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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위기인 한국의 대학/위기의 대학언론

'학교 비판보도 안하겠다' 각서 쓰는 대학기자들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8. 12. 17.

대학언론이 위기입니다.

위기라는 것은 알지만
위기를 극복할 의지가 없어서
정말 큰 위기입니다.

학교 측이 기사를 무단 삭제해도
항의하지 않을 정도로
한없이 무기력합니다.

대학언론이 바로 서는 그날까지
<독설닷컴>은 대학언론의 문제를
공론화 하도록 하겠습니다.




명지대학교에서는 학보에 실린 학내 비정규직 관련 기사가 무단 삭제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글 - 아레오파지티카, 기획 - 고재열)


저는 서울에 있는 K대학교를 다녔습니다. 
학교언론사에서 4년 가까이 활동했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인데다, 좋은 사람들을 만난 곳이라서 학교명을 밝히지 않습니다. 양해바랍니다. 
 

학교언론사에 처음 들어갔을 때, 각서를 썼습니다. 

1. 학내언론사 소속으로서 조직의 명예를 실추시키면 안된다.
2. 학내언론사의 룰에 무조건 따른다.
3. 학교에 비판적인 취재는 결코 하지 않는다.  
 
 
 
군대를 미리 배우다? 


2번은 동아리 내 계급문화로 이어집니다. 흔히 군대문화라고도 하죠. 

처음 들어간 수습은 교육을 담당하는 선배 한 명을 제외하고 어떤 선배와도 대화를 나눌 수 없습니다. 동아리 방에서 함부로 말을 해서도 안 되고, 웃어서도 안 됩니다. 6개월 가량 엄한 분위기가 지속됩니다. 선배들을 부를 때 호칭도, 국장님, 부장님, 차장님, 선배님 등등입니다. '님'자가 빠지면, 그 날 하루는 눈치와 구박과 핍박을 받습니다.  
 

'형','누나','오빠','언니'라는 호칭이 나오면, 교육담당선배는 다른 구성원들에게 욕을 먹습니다. "애들 똑바로 안 가르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하면, 그 날 수습들은 오리걸음이나 단체기합을 받습니다. 시간은 상관없습니다. 그냥 선배들 기분 나쁜대로, 낮이든, 밤이든, 캠퍼스에 사람들이 있든 말든 기합을 받습니다. 호칭 외에도, 선배들의 심기를 건드릴 때면 그럽니다. 


선배라는 이들이 나이차이가 많거나 예비역선배나 그런 이들이 아닙니다. 2학년이 1학년에게 그러는 거죠. 그리고 늘 말합니다. "너희 군대 미리 배우는거다."라고. 동아리가 재수생이나 2학년을 뽑지 않는 이유 역시, 철저한 서열화 때문입니다.  
 
 
대학신문 기자의 하루일과

6:30 학교 도착
7:00 까지 동아리 방 청소, 특히 선배들 책상은 깨끗하게 닦기 
8:30 까지 운동장 달리기
9:00 까지 아침 식사 
.
.
.


이런 식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시간표는 제출합니다. 자유시간은 보장되지 않습니다. 자유시간에 동방에 가지 않거나, 10분이라도 늦으면 단체기합을 받습니다.  딱히 하는 건 없습니다. 교육을 받는 것도 아니고, 동아리방에 앉아서 전화받고 청소하고 그래도 다 하면 숙제하고 가만히 있죠. 음악을 듣거나 컴퓨터를 들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종례를 합니다. 하루일과를 '반성'하고, 잘못한 것이 있으면 혼나고 벌서는 시스템의 연속입니다. 1년동안 위의 생활을 반복합니다.  


선배들 뒷담화를 하고, 조직의 폐해를 이야기하며 '버티던' 1학년들이 2학년이 되면, 그렇게 욕하던 선배들과 똑같은 선배가 됩니다. 이유는 "우리만 당하기 억울하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보도가 나오자 울산대학교에서는 총학생회 간부가 신문을 훔쳐갔다.



