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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봉춘 지키미 게시판

서현진 아나운서의 파업 중 - 파업 후 모습 변화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9. 1. 9.

어제(1월8일) MBC에 다녀왔습니다.
MBC 젊은 아나운서 중에
유일하게 아는 아나운서가 서현진 아나운서인데
마침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습니다. 

급히 섭외해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몽구님이 동영상도 찍었는데, 
곧 올라올 것 같습니다.)
 
집회 현장에서는
'군밤파는 처녀'같았던 서현진 아나운서가 
다시 우아한 백조로 돌아왔더군요.
집회 때 모습과 지금 모습을 비교해 보세요. 




언론노조 총파업 결의대회장에서 동료와 포즈를 취해준 서현진 아나운서. 얼굴이 땡땡 얼어 있었다.



파업이 끝나고 다시 우아한 모습으로 돌아온 서현진 아나운서. '잠바돌이' '잠바순이'로 살아왔던 MBC 아나운서들이 이날은 유난히 멋을 냈다고 했다.




"흩어지면 우린 죽는다. 흔들려도 우린 죽는다. 하나되어 우리 나선다. 승리에 그날까지..." 
서현진 아나운서의 입에서 익숙하지 않은 투쟁가 가락이 흘러 나왔다. 
'언론노조 총파업'이 남긴 결과다. 


MBC 아나운서실 소속 아나운서들은 이번 총파업에 100% 동참했다. 
그리고 각종 집회와 행사에 100% 참석하며 단결력을 과시했다. 
파업을 계기로 자신과 자신의 동료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는 서현진 아나운서를 만나보았다. 


모두가 힘들었지만 아나운서들에게 이번 파업은 특히 힘들었다.
알려진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브라운관에서 사라지면 당장 말이 나왔고, 그들의 말에 시비가 걸려왔다.
거리에 나가면 화장과 액세사리까지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누구도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고 끝까지 함께 했다.
그 비결을 들어보았다.


요즘 개발한 얼짱 각도로도 한 컷.





- 이번 파업이 자신에게 갖는 의미는? 

방송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방송인일까? 아니면 언론인일까? 이번 파업을 계기로 언론인으로서  정체성을 갖게 된 것 같다. 이전에는 '아나운서는 방송사에서 이러저러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라는 방송인으로서의 정체성만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 파업을 계기로 우리의 일을 공정하게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런 노력이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언론인으로서의 자각이 생긴 것 같다. 


- 부모님 반응은? 

당연히 '나서지 마라'고 말리셨다. 조선일보만 35년 동안 보시는 부모님은 그렇게 생각하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다행히 파업 결과가 좋았다. 

나는 '이겼다. 승리했다' 그런 말은 와닿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우리가 하나가 되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날도 추운데 우리가 왜 여기 나와서 이래야 하는 거지'에 대한 답을 선후배들과 현장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찾아냈다. 그리고 정말 한 마음이 되었다. 그것이 가장 큰 의미라고 생각한다. 


- 건강은 괜찮나? 

큰일이다. 아나운서는 몸이 재산인데. 찬 바람 맞아 얼굴엔 뾰루지 투성이고 목감기 코감기에...완전 종합병원이다. 


- 아나운서이기 때문에 집회에 나갈 때, 어떤 옷을 입을까, 어떤 화장을 할까, 고민을 했을 것 같다. 

처음엔 고민을 좀 했다. 화장을 하면 했다고 비난하고, 안 하면 실물이 못생겼다고 비난하니까. '적당하게' 하면 되는데, 그게 힘들다. 아나운서는 못생기면 죄가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난 화장을 하는 방법을 택했다. 옷은 처음에는 조금 고민했는데, 찬바람 한번 맞아보고 고민이 사라졌다. 오직 '방한'에만 신경쓰기로 했다. 


- 파업 기간 중에 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은? 

12월31일 자정을 동료들과 시민들과 함께 보냈을 때다. 사실 이번 연말은 나에게 특별했다. 드디어 서른살에 들어서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서른살을 맞아야 할지 1년 내내 고민했는데, 파업이 내 고민을 풀어주었다. 광화문에서 (연필과 함께) 전단지 나눠주며 새해를 맞았다. 내 옆에는 동료들이 있었고 시민들이 있었다. 그래서 행복했다. 


- 나만의 투쟁방식으로 개발한 것이 있나? 

즐기면서 하는 것이다. 나는 무엇이든 절대선과 절대악으로 나누는 극단적인 것을 싫어한다. 전단지를 나눠주는데 의경 동생들이 '저도 주세요. 들키면 혼나는데...'하며 다가왔다. 전단지도 주고 같이 사진도 찍었다. 우리가 적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좀더 평화적으로, 좀더 즐겁게 했으면 좋겠다. 


- 주변 아나운서 동료들 중에서 파업을 통해서 다시 본 사람은? 

다 다시 봤다. 방송국이라는 곳이 개인주의를 갖기 쉬운 곳이다. 내 방송, 내 역할이 중요한 곳이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가 뭉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정말 똘똘 뭉쳤다. 첫날 집회에 몇 명이나 나올까, 걱정했는데 한 명도 빠짐없이 다 나왔다. '이것이 바로 MBC의 힘이구나'라고 느꼈다. 모두들 집회나 행사에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참여했다. 


- 그래도 한 두명 꼽아본다면? 

앞에서 이끈 박경추 선배와, 김주하 박혜진 선배다. 둘은 워낙 알려진 얼굴인데다 뉴스 앵커를 맡고 있어서 서 조심스러웠을텐데 과감히 자기 목소리를 내는 모습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 파업 기간동안 자신의 역할은 어떻게 평가하나?

수동적으로 참여하기만 한 것 같아 미안하다. 다시 파업을 하게 되면, 물론 하지 않으면 더 좋겠지만, '노래패' 등에 참여해 좀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생각이다.


- 파업 때 생긴 노하우는?

핫팩을 어디다 붙이면 가장 따뜻한 지를 알게 되었다. 선배들이 감기에 걸리지 말라고 핫팩을 쥐어 주었다. 이곳 저곳 붙여봤는데, 어깨 뒤쪽과 무릎에 붙였을 때 가장 따뜻하다.


- 파업 기간 동안에 했던, '나만의 딴 짓'이 있다면?

낮에는 그동안 사두고 읽지 못했던 책을 읽었다.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그래서 나의 눈에 비친 이번 파업을 기록해 두었다. 추운날 양말도 안 신고 운동화를 신고 집회에 나왔을 때는 내 발을 찍었고 청명한 하늘과 대비를 이루는 동료 아나운서의 빨갛다 못해 보라색이 된 귀를 찍어 두었다.  


- 파업 현장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사람은? 

'고대녀'다. 말을 참 잘하더라. 말을 잘한다는 것이 말을 번드르르하게 한다는 것이 아니라, 많이 고민한 흔적이 느껴졌다. 그녀가 말하는 것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많은 고민을 했다는 것이 읽혀서 나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이도 어린데, 참 대단하다.  


- 오늘 와서 한 일은? 

'이어서' 멘트를 했다. '이어서 00이 방송됩니다' 파업 때문에 특집으로 편성된 스페셜 프로그램이 많았다. 빨리 정규방송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알자지라>의 자존심, '적들도 믿는다'
왜? 정확하니까.

<독설닷컴>의 자만심, '적들도 클릭한다'
왜? 궁금하니까.

지난 한 해 동안 보내주신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언론노조 총파업을 지지하는 '독설닷컴'은
올해도 '언론장악 7대 악법' 개정을 막아
한나라당과 조중동과 재벌의 '방송 사영화'를 저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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