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총학생회 선거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이미 일간지 기사를 통해서
운동권 총학생회가 부활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으셨을 것입니다.
(<독설닷컴>이 이 내용을 가장 먼저 전했습니다.)
그런대 총학 선거를 취재해보니
대학 선거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불미스러운 일이 많았습니다.
아마 올해 대학 총학 선거에서
유일하게 투표권을 빼앗기 사례인 것 같은데요,
경기대 조진씨의 사연을 들어보겠습니다.
이번 총학생회 선거에서 투표권을 빼았긴 경기대 조진 씨.
(글 - 조 진, 경기대)
그들만의 축제, 대학 총학생회 선거
나는 지금 경기대학교 서울캠퍼스 경제학부 08학번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다. 군대를 다녀와서 24살이란 늦은 나이에 입학해 졸업할 선배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내며 여유 있는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다. 물론 군대 가기 전 다른 학교에 합격해놓고도 학교에 욕심이 나 입시를 한두 번 더 치렀지만 불가피한 일로 군에 먼저 입대했다. 광고에 관심이 많고 광고홍보를 전공하고 싶었지만 2년간의 군 생활은 ‘불합리’라는 걸 느끼게 해줬고 말년휴가 때 치룬 수능 덕분에 지금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입학하기 전 참여연대 행정감시팀에서 인턴을 하며 소위 ‘운동’이라는 것을 시작했고, 입학한 학교의 ‘운동권’ 선배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그 와중에 터진 촛불집회는 대중운동의 방향과 정치적 올바름이 무엇인가에 대해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고, 그 끝에 ‘다함께’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다.
그렇게 11월이 다가왔다.
운동권선배들 내부에서 ‘총학생회 선거’를 준비하는 움직임이 부산해졌고,
나 역시 처음 맞는 학내 선거에 관심이 쏠렸다.
우리학교는 총학생회가 생긴 이래 단 한 번도 운동권이 총학을 놓은 적이 없는 그야 말로 ‘운동권의 아성’인 학교였다. 하지만 지난해 처음 ‘비운동권’에 총학을 내준 이후 선배들은 패닉 상태였다.
과거 운동권 선배들의 강력한 투쟁으로 등록금환불까지 경험했던 학우들은 비운동권의 당선이후 등록금이 6.5%나 인상되는 생소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촛불집회에도 비운동권 총학은 동맹휴업은 고사하고 총학의 입장으로 결코 집회에 나가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운동권의 아성’인 학교에서 이런 2008년 한해는 치욕이었고, 그만큼 2009년 총학선거를 준비하는 선배들의 움직임은 분주했다. 관성에 젖었다는 반성으로 결의를 새롭게 다졌다. 학내 주류인 NL 운동권과는 정치적으로 약간의 차이가 있던 ‘다함께’ 소속이었지만 나 역시 비운동권 총학의 학생회 운영에는 불만이 많았다.
이번에 출마한 비운동권 총학생회 후보는 이전 총학생회를 계승하는 후보였다. ‘정치, 이념과는 무관한 순수 총학생회’를 모토로 ‘한대련, 한총련, 뉴라이트, 민주노동당 등 정치단체에 결코 가입하지 않겠다’는 문구를 그들은 총학 선거운동의 마지막 승부수로 띄웠다.
당황했다. 그들의 발언이 황당했다. 뭔가 말하고 싶었다. ‘민주노동당’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서 비난하는 등 납득 못할 것이 많았다. 대자보를 쓰기로 했다. 초안 한번 써보고 ‘다함께’ 친구들과 회의 한번 해보고 수정한번 보고 대자보를 하나 완성했다. 분할 출력된 A4용지를 전지에 붙이니 그럴듯한 대자보 하나가 완성됐다.
경기대학교 총학생회 선거 공고문
학교에 확인 도장을 받고 학교 곳곳에 대자보를 게시하고 땀을 훔치며 담배한대를 무는 순간 중선관위에서 전화가 왔다. 지금 대자보를 떼고 있고 지금 당장 선관위로 오라는 전화였다. 또 다시 당황했다. 놀란 가슴에 내려가보니 이미 내가 붙인 대자보는 떼어져 있었다.
