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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깊숙히 들여다보기/'작가저널리즘'을 찾아서

보신각 타종 행사 연출한 KBS PD를 위한 변명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9. 1. 6.

어제 KBS PD협회에 다녀왔습니다. 
계속 후폭풍에 불고 있는,
12월31일 보신각 타종행사 생중계에 대한
이야기를 간부들과 나누었습니다.

PD협회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PD들이
현장 연출 PD를 두둔했습니다.
그들은 당시 행사 현장에서는 
연출 PD를 저에게 비판했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연출 PD를 옹호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 주장에 수긍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보신각 타종 행사장 주변은 몇 시간 전부터 경찰에 의해 통제되었다.




일단 행사장 분위기는 이랬습니다.
KBS PD협회장을 비롯한 PD들, 그리고 사원행동 소속 기자들이 행사장 외곽에 
촛불시민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관객을 보여줄 순간이 되면 함께 손을 높이 들고 우리들의 목소리가 전해지도록 고함을 질렀습니다. 애타게. 


다음날 KBS PD협회 회원들은 당시 현장 시위 화면이 전혀 잡히지 않았다는 것, 현장 함성이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타방송사 앵커가 이를 공식적으로 언급해서 모욕을 주었습니다.
얼마나 수치스러웠겠습니까.


KBS PD협회 관계자들은 알음알음으로 당시 현장 중계 상황을 파악했습니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듣고 수긍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저도 수긍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팔이 안으로 굽는다'라고 말하실 지도 모릅니다.
KBS PD협회는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의 본진입니다.
'KBS 사태'에서 그들이 보여준 진정성을 믿는다면,
그것을 전달한 '독설닷컴'의 진정성을 믿는다면,
이 말에 귀 기울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보신각 타종 행사장 앞에서 블로거 특별취재팀과 인터뷰하고 있는 김덕재 KBS PD협회장.



당시 보신각 타종행사 현장 연출진에는 사원행동의 핵심 멤버도 있었습니다.
사원행동을 대표해서 KBS 노조 중앙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PD입니다.
PD협회 PD들은 그 PD의 현장 판단을 수긍했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히 그 PD가 사원행동 소속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해당 프로그램의 성격이 그랬고, 현장상황에서 연출자가 내릴 수 있는 판단이 제한적이라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KBS PD협회 간부가 그랬습니다.
"내가 그 자리에 앉아 있었어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시 보신각 타종 행사를 연출한 팀은 주로 '열린음악회'를 연출하는 예능국 소속 PD들이었습니다.
예능국 PD라 아무 고민없이 연출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의 속성에 충실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보신각 타종 행사'를 '생중계'로 이해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정확히는 사전에 철저하게 기획된 쇼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쇼 프로그램에서 계획되지 않은 화면이 나가는 것과 의도하지 않은 음향이 나가는 것은,
그대로 방송사고입니다.
현장 연출자는 그런 방송사고를 내지 않기 위해
쇼에 설계되어있지 않은 현장 화면과 현장음을 내보내지 않은 것입니다.


물론 쇼가 시작되기 전에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현장 화면과 현장음을 쇼의 설계에 넣을 시간이 있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넣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현재 KBS의 한계일 수 있습니다.
현장 촛불 시민 모습이 뉴스에서도 다뤄지지 않는 KBS의 한계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연출 PD의 한계는 아닐 것입니다.
일단 결정된 '집합적 판단'을 따르는 것 밖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보신각 타종행사 현장 중계가 시작되었습니다.
카메라 팬은 촛불 군중의 깃발 앞에서 멈췄습니다. 
촛불 시민의 함성은 무대 음향에 완전 묻혔습니다.
(둘 다 통상적인 행사 중계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평소보다 관객을 두루 비쳐주지 못했고,
평소보다 현장음이 작게 들어갔다고 합니다.
현장음이 작게 잡힌 것은 당시 행사장 주변에서 공연하던 풍물패의 꽹과리 소리가 들어와서 그랬다고 합니다.)
촛불 시민들이 수천 개의 노란 풍선을 날리 때, KBS 카메라는 오세훈 시장 등이 타종하는 장면을 방송했습니다.
그렇게 설계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당시 현장에서 연출자가 '의도된 실수'를 해주기를 기대했습니다.
그 실수를 통해서 촛불 시민의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냥 반쪽 중계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보신각 타종 행사 주변에서 KBS 젊은 기자들과 젊은 PD들이 대시민 홍보전을 열심히 펼쳤다.



그것이 지금 KBS가 처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의식 있는 PD라 할지라도
혼자 십자가를 짊어져야 하는 상황에서는 쉽게 판단을 낼 수 없습니다.
그가 십자가를 짊어진 것에 대해 박수를 보낼 수는 있지만
그가 십자가를 짊어지지 않은 것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KBS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입니다.


다른 한 편으로 생각하면 '이것이 공영방송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공영방송 PD라면 자신이 제작하는 프로그램을 애초 의도와 맞지 않는 쪽으로, 자신의 주장을 전달하기 우해서 이용하면 안 됩니다.
그런 훈련이 KBS와 MBC PD들에게는 되어 있습니다.
아마 MBC PD가 당시 현장 연출을 맡았다고 하더라도 깃발과 현장음을 내보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이 공영방송 PD입니다.


이것은 PD 개인이 '공영방송 독립'을 주장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 자신의 방송을 활용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공영방송 PD의 덕목일 것입니다.
우리가 지켜줘야 할.


많은 MBC 예능국 PD들이 파업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 파업을 하는 것 말고 자신의 프로그램을 활용해서 혹은 자신의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연예인을 활용해서 자신의 주장을 알리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아주 쉽고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안합니다.
그들은 공영방송 PD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지켜주고 있습니다.


보신각 타종 행사 현장 중계 문제는
당시 현장 연출자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가 아닙니다.
KBS 보도국은 촛불 시민의 열렬한 함성을 무시했습니다.
KBS는 행사장 밖의 또 하나의 '국민 행사'를 못본 척했습니다.
KBS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를 제작진에게 짊어지게 하는 것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돌을 던지는 일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공영방송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KBS PD들의 건투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