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어른의 여행, 트래블러스랩
  • 어른의 여행 큐레이션, 월간고재열
  • 어른의 허비학교, 재미로재미연구소
대한민국 논객 열전

미네르바는 미네르바를 이렇게 변호했다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9. 1. 22.


구속된 미네르바의 진위 여부가
계속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가 인터넷에 남긴 글을 분석해 보았다.

그는 그를 추앙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예언가적 선지자'도 아니고
그를 매도하는 보수언론 보도대로
'희대의 사기꾼'도 아니었다.
미네르바는 '서민의 대변자'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아고라에 남긴 글을 통해
지금의 자신을 변호했다는 것이다.





‘예언가적 선지자’인가, ‘희대의 사기꾼’인가?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에 대한 극과 극의 평가다. 많은 누리꾼이 그를 여러 경제 예측을 적중시킨 ‘예언가적 선지자’로 받드는 데 반해 검찰과 보수 언론은 학력과 경력을 속인 ‘희대의 사기꾼’으로 매도한다. 과연 미네르바의 정체는 무엇일까? 미네르바의 진면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는 바로 그가 남긴 글이다. 다음 아고라, 팍스넷, 기타 인터넷 게시판 등에 그가 남긴 글을 분석해봤다.



미네르바의 글은 지난해 가을부터 주목받았다. 초기에 그의 글이 주목받은 이유는 경제 예측이 적중해서라기보다는 정권 비판이 적나라하고 거칠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을 ‘흡혈생쥐’ 혹은 ‘쥐의 몸에 줄을 쳐놓고 다람쥐라고 우기는 꼴’이라고 묘사하며 맹비난했다. 그리고 ‘9월 위기설’에 대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대응을 비난하며 토론방에서 입지를 다졌다.



그의 글은 암울한 현실을 환기시키는 것으로 시작하는 사례가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자살 사건 보도다. ‘30대가 자살하는 나라…현재의 한국…(8월31일)’ ‘19살짜리 청년이 등록금 때문에 자살했다(9월1일)’ ‘하루가 멀다하고 시체가 떠오르는 한강(9월6일)’ ‘20~30대 자살 증가율 사상 최대…최대 사망 원인은 자살?(9월9일)’ ‘모델 김지후 또 자살 충격, 파문 확산(10월8일)’ 등 자살 소식으로 글을 시작했다.



미네르바의 글에서 눈에 띄는 것은 집요한 검색 끝에 근거 자료를 제시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검색의 달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자살 문제를 논할 때도 OECD 자살률표(자살률과 삶의 만족도 상관표 포함)와 전국 광역시·도별 자살률 분포 자료를 근거로 경제적 소외 지역의 자살률이 더 높다는 것을 논증하고, 마지막으로 강원도 시·군별 인구 10만명당 자살률표(직업별 자살자 현황표 포함)까지 보여주며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여러 글에서 나타나는 미네르바의 일관된 메시지는 ‘낙관을 경계하라’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멍청한 낙관이야말로 자살로 직결된다(9월16일).’ 주가 상승을 예상한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을 비난한 그는 특히 메이저 언론의 낙관론에 속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는 ‘내일 조·중·동 반드시 보겠다. 이 ××놈들아(9월15일)’라며 보수 언론의 낙관주의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미네르바는 경제 위기에서 각자 답을 찾기 위해서는 매트릭스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답은 어떻게든 살아남는 방법뿐. 이젠 내 재산은 내 손으로 지키는 방법뿐이야’ ‘시스템형 인간이냐, 아니면 주체적 인간이냐는 바로 이런 기존 틀 밖으로 나오려는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입니다. 이젠 시스템의 함정에서 헤어나오십시오(10월9일)’라고 말했다.

     

미네르바는 국가의 경제정책과 언론의 보도에 현혹되지 않고 천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외국어 회화 능력이 필수라고 꼬집었다. ‘이제 한국에서 외국어는 생존권과 연결된다(9월10일)’ ‘빨리 서점에 달려가 신용카드로라도 기초일본어나 중국어 회화교본을 사서 공부해라(11월13일)’는 글에서 외신을 통해 세상 돌아가는 것을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흥미로운 점은 미네르바가 여러 번 절필 선언을 했다는 사실이다. 그때마다 그는 외부 압력이 있는 것처럼 표현했다. ‘꺼지라면 꺼져줘야지. 난 이게 공안사범에 반정부주의로 몰리는 건지는 솔직히 여태까지 상상도 못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누가 그러더라고. 반정부주의자 아니냐고(9월18일)’ ‘이 사이트를 보면 상당히 지능적인 몇 가지 장치들이 되어 있는 게 한눈에 보이는구나. 떠오르는 해가 있으면 지는 해가 있는 법(10월10일)’ ‘정말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다(10월27일)’ ‘경제에 대해서는 “국가가 침묵을 명령”했기 때문에 입 닥치겠다(11월13일)’.



잠적을 마치고 돌아온 미네르바는 게시판에 ‘글을 토해낸다’고 말할 정도로 엄청난 양의 글을 종종 올렸다. 하루에 10개가 넘는 글을 올릴 때도 많았고, 한 번에 10여 쪽의 글을 올리는 경우도 많았다. 다음 아고라에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글을 올릴 때나 팍스넷에 ‘옆집 김씨’라는 필명으로 글을 올릴 때, 언제나 그랬다. 인터넷을 통해서라도 누군가와 소통하고자 하는 강한 욕망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경제 상황에 대해 비관하던 미네르바는 자기 운명에 대해서도 비관했다. 그리고 지금 같은 체포 상황을 염두에 둔 듯 자신을 변호하는 말을 미리 해두었다. 미네르바가 자신의 운명을 예고한 대목은 이렇다. ‘이제는 나 같은 천민들이 지들 뜻대로 안 움직여주고 이 모든 사태를 다 간파당하니까 한다는 소리가 괴담 유포자 색출이라는 별 희한한 협박…(9월16일)’ ‘난 구속 수사 말고 시청 앞에서 화형을 시켜줘라. 기왕 해줄 거면. 어차피 그거나 그거나(11월13일)’ ‘최근에 들었던 가장 황당했던 소리, “아고라 보고 주식 투자 결정하고 외환 투자해서 주가 내려가고 환율 폭등했다”는 소리. 진짜 주식 투자하고 외환 투자하는 사람은 아고라 보고 투자 안 하죠’. 그는 구속이라는 비상식적 상황을 예상이라도 한 듯 이에 대해 비난을 쏟아냈다.



대통령이 경제 위기를 극복하겠다며 청와대 지하 벙커에 비상경제상황실을 설치하는 동안 위기를 위기라고 경고했던 미네르바는 감옥에 보내졌다. 그 미네르바가 마지막으로 경고한 것은 ‘애국주의 광풍’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애국은 사악한 자의 미덕이다’라는 말을 자주 언급하던 그는 ‘반드시 내 생존권 지키고 야생 늑대처럼 독하게 살아남을 것이여. 날 차라리 매국노라 불러다오(9월16일)’라고 말했다. 미네르바는 입을 닫았지만 그의 예언은 계속 이명박 정부의 굴레가 되리라 보인다.



주> 오늘 오전에 올렸던 이 글이 블라인드처리 되어 있어서 다시 올립니다.
누구의 요청으로, 어떤 내용 때문에 블라인드처리가 되었는지 설명이 없어서, 원문 그대로 올립니다.
(사진만 바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