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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위기인 한국의 대학/전국 대학 총학 선거 감상법

고려대 운동권 총학 당선의 의미, 제대로 알자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8. 12. 6.



고려대 총학생회 정태호 당선자






<독설닷컴>에서는 2008 전국 대학 총학생회 선거 결과와 이에 대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 개표가 완료된 고려대학교 총학생회 선거 결과에 대한 이재덕님의 글을 올립니다.
이재덕 님의 글은 이미 <오마이뉴스>를 통해 발표된 글입니다.
본인 동의를 얻어 <독설닷컴>을 통해서도 올립니다. 

고려대학교 총학생회 선거에서는 운동권 후보가 당선되었습니다.
국민대에서 시작된 운동권 바람이 고려대로 마무리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이재덕 님은 그런 도식적인 이해의 틀을 벗어나 
비운동권 진영과 운동권 진영 양쪽 모두를 공정하게 바라보고
학생운동의 현실을 냉정하게 진단했습니다.




고려대 운동권 총학 당선의 의미, 제대로 알자


(글 - 이재덕, 고려대)


결론부터 말하자. 고려대 총학선거는 '운동권'의 승리다. 지난 12월 1일부터 4일동안 치러진 고대 총학선거에서 '운동권'으로 분류된 '젊은고대 깨어나다'(총학생회장후보:정태호 정경대 05, 부총학생회장후보:박재균 이과대05)선본이 3611표, '비운동권'으로 분류된 '고대공감대(총학생회장후보: 이송 공과대05, 부총학생회장 후보: 강재규 사범대03)'선본이 2753표를 얻어 850여표 차로 '운동권계'가 고려대 총학생회 탈환에 성공했다.



'고대공감대'는 3년 연속 당선이라는 꿈을 접어야 했다. (사실, '운동권'이니 '비운동권'이니.. 따지는 이런 이분법. 21세기에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일단 이 글에서는 이해를 돕기위해 이런 방식으로 글을 시작하기로 하자.) 2년전 대학가에서 비운동권 학생회의 등장을 처음 알렸던 고려대가 이번에는 '운동권계'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결과는 주목할 만하다.



정태호 당선자 측의 등록금 관련 공약.




1.'진화한 비운동권'총학을 상대해야 했던 '운동권'


한치 앞도 알 수 없었다. 2년 전, 비운동권 학생회를 표방한 '고대공감대'가 집권에 성공하더니, 다음해 '2대 고대공감대'는 60%가 넘는 학생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총학생회장에 당선됐었다. 1대 '고대공감대'가 추진했던 각종 '학생복지프로그램'들이 학생들의 '공감'을 얻었다는 뜻이었다. 2008년을 이끌었던 '2대 공감대' 역시 다양한 복지프로그램으로 학생들에게 다가가고자 노력했다. '2대 고대공감대'는 나름대로 진화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사회참여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2대 고대공감대'는 등록금 문제의 해결을 위해 연세대등 타학교 '비운동권' 학생회와 '연대'하여 기자회견을 하기도 하고, 촛불때는 학생들을 이끌고 광화문으로 나가기도 했던 '비운동권' 학생회였다. 학내 복지문제에만 신경썼던 지난 07년 총학과는 달리 08년 총학은 사회참여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



총학생회장과 부총학생회장이 촛불집회때 연행된 사건도, 고대공감대 깃발이 전경버스위에 올라가 물대포를 맞던 사건도 고려대학생들에겐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왼쪽사진) 완전한 운동권도, 완전한 비운동권도 아닌 고대학생들에게 '고대공감대'총학생회의 이러한 모습(완전한 운동권도, 완전한 비운동권도 아닌...)은 어느정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물론 촛불에 참여하고 기자회견 했다고 '운동권'이라고 할 수 없다. 고대공감대는 '진화한 비운동권'이라는 것이 내 결론이다.



'사회참여'라는 측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던 '운동권'측에서는 이렇게 진화한 '비운동권'총학에 맞서야만 했다. 총학생회 선거에 대한 학생들의 무관심도 '운동권'에겐 넘기 힘든 장애물이기도 했다.

 


 

2.쟁점은 등록금...비운동권 부총학생 회장 동영상 파문

고려대 역시 '등록금 문제'가 선거 초반부터 쟁점으로 부각됐었다. '고대공감대'와 '젊은고대깨어나다'선본 모두 등록금 동결을 주장했다. 문제는 '어느 선본이 이 문제를 효과적,현실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을까?'라는 것이었다. '등록금문제'에 관한 두 선본의 가장 큰 차이는 '연대조직의 성격과 규모 차이'에서 비롯된다. 고대공감대는 학내 단과대를 중심으로 결집, '민변'(!!!!!)이나 '회계법인'등의 단체와 함께 '등록금 사용내역에 대한 원장공개 소송과 회계감사를 진행한다고 밝혔고, '젊은고대깨어나다'선본은 '한대련'등과의 연대를 통해 대규모 시위를 진행한다고 했다.


