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창간호
고광헌 한겨레신문사 사장이 최근 전 임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사우 여러분께 드립니다'라는 글에서 고 사장은 삼성 광고 없이 가겠다며 삼성과의 관계 중단을 선언했다.
<한겨레>는 지난해 10월 삼성 비자금 조성 의혹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을 보도한 이후 지금까지 삼성그룹 광고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메일에서 고 사장은
“삼성이 우리 신문에 광고를 중단한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그간 인내심을 갖고 이 문제를 풀어보려 애썼으나 더 이상 삼성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기에는 한계에 이르렀다는 판단을 내렸다. 고통이 따르더라도 삼성 광고 없이 가기로 결정했다.
삼성은 돈으로 <한겨레>를 길들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우리 사회의 삐뚤어진 가치관과의 싸움이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를 보고 <시사IN> 기자들은 <한겨레> 동병상련을 느꼈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을 최초 보도했던 <시사IN> 역시 삼성 광고 없이 지금까지 운영해오고 있다.
사실 <시사IN>은 창간 때부터 삼성 광고 없이 발행되었다.
<시사IN>과 삼성은 인연이 깊다.
<시사IN> 기자들이 <시사저널>에 근무할 당시
‘경영진의 삼성기사 무단 삭제’에 항의해 ‘편집권독립’을 주장하며 6개월 동안 파업했었다.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외쳤던 ‘시사저널 파업’은 회사 경영진과의 싸움을 넘어선 삼성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기자들이 파업할 당시 발행되었던 ‘짝퉁 시사저널’의 광고는 주로 삼성 계열사 광고였다.
그 광고들을 보면서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우리의 미래에 대한 불안한 조짐을 느끼기도 했다.
<시사IN>을 창간하자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삼성은 광고를 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시사IN>에 큰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
애초에 광고가 오지 않을 것을 상정하고 수익 모형을 세웠기 때문이다.
<시사IN>은 철저하게 독자에게 의지하기로 했다.
아직 8부 능선을 다 넘지는 못했지만 이런 원칙은 <시사IN>이 불황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최근 한 독자분이 재미있는 제보를 해주셨다.
삼성이 <시사IN>에는 광고를 하고 있지 않지만
<시사IN> 기자가 운영하는 블로그, 바로 이 블로그, <독설닷컴>에는 광고를 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정말 그랬다.
나도 몰랐다.
그 독자분이 캡쳐해주신 사진을 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삼성에서 광고를 받았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참 묘하다.
정확히는 삼성이 ‘다음 블로거뉴스’에 광고를 하는 것이겠지만,
(블로거뉴스AD 시스템은 다음이 계약한 광고가 자동 시스템에 의해 블로그에 노출된다)
어쨌든 <시사IN> 기자 블로그에 광고를 하고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한 달에 몇 천원(운이 좋으면 몇 만원)의 삼성 광고비가 <독설닷컴>에 들어올 것이다.
재밌는 일이다.
‘광고로 언론을 길들이지 마라’
파업 때 우리가 외쳤던 구호다.
살짝 바꿔서 다시 외친다.
‘광고로 블로그를 길들이지 마라’
광고는 고맙지만...
'위기의 기자들, PD들 > 삼성을 쏜 난장이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술계의 미네르바' 그림값의 비밀을 풀어내다 (2) | 2008.12.05 |
---|---|
'기자로 산다는 것'에 대한 기자의 생각 (2) | 2008.11.29 |
시사IN은 합격하고 시사저널은 불합격했습니다 (31) | 2008.11.21 |
인문학에 빠진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 (9) | 2008.10.27 |
시사IN 이 걸어온 길, YTN이 걸어갈 길 (11) | 2008.09.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