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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논객 열전/문제적 논객 변희재

독립PD가 변희재씨에게 드리는 제안 (이성규PD)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9. 1. 17.


지난 1월9일 변희재씨가 동아일보에 기고한
<방송 귀족들에 빼앗긴 영상세대의 꿈>
칼럼에 대해서 '독립PD협회'에서
반박 칼럼을 보내왔습니다.

독립PD협회 시니어멤버인 이성규 PD가
변희재씨에게 보낸 편지와
2030PD가 작성한 반박칼럼을 게재합니다.

언론노조 총파업을 지지한
독립PD협회의 행위에 대한 논쟁입니다.






독립PD가 변희재씨에게 드리는 제안
 
  
지난 목요일, '이달의 PD상' 심사로 목동의 PD연합회를 방문했다. 한 사람이 나를 부른다. "동아일보에 오른 변희재씨 글 읽었나요?" 변희재란 이름은 알고 있었다. 그는 애매모호한 보수적 성향의 논객(?)이다. 이상한 것들만 모아서 짜집기를 통해 궤변을 만드는 이다. 논쟁하는데 있어서 절대  패배를 시인하지 않는 100전 100패의 愚卒(우졸)이다. 

 
그의 글을 읽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근데요. 이건 반드시 읽으셔야 해요. 독립PD를 거론했어요." 변희재씨는 지난 여름에도 방송가의 비정규 연출직인 독립PD를 잠깐 업급한 바 있다.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무시했다. 하지만 말하는 이의 표정에서 뭔가 다른 냄새가 감지됐다.

 
동아일보 1월 9일에 오른 변희재씨의 칼럼이다. <방송 귀족들에 빼앗긴 영상세대의 꿈>   "내가 왜 이런 글까지 읽어야 해!" 투덜투덜. 귀찮은 마음을 애써 집중하며 읽었다. 역시 어디서 줏어들은 이야기로 엮어낸 삽질의 연속이었다. 무시해도 충분했다. 우리의 에너지를 변희재씨 같은 인물을 상대하는데 사용하는 것은 낭비였으니까. 그런데 한순간 모든 게 정지했다. 경악을 금할 수 없는, 그래서 확하고 화가 치밀어올랐다가, 그냥 벙 뜨고 마는 글귀가 눈에 박혔다.  

 

약자와 서민을 보호하겠다고 노래를 불러대는 방송노조가 이제껏 방송 권력에 착취당하는 외주업체와 작가들의 권익을 주장한 바는 없다. 방송노조가 지지했던 KBS 정연주 전 사장이 외주업체 제작비를 일방적으로 40% 삭감했을 때도 그들은 침묵했다. 더구나 희생양이 된 외주업체 PD들의 모임인 독립PD협회 소속 386세대들이 정 사장 사수 투쟁에 앞장서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들은 이번에도 방송법 개정안에 대해 “신문이 방송을 장악하기 위한 음모”라며 방송노조를 지원하고 나섰다. 흑인이 백인의 밥그릇을 위해 투신하고 있는 격이다. 방송 권력의 외주업체 장악은 경제 영역을 넘어 정신의 영역까지 파고든 것이다. 이른바 노예근성이다.


 
전체적인 글의 내용은 이렇다. 방송법 개정은 콘텐츠 산업발전인데, 노예근성을 버리지 못하는 386세대의 독립PD들이 발전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386 독립PD들이 영상세대인 2030세대의 꿈을 펼치기 위해서라도 길을 비켜달라는 것이다. 이 정도면 인신공격이다. 순간 이성을 잃은 것이다. 불과 5초의 순간. 정신을 차렸다. 만약 변희재씨가 우리를 자극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최소한 5초를 자극하는데 성공한 셈이다. 

 
몇 곳에 전화를 걸었다. "내가 방금 변희재가 동아일보에 쓴 칼럼을 읽었거든.."하는데, 상대방은 내 입을 막았다. "알거든요. 선배 그냥 무시해. 뭐 그런거에 흥분해. 쪽팔리잖아." 마치 약속이나 한 것 같았다. 한결같이 무시하라고 말했다. 그랬는데 올해 26살이 된 후배PD가 말한다. "선배까지 나서면 우리가 거시기하니까, 우리가 알아서 할게요. 제가 반론을 쓸테니까 선배는 그냥 계세요." 

 
북한산에서 PD전국대회가 이틀동안 열렸다. 그곳에선 컴퓨터를 할 수 없었다. 오늘에서야 메일을 열어보니 후배PD 몇몇이 글을 보내왔다. 그중의 하나를 소개한다.  글을 쓴 이는 변희재씨의 글에서 언급한 2030세대다. 26살의 젊은 PD다. 
 


어떤 근거로 우리의 투쟁을 “노예근성”이라 말하는가?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속담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나는 그 열 손가락에도 못 드는 비정규직 ‘독립 PD’다. 또한 20대로 88만원 세대다. 최근의 경제 위기 때문에 그런 내 처지에 불안해하고 있던 차에 ‘정규직들의 파업에 동참하는 것은 노예근성’이라고 말하는 변희재의 칼럼은 정말이지 분통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흘낏 보면, 언론법 개악에 반대하는 언론노조의 파업은 ‘독립 PD’들의 이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파업은 열악한 방송의 현실을 한층 더 악화시키려는 시도에 맞서 싸우는 것임은 분명하다.

