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집단적 경험
6월 2일 <시사IN> 기획회의 때 일이다. 회의가 끝날무렵 갑자기 신입기자(박근영·변진경·천관율) 세 명이 A4 한 장짜리 기획서를 내밀었다. 촛불집회 현장 중계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선배 기자들은 모두들 뜨악한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시사IN>은 일주일에 한 번 나오는 시사주간지다. 당연히 중계 장비도 없다. 그런데 현장 중계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주간지 기자들이 시위 현장중계를 한다는 신입기자들의 상상력에 선배들은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그러나 후배들의 충정만은 이해했다. 매일 촛불집회 현장을 취재하던 후배들이 시시각각 변하는 현장상황을 담아내기에 주간지라는 매체 형식이 얼마나 한계가 많은지 절감했을지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독자가 기사를 읽을 다음 주까지 여전히 뉴스가 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뉴스'를 써야 한다는 것이 바로 주간지 기자의 어려움이다.
후배들의 충정이 묻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촛불집회 현장 중계'에다 '거리편집국 설치'를 더 얹어서 제안했다. 단 단서를 달았다. 카메라로 중계하는 것은 우리가 잘하는 일도 아니고, 이미 잘하는 곳이 많아서 경쟁력이 없으니, 우리 방식대로 기사로 중계하자고 제안했다.
명분은 간단했다. 이명박 정부의 문제는 국민과 소통이 안 되서라는데, 우리가 그 소통의 다리를 놓자는 것이었다. 촛불집회 현장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국민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직접 듣고 잘 정리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달해 주자고, 그래서 생각을 바꾸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 때 기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내가 꼽은 '거리로 나가야 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하나, 국민이 언론을 믿지 못해서 직접 촛불집회 현장 소식을 전달하겠다고 나서는데 기자들이 편집국에만 앉아있는 것은 국민들에게 너무 미안한 일 아니냐. 둘, 1인 미디어 시대에 시민기자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거리에서 계급장 떼고 그들과 직접 경쟁해야 한다. 셋, 고향으로 돌아가자. 이것이었다.
세 번째 이유는 좀 설명이 필요하다. 경영진의 무도한 삼성기사 삭제사건으로 초래된 '시사저널 파업' 이후, 우리들의 편집국은 거리였다. 시사저널 건물 앞 천막편집국, 프레스센터 언론노조 회의실, 용산의 후미진 뒷골목의 낡은 건물 한켠, 방송회관 방송노조 사무실, 북아현동 심상기 회장 집 앞 골목, 우리는 우리를 받아주는 것이면 아무 곳이나 '편집국'을 차렸다. 브레히트에 비유하자면, '신발보다도 더 자주 사무실을 바꾸면서' 파업과 창간을 견뎠다.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도 거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사저널 파업과 직장폐쇄, 결별, 그리고 <시사IN> 창간 과정에서 자기 일처럼 도와주었던 열혈 독자들이 왠지 촛불집회에 나와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도 거리에 나가야 한다고 했다.
주진우 기자가 결정적으로 거들어 주었다. 천막에서 먹고 자면서 현장을 지키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편집국장이 결단을 내렸다. 다시 <시사IN> 거리편집국을 차리기로 한 것이다. 주진우 기자가 상황실장을 맡았다. 파업 당시 최고 일꾼이었던 사진부 안희태 기자와 미술부 이정현 기자도 거들었다. 거리편집국 드림팀이 꾸려진 셈이다.
바로 그날 오후 거리편집국을 청계광장 입구에 세웠다. 워낙 준비가 부족했던 탓에 기자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3일 동안 계속 비가 와서 촛불집회 참가자도 많지 않았다. 서울시청 청계광장 관리자가 계속 항의를 해서 낮에는 천막을 걷고 밤에 다시 치는 것을 반복해야 했다. 늘 그렇듯, 현장에는 변수가 많았다.
6월 5일부터 날이 개고 집회 참가자가 늘면서 거리편집국에는 활력이 돋기 시작했다. 연휴 동안 집회장을 찾은 많은 시민들이 기자들을 격려해주었다. 그렇게 보고싶었던 창간 독자들도 먼 길을 달려와 기자들과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
효과도 있었다. 촛불집회 덕분에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 정기구독자가 는다는 소식을 듣고 '시사IN도 숟가락 좀 얹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정기구독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지만 광고주들이 광고를 주지 않아, <시사IN>은 '안정적인 적자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리편집국을 차리고부터 정기구독자가 가파르게 증가했다.
몇 가지 난제들도 말끔하게 해결되었다. 시사IN 홈페이지를 '팀블로그'(blog.sisain.co.kr)로 바꾸는 과정이었는데, 거리편집국이 대박이 나면서 빠르게 정착할 수 있었다. 6월 2일부터 15일까지(11일 12일 제외) 2주 동안 거리편집국을 운영했는데, 150만명의 누리꾼이 방문했다. 순식간에 거리편집국은 '파워블로거'로 등극했다.
2. 개인적 경험
시사IN 팀블로그가 자리를 잡으면서 이 팀블로그와 연계되어있던 개인 블로그, '고재열의 독설닷컴'(poisontongue.sisain.co.kr)도 덩달아 부상했다. 촛불집회와 다른 내용의 경우 개인 블로그로 올렸는데, 반향이 컸다. 그전까지 하루 방문객이 백명을 넘지 못했는데, 하루 만명 이상 방문자가 찾는 인기 블로그가 되었다.
대략 3주 동안 30만명이 방문했는데, 놀라운 경험이었다. '다음 디렉토리' 통계에 의하면 '독설닷컴'은 6월 마지막 주 인터넷 전체 사이트 순위 3875위였고, 방송인 언론인 부문에서는 2위였다. 방송인 언론인 부문 1위는 '조갑제닷컴'이었다.