선배에게 배운 것, 예산속이기


2학년이 되면 동아리의 예산 등을 관리하게 됩니다. 학교언론사는 일반 동아리와 다릅니다. 학교기관이라, 일반 동아리와 차원이 다른 예산을 받습니다. 물론 그 예산은 온전히 학생들 돈입니다. 사회로 치자면 국민의 세금을 쓰는 공기업과 같은 곳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백의 가라영수증'(이 뭔지 다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을 애용합니다. 학생기자에게는 학기별로 장학금이 지급됩니다. 제가 활동할 때 인원이 총 4명이었는데, 장학금을 더 받기 위해서 6명 정도 친구의 통장을 빌립니다. 학생기자로 등록해 놓고 장학금을 지급받습니다. 가라영수증과 가라통장을 통해 얻은 예산의 대부분은 먹고 노는 데 쓰입니다. 나쁘게 말하자면 '유흥비' 등으로 사용됩니다. 맥주, 소주를 마시면 단합을 위해서라고 할 수 있겠지만, 대학교 1,2학년생들이 고급양주를 종종 마셨던 걸 생각해보면 '유흥비'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학교 측은 사실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면서도 모른 척 합니다. 언젠가 학교 측과 언론사 측이 부딪힐 경우를 대비하는 거죠. 각서 3번, 학교에 비판적인 기사를 쓰지 않는 이유는 이 때문이기도 합니다.  
 
 

학내 문제, 왜 말을 못할까? 


보통 학교언론사는 학교신문사, 방송국, 영문잡지사, 교지편집부 등으로 나뉘어집니다. 한번은 학교신문사에서 총장의 비리를 캐내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안 학교 측은 편집장을 해임했습니다. 편집장은 삭발을 했고, 기자들은 수주동안 기사를 쓰지 않았습니다. 


대학언론이라 해도 언론은 언론이며, 언론이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잘못된 것도 아니고, 편집장이 해임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저항의 뜻이었습니다.  


기자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총장은 간사를 새로 임명합니다. 낙하산이 투하된 뒤, 새로운 간사는 학교신문사실 열쇠를 멋대로 바꾸었습니다. 무엇을 뜻하는지 아시겠지요. 학교신문사의 기자들 모두 해고를 당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저항은 끝이 났습니다.  


가끔 그들은 저희 동방에 놀러오곤 했습니다. 말은 안 했지만, 연대해서 함께 싸워달라는 의미였던 것 같은데, 동아리 사람들 모두 외면하더군요. 타 언론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이유를 물어봤더니, "굳이 문제 일으킬 필요 있나.","불똥이 우리한테까지 튄다." 라더군요. 게다가, 당사자들조차 해고 당했다고 해서 저항을 끝내버렸으니, 주변에서 도와주는 것이 되레 우습다는 것이 중론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학교 홈페이지에는 배너광고가 떴습니다. 

'객원기자를 모집합니다. 여러분의 꿈을 펼쳐보세요.'


학생들은 물론이고 그 때 객원기자를 했던 친구들조차 왜 학교가 객원기자를 모집했는지 모릅니다. 학내언론사 모두가 학교의 부당한 방침에 침묵을 하고 있었으니, 학생들이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대학언론은 학내 비판자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총학생회와 공방중인 성대신문사가 붙인 대자보.



 
Bonus+


저는 대학언론사에서 4년간 활동하면서 계급문화를 없애고 후배들에게 자율을 보장했습니다. 전반적인 동아리 분위기가 바뀌었지요. 그러나 사실 예산문제나 학교신문사와 연대문제 등은 소위'방관'으로 일관했습니다. 참 부끄러운 일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여러분께 드리는 이유는, 그곳에서의 경험이 우리 사회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서열문화나 '조직'이라는 이유로 개인의 자아를 무시하는 행위, 내가 '당한' 것은 너도 당해야 한다는 심보, 국민의 세금은 자기 돈이 아니라는 이유로 흥청망청 쓰는 단체, 그리고 올 한해 언론을 둘러싼 많은 문제들. 낯익지 않으신지.  
 


여러분은 이 시답지 않은 글을 어떻게 느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처럼 부끄러움이 마음 한 켠을 콕콕 찌르지만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주>

대학 언론 문제에 대한 제보 및 기고 부탁드립니다.
대학 총학생회 선거 취재를 하다가 대학 언론의 문제를 알게 되었습니다.
학보를 통해 총학생회 선거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곳이 불과 몇 곳 안 되더군요.
알면 알수록, 들으면 들을 수록 답답한 마음만 더할 뿐이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논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