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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순 지키미 게시판/깨어나라 고봉순

KBS PD들의 분노, 그 사무친 말들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9. 1. 22.


이명박 정부의 KBS 장악에 맞서다
파면(양승동PD 김현석기자)과
해임(성재호) 당한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 소속
간부들의 징계 철회를 요구하는
KBS 기자협회와 PD협회의 '대휴투쟁'이
오늘내일 진행 중입니다. 

양심을 지킨 대가로 동료가 해직당하자
KBS PD협회는 분노했습니다.
KBS PD협회가 채록한
현장 PD들의 분노의 목소리를 옮깁니다. 
 






우리는 분노 한다!



양심은 정직하다

이장종PD (기획제작국)



동료사원들의 징계소식을 인터넷 기사에서 처음 접했다. 가슴이 뛰었다.
진정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결국 무리수를 두는 구나.
한치 앞의 욕심으로 대세를 망치는구나. 그 정도가 당신의 그릇이구나.
이제 그 패착에대한 변명을 준비해야겠지? 온갖 수사를 동원해서 원칙과 책임, 정당한 인사권임을 강변하겠지? 그러나 어쩌랴 그게 뒤를 봐주는 보스를 위한 변명이고, 그의 훈수에 따른 무리수임을 다 읽고 있는데….
아쉽지만, 자존심이 상하겠지만, 한 수 무르는 것이 진정 모두를 위한 승리의 길이라고 답할 것이다. 만약 역사와 양심에 질문한다면.
두 가지 인간상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육신의 영달을 위해 권력에 양심을 파는 사람, 양심을 지키기 위해 권력이라하는 고통을 감수하는 사람. 후자가 아니라면 남아있는 양심에 질문하라. 나의 행동이 진정 정의를 위한 책임 있는 행동인가? 그 후의 답에 대해선 변명하지 마라. 팔지 않은 양심은 정직한 답을 주니까.



몸으로, 마음으로 열심히 싸우겠습니다

전우성PD (드라마제작국)


작년 한 해 동안 참 많은 일을 보고 듣고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이제 어지간한 일에는 끄떡없다고, 흔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금요일 밤 본관에서 들려온 흉흉한 소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왠지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올해로 벌써 13년째 KBS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는데, 그간 참 열심히, 진심으로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스스로가 부끄러웠습니다. 부정의한 현실에 일갈하는 후배들을 보며 부끄러웠고, 19년 전 싸움의 기억을 후배들 앞에 다시 꺼내야 했던, 평소 늘 존경했던 선배님의 흰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부끄러웠습니다. 무엇보다 저 양반, 재미도 없고 에둘러갈 줄 모르며 그냥 정직하게 곧기만 한 선비 같은 사람, 그 소중한 선배 한 분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던 저의 무심함이 밉고 부끄럽기만 합니다. 스스로의 진실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싸우겠습니다.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마음으로 열심히 싸우겠습니다.



청부사장의 가오(?) 때문에?

심웅섭PD (청주방송총국)


정권의 명을 받은 청부사장이 선배임을 앞세우며 KBS에 들어왔습니다.
진보적인 프로그램을 난도질하고, 저항하는 사원들을 지방으로 내쫓고, 자질없는 사람들에게 보직을 맡겼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침묵했습니다. 그래, 시한부 청부사장의 가오(?)가 있지, 저 정도는 할 수 있지, 그러다 말겠지….
그런데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선을, 너무나도 쉽게 넘어버렸습니다.
고민과 주저를 일순간에 떨쳐버리게 해 준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몸을 던질 각오가 돼 있습니다.
열명, 스무명, 아니 백명 이백명이 파면을 당해서라도 부당하게 파면당한 동지들을 반드시 구해내야 합니다. 이는 단순한 동지애를 넘어서 정권의 언론장악 야욕을 저지하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엄청난 바.보.짓.을 저질렀다

하태석PD (예능제작국)


무상식 PD, 비양심 PD, 관제방송 PD, 심지어 영혼없는 PD 까지….
최근 KBS PD를 향해 온갖 매체에서 쏟아내는 무차별적인 비난, 쌍욕들이다. 지난 16일 사원행동 참가PD·기자들에 대한 사측의 무자비한 숙청은 그동안 누가 볼까 들킬까 두려워 숨어서 군말없이 밤새가며 관제· 무상식(?)방송을 해왔던 우리 딴따라 예능PD들의 영혼을 깨워주는 큰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한편으로 그들은 정말 엄청난 바.보.짓.을 저질렀다!

지금이야말로 그동안 곳곳에 숨어서 암약하던 우리 비양심PD들이 냉소주의, 보신주의, 이기주의를 떨치고 일어나 서로의 양심을 끄집어내어 앞장선 동료들의 뜻을 따를때다. 양승동 선배·김현석 선배 외 6인의 양심과 용기에 다시 한번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결의를 다진다.



시대적 사명을 다한 죄인가요?

유지윤PD (라디오2국)


우리는 이땅의 방송을 대표하는 KBS이다. 우리는 공영방송의 기능을 다해 국가발전과 국민생활 향상에 이바지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며 세계평화와 인류의 행복을 추구하는 높은 이상을 실현한다. 우리는 자유언론의 실천자로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진실과 정직 그리고 균형을 바탕으로 한 공정방송을 성실히 수행한다. 우리는 전문 방송인으로서의 직업윤리를 준수하며 지혜와 용기를 다하여 품위있고 책임있는 방송을 함으로써 우리에게 부여된 시대적 사명을 다할 것을 엄숙히 선언한다. - KBS 방송강령 전문 -
양승동 선배께서 조사받으셨을 당시 쓰셨다는 KBS 방송강령입니다. 양승동, 김현석, 성재호 선배는 위의 방송 강령을 누구보다 충실히 지키며 의로운 싸움에 앞장섰을 뿐입니다.

