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시사저널 파업' 당시
선배들과 함께 썼던
<기자로 산다는 것>이
요즘 다시 읽히는 것 같습니다.
YTN과 KBS 기자들처럼
'기자로 산다는 것'에 대해서
고민해야 하는 기자들이...
<미디어스>에 KBS 김석 기자님이 기고한
<기자질에 대한 치열한 고민, ‘시사저널 사태’>를
본인 동의를 얻어 올립니다.
기자질에 대한 치열한 고민, ‘시사저널 사태’
[김석의 미디어책읽기(24)] 기자로 산다는 것 (고종석 외 22인)
미디어포커스 출신이 아닌 사람을 찾을 수 없었던 그날 마지막 녹화를 영상으로 기록한 블로거 ‘몽구’는 ‘꽃다발 하나 없는 미디어 포커스 녹화장’을 제목으로 뽑았고, 호프집 ‘비트’에서 조촐하게 열린 뒷풀이 자리를 고재열 기자는 ‘문상객 발길이 끊긴 스산한 상가 같았다’고 적었다. 미디어포커스의 마지막 날을 함께 한 ‘이방인’은 이 두 사람뿐이었다. 달리 그 누군가였을 ‘이방인’은 아무도 찾아와주지 않았다. 지난 2003년 6월 출발한 KBS의 정통 매체비평 프로그램이 '미디어포커스'라는 이름으로 260회를 방송하고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진 그 순간은 이렇게 소박하고 쓸쓸한 위로와 몇몇의 눈물과 더불어 기억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리라.
얼마 전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간하는 <시민과 언론>에 임장혁 YTN 돌발영상 PD가 짤막한 글 한 편을 실었다. 구본홍 사태로 ‘거꾸로 취재를 당하게 된 기자’가 뒤늦게 깨달았다는 그 ‘세상 한 구석’의 괴로움은 곱씹을수록 가슴 먹먹해지는 짙은 여운을 남긴다.
“‘나는 누군가의 절박한 상황을 무미건조한 짧은 몇 줄로 축약한 적이 없던가?’, ‘나는 누군가의 억울한 사연을 더 깊이 이해하고 더 자세히 소개하려 노력했던가?’, ‘나는 누군가의 당연하고 정당한 주장에 대해 양비론이 아닌 진실된 목소리로 전달하려 애썼던가?’ 다시 말하지만, 그저 ‘일상’일 뿐이었다. ‘취재’라는 거창한 이름의 행위로 ‘일상’을 포장했지만, 아마도 나에게 취재를 당했던, 절박하고 억울하고 고통 받던 수많은 ‘세상 한 구석의 사람들’은 나의 일상적인 취재와 일상적인 보도에 크게 불만을 품고 때로는 분노도 했으리라. 대선특보 사장을 막다 정직을 당해 그 ‘일상’마저 행할 수 없게 된 지금에서야, 나의 ‘일상’에 불만을 품고 분노도 했을 사람들의 바로 그 입장에 놓이고 난 지금에서야, 제대로 알려지지 못하는 ‘세상 한 구석’의 절박함과 억울함과 고통의 깊이를 뒤늦게 깨닫게 된 부끄러움이 앞선다.”