그들은 무단철거에 사과를 하면서도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타 후보를 비방했다‘는 이유로 대자보를 떼었다고 말했다. 일반 학우는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없는 것인지, 근거까지 다 명시한 글이 어째서 ’비방‘이 되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선관위는 회의를 곧장 열었고 난 ‘당해 연도 선거권박탈’에 전체학년대표자회의에서 추가징계를 논의하겠다는 선관위원장의 통보를 받았다. 회의 도중 ’전회 선거권 박탈‘을 이야기했지만, 그건 너무 과도한 것 같아 올해만 박탈한다는 호의성 협박도 곁들였다.
관련 조항이 보고 싶어 선관위원장으로부터 총학생회칙을 프린트 받아 읽어봤지만 내가 어긴 조항은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다만 선관위가 제시하고 각 선본장이 합의한 룰미팅 협의사항에 ’일반학우의 부적절행위시 당해 연도 선거권박탈‘이라는 문구는 있었지만 이를 공고도 하지 않은 채, 부적절 행위라는 모호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었다.
나는 분노했다. 그래서 곧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선관위를 규탄하는 2차자보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자보 한번 써봤다고 두 번째 쓸 때는 또 수월했다. 하룻밤만에 완성했고 다시 회의 한번 거쳐 수정한번 하고 풀칠해서 곳곳에 게시했다.
이번엔 담배를 한 갑을 피고 밥을 먹을 때까지 철거한다는 전화가 오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선관위를 비판한 내용인데 이번에도 함부로 떼진 않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비운동권 선본의 요청으로 철거하고 있다고 통보하는 문자였다. ’뚜껑‘이 열렸다. 미친 듯이 뛰어내려가 떼고 있는 선관위원에게 따졌다.
선관위원장이 찾아왔고 또 무단철거 한 것에 사과했다. 난 무조건 떼지 말고 수정사항을 말하면 수정을 해줄 수 있으니 이런 식의 철거를 하지 말라고, 명백한 기본권침해라고 경고했다. 요청사항을 통보받기로 합의한 후 선관위원장은 요청사항을 내 자보위에 적어놓았다.
‘특정선본의 비방’을 빼라는 것으로 곳곳에 체크되어있었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선관위의 표현의 자유를 규탄하는 전지 하나를 가득채운 글이 왜 나오게 되었는지, 그 진행상황을 다 지우면 누가 대체 이 글의 탄생의 비밀을 알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선거권도 빼앗기고 선거에 대해서 말할 자보도 빼았겼다.
그렇게 나의 투표권은 사라졌고,
투표는 끝났고,
운동권은 다시 졌다.
흔히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며 축제라고들 한다. 그러나 나의 첫 대학생활의 축제는 강탈당했다. 각 후보자들과 유권자들 간의 즐거운 핑퐁게임은 적어도 우리 학교 내에서는 후보자들의 일방적인 스매쉬로만 존재할 뿐이다. 물론 투표하는 시간 15초 남짓 동안 유권자는 가장 강력한 카운터를 날리지만 그 카운터를 날리기까지 유권자들 사이의 활발하고 공개적인 토론을, 선관위는 대의기구라는 이름으로 막아서고 있었다.
혹자는 태어나서 투표하는 순간만 ‘민’이 ‘주인’이 된다며, 인생에서 이 시간들은 총 1시간 뿐이랬다. 그 1시간도 과거의 수많은 사람들과 선배들의 피와 땀으로 조금씩 조금씩 확장되어 얻어낸 것들이다.
선거권을 박탈당하고 비운동권이 당선한 지금은 분명 난 패배하였다. 하지만 이젠 단순히 비운동권의 낙선이 목표가 아닌 학내의 표현의 자유를 되찾기 위해 난 다시 자보를 쓰고 항의하며 조금씩 우리의 자유를 되찾아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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