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11월26일, 이충렬씨(54)는 식솔을 데리고 고단한 미국 이민 길에 올랐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잡화상을 하며 어렵게 지내면서도 국내 진보 인사들이 피난 겸 찾아오면 극진히 살폈다. 직접 아사 위기의 북한을 방문해 식량난 상황에 대한 르포 기사를 최초로 써 보내기도 했다(이를 주선한 사람은 당시 한겨레신문 워싱턴 특파원이었던 정연주 전 KBS 사장이었다).
먼 타향에서 갈라진 두 조국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그를 위로해주는 유일한 친구는 그림이었다. 멕시코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애리조나 시골로 이사를 간 뒤에는 그림에 더욱 집착했다. 적막한 서부의 황야에서 그림은 친구였고 애인이었고 어머니였다. 용돈을 아껴 그림을 사 모았고 시간을 아껴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림에 물리를 트기 시작했다. 특히 그는 국내 현대화가에 관심을 기울였다.
2008년 11월26일, 그는 ‘애호가’라는 이름으로 책 한 권을 들고 귀국했다. 그림 옷을 입고. ‘화(畵)의환향’한 것이다. 먼 이국에서 고국의 화단과 미술시장을 꿰뚫어보고 있는 ‘미술계의 미네르바’를 김영사가 찾아나섰다. 그리고 컬렉터 경험을 담은 <그림 애호가로 가는 길>을 펴냈다. 앉아서 천리를 보는, 그림값의 비밀을 풀어내는 미네르바를 세상에 소개하기로 한 것이다(김영사에서 이런 무명 필자를 발굴해서 책을 내주는 사례는 흔치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충렬씨는 <시사IN> 창간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창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기자들을 위해 그는 오마이뉴스 기고글을 통해 자기의 그림 다섯 점을 기부하며 ‘후원 전시회’를 제안했다. 그가 기부한 그림 다섯 점이 밀알이 되어 후원 전시회가 성사되었고 <시사IN> 창간에 큰 도움이 되었다(나중에 그는 직접 한국에 와서 우리가 떼인 그림값까지 알뜰하게 받아주었다).
이 분에 대해서는 정말 할 말이 많은데...
<시사IN> 기사 마감 끝나고 내용을 보완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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