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어른의 여행, 트래블러스랩
  • 어른의 여행 큐레이션, 월간고재열
  • 어른의 허비학교, 재미로재미연구소
연예IN 연예人/연예인 vs 정치인

정선희는 반성하는데, 이상득은 왜 침묵하는가?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8. 6. 8.

정선희는 반성하는데, 이상득은 왜 침묵하는가?

 

개인적으로 정치는 ‘조금 안다’고 생각한다. 3년째 국회를 출입하며 정치부 기자 일을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에 대해서는 ‘조금 알았다’라고 생각한다. 5년 동안 대중문화 담당을 하면서 나름대로 보고 들었던 것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판’과 ‘대중문화판’은 닮은 점이 많다. 일단 다른 영역과 달리 ‘판’으로 불리는 것부터 닮았다. 교육계를 ‘교육판’이라 부르지 않고 재계를 ‘재판’이라 부르지 않지만 이 두 영역에서는 유독 ‘판’이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쓰인다. 그 의미는 간단하다. 대중이 마뜩찮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

 

여의도에는 벼락을 맞아도 웃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바로 정치인과 연예인이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줄 알고 웃는다는 것이다. 벼락 맞고도 웃어야 한다는 것 말고도 정치인과 연예인은 여러 모로 닮은꼴이다.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내야 하는 정치인과 대중의 인기를 얻어야 하는 연예인, 꼬치꼬치 따져보면 두 직업이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권불십년’이요 ‘애불십년’이라 ‘한 방’에 뜨고 ‘한 방’에 지는 이들의 생리는 비슷하다. 정치인이 권력이 없으면 비참해지듯, 연예인도 인기가 없으면 비참해진다. 그래서 권력이 있을 때, 인기가 있을 때 최대한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하고, 그러다 보니 교만해진다.

 

정치인과 연예인 중 대중이 누구를 더 좋아하느냐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그리고 누가 더 영향력이 있느냐에 대한 답도 분명하다. 그렇다면 대중은 누구를 더 신뢰하고 누구에게 더 높은 기준의 도덕성을 요구할까?


정치인 지식인 종교인 보다 연예인에게 더 높은 기준의 도덕성 요구하는 이상한 사회
 

답은 연예인이다. 신정아 스캔들 이후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던 학력 위조 파문 때를 기억해보면 잘 알 수 있다. 많은 연예인, 교수(특히 방송에 나오는 교수들), 정치인(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다), 종교인(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을 포함해서)의 학력 위조 사례가 발각되었다. 그들 중 누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나? 거짓된 눈물일지언정, 사죄의 눈물을 흘리는 시늉이라도 한 축은 연예인뿐이었다.

 

많은 언론은 그렇게 하는 것이 ‘공인’으로서 연예인의 당연한 책무인 것처럼 보도했다. 하지만 ‘공인(公人)’의 사전적 의미는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공적 지위’가 있는 국회의원,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권위를 부여해주는 교수나 종교인은 ‘공인’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범주에 연예인까지 넣는 것은 좀 억지스럽다.

 

똑같은 잘못에 대해 정치인보다 연예인이 더 많은 책임을 지는 양태가 ‘촛불집회 비하발언’에 대해서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개그우먼 정선희와 국회의원 이상득은 모두 ‘촛불집회 비하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둘의 발언을 보면 정선희의 발언은 국가 재산 절취범에 대한 비판 과정에서 빚어진 표현상의 실수라고 볼 수 있는 반면, 이상득의 발언은 촛불집회 참가자를 단정해버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단 정선희의 발언을 살펴보자. 그는 5월22일 MBC라디오 '정선희의 정오의 희망곡' 에서 뚝섬유원지에서 자전거를 도난당한 청취자의 사연을 소개하며 “육교의 쇠붙이나 맨홀 뚜껑 같은 것을 갖고 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위험한 일이다. 나라 물건 챙겨서 파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무리 광우병이다 뭐다 해서 애국심을 불태우면서 촛불집회에 참석하더라도 환경을 오염 시키고 맨홀 뚜껑을 가져가는 사소한 일들이 사실은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하는 범죄다. 큰 일 있으면 흥분하고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 중에 이런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어떻게 알겠느냐”라고 말했다.

 

다음 이상득 의원의 말이다. 6월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경제 5단체 주최 '제18대 국회의원 당선 축하리셉션'에 참석한 이상득 의원은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가리켜 “실직하고 일자리가 없어 길거리를 헤매는 젊은이들과 서민, 어려운 중소기업 경영자들이 참가한 것 같다. 거리에 나와 불평하고 있는 촛불집회 참가자들의 관심사는 쇠고기만의 문제가 아니라 실직 등 경제문제 전반이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선희 말이 죄면, 이상득 말되 죄다. 그러나 정선희만 벌을 자청했다.
 

둘 다 촛불집회 참가자를 대놓고 매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선희의 말이 문제라면 이상득의 말도 문제다. 그러나 발언에 책임을 지는 모습에서는 더 큰 차이가 난다. 정선희는 MBC 시사교양프로그램 <불만제로><기분 좋은 날>의 MC자리와 MBC FM4U(91.9MHz) <정오의 희망곡>의 DJ직을 모두 당분간 그만두기로 했다. 반면 이상득은 홈페이지에 해명글을 올려 놓은 것 외에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정선희와 이상득 중에서 누가 더 공인일까? 이상득은 국회부의장을 지낸, 6선 의원의, 그리고 대통령이 형이다. 비교가 불가능하다. 더더군다나 이상득은 현재 이 대통령 참모진들 간에 벌어진 권력투쟁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거칠게 말해서 그가 용퇴하는 것만으로도 대통령을 둘러싼 인사 문제의 51%가 해결될 수 있다.

 

왜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훨씬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할 정치인 지식인 종교인을 제쳐둔 채 연예인만 희생양으로 삼고, 정의가 다 이뤄진 양 기뻐하는 것일까? 정치인 지식인 종교인이 말하는 것보다 연예인이 말하는 것이 더 영향력을 갖기 때문일까? 연예인 한 명 끌어내려 놓고 만족하는 동안 정치인 지식인 종교인의 거짓과 망언은 면죄부를 받는 이 부조리가 언제까지 계속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