신념대로 행동한 이들을 야만적으로 학살하는 경영진의 폭거를 후배들은 똑똑히 기억할 것입니다. ‘좌시하지 않겠다’는 공허한 말은 이제 지겹습니다. 의로우신 선배들을 외롭게 두지 않겠습니다. 함께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들을 위안 삼아, 모두 함께 이 싸움에 어깨 걸고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한 싸움!

김동훈PD (교양제작국)

그는 일신의 영달을 위해 협회장의 지위를 이용하는 정치PD가 아니었습니다. 특정 이념에 편벽된 싸움꾼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다만“정치가 방송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언론학의 고전적 원칙에 충실한 선비였을뿐입니다. ‘是是非非’,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틀린 것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것이 언론인으로서의 기본적인 정체성이요 자존심일 것입니다.

영혼을 빼앗긴 개인은 더 이상 자유인이 아니며, 당당히 말하지 못하는 언론인은 더 이상 언론인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결코 양승동, 이준화 PD만의 일은 아닙니다. 바로 나 자신의 정체성과 인격에 관한 도전입니다. 밥그릇을 무기로 인간을 조롱하는 야만스런 시대속에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만 먹고 사는 버러지가 아닐진대,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키고 싶습니다. 이것은 내가 죽지 않기 위한 싸움입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한 싸움입니다.



KBS구성원들, 이제는 깨어나야 합니다!

정범수PD (포항방송국)



최근의 인사폭거에 크나큰 분노를 느끼면서도 지금까지 안락했던 일상의 익숙함은 실로 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지금처럼 방송하며 웃고 화내고 울던 일상에서 잠시 멀어져야 할지 모릅니다. 또 어쩌면 제작자로서 목숨처럼 소중한 현장을 지키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많은 공격과 회유를 당하겠지요. 그렇지만 만일 안데르센의 일생이 욕되고 부끄러운 것이었다면 그의 동화가 오늘처럼 아름답게 빛날 수 있었을까요?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이런 말도 안 되는 현실을 그대로 두고 어떻게 훌륭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까요? 우리가 어떻게 이 현실에 맞서 싸우는가는 역사 속에 명명백백하게 살아남아 그 자체로서 훌륭한 역사프로그램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1분, 1초는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우리 사회는 KBS 구성원들이 익숙함에서 깨어나 어떻게 살아 숨 쉬는 지 숨죽여 지켜볼 것입니다.

PD선배 본부장들은 그 때 무얼하고 계셨습니까?

윤한용PD(교양제작국)



이제는 PD선배 본부장들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날 그 때 무얼하고 계셨습니까? 그리고 또 묻습니다. PD사회가 들끊고있는 이 시점에 조직의 수장으로서, 선배PD로서 어떤 입장을 갖고 계십니까? 한 마디 말씀이라도 해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잘 아시다시피 우리들이 하는 일은 개인의 창의성과 열정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PD조직은 단순한 상명하달식 명령체계가 아니라 선후배라는 정서적 끈으로 맺어진 특수한 조직이지 않습니까? 언론인으로서의 원칙과 양심을 지키려다 후배PD가 파면이라는 극형을 당한 전대 미문의 사태에 대해 조직의 지휘자인 본부장들께서는 어떤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혹여나 힘이 부쳤다, 어쩔 수 없었다는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본부장들을 PD선배로서 봐야 할지, 경영진으로 간주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는 겁니다. 아울러 국장, EP들께서도 이번 사태에 대해 입장을 밝혀 주시면 좋겠습니다.

과연 맞서 싸워야 할 진정한 적이 누구인지 우리는 알고 싶습니다.



노인네도 집회에 가? 

최훈근PD(전임교수, 인재개발팀)


90년 4월, 좋은 PD 선배들이 했던 말들….
하나,“ 무슨 말들이 그렇게 많아? 나는 지금부터 머릿속의 전원 플러그를 뽑겠어.”
둘,“ 나는 그가 감옥에서 내 옆에 돌아올 때까지 말 안 할래.”
셋,“ 그 착한 내 옆사람이 잡혀갔어. 그가 돌아오는 것 말고 뭐가 필요해?”
그 세 사람 모두 제 발로 KBS를 떠났고, 한 사람은 저 세상으로 갔다.
5년 전, 중3 아들에게 마지막 빠따를 치고 했던 말... “자존심을 지켜라.”
마누라가 말한다.“ 노인네도 집회에 가?”,“ 후배가 짤렸는데…”, “그건 그래…”
머릿속에 맴도는 말.‘ 한 10년 대충 살아왔는데 계속 이렇게 가?’
세월은 가도 변하지 않는 것. 지켜야 할 것.
지켜내지 못하면 자신도 스르르 무너지고 말 것. 자존심, 용기,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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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은 최근 발행된 KBS PD협회보에도 실렸습니다.
'독설닷컴'은 KBS PD협회보와 특약을 맺고 주요 내용을 '블로고스피어'에 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