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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살벌한 독설

방송 '텔레반'들의 '돌발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8. 11. 2.







'방송 텔레반'... 
'KBS 삼별초'... 
'YTN 돌발정신'...

방송계의 현실을 보여주는 신조어다.

 


최근 ‘텔레반’이라는 말을 만들어서 쓰고 있다. ‘방송 근본주의자’라는 의미로. 쓰다 보니 제법 그럴듯했다.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에 맞서 싸우는 기자와 PD를 ‘이슬람 근본주의자’ 집단인 탈레반에 빗대어 표현한 것인데, 잘 어울렸다. ‘프레스 프렌들리’하게 지내기 위해서 ‘프렌즈’를 ‘프레스’에 보내 장악하고 있는 이명박 시대에 ‘방송은 국민의 것이고 공정방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들의 목소리는 ‘탈레반’의 그것만큼, 아련하게 들렸다.



‘텔레반’이라는 말을 만들기 전에는 그들을 ‘삼별초’라 불렀었다.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 소속 PD인 대학 동기에게, ‘결사항전’을 다짐하는 ‘낭만주의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흰 삼별초 투쟁을 하고 있는거야. 나라는 이미 몽고에(정권에) 넘어갔는데, 다들 적응하느라 바쁜데 ‘나홀로 투쟁’을 하고 있잖아.” 그 삼별초 소속 47명의 기자와 PD, 엔지니어가 ‘인사학살’을 당하는 것을 목도했다.   



YTN은 말 만들기가 더 쉬웠다. 일단 숫자가 딱딱 맞아 떨어졌다. 회사 측이 고발해서 경찰에 소환된 기자 숫자는 12명, 이순신 장군에게 남은 판옥선 숫자와 일치했다. 이 12명을 포함해 회사가 징계한 기자 숫자는 33명,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숫자와 일치했다. 징계자 중 해임된 기자는 6명이었고 정직된 기자도 6명이었다. 이 또한 사육신과 생육신 숫자와 일치했다. ‘경영진 쪽에 편집증인 사람이 있는 거 아냐? 일부러 이렇게 숫자를 맞추기도 힘들겠다’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숫자가 척척 맞아 떨어졌다.  



투쟁의 결의를 다지는 YTN 노조원 모습.



텔레반과 삼별초, 사육신과 생육신, 그리고 그들의 ‘돌발정신’ 


YTN 기자들이 결사항전 하는 것을 ‘돌발정신’으로 설명했다. YTN의 대표 프로그램인 ‘돌발영상’에서 따온 표현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돌관정신’과 비교해서 사용했다. 찍히면 찍히는 대로 편집해 내보내는 ‘돌발영상’처럼 YTN 기자들이 ‘낙하산 사장’이라는, 자신 앞에 닥친 돌발적인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는 것을 빗댄 표현이었다. 이 ‘돌발정신’으로 현대맨 출신인 이 대통령의 방송장악을 향한 ‘돌관정신(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공기를 맞춘다)’을 제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블로그(고재열의 독설닷컴)를 통해 ‘텔레반’들의 ‘성전’을 중계하는 동안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다. 지난해 ‘시사저널 파업’을 경험했던 나는 그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다(그래서 역설적으로 그들이 명분있게 패배하기를 바랬다. 우리가 걸었던 그 길을 당신들도 걸으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면 1년 전 수첩을 꺼내보곤 했다. ‘우린 그 일을 이때 쯤 겪었었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쉽게 ‘빙의’ 되곤 했었다.



동료가 징계당하는 것을 보고 기자들이(혹은 PD들이) ‘나도 징계하라’며 ‘징계놀이’를 즐기는 것을 보고, 기자들이(혹은 PD들이) 좌천되는 것을 보고, 기자들이(혹은 PD들이) 사측 사람들과 거칠게 몸싸움하는 것을 보고, 그러다 고발되어 경찰 조사를 받는 모습을 보며 잊었던 기억을 되살렸다. 그리고 그 참상을 알리며 내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유했다. 그래도 우리가 파업하던 시절(불과 1년 반 전이다)엔 상식이라는 언덕이 받쳐주었었다. 


KBS 앞 촛불집회 장면.




민주당이 야당이 아니라 언론이 야당이 된 기형적 현실


기록하는 자로서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했지만 거리두기가 쉽지 않았다. YTN 날치기 주총이 있던 날, 주주총회장 앞에서 ‘용역산성’을 쌓으며 서 있는 용역업체 직원들에게 나도 모르게 “젊은 놈들이 이렇게 빌어먹고 살아야 하겠니, 부끄럽지 않니”하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시사저널 파업’을 촉발시킨 금창태 사장을 연상시키는 구본홍 사장을 만났을 때 정중하게 “노조의 요구를 들어줄 용의가 없으십니까?”라고 말하는 데는 엄청난 자제력이 필요했다.



기자들이 징계 당하고 해직 당하며 고초를 겪고 나서야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 실상이 어렵게 국민에게 알려질 수 있었다. 그것을 확인 하고서야 비로소 나도 승리의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이들의 ‘성전’은 알려지느냐 알려지지 못하느냐가 관건이었지, 일단 알려지고 나면 국민들이 이들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이 싸움은 상식과 비상식의 싸움이었기 때문이었다.



상식은 의외로 힘이 세다. 상식은 과거의 경험을 통한 인식의 집합체이고 현실을 살아가는 약속이고 함께 꿈꾸는 미래의 전제조건이다. 그 상식이 깨졌을 때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시사저널 파업’과 ‘시사IN 창간’ 과정에서 절절하게 경험했다. 파괴된 상식은 반드시 되돌려진다(다만 시간이 다소 걸릴 뿐이다). 



사수대의 밤샘 농성 장면. '>


파괴된 상식과 몰염치한 비상식은 반드시 되돌려진다


기자가 시민을 취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블로거)이 기자를 취재하고, PD가 시민을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인터넷 생중계 BJ)가 PD를 촬영하는 비상식을, 기자가 마이크를 잡는 것이 아니라 용역업체 직원의 멱살을 잡고 기자가 기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악을 쓰는 비상식은 반드시 되돌려진다. '시사IN의 기적'은 이제 'YTN의 기적'으로, 'KBS의 기적'으로 'MBC의 기적'으로 환생할 것이다.  


이른 아침, 낙하산 사장 출근 저지를 위해 도열한 YTN 기자를 응원하기 위해 KBS 기자협회 소속 기자들이 찾아왔다. 그때 한 KBS 기자가 말했다. “이 앞에 출입처에서 나를 매번 물먹이던 YTN 기자가 보인다. 내가 왜 그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끼지 않고 '동지 의식'을 느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내가 왜 당신들과 취재현장에서 함께 취재하지 못하고 당신들을 취재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생각했다. 



요즘도 낮밤을 가리지 않고, 밤늦게 혹은 새벽에 KBS와 YTN의 기자(PD)들에게 전화와 문자가 수시로 온다. 물론 좋지 않은 소식이다. 급히 알려야 할 것이 생긴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응급환자를 받는 의사처럼 허겁지겁 컴퓨터 앞에 앉아 그들의 억울한 사연을 써내려간다. 최근에는 이곳을 취재하는 출입기자까지 자신이 속한 언론사에서는 기사를 내보내지 않는다며 취재한 내용을 제보하곤 한다. 나는 그들이 알려준 기사를 날로 먹는다. 이 불가해한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주)  지난 주 <PD저널>에 기고한 칼럼을 보완해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