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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언저리뉴스

이재오 귀국길이 험난할 수밖에 없는 이유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9. 2. 20.


이상득 의원이 최근
"이재오 전 의원도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
라고 말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을 만났던 정두언 의원이
이재오 전 의원을 만나고 온 후에
이상득 의원마저 이런 발언을 하자,
이 전 의원의 역할에 언론이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앞뒤 정황을 살펴보면,
이 말은 '블러핑'일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이재오 전 의원을 견제해왔고,
귀국도 막았던 쪽은 바로 이상득 의원이기 때문이다.
그 사연을 알아보았다.


이재오 전 의원(왼쪽)과 이상득 의원(오른쪽).



귀국과 관련해 이재오 전 의원은 단기적으로는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두지만 장기적으로는 10월 재·보궐 선거 출마 여부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의원 측 정무팀의 분석은 재·보궐 선거는 조직선거에 좌우되기 때문에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원내에 들어와 진두지휘를 하거나, 아니면 3기 개각 때 통일부 장관 등으로 입각해서 구실을 한다는 그림이었다. 문제는 이것이 가능하느냐이다. 그동안 이 전 의원의 정치적 구상은 이상득 의원에 의해 번번이 막혀왔기 때문이다.



이상득 의원은 여러 차례 이 전 의원의 구상을 좌절시켰다. 현 한나라당 지도부(박희태 대표-홍준표 원내대표)를 구성할 때, 18대 총선 공천을 할 때, 대통령직 인수위를 구성할 때이다. 대선 막바지 ‘토의종군(土依從軍·백의에 흙을 묻혀 전쟁에 임하겠다)’한 이후 이 전 의원은 이상득 의원에 막혀왔다. 애초 지난해 12월 말 귀국하려고 했던 이 전 의원을 정기국회와 2월 임시국회 이후로 귀국하게 한 것도 이상득 의원의 의지로 해석한다.



미국 체류 당시 이 전의원은 “당에 중심이 없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을 은근히 강조했다. 그러나 이상득 의원의 구상에 아직 이 전의원의 자리는 없었다. 여기서 주목할 사람은 정몽준-정두언 두 의원이다. 당내 서열 2위로 박희태 대표가 출마할 경우 대표직을 승계할 가능성이 큰 정몽준 의원과 최근 이 대통령의 신임을 회복한 것으로 알려진 정두언 의원의 역할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2월8일 친이계열 의원 40여명이 모인 ‘함께 내일로’ 모임에서 이상득 의원은 두 의원과 만났다.  


특히 정두언 의원의 역할이 주목된다. 한 당 관계자는 이번 일로 정 의원이 ‘이명박 대통령의 복심’일뿐만 아니라 ‘이상득 의원의 복심’이 되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고 분석했다. 최근 이상득 의원을 여러 차례 찾아가 구원을 푼 정 의원은 이 의원의 측근으로 자신이 권력을 사유화 했다고 비난했던 박영준 국무차장에게 축전을 보내기도 했다. 이에 화답하며 박 차장은 정 의원의 의원회관 사무실을 방문했다(정 의원이 자리를 비워 둘의 만남은 이뤄지지 못했다).


여기서 이상득-이재오-정두언, 3인의 애증 관계를 정돈해볼 필요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을 마쳤을 때 그의 옆에 있는 현역 의원은 친형인 이상득 의원과 이재오 전 의원, 정두언 의원, 이렇게 3명 뿐이었다. 그러나 선거 막판 이 전 의원이 ‘토의종군’하고 정 의원이 인수위 구성에서 밀리면서 힘은 이상득 의원에게 집중되었다. 정 의원은 ‘55인 후보 선언’과 ‘권력 사유화 논쟁’ 등 두 번에 걸쳐 이 의원을 비난했다. ‘55인 후보 선언’에서 발을 뺐던 이 전 의원은 ‘권력 사유화 논쟁’때도 뒤를 받쳐주지 않았다. 그리고 이 의원과 정 의원이 가까워지면서, 그는 다시 입지가 좁아졌다.


미국에 체류할 당시의 이재오 전 의원 모습.




정치권에서는 현실 정치에서 입지가 좁은 이 전의원이 할 수 있는 일은 한반도 대운하를 재추진하는 것이나 남북관계에서 역할을 하는 것 정도로 보고 있다. 지난해 9월3일, 워싱턴 특파원들과 만난 간담회 자리에서 그는 “파나마에 가보니 100년 전에 만든 70m짜리 운하를 더 파서 120m짜리 운하로 만들고 있더라”라며 여전한 ‘운하 사랑’을 내비쳤다.


존스홉킨스대학 부설 국제관계대학원(SAIS)에 초빙교수로 있을 때 연구 주제를 ‘남북문제’로 잡았던 그는 베이징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TCR(중국횡단철도) TSR(시베리아횡단철도)을 한반도까지 연결하는 문제와 관련해 동북와평화번영공동체 구상을 구체화하기 위해 연구소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남북관계 경색을 풀기 위해서 이 전 의원이 ‘대북 특사’로 임명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전 의원이 미국과 중국에 머무는 동안 친이재오계열은 많이 와해되었다. 이 전 의원이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할 때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했던 이방호 의원처럼 이재오계열로 분류되었던 안경률 사무총장도 친이상득 정치인이 되었다. 현재 친이재오계열로 분류되는 국회의원은 5~6명 내외다. 당 안팎에서 ‘박근혜 전 대표 눈치를 봐야지 왜 이재오 전 의원 눈치를 보느냐’는 말도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친인척 비리 등으로 인해 이상득 의원이 실각하지 않는 한 이 전의원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김영삼정부 시절 김현철 사건이나 김대중 정부시절 김홍일 김홍업 김홍걸 3형제의 비리 사건 등 대형 친인척 비리 사건이 터지지 않는 한 이 전의원의 활동 공간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조용히 기다릴지 여부가 관건이다. 한 당 관계자는 “이재오 전 의원의 단점은 조급함이다. 역할이 만들어졌을 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역할을 스스로 만들려고 한다. 불협화음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1월26일, 설을 맞아 백두산 정상에 오른 이 전 의원은 ‘대한민국 만세’와 ‘남북통일 만세’에 이어 ‘이명박 대통령 만세’를 외쳤다. 이 외침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귀양 간 사대부의 안타까운 ‘사미인곡’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고, 이 대통령에게 진정성이 전달되었을 것이라고 해석하는 긍정적인 시선도 있다.


“나는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지 않을 뿐이다”라고 말했던 이 전의원은 타고난 싸움꾼이다. 대선 때 잠시 물러날 때나 미국으로 떠날 때도 그는 “장수는 전장을 떠나지 않는다. 장수는 이선이 없다. 오직 전선만 있다”라며 권력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나 2월5일 64세 생일을 맞아 팬클럽과 화상채팅을 하며 그는 “나는 싸움을 거는 사람이 아니다. 이제 싸울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부드러운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 그는 최근 염색도 하지 않고 흰머리를 언론에 노출하고 있다. 이 전의원은 조용히 기회를 기다리겠다며 올해 화두를 ‘志高淸遠 任重道遠(지고청원 임중도원, ‘뜻은 높고 맑고 멀다. 책임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라고 던졌다. 과연 그가 싸움을 피할 수 있을까?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릴까? 


백두산 천지의 이재오 전 의원, "나 다시 돌아가고 싶다"라고 외치는 대신 "이명박 대통령 만세"를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