변희재 씨는 칼럼에서 "새롭게 시장에 진입할 방송사라면 불필요한 인력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창의적 외주업체에 제작을 맡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방송사 인수에 많은 이해관계가 있는 조중동과 같은 언론은, 다른 모든 사회 부분에서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을 더 심화하라고 주문한다. 그들이 지금과 같은 경제 위기 시기에 자신들의 회사에서 입찰 경쟁을 심화시켜 고수익을 창출하려 하지 않겠는가? 이는 외주제작자들의 노동 조건을 악화시키는 방향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실제로 방송사들은 외주제작자들과 정사원을 서로 분열시켜서 그들 모두의 노동조건을 더 악화시키는데 사용한다. 외주제작PD들은 대체로 협찬금 마련을 위해 고생했던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방송사들에서 입찰 경쟁이나 방송사 자체 제작을 언급하면서 제작비 삭감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정사원들에게는 외주로 전환하겠다고 은근 협박한다. 그러면서 임금삭감과 감원을 노동조합에 흘린다.

변희재 씨의 주장과는 다르게, 언론법이 개악되면 방송인들의 삶은 더한층 경쟁의 궁지에 내몰릴 것이다. 지금과 같은 경제 위기 시기에 자본을 가진 사주들은 새로운 방송사를 설립보다는 기존 신문/방송사를 인수·합병하는 방식으로 자본 규모를 키우는 투자를 할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이는 IMF 때 수많은 인수합병 사례가 보여주듯, 대규모 감원과 노동조건 공격, 제작비 삭감으로 방송인들을 몰아넣는다. 그리고 그 대규모 감원으로 방송사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방송계 피라미드의 최약자”인 외주제작자가 될 뿐이다.

프로그램도 경쟁 논리에 내던져질 것이다. 투자 대비 시장성이 부족한 프로그램은 프로그램의 가치를 떠나서 바로 ‘퇴출’될 것이며,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다큐멘터는 투자자를 찾지 못하게 될 것이다.
 
“경쟁에서 낙오된 자, 가난한 자들의 삶은 세상 어디에도 없으며, 방송과 신문과 인터넷에서 이들을 위한 단 한마디, 단 한 줄의 배려”들은 설 자리를 잃고, 그 자리를 대기업과 정부의 입맛에 맞는 ‘땡박뉴스’ 같은 프로그램만이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즐겨 인용하는 프랑스에서도 공영방송이 기업에 넘어간 후 제작비가 감소하고 프로그램 질이 떨어졌고, 이탈리아에서도 ‘언론 재벌’에 넘어간 언론들의 사정도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그러기에 언론노조 파업을 지지하는 독립PD들의 행동은 “노예근성”이 아니라 방송에 대한 ‘주인의식’이다. 방송이 더 악화되고 미래가 더 불안해질 텐데 어떻게 파업을 지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언론 노동자들의 투쟁이 더 강력해지고 더 많은 외주제작PD와 작가들이 언론법 개악에 반대해야하며 이 투쟁이 더 나아가서 방송의 사회 공공성을 강화하고, 외주제작사인력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안정되게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386세대는 가”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20대 그리고 30대의 젊은 영상세대들이 함께 더 나은 방송을 위해 싸울 수 있기를 바란다.


2030 독립PD

  

 
변희재씨의 표현대로라면 글을 쓴 젊은 PD는, 이른바 386세대에 이용당하고 있는 그래서 선배들에게 꿈을 빼앗긴 영상세대다.  변희재씨는 말한다. "방송노조와 정치패거리로 묶여 귀족을 위한 투쟁에 나서고 있는 386세대 외주 PD들은 후배들을 위해 길을 비켜 달라. 386세대의 표현 그대로 역사 앞에 부끄럽지도 않은가."  그렇다. 필자는 63년 생이고 80년대 대학을 다녔으며 40대 후반이니, 예전에 유행처럼 퍼졌던 386세대임에 틀림없다. 

 
이미 독립PD로선 36세대는 방송제작현장에서 길을 비켰다. 아니 강제로 물러남을 당했다. 그나마 남아, 방송현장에서 프로그램을 제작 연출하고 있는 몇 안되는 40대 독립PD 가운데 한 사람이 필자다. 후배들은 말한다. "선배들이 없어요." 변희재씨는 그걸 모르고 있다. 이른바 386세대가 외주 제작현장에서 살아남은 이가 얼마나 되는지를.... 물론 표면적으로 몇몇 386세대가 이번 싸움에 나서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이제 퇴물일 수 밖에 없는 386을 타킷으로 삼으라고 하는 저항이다. 후배들을 현 정권의 타깃이 되게 할 순 없지 않은가?

 
변희재씨에게 제안 하나를 한다. 변희재씨에게 정보를 주고 있는 것으로 짐작되는 모PD, 그리고 변희재씨와 독립PD들이 모여 끝장 토론을 한번 하자고 말이다. 미안하지만 그 토론에는 필자가 참석하지 못한다. 며칠후, 촬영을 하러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촬영을 뒤로 미룰까 했는데, 다른 PD들이 말린다. "선배가 상대할 체급이 아니예요. 뭐 그런 애를 선배가 직접 상대하려고 합니까. 우리가 알아서 할게요." 

 
부탁이 있다. 삽질을 하려면 제대로 하시길... 이 땅의 독립PD를, 똥개가 짖기에 만만해 보인다고 착각하지마시길...  <디워>의 삽질꾼이신 변희재씨께서, 우리와 함께 'The War'하길 원한다면, 당신에게 알맞는 체급의 2030영상세대를 보내겠삼. 아니 386이 보내는 게 아니라, 그들 2030이 응전하겠다고 했으니 자원임. 
 
 
 
2009년 1월 17일 오후 5시 즈음
여의도 작업실 618에서 386세대 독립PD 이성규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