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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세대 아이콘 100

1990년대의 추억을 담은 다섯 통의 편지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8. 12. 9.


<독설닷컴>이 동을 뜬 ‘298세대론’과 관련
96학번 건축학부님이 쓰신 
‘1996년 8월,
내 인생의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을 읽고 루마니아 영국 미국 등
세계 곳곳에서 감상문이 왔습니다.



2백 개가 넘는 공감 댓글이 달렸는데,
특히 해외에 계신 분들이
더 감상에 젖으신 것 같았습니다. 
다섯 통의 편지를 공개합니다.

 

다섯 통의 편지의 모티브가 되었던 아래 글들을 읽고 편지를 읽으시면 더욱 감동적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2008/12/03 - [298세대 아이콘 100] - 386세대와 88만원 세대 중간의, 298세대를 아시나요?

2008/12/06 - [298세대 아이콘 100] - 어느 90학번의 기억 속에 남은 1980년대의 잔상

2008/12/07 - [298세대 아이콘 100] - 1996년 8월, 내 인생의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298세대론)




하나, 루마니아에서 온 편지

제가 알고 있는 대한민국은 참 늘 변화가 심하고
너무 다양한 일이 생기고
때론 헛웃음을 짓게 만들 정도로 어이없는 일이 많아서
그 시대마다 추억 거리는 많다고 봅니다.


저두 96학번 분의 글을 읽다가 추억에 잠기면서 저의 애기도 한 번 써봅니다.


1999년 이메일을 알게 되었죠.
"오빠, 이메일 주소 좀 가르쳐 주세요. "
대학교 후배가 병장 휴가를 마치고 들어갈 때 저에게 물어본 질문이었는데, ‘조금 있으면 제대할텐데 뭐, 그래도 물어봤는데 써줘야지’ 하면서  "강원도…어쩌구 저쩌구..."
주소를 써내려 갈 때 울 후배,
"부대 주소 말고 이메일 주소요"라고 했을 때, 잠깐 스치는 생각이 있었죠.
‘아 …이메일 그래 요즘 많이 쓴다는 그 전자주소인가 하는...’
내가 잘 몰라 멋쩍어 하니
친절한 후배가 내 계정을 하나 만들어 주었었죠.


95학번,
윈도우 95가 있지만
제가 대학 들어갔을 때는 아직까지 인터넷보다는 주로 녹색 화면에 하는 통신이 유행했었죠.
전 그거 한 번도 안 써보고 바로 인터넷으로 가긴 했지만…


어릴 적 컴퓨터를 첨 접한 게
초등학교 4학년 때 동내 컴퓨터 학원이었습니다.
도스 배우고 플로피 디스크에 간단한 게임 넣어서 했던 기억이 나네요.
"빠바바밤 빰빠 " 방귀차


그리고 제가 중학교하고 고등학교 때 쯤인가는 스트리트 파이터가 한참 유행했었죠,
동네 오락식에 동전 올려놓고 상대방과 서로 반대편에서 게임을 하는 건 그게 시초가 아니었나 싶네요. 
저는 열정적이진 않았는데 구경하는 재미는 솔솔했던 거 같네요.
특히 자기보다 어린 아이에게 지던 사람들의 엄청난 살기^^는...


그리고 낚시줄하고 전기라이터가지고 오락실에게 튀기기 하다가 주인한테 걸려서 혼나고 쫓겨나는 것도 가끔 보구…전 지켜보는 경우였죠.


그리고 고등학교 때하고 대학교 초창기는 컴퓨터 워드 타자 연습으로 단문/장문 타자 연습을 하곤 했죠.,
이거 좋아하는 얘들끼리는 단순 500타 깨기도 하고, 가끔 내기도 하곤 했는데.


초등학교하고 중학교를 생각해 보면, 참 일본 해적판 만화를 많이 봤던 것 같네요.
책상 서랍에 슬럼 덩크하고 드래곤볼 북두신권 넣고 보고,
그러다 걸리면 열라게 맞거나 손들고 서 있고
물론 거의 만화책은 압수였죠.


고교 평준화로 고등학교 떨어질 일은 없었지만, 기계공고를 갈까 고민을 많이 했죠.
당시 해운대에 있는 기계공고에 가면 알 길 보장 된다는 얘기가 있었거든요.


(사족이지만 이 기획도 아마도 대학을 나온 사람들 위주로 진행되겠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사회를 나간 분들의 글들도 좀 많았으면 합니다. )


성적은 기억이 안 나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 오성식의 팝스 잉글리쉬하면 영어에 도움이 될까 하고 새벽에 가끔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아마 90년대 새대가 영어시험에 듣기라는 것이 강조되고 성적에도 들어가기 시작한 시대가 아닐까요?


1993년도 고2 때 학력고사
1994년도 고3 때 수능 1,2차
1995년도 저때 수능 한번


우리나라 고3이 교육시스템 변화의 피해자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저희 학번들도 늘 그 생각을 하고 살고 있죠.
매년 바뀌던 대입방법,
물론 수능을 친다는 건 알았는데
한번인지 두번인지가 1994년 초엔가 결정 났던 거 같네요.
거기에 참 뭐 같았던 본고사.