 

이 시점에서 한가지를 더 언급하고자 한다. 과거 '1대, 2대 고대공감대'가 등록금 문제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학내에 있어왔다. 워낙 비싼 등록금을 내는 데다가, 학교가 남아도는 재원을 가지고 펀드투자를 한다는 이야기까지 돌았다. 지난 2년동안 등록금 인상률을 낮추고, 장학금을 더 늘렸다는 고대공감대의 주장은 그다지 먹혀들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2대 공감대가 워낙 '기자회견'을 좋아하는 탓에 그들이 등록금 문제에 대한 확고한 의지나 해결절차없이, 보여주기로 일관해 왔던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물론 이런 비판들은 학내문제에 관심을 많이 두거나 '운동권'으로 분류된 이들이 하는 주장이기도 했다.

 


여기서 문제가 터졌다. 고대공감대의 부총학생회장으로 출마한 강재규 후보가 지난 고연전에서 등록금인상반대 투쟁을 벌이던 '젊은고대깨어나다'의 정태호후보와 시비가 붙는 동영상이 고대재학생커뮤니티인 '고파스'에 올려지게 된 것이다. 등록금인상반대 플랭카드를 설치하던 정태호 당시 정경대 학생회장에게 당시 고연전 행사를 준비하던 강재규씨가 플랭카드를 저지하고 욕을 하는 모습이 그대로 찍힌 것이었다. '젊은고대'측에서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동영상이 큰 파장을 낳으면서 고대공감대에 치명타로 작용했다. '고대공감대' 강재규 부총학생회장 후보는 "당시 고연전진행요원으로 행사진행을 방해하는 행위를 막으려 했던 것"이라 해명했다.




(사진: 긴팔 체육복을 입은 이가 '고대공감대'의 강재규 부총학생회장 후보(당시 진행요원) , 마주보는 안경쓴 이가 당시 정경대 학생회장이던 정태호 총학생회장 당선자)


 

"행사진행요원으로 이 정도의 일은 이해해야한다"는 이들도 있었지만, "부총학생후보가 되려는 인물이 학생들의 요구사항를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냐","고연전에서 외부 기업 광고는 받고 학생들의 플랭카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냐"등 비난의 목소리가 더 높았다. 학교 측에서 다음 학기 등록금을 동결하기로 결정했음에도 '여당'인 '고대공감대'의 지지도는 크게 상승하지 못한 듯 하다. 오히려 '젊은고대깨어나다'선본은 등록금 인하투쟁을 하겠다며 치고! 나갔다. 여하튼 이 동영상으로 인해 과연 공감대가 등록금투쟁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있는 것인가에 대한 회의가 학생들에게 일기 시작했다.




3.캡슐수면실 VS 영어강의의무제폐지



두 선본 모두 공약은 많았다. 특히 학생들이 무엇보다도 관심있는 복지공약이 그랬다. 특히 '고대공감대'의 복지공약은 '학우중심'이라는 그들의 모토처럼 많기도 하고 세세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젊은고대깨어나다'선본의 복지공약도 부족하긴 했지만 주목할만은 했다. 특히 '비운동권'학생들이 많은 이공계 캠퍼스를 공략하기 위해 이공계캠퍼스만을 위한 공약들도 내세웠다. 지난 2년간 '고대공감대'가 펼쳤던 복지정책을 그대로 차용한 경우도 있다. '운동권' 학생들도 '비운동권'학생회를 2년간 맞이하며 그들의 좋은 정책들을 보고 배운 것이다. '운동권' 역시 나름대로 진화한 측면이 있다.



등록금 문제에 대한 각 선본의 대응이 '운동을 대하는 그들의 방향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차이라면, 각 선본의 메인공약이라 할 수 있는 '캡슐수면실 설치(고대공감대)'와 '영어강의 의무제 폐지(젊은고대깨어나다)'는 두 선본의 지향점을 잘 드러내는 공약이라 할 수 있다. 자유주의적 성격을 가진 '고대공감대'는 학생복지문제를 기업과 연계해 풀어나가고 있고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비판적 성격을 지닌 '젊은고대깨어나다'는 대학의 '글로벌 리더' 정책을 강하게 문제삼는다.



솔직히 캡슐수면실은 집이 먼 학생들에게 혹은 시험공부에 지친 학생들에게 꽤 유용한 시설이다. 고대공감대는 "캡슐수면실의 초기비용과 운영비용은 학교, 기업등과 연계해 해결해 나갈 생각 (지자체와의 대화중에서)"이라고 밝혔다. "실질적으로 학생회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행사를 위한 기업의 지원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도 했다. 돈이 많이 들어가는 행사들을 기획하고 이에 대한 기업의 지원을 받으면서 학교가 기업홍보의 장으로 변질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젊은고대깨어나다'의 영어강의 의무제 폐지야 말로 학생들의 가려운 곳을 잘 긁어준 정책이다. 고려대 학생이라고 다들 영어를 잘하겠는가? 영어강의 못 알아들어 수업시간에 참여못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신임교원은 의무적으로 5년간 영어강의를 해야하기 때문에 필자가 속한 학과의 경우 전공수업중 70%가 영어로 이루어져 있다. 알아듣냐구? 그냥 한글로 된 책 빌려서 따로 공부한다.--;