처음 블로거로 나섰을 때는 '계급장 떼고' 누리꾼과 '맞장'을 뜬다는 느낌이었다. 마치 '글라디에이터'에서처럼 로마 장군이 아니라 한 명의 검투사로 원형경기장에 서는 기분이었다. 똑같이 방패하나 칼 하나를 들고 온몸으로 부딪치는 느낌이었다.
사실 이런 두려움에 대부분의 <시사IN> 기자들은 블로거로 나서는 것을 꺼리고 있다. <시사IN> 기자뿐만 아니라 블로그 앞에 선 많은 기자들이 그런 기분일 것이다. 마치 총을 쏘는 신식부대에 밀려나는 '라스트 사무라이'처럼 고민하는 기자들이 많다.
그러나 해볼만한 일이다. 일단 생산성이 높아진다. 매체에 기사를 쓰는 것과 블로그에 올리는 글의 차이를 비유하자면 국영농장과 텃밭의 생산성 차이로 비유할 수 있다. 자기가 쓰고 싶은 것을, 자기가 쓰고 싶은 방식대로 쓰니 생산성이 높아지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누리꾼들이 수시로 찾아와 '댓글 거름'도 준다.
기자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꼭 블로그를 운영하라고 조언한다. 그래서 스스로 기자임을 증명하라는 것이다. 손자병법에서 이르듯, 전쟁이란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긴 것을 적에게 확인시켜주는 불편한 과정일 뿐이다. 기자가 되려고 하지 말고, 스스로 이미 기자라는 것을 블로그를 통해 증명한다면 오히려 언론사에서 나서서 스카웃을 하려 들 것이다.
'독설닷컴'으로 나의 새로운 시험도 탄력을 받게 되었다. 오래 전부터 나의 꿈은 '1인 미디어'로 활동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모든 기자는 미디어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미디어는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창이다. '1인 미디어'가 되면 그 창은 권력과 기업과 소비자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물론 그 기자의 주관에 의해 기사가 좌지우지되고, 이를 교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맹점도 있다. 그러나 수용자들은 채널을 다양화함으로써 스스로 균형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교감'이다. 원재료의 맛을 최대한 그대로 살린 글로써 기자와 독자는 교감할 수 있을 것이다.
2000년 2월 22일,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명제를 내걸고 <오마이뉴스>가 출범했다. 그리고 그 실험은, 모두가 인정하듯 큰 성공을 거뒀다. 이제 '모든 기자는 미디어다'는 명제를 내걸고 기자들이 뛰어나갈 차례다.
3. 다시 집단적 경험
다시 '모든 시민은 기자다'는 명제로 되돌아 와서, 정부의 언론 통제 움직임에 반발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기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모든 기자는 시민이다'라는 역명제를 생각하게 된다.
YTN 앞에서, KBS 앞에서 정부의 언론통제 조치와 낙하산 사장 임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열렸는데 이전과 다른 모습이 전개되었다. 우리가 익히 보아온 모습은 촛불집회를 하는 시민들을 기자들이 취재하는 모습이었는데 여기서는 촛불집회를 하는 기자들을 시민들이 취재하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이것은 정상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정상은 '기자가 촛불을 들고 있는 시민을 취재하는 것'이지, '촛불을 든 기자를 시민이 취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 정상이 아닌 상황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촛불집회에 참석한 일반 시민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다음 아고라 토론장에서 '자유 언론'을 외친다. 그렇다. 모든 기자는 시민이다. '프레스 프렌들리'하게 지내겠다는 대통령에게 '프레지던트 프렌들리'하기보다 '피플 프렌들리'하게 지내겠다고 말하는 순간 기자들은 촛불을 든 시민이 되었다.
기자들이 시민으로 돌아갔을 때, 기자가 된 시민들이 이들의 목소리를 전해주었다.
6월19일 촛불문화제에서 YTN '돌발영상팀' 임장혁 기자가 "YTN이 첫 '빠따'다, YTN이 무너지면 KBS도 MBC도 무너진다, YTN은 지킬 테니 국민 여러분께서는 정부의 언론장악 음모를 막아달라"라고 '돌발 발언'을 하는 것을 나는 블로거 '몽구'를 통해서 접했다. KBS 현상윤 PD가 KBS 독립을 외치며 촛불은 든 시민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모습을 블로거 '박형준'을 통해서 들었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
'모든 기자는 미디어다'
'모든 기자는 시민이다'
이 세 가지 명제는 이명박 시대에 우리가 의지할 마지막 보루가 될 것 같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가 주최한 ‘세계시민기자포럼 2008 - 촛불 2008과 미디어 리더십’의 제3세션 ‘미디어로서의 블로그’ 부문에서 제가 주제 발표한 내용입니다. 블로거 ‘몽구’님이 제 바로 앞 순서에 발표를 했습니다. 본인은 떨려서 말을 잘 못하겠다고 하시던데, 본인의 경험을 솔직하게 잘 설명해 내시더군요.
세미나 발제를 준비하기 위해 어제(6월26일) 언론인권센터에서 개최한 ‘제3차 언론인권포럼 - 촛불에 나타난 1인 미디어의 발전방향’ 토론회에 구경갔었는데, 거기서는 블로거 ‘박형준’ ‘거다란’ 님과 BJ ‘라쿤’님을 만났습니다(그들의 솔직한 이야기들을 곧 정리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촛불집회가 끝날 무렵 함께 모여서 맥주 한잔 하기로 했는데,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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