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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상식적인 사회를 꿈꾸며, YTN 황혜경 기자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8. 11. 13.


낙하산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YTN 기자들의 싸움이
백일을 훌쩍 넘었습니다.

'시사저널 사태'와 비추어보면
지금이 가장 힘들 때입니다.
많은 응원이 필요합니다.


내부의 기자들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YTN 황혜경 기자가
5 18 민주화기념사업회 발행 계간지에 실었던 글을
본인 허락을 득해 '독설닷컴'에 게재합니다. 





YTN 촛불문화제에서 후배들과 함께 마임을 선보인 황혜경 기자(가운데).

 



10월 24일. 입사 이래 처음으로 제때 월급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YTN 노조가 구본홍 사장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인지 꼭 99일째 되는 날이자 안종필 자유언론상을 받고 YTN빌딩 앞에서 언론인 7천여 명의 시국선언이 거행됐던 날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까이 꺼’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루가 이틀 되고 이틀이 사흘 되다 보니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울며 겨자먹기’로 납입하던 펀드비와 연금신탁비가 본의 아니게 자동 중단된 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월급날에 맞춰놓은 카드값과 휴대전화 요금이 연체되는 건 문제였습니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경기 악화로 급전이 필요한 중소기업들이 사채 시장으로 몰려든다는 내용의 취재를 하던 중이라 ‘이거 월급 계속 안 나오면 대출이라도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YTN 월급 안 나온다고 은행에서 대출도 안 해주면 어쩌지?’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선배들의 조언을 받고 결국 생전 처음으로 마이너스 통장이라는 걸 만들어온 날 회사 온라인 공지란에는 월급이 지급되었다는 공지가 올라왔습니다.

 

백일 넘도록 아니, 구본홍 사장 내정설이 돌던 5월부터 투쟁해오던 동안 여러 고비가 있었고 쓰리고 가슴 아픈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 때만큼 허탈하고 증오스러운 감정이 동시에 들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노조가 사장 출근을 막아서 결재를 할 수 없으니 월급을 줄 수 없다’는 궁색한 이유로나마 우리의 투쟁을 뒤흔들 요량이었다면 배포 있게 끝까지 밀어붙여야지 노조가 시민들과 함께 ‘YTN을 생각하는 날’ 문화제를 여는 동안 밤 8시에 몰래 사장실에 들어와 도장을 찍고 갔다니... 게다가 그것은 바로 그 다음 날 있었던 국정감사에서 청와대 대변인이 ‘YTN이 정상화됐다’고 말한 근거로 사용되었고, 결국 이번 월급 체불 사건은 구본홍 씨를 사장으로 인정하라는 협박도 아니요, 미리 ‘짜고 친 고스톱’같은 월급 장난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월급은 일한 대가입니다. 아직 한참 배워나갈 막내 축에 속하는 저로서는 월급 떳떳하게 받을 만큼 한 사람의 기자 몫을 다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YTN 구성원 8백여 명은 하루 24시간, 1년 365일 실수 없이 방송을 내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백여 일 동안 매일 아침 일찍 회사에 나와 사장 출근 저지 집회를 하고, 어쩌다 한 번 구본홍 씨가 출근한 날에는 목에서 피가 나도록 ‘돌아가라’는 구호를 외치다가도 투쟁 한다고 리포트 수준 떨어졌다는 소리 듣지 않기 위해 다시 출입처에서 발이 퉁퉁 붓도록 뛰어다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YTN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3분기 영업이익을 두 배 가까이 높였고, 노조의 투쟁이 오히려 장기적으로 YTN 뉴스가치를 제고시킬 수 있다는 증권사의 판단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사장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구본홍 씨는 석 달 동안 사용한 판공비가 확인된 것만 해도 4천 7백여만 원에 회사 경영에 기여한 점은 한 가지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15년 동안 YTN을 무명에서 보도전문채널로 우뚝 세운 사원들과 그 가족들의 생계를 놓고 한낱 ‘장난’을 쳐도 되는 것인지 이제 고작 입사 3년차인 저도 화가 많이 나더군요.


