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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논객 열전

신해철의 변명, 이래서 궁색하다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9. 3. 2.


주저주저하다가,
신해철 광고 논쟁에 참전한다.


논쟁에 관심은 갔지만
할 일이 많아서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더 이상은 못참겠다.
말해야겠다. 
 
일단 두 가지는 뺀다.
먼저, 논쟁 경과보고는 뺀다.
(진행된 논쟁을 대충이라도 아시는 분만 읽으시라)

돈 얘기도 뺀다.
(광고를 찍고 돈을 버는 것은 죄가 아니다.)


딱 두 가지만 지적하겠다.





하나,
신해철은 “달을 가리키는데 사람들은 손톱을 본다”라고 말했다.

 

그의 주장을 해석하면 이렇다.


광고에서 인용된 그의 멘트는
“도대체 왜? 학습목표와 학습방법이 자녀에게 딱 맞는지 확인하지 않습니까?”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해철은 자신은 평소 소신대로 ‘학습목표와 학습방법이 맞는 학습을 해야 한다’는 것을 설파했고, 그런 자신의 소신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에 광고에 출연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광고에 출연했다는 방식만을 문제 삼는다고, 달을 가리키는데 손톱만 본다고 비난했다.


요약하자면, 광고라는 형식이 아니라 광고 속의 메시지를 보라는 이야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 생각은 이렇다.


사람들은 신해철이 지적한 달이 문제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신해철은 그 달을 지적하는 자신의 손톱에는 때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해철은 이 광고에 대한 면죄부를 앞의 멘트에서 찾았다.
물론 그 멘트는 문제될 것이 없다.
(사람에 따라서 문제삼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그것으로 면죄부를 얻는 것인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이 광고의 목적이 무엇인가?
학습 방식을 광고하는 공익광고인가?


아니다. 입시학원을 광고한 상업광고다.
사교육의 효용을 선전하고, 사교육 우위를 암시하는 상업광고일 뿐이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신해철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신해철은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는 글에서 “처음 광고 제의를 받았을 때 나는 이 광고가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었고, 현 정권의 분위기 아래서 사교육 시장은 팽창할 것이며 광고 시장도 등장할 것이란 예측도 했었다. 내가 예측하지 못한 것은 그 첫 모델로 내가 지목될 거라는 점뿐이었다. 사교육에 특별한 반감은 없지만, 그렇다고 '광고'를 찍긴 좀… (망설여졌다). 그러나 ‘자신에게 맞는 학습 목표와 방법의 추구'라는 카피 문구가 평소 내 지론과 너무나 똑같아 깜짝 놀랐다"라고 그 경위를 설명했다.


이 광고의 메시지는
‘사교육이 필요하다. 사교육이 우위에 있다. 그 사교육의 대표주자가 우리다’라고 말하는
콘텍스트적인 것이지,
‘학습목표와 학습방법이 맞는 학습을 해야 한다’는 텍스트적인 것이 아니다.
공익광고가 아니니까. 

신해철이 그것을 몰랐다면 순진한 것이고, 알았다면 안이한 것이다.



음악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신해철이 이 광고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단순히 ‘피쳐링’하는 수준이 아니다.
가수가 노래에 단순히 ‘피쳐링’하는 수준으로 참여했다면, 자신이 맡은 부분을 잘했느냐 못했느냐를 가지고만 판단하면 된다.
여기서도 신해철의 멘트가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냐만 따지면 된다.


그러나 이 광고에서 신해철은 ‘싱어송라이터’ 역할을 한다.
‘신해철이 인정하고 추천하니 한번 해봐라’라고 말하는 화자이기 때문이다.
(이 광고는 수용자가 이런 식으로 수용하라고 설계된 광고다.)
이것은 “그래서 결론은 0000”이라는 멘트와 광고에서 신해철이 취하는 포즈(뭔가 강요하는 듯한...)로 확인된다.


백번 양보해서 신해철이 달을 가리켰다고 치자,

신해철의 달은 ‘학습목표와 학습방식이 맞는 학습’이었을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그의 손톱 끝에만 살짝 묻어있을 뿐이고,
학원 측은 그 자리에 달 대신 살짝 ‘사교육 제일주의’를 걸어두었다.


신해철의 공교육과 사교육에 대한 견해는,
중요한 문제지만,
여기서는 직접 상관이 없으므로 논하지 않겠다.



하나 더 지적한다.


신해철은 말한다.
‘언제부터 당신들이 내 팬이었냐?’라고.
왜 자신을 비난하면서 팬을 자처하느냐고.


그는 “믿고 성원했는데 배신감을 느낀다는 등 웬 '전직' 지지자 숫자가 앨범 판매량의 수십 배야. 믿고 성원하는데 음악은 관심 없다라 (중략) 선거 나오면 찍게 기다리는 것이냐”라고 비아냥거렸다.


아니라고 본다.
사람들은 신해철의 팬이었는데, 신해철에게 큰 기대를 품었는데 그렇지 못해서 실망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신해철이 사교육의 첨병 노릇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기대감을 가졌을 뿐이다. 
그 상식을 배신당한 것에 화가 난 것이다.


의식 있는 많은 부모들이, 딜레마에 빠져있다.
사교육이 아닌 뭔가 멋진 대안교육을 해주고 싶은데, 현실은 녹록치 않다.
결국 울며겨자먹기로 사교육의 함정에 빠져든다.
사교육을 비난하면서도, 사교육의 노예가 된다.
왜? 자식의 일이니까.


그런 그들에게
입바른 소리 잘하던 신해철이
어느날 입시학원 모델로 나온 것을 보고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신해철은 가수다.
장관도 국회의원도 목사님도 신부님도 아니다.
우리의 전범이 되어주십사, 요구할 수 있는 위치의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 기대를 했는데, 실망시켰다고 말하는 것은 부당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우리의 상식을 지켜주는 사람이기를 바랬다.
그 상식이 깨진 것에 화가 났고,
그래서 그 범인으로 ‘몹쓸 돈’을 지목한 것이다.
그런 그들을 진짜 화나게 한 것은 이후 신해철이 보여준 태도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