전 개인적으로 본고사를 세 군데를 봤는데
없는 살림에 지방에서 올라와서 보느라고
여관에서도 못 자고 목욕탕에서 자고 시험보러 갔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게 해 대학에 입학해서리
전두환 노태우 비리 대통령 관련해서 시위했던 기억이 나네요.
외대 정문에서.


월드컵 자봉단
배낭여행
세계화
국제결혼
해외체류
할 말이 더 많은데...


고 기자님.
참 오랜만에,,, 거의 처음으로 장문으로 쓰는 거라 힘드네요.
그리고 여긴 루마니아라 새벽 4시네요.
낼 출근해야 되서리 이만...


이번 기획 참 좋아보이네요.
오랜만에 옛날 생각나서 저두 몇 가지 써 봤습니다.
기회가 되면 더 썼으면 합니다만, 자신이 없네요.
이번 주는 일도 많은데.







둘, 영국에서 온 편지



안녕하세요.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같은 96학번의 한 사람으로.. 정말 그때의 일들이 머리에 스치면서 잔잔하게 웃었습니다.


저 역시 96-97년도의 연대사태를 온 몸으로 느낀 한 사람으로
최루탄에 눈물 흘리고 선배들에게 이끌려 몽둥이를 피해다니며 이를 박박 갈던 때가 있었는데..
그것도 잠시.. 98년에는 군대에 가야했고
제대후에는 바보가 되어버린 머리와, 미쳐버린 등록금고지서 덕분에
학교보다는 휴학계를 던지고 일을 해야했고..
잠시 학교를 다니다가, 이대로는 이 나라에서 살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모든것을 버리고 배낭 두개로 혼자 영국으로 건너와,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그때는 이렇게 하는 것이 과연 잘하는 것인가.. 생각했었지만..
저주받은 96학번으로 대한민국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었다면
아마도 혀깨물고 이미 세상과 하직했을듯 합니다.


여기도 사람사는 곳이라 그렇게 다르지는 않지만, 곰팡이핀 빵을 먹어가며 공부를 마치고
지금은 어느정도 자리잡고 살고 있습니다.
7년동안의 영국생활을 뒤 돌아보면..
눈물보다는 흐뭇한 웃음이 나지만, 그 7년을 한국에서 보냈더라면..
과연 뒤를 돌아볼 여유조차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흔히든 저주받은 93학번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저주받은 96학번이 맞네요..
불행히도 저희 집은 그 저주받은 학번이 둘이나 된다는... ㅜㅜ 하나도 벅찬데 말이죠.


다시한번.. 가슴에 와 닿는 글 감사합니다. 자주 들르겠습니다.


영국에서.





셋, 미국에서 90년대를 보낸 누리꾼이 보내온 글



뭐...
96학번에 77년생이지만...
별로 같은 시대를 공요한것 같진 않군요..
뭐... 그때 조기유학...(거의 1세대라고 봐야겠죠)으로 미국에서 막 대학교 들어 갈 때였으니깐...
뭐... 그래도 94년까진 한국에 있어서리...

90년대 중반까지 서태지와 더불어 최고의 인기를 누르던 공일오비.
인터넷전에 유행했던 천리안.
92년인가 93년의 베버리힐스의 아이들과 베이왓치라는 미국드라마가 우리세대의 이상이였던 웃긴 시대...
아... 물론 슬램덩크로 시작된 NBA열풍과...
94년의 마로니에의 칵테일사랑과 그에 대면되는 순정만화가 최소 여학생들에 한해서 문화코드였던 시기...


아... 그리고 나중에 90년대 말인가... 판타지소설이 뜨고, 퇴마록같은...


지금 생각해보면.
이 글처럼...
어느 정도 풍요기의 막차를 탄 세대라서 그런진 몰라도...
아님 저런 96 연대사태를 거치며 사회에서의 패배를 공유해서 그런진 몰라도...
확실히 꽨 낭만주의가 판을 치는 세대라고 봐야겠죠...
낭만주의라는게 결국은 현실주의의 반대라고 보면 이해가 싶겠죠.


이상론적 좌익의 298세대던...
신자유주의와 미국문화를 맹신하는 우익적 298세대던...
기성세대의 코드는 부정을 했지만...


88만원세대와는 다르게...
각자의 개성을 찾기보다는...
이념이나 사회정의를 찾기보다는...
우리세대의 문화 코드만을 맹신한 세대...


뭐... 그나마, 어릴때 외국에 나가서 그런진 몰라도...
아니... 외국에서의 생활이 다른 298세대와는 달라서 그런진 몰라도...
무슨 말을 하는지 너무 잘 알아듣겠고... 이해는 하지만...확실히 별로 공감이 되는 건 없군요.