기자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좋은 시절에 남들 다 부러워하는 KBS 기자가 되어 8년여의 시간을 큰 굴곡 없이 순탄하게만 살아온 내가 시건방지게 ‘배부른 질문’을 던져놓고 찾고 있는 대답이란 건 과연 무엇일까. 그러다 손에 쥔 책이 바로 파업 중이던 지난해 초 시사저널 전·현직 기자 23명이 쓴 <기자로 산다는 것>이었다. 스스로를 ‘고지식해서 아름답다’고 말하는 시사저널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자주 밤을 새워 가며 기사를 썼다는 시사저널 기자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흐르는 시사저널의 피가 있다고 했다. “정치, 자본 등 어떠한 권력 앞에서도 고고하게 자존심을 지키며 공명정대하게 정도를 가고자 하는 것, 바로 이것이 기자들이 생명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시사저널의 전통이자 정신이자 혼이다.”(성우제) 사실(fact)에 천착하고 현장을 중시하며, 당대 최고의 문장가들로 하여금 기자들의 기사를 다듬게 하는 등 최소 12단계에 이르는 빡빡한 기사 수정 절차는 이른바 ‘저널적 글쓰기’를 가능케 했다고도 한다. “시사저널이 깐깐하게 시시비비를 가리면서도 편향됨 없이 중립적인 논조를 유지해올 수 있었던 것은 ‘저널적 글쓰기’에도 힘입은 바 크다.”(김상익)
하지만, 형식과 내용이 서로 맞물린 두 수레바퀴를 조화롭게 굴러갈 수 있게 한 더 큰 원동력은 외압과 이해관계에 흔들리지 않는 공평무사한 취재와 보도 태도였다고 시사저널 사람들은 말한다. 김훈 전 편집국장이 기사를 빼달라고 찾아온 현직 국회의원을 손가락 하나로 문전박대했다든가, 서명숙 전 편집장이 소송과 살해 협박을 해온 조직폭력배들을 만나 깨끗하게 담판을 지었다는 등의 무용담 같은 숱한 일화는 칼이나 돈의 힘에 쉬이 꺾이지 않는 언론의, 언론인의 꼿꼿한 자존심을 되새겨보게 한다. 그것은 시사저널이 쏟아낸 수많은 특종 보도를 가능하게 한 원천이기도 했다. “나는 나의 탐사 보도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창간 당시 표방한 ‘사실과 진실의 등불을 밝히고 이해와 화합의 광장을 넓힌다’는 사시에 따라 회사와 편집국 데스크단이 기자 개개인의 양심과 취재 보도 자유를 최대한 존중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여긴다.”(문희상)
결국 시사저널 사태는 이런 금도가 깨지면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다. 지난 2006년 6월 16일, 삼성 이학수 부회장의 인사 전횡 의혹을 다룬 경제면 3쪽짜리 기사를 금창태 사장이 인쇄 직전 단계에서 삭제하면서 촉발된 시사저널 사태는 편집국장을 비롯한 기자들의 대량 해직과 정직, 기자들의 노조 결성과 파업으로 이어지다 이듬해 1월 직장 폐쇄조치로까지 비화했다. 시사저널 기자들은 모두 전직으로 남게 되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시사저널 사태를 일러 “자본 권력이 정치권력을 능가하는 ‘제1의 권력’으로 등장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인 동시에 자본 권력에 유린당하고 짓눌려 있는 한국 언론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압축 파일”이라고 규정했다. 주간지로서 한 시대를 풍미한 시사저널은 “언론의 정치적 건강성과 기술적 완성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유일한 매체였다.”(신호철) 금창태 사장이 새로 고용한 비상근 편집위원들에 의해 이른바 ‘짝퉁 시사저널’은 계속 만들어지고 있지만, 당대 최고 논객들의 집합소였던 ‘진짜’ 시사저널은 지령 898호를 끝으로 온전한 맥이 끊기고 말았다. 자본 권력에 굴하지 않고 편집권을 지켜내겠다는 이들의 결의는 이제 시사저널의 정신을 계승한 신생 잡지 <시사IN>의 탄생으로 새 전기를 맞았다.
이 책에 담긴 시사저널 사람들의 희로애락은 ‘기자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산물이다. 자신이 몸담았던 매체를 뜨겁게 사랑하는 이들의 자부심과 참 언론을 되찾겠다는 결기가 책의 갈피갈피마다 오롯이 녹아 있다. 책 말미의 부록에 실린 독자들의 격려 글을 읽노라면, 시사저널 사태가 여러 모로 동아투위와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세월의 간격이 30년을 넘게 헤아리는데도,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어느 독자의 말마따나 시대를 거스르고 시민들에게 돌진하는 ‘역주행’은 그 기나긴 세월에 ‘무의미함’을 덧칠해놓는다. 결국 30여 년 전 동아일보 사태와 마찬가지로 시사저널 사태 역시 언젠가는 그 원인과 결과에 대한 책임이 명명백백하게 가려져야 할 현재진행형의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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