 

방송 독립과 언론 자유를 말하면서 웬 월급 이야기인가 싶으시겠지만 저는 여기서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바로 저희 YTN 식구들에게 저런 꼼수는 통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IMF 시절 이제 막 공채 2기를 뽑았던 YTN은 경영 적자로 무려 반 년 동안이나 월급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에도 YTN은 단 1분도 멈추지 않고 방송을 계속 해나갔던 곳입니다. 후배 밥 사줄 돈이 없어 점심시간만 되면 슬그머니 회사를 빠져나와 자신도 점심을 굶고 다시 회사에 들어갔다는, 이제는 차장, 부장이 되신 선배들의 말씀에 눈시울을 뜨겁게 적시다가도 나 또한 선배들처럼 어떤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이겨내리라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많이 알려진 것처럼 사측에서 노종면 노조위원장을 비롯해 6명을 해고하고 6명 정직, 8명 감봉 등 33명에 대해 무자비한 징계 조치를 내렸지만 징계 당일 이들은 ‘살아남은’ 나머지 노조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동안 매일 아침 김밥 먹으면서 투쟁해왔는데 단 한 순간도 후회해본 적은 없습니다. 징계대상자를 구하기 위해 사측과 대화하는 것은 제가 먼저 거부하겠습니다.’


‘저희 몇 사람을 살린다고 고귀한 목표, 이상을 접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 투쟁을 왜 시작했습니까? 아무도 다치는 사람 없으려고 시작한 것 아닙니다. 공정 방송을 지키려면 누군가 다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초기의 목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두 가정이 있고 지켜야할 자녀가 있는 분들입니다. 하지만 ‘살아남은’ 노조원들의 걱정이 계속되자 혹여 자신들 때문에 노조가 투쟁을 접을까 우려해 이런 말을 한 것입니다. YTN에는 공정방송을 지키기 위해 그 자신을 불쏘시개로 쓸 만큼 신념이 강한 선배들이 많습니다. 사우들 또한 징계 받은 노조원들이 이전과 똑같은 월급을 받을 수 있도록 ‘희망 펀드’를 조성해 일주일 만에 5천여만 원을 모을 정도로 끈끈하게 뭉쳐있습니다. 저희에게 월급 장난은 그야말로 ‘장난’일 뿐입니다.

 


두 번째로 구본홍 씨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캠프 방송 특보였다는 태생적 한계뿐만 아니라 능력과 인격적인 면에 있어서도 언론사 사장으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사측에서 용역 수백 명을 앞세워 주주였던 노조원들을 주총장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은 채 1분도 못 돼 구본씨를 사장으로 선임한 것은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것입니다. 주총이 있던 다음 날 구본홍 씨는 출근을 막기 위해 후문에 모여 있던 노조원들에게 ‘사원들이 반대한다면 들어가지 않겠다. 설득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노조에서 노사 대화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사내 열린 토론을 준비하고 개최하기 하루 전, 구본홍 씨는 부팀장 인사를 냈습니다. 또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사원 인사마저 단행했습니다. 회사 여건 상 희망부서를 적어내도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이번 인사는 사원들의 의향을 묻는 최소한의 절차마저도 무시된 횡포나 다름없었습니다. 내용을 보면 더욱 가관입니다. 전임 노조위원장을 새벽뉴스 PD로 보내고 사장 출근 저지 집회에 열심히 참여하던 사원을 야간 뉴스 PD로 발령하는 등 의도가 명백히 드러나는 인사 발령이었습니다. 노조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은 자명했고 사측은 인사발령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징계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업무 방해 등의 혐의로 노조위원장 등 12명을 경찰에 고소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사장 출근 저지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한 번에 백만 원 씩, 노조에는 천만 원 씩 손해배상을 청구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설득입니까? 가령 사원들의 반발이 이토록 강하고 끈질길 줄 미처 알지 못해 출근 첫 날 말실수를 한 것이라면 이제라도 깨닫고 깨끗이 사퇴하는 게 순리인 듯싶습니다.


