을 편의상 강남 좌파로 통칭하고자 한다. 이미 강남 좌파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면서 사회적 생명력을 얻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종부세(종합부동산세) 개정 등 이명박 정부의 각종 정책으로 그 누구보다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계층이면서 이들은 오히려 정부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인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강남 좌파들은 이명박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집권 보수 세력이 “촌스러워서 싫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 “같은 촌놈이라도 ‘촌놈 같은 촌놈’은 호감이 간다. 그런데 대통령과 그 주변 사람은 ‘도시놈을 흉내 내는 촌놈’이라 싫다”라는 클라우디아 씨는 이렇게 말했다.“그들은 엘리트 집단도 아니고 전통 있는 ‘올드 머니’도 아닌 강남에서도 가장 질이 떨어지는, 땅 투기로 갑자기 부자가 된 졸부 같다.”이런 촌스러움이 혐오스럽다는 강남 좌파는 부자들이 세금 부담을 더 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기꺼이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논란이 된 종부세 개편안에 대해서도 이들 대부분은 부정적인 태도를 밝혔다.


이들 강남 좌파는 ‘자기들만의 성벽’을 짓는 데 골몰하는 구 기득권층과 달리, 공동체적 연대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시작한 신 기득권층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촛불 든 기득권층’(‘변호사의 아내’)를 자처하는 이들의 앞날이 순탄할지는 알 수 없다. 취재에 응한 이들 대부분은 자기 얼굴을 드러내기 꺼렸다. 신분을 노출할 경우 “사업하는 데 지장이 있을 수 있다”(최만수) “다른 엄마들이 꺼려할 수 있다”(이화영)는 이유에서였다. 지상준씨(가명, 사업)는 이런 현실적인 한계로 인해 민주적 사고를 가진 올바른 ‘좌파’ 정권이 들어서 제도적으로 구 기득권층의 성문을 열지 않는 이상 강남 좌파는 계속해서 소수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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