4.'운동권' 총학의 과제



'비운동권'인 '고대공감대'의 패인이 무엇인가를 분석하다보니 '고대공감대'에 대한 비판에 치우친 경향이 없지 않다. 하지만 '고대공감대'가 지난 2년 동안 학생들을 위해 수고한건 사실이다. 거시적인 것에만 치중하던 운동권과는 달리 학생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법을 알았다. 고대재학생들의 커뮤니티인 '고파스(www.koreapas.net)'를 만들어 학내의 목소리를 가까이서 듣고자 노력했고, 학생들이 자주 이용하는 은행의 수수료를 무료화하였으며, 발품을 팔아 '고대택리지'(고려대 자취,하숙집 정보)도 제작했다. 최근에는 일산과 분당의 학생을 위해 등교버스도 만들었다.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촛불집회나 등록금해결을 위한 기자회견도 했다. 2년동안의 경험이 쌓이면서 비운동권이 변증법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2년간 '야당'을 한 '운동권 총학'에 대한 걱정도 크다. 2년 동안 정경대 학생회에서 비교적 강경투쟁을 하던 정태호 당선자가 고려대 총학생회장이 되어 강경투쟁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벌써 12월 중반부터 한대련과 함께 투쟁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 총궐기도 준비중이다. 문제는 고려대 내에서 학생회 활동이 가장 활발한 정경대소속인 정태호 당선자가 조직도가 느슨한 타 대학 학생회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 의문이다.





(사진: 학생들의 참여도가 저조해 당초 3일까지 예정됐었던 총학생회 선거는 4일까지 이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투표소 앞은 한산하다. 선거참여도 50%를 간신히 넘겼을 뿐이다. 사진은 4일 오후, 문과대 앞 투표소  )


 

그는 "생각 외로 학생들이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이 크다"(동아리 지차체와의 대화중에서...)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정경대나 문과대 같이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는 일부 학생들일 뿐이다. 이상주의에 사로잡혀 현실파악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학생들의 걱정이나 관심을 이해하기 보다는, 학생들을 계몽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비판도 있다. 일단 학생들의 지지를 얻어 당선에는 성공했지만 한대련과의 대학생 총궐기부터가 문제다. 궐기에 회의적인 많은 이들은 어떻게 설득시킬 것인가. 문제 해결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학생들을 결집시킬만한 역량이 아직 미비한 상태에서 기존의 일방적인 운동은 결국 학생회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릴 수가 있다.



이번 총학선거에서 '정태호-박재균 후보'가 속했던 정경대와 이과대가 '젊은고대깨어나다'에게 몰표를 주었다는 점도, 무효표가 1000여표(오타가 아니다!)나 나왔다는 점도 한계로 작용한다. 투표율도 50%를 넘지 못해 선거일을 하루 더 연장했다. 과연 차기 총학이 정경대와 이과대를 뛰어넘어 전체 학생들을 포용할 수 있을까?

 



5. 우경화니.. 좌경화니.. 그만 좀 하자. 21세기 학생회는 상대의 방향으로 진화하는 중...



고대총학생회의 '운동권' 당선을 두고 '학생들이 좌경화됐다'. '운동권이 뜨고 있다'라는 말은 잘못된 주장이다. 타대학교 총학생회에 아직도 '비운동권'계열이 꾸준히 당선되고 있기 때문이다. 투표를 안 하거나 무효로 처리된 푯수가 당선자가 얻은 득표 수 보다도 더 많다는 사실을 기억해주길 바란다.(총투표가능인원 14000여명 중 투표참여 7371명. '젊은고대깨어나다'가 받은 푯수는 이중 3611표. 즉, 총 재적인원의 26%만이 젊은고대에게 표를 던졌다.)



그나마 투표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운동권'이니 '비운동권'이니 라는 말이 더 이상 효력이 있을까? 학생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것!같!은! 선본을 선택했을 뿐이다. 80년대 90년대 학번인 기자들이 호들갑을 떨면서 좌경화니, 우경화니 말하는 것 솔직히 반갑지 않다. 시대가 어느 시댄데 아직도 이분법인가? 학생들의 요구사항이 무엇인지, 지금 가려운 곳이 어디인지를 잘 파악하고 잘 긁어주는 학생회가 이긴 것뿐이다. 총학생회 선본들이 이를 잘 파악한다면 앞으로 투표율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운동권'유무는 중요치 않다. 지난 비운동권 2년이 우리에게 미친 긍정적인 결과는 이거다. '운동권'이며 '비운동권'이며 서로 학생들의 요구를 위해 나름대로 상!대!의!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것.


 

글이 길어졌다. 새벽부터 일어나 아프리카방송으로 학생회 선거를 관람하느라 피곤하다. 관심많은 학생의 애정어린 조언이라 여겼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총학생회장과 부총학생회장 당선을 축하한다. 선거에서는 승리했지만 앞으로 갈 변증법적 진화의 길이 멀고도 험하다. 무엇보다도 '비운동권' 총학의 조언과 경험을 새겨듣길 바란다. 낙선한 '고대공감대'에도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