 

구본홍 씨의 위선적인 면모는 국정감사장에서도 드러났습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과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없다고 일관했던 구본홍 씨는 국감장에서 최시중 위원장이 사적으로 몇 번 만난 적이 있다고 말하자 그제서야 ‘8월 17일에 출근길에 만난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날은 일요일이었습니다. 또 모 언론사 인터뷰에서는 사장 선임 이전에 박선규 청와대 비서관과 만난 적이 없다고 했지만 국감장에서는 7월 2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만난 적이 있음을 시인했습니다. 가령 노사가 대화를 한다 하더라도 불리한 질문에는 모르쇠로 일관하다 상황에 따라 180도 말을 바꾸는 분을 어떻게 믿고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지 국감을 지켜본 저로서는 회의가 드는 게 사실입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저희가 100일 넘도록 고수하고 있는 원칙, 이제는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기나긴 싸움을 예고하고 있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바로 그 원칙 -특정 대선 후보 캠프에서 언론 특보로 일했던 사람이 언론사 사장으로 올 수 없다는-입니다. 많은 분들이 ‘왜 이제 와서’라고 말씀하십니다. 공기업이 전체 YTN 주식의 59%를 보유한 소유구조 때문에 그동안 YTN의 사장은 친정부적인 인사가 올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입사 3년차인 저로서는 그 이전에는 어떤 인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사장이 됐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이번 사태를 겪으며 어느 정도 짐작을 해봅니다. 그리고 저 자신에게 되뇌입니다. 지금까지는 그러했을지라도 앞으로는 다르다라고 말입니다. 지금까지 설령 낙하산 인사를 받아왔다고 하더라도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왜 이제 와서’가 아니라 ‘이제라도, 지금부터라도’인 것입니다. 굳이 ‘왜 이제 와서’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가 있다면 구본홍 씨는 단순히 ‘친정부 인사’를 넘어 특정인을 대통령에 당선시키기 위해 언론인들을 상대로 홍보해왔던 편향적 전력이 있는 사람인데 24시간 뉴스만 하는 보도전문채널의 사장으로 오는 것이 과연 상식적인 일이냐고 반문하고 싶습니다.

 


구본홍 씨가 사장으로 선임된 뒤 노조의 반발이 예상보다 거세자 사측은 배후론을 운운했습니다. 또 선배들이 아무 것도 모르는 후배들을 등 떠민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백일 넘도록 끈질기게 사측과 정권을 상대로 우리가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구본홍 씨는 언론사 사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노조원 개개인의 순수한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오히려 ‘배후’가 있다면 그것은 ‘후배’였습니다. 정권의 논공행상 인사에 대해 ‘우리 회사 주주 구성상 어쩔 수 없지 않냐’며 받아들이는 패배주의를 더 이상 후배에게 물려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낙하산 인사가 사장으로 있는 언론사 기자라는 타이틀을 후배에게 꼬리표처럼 달아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선배들은 투쟁을 멈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저도 힘들 때면 후배들을 생각합니다. 이제 입사한 지 1~2년밖에 되지 않은 공채 11기, 12기 후배 20여 명입니다. 아직 연차가 낮아 비노조원입니다만 그 때문에 후배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선배들의 투쟁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입장을 안타까워할 때면 이들을 위해서라도 결코 꺾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늦봄, 초여름에 시작됐던 투쟁이 이제 가을을 넘어 겨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저희 노조원 중에서도 ‘이렇게 길 줄 알았다면 시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자조적으로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여름에 맞춰 입었던 홑겹 투쟁조끼 사이로 오늘도 시린 바람이 새어 들어옵니다. 이제 곧 그 위로 눈송이도 떨어지겠지요. 투쟁 조끼가 아닌 투쟁 점퍼를 새로 구입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는 10월부터 시작했습니다만 오늘도 홑겹 조끼를 입고 집을 나서는 것은 어쩌면 겨울이 오기 전에 이 싸움을 끝내고 온전히 취재에만, 보도에만 집중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믿음과 희망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비록 매서운 추위가 닥쳐오더라도 또 그 누구 하나 지켜보는 이 없더라도 우리의 투쟁은 우리의 신념이 결국 옳았다고 증명될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겨울을 넘어 또 다른 봄이 오고 여름이 가고 다시 가을과 겨울이 닥치더라도 말입니다. 부디 ‘특정 대선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서 캠프의 언론 특보직을 맡았던 사람이 24시간 보도 채널의 수장 자리를 아무런 저항과 반발도 없이 차지할 수 있는’ 그런 비상식적인 사회가 되지 않기를 YTN 사원으로서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기자로서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소망해봅니다.



지난 여름, 시민들이 보내준 종이비행기 편지를 안고 기뻐하던 황혜경 기자.




주> 황혜경 기자 블로그(http://forabetterworld.tistory.com/)에 가셔서 원문도 보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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