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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기자들, PD들/삼성을 쏜 난장이들

독자님들에게 보내는 편지(2007년 2월12일 작성)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8. 5. 9.

독자님들에게 보내는 편지


 


2백37일이 지났습니다.

이제 너무나 유명해져 버려서,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시사저널 삼성기사 삭제 파문 사건’이 일어난 지 8개월이 되었습니다.
어렵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처음 노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회사는 무더기 징계로 대응했습니다.
처음 파업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처음 직장폐쇄를 당해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우리의 싸움이 자본권력에 맞선 신성한 언론자유 투쟁이라고
그리고 경영진의 무도한 기사 삭제에 맞선 의로운 편집권 독립 투쟁이라고.

다 옳습니다.

그러나 이번 싸움의 가장 큰 의미는 독자들에게 시사저널 지면을 온전히 되돌려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편집권은 금창태 사장의 말처럼 편집인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기자들만의 것도 아닙니다.
편집권은 독자들의 것입니다.
기자들이 잠시 위임받아 행사하는 것일 뿐입니다.

언론이 자본권력으로부터 독립해야 하는 이유도, 편집권 독립을 이뤄야 하는 이유도, 모두 독자들이 위임해준 신성한 편집권을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짝퉁 시사저널’의 구독을 중단하며 어느 독자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우유는 소에서 나와야 우유지. 돼지에서 나오면 우유가 아니다”
정답입니다.
독자여러분에게 다시 신선한 우유를 되돌려드리고 싶습니다.
독자여러분이 믿고 맡겨주신 편집권, 반드시 되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

한겨울 백면서생들의 파업은 모든 것이 어설펐습니다.
수없이 집회를 했지만 여전히 거리에 서는 것이 어색하기만 합니다.
수없이 외쳤지만 구호를 외칠 때마다 박자가 틀립니다.

우리의 어설픈 투쟁 때문인지, 세상은 시사저널 사태에 침묵했습니다.
방송사 아홉시 뉴스에 한 번만 나왔으면,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에 한 번만 나왔으면...
서러움을 삼키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었습니다.

그래도 이만큼 왔습니다.
침묵하던 타사 기자들은 이제 깊은 관심을 보이며 기사를 써주고 있습니다.
기사를 써주는 것을 넘어서 ‘자본권력으로부터의 언론독립’을 함께 외치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외롭지 않습니다.
기자들도 시민들도 모두가 우리를 성원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가장 든든한 빽은 바로 독자여러분입니다.

독자 여러분이 든든히 뒤에 받치고 있는 한 청와대보다 세다는 삼성도 두렵지 않습니다.

......................

아직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회사는 아직도 요지부동입니다.
파업 기간에도 기자를 징계하며 뒤통수를 치고 있습니다.
기자들이 굴복하고 들어오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삼성은 아직도 ‘남의 집안 일’이라고 ‘시사저널 사태’를 외면합니다.
삼성 기사가 빠진 것도, 삼성 출신이 ‘짝퉁 시사저널’ 발간에 관여하는 것도
모두 자신들과 무관하다고 합니다.

자신들과 무관한 문제인데
왜 삼성은 국회의원들이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가입하는 것을 훼방 놓고 삼성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는 시사저널 기자를 때렸을까요?

한 번 끝까지 가보려고 합니다.
독자여러분들을 믿고 정말 끝까지 가보려고 합니다.
회사가 무단 기사 삭제를 사과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를 마련하고, 징계당한 기자들을 원상 복직시킬 때까지,
그리고 온전한 편집권 독립을 보장할 때까지 깃발을 내리지 않겠습니다.

삼성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사과할 때까지
그래서 ‘자본권력에 의한 언론통제’라는 말이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약속할 때까지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가겠습니다.

우리의 선배들은 독재권력에 저항해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자본권력에 대항해 ‘펜이 돈보다 강하다’는 것을 증명할 때입니다.
그 길에 독자여러분이 끝까지 동참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