넷,
알 수 없는 타국에서
알 수 없는 누리꾼이 보내온 글



우연히 들러 이 글을 읽고 조금은 짠한 미소가 나옵니다. 아...잊고 있었습니다. 제가 96학번이었더군요. 학과 문제로 다니는 학교를 그만두고 97학번으로 타대학으로 입학하긴 했지만...96학번이었던 시절은 온통 대모 기억밖에 안 남습니다. 노수석군 사망 후 선배들에 이끌려 밤새 이리저리 캠퍼스에서 난리치던 그 날을 너무나 잊고 있었네요. 호기심 30% 타의 70% (선배들)에 몸담게 된 대모에 너무 배가 고팠던 기억이 납니다. 누군가가 초코파이 상자를 던졌고 선배가 챙겨준 조그만 초코파이하나가 너무 맛있었습니다. 화염병에 울던 제 눈에 담배연기 불어주던 선배 덕에 잠시 흡연기를 가지게 됩니다.


이글이 맘에 와 닿는 이유는.....단지 기억을 더듬어 준 것이라기보단...당시 제 자신의 혼란스러움이 체제적 이유도 있었던 것 또한 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시절 이해되지 않던 교육부의 변덕과 비과학적인 교육시스템의 희생자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시 혼자 항의하는 기분으로 제 나름의 공부방식을 고수하기도 했는데, 예, 안먹히데요. 친구들은 참 잘 적응합니다. 바뀌면 바뀌는 대로 잘 따라 가더군요. 이 글을 보니 많은 분들 다 나름 혼란이 있었구나 싶습니다. 상대적으로 반항심이 너무 세진 여인네가 되고 말았습니다. 즐거웠던 대학시절이긴 했지만 혼란과 글쓴 분 말씀대로 '개난장'같은 영상이 오버랩됩니다. 그러고 어떤 것들이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제자신의 문제와 사회적 문제가 오묘히 결합된 학창시절이었군요.


이제 서른 이 넘으신 동기분들에게 갑자기? 한없는 연민이 솟아오르네요. 저는 현재 타국에서 지내고 있어서 많은 것들을 의도적, 자연적으로 잊고 있었습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모두 힘내시길~~






다섯, 96학번 여학우의 편지



감사합니다. 좋은 글 써주셔서..


잊고 지내다가도 어느 순간 생각나려하면 다시 저..속으로 집어넣어..두었던,
점점 내가 겪은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그러나, 결국은...글에서 말씀하신...트라우마.


그 여름 이후 내일이 아니었던듯 생각하며 지냈던 기억이 납니다.
잊을 수 없었던 몇몇 장면들을(머릿속으로 기억하는..) 같이 있었던 선배들이던, 옆에 있던 친구이던 간에 울면서 얘기를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질 못하고...


슬픔보다는 오히려 씩씩하게 때로는 흥분하며 함께 연대에 있었던 선배들과 총학생회선거운동을 하고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선배가 당선이 되고...
그렇게 어지럽게 96년을 보냈네요.


내 인생에서 열정이란 단어는 보다는 조용한 인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는데
96년도만큼은 열정 그 자체였던 것 같습니다.


머리에 손을 얹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진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네요.
아, 슬픕니다.
그곳에 있던 동안 한가롭게 말타기놀이를 했던 기억도 있네요..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안에서만큼은 별로 힘들지 않았습니다. 배도 고프지않았고, 목이 마르지도 않았고.
탈수증세 막는다고 선배들이 소금을 주기도 했지만 저는 괜찮았었습니다.^^
때때로 옥상에서 들려오는 돌깨는 소리가 조금 혼란스러워지려했지만 그 순간 생각을 멈춰버렸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 혼란스러움을 느끼지 않으려고 그 시간들동안 생각이라는 것을 안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그 이후의 기억들이...홀로 남겨졌을 때..
일부러 등을 밝고 걸어다녔던 진압대때문에 옷에 찍혀있던 발자국과 무슨 자국이냐고 묻던 형사,
옆 철 책상에 머리를 찧기던 남학생, 가방을 뒤져서 나온 치약에서 느껴지는 굴욕감.
하룻밤 경찰서에서 지내며 먹었던 사발면....왜 그 때 그리 주눅이 들었는지...


경찰서에서 나오면서 목이 말라 경찰서앞에 있던 슈퍼에서 사먹은 바나나우유...
그래서 목이 마를 때면 물보다 바나나우유가 생각이 났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일부러 몸이 기억을 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연대에 정문으로는 들어갈수가 없어서 선배와 함께 택시를 타고 세브란스 병원으로 들어갔었습니다.
그 때, 못들어갔으면 좋지 않았을 까 하는 생각도 해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당시 내가 했던 생각들과 당황스러웠던 기억들을 선배들에게 다 털어놓았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랬었더라면....이렇게 다시 떠올리는 게 겁나지는 않았을텐데요...


아, 죄송합니다. 필요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한 건가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위로가 되었습니다..


주> 이 편지를 읽고 1990년대에 대한 회환에 잠기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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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3 - [298세대 아이콘 100] - 386세대와 88만원 세대 중간의, 298세대를 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