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3월6일) PD연합회가 주최한
'한국PD대상' 시상식에 다녀왔습니다.
간만에 PD분들 잔칫집에 갔는데,
마침 무한도전 김태호PD가 시상자로 나왔더군요.
(김PD는 지난해 수상했죠?)
내일이 방송이라 정신이 없을텐데
시상식이 끝날 때까지 가지 않고 남았습니다.
<PD수첩> '광우병편'으로 '올해의 PD상'을 수상한
이춘근 PD(현 W팀)를 축하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제가 '검찰 재수사가 예사롭지 않다.
이번에는 많이 어려워질 것 같다"라고 말했더니
그것이 마음에 걸렸나봅니다.
둘은 대학시절부터 친구였습니다.
먼저 '올해의 PD상'을 수상한 이춘근 PD의 수상소감부터 들어보시죠.
이날 이춘근 PD는 수상소감을 발표하면서 작정한 듯 이명박 정부와 검찰을 비난했습니다.
"지난 여름, 정운천 전 농림부장관이 더위를 먹었는지 우리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고...
검찰이 떡을 먹다 체한 모양입니다. 강제 구인을 하려하고 압수수색을 하려 하고..."
5분이 넘게 진행된 수상소감에서 그는 이명박 정부와 검찰을 맹비난했습니다.
제가 본 시상식 수상 소감 중에 가장 까칠한 수상소감이었습니다.
한번 들어보시죠. 아마 '독설닷컴'을 통해서밖에 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OBS에서 8시15분부터 '한국PD대상'을 녹화 방송하는데, 이춘근 PD의 수상소감을 그대로 방송할지 궁금하네요. 아마 이거 그대로 방송하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중징계를 받을텐데...)
언론노조 1차 총파업 때 김태호 PD에게 <시사IN> 원고를 부탁한 적이 있었습니다.
'왜 지금 파업을 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 국민들에게 알리는 편지를 작성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김태호 PD는 <무한도전> '봅슬레이편' 협찬사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협찬사를 구해서 봅슬레이 국가대표팀의 전지훈련비와 올림픽대표 선발 비용을 지원하려고 했습니다.
(결국 협찬사를 구하지 못해 MBC가 모든 비용을 지불했습니다.)
이를 악물고 만들어서 그런지 '봅슬레이편'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매너리즘에 빠진 <무한도전>을 단숨에 정상으로 끌어올린 수작이었습니다.
아무튼 저는 필진을 구하지 못해 안달이 난 상태였습니다.
그때 <PD수첩> 이춘근 PD가 구원투수로 나섰습니다(현재 W팀 소속).
이 PD는 '김태호PD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형식으로 글을 써서 보내왔습니다.
(아래에 이춘근 PD가 썼던 글을 첨부합니다.)
이심전심이었을까요? 김태호 PD의 유명세를 이용하려는 마음이 서로 통했습니다.
이 PD에 답장이라도 하려는 듯, 검찰의 재수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춘근 PD를 위로하기 위해 김태호 PD는 시상식 끝까지 남아서 축하해주었습니다.
'쌀집아저씨' 김영희PD와도 한 컷 찍었다. 김PD는 현재 PD연합회장직을 맡고 있다.
촛불 권하는 사회
- 무한도전 김태호PD에게 보내는 편지
이춘근 (MBC 시사교양국 PD)
태호야~ 네가 나보다 1년 먼저 입사한 회사선배지만, 우린 스무 살부터 친구니까 이 편지는 사석에서처럼 반말로 쓸게~
안암동에 있는 너희 학교와 신촌에 있는 우리 학교는 사람들이 라이벌이라고 하지만 내 생각에는 서로 자극이 되는 좋은 친구라고 생각해. 우리가 처음 만난 건 94년 봄에 있었던 신방과 과교류회였지.
너에 대한 첫인상은 뭐라고 해야 하지. 음... 쇼킹했던 의상선택, 패셔너블한 아이템 등 척 봐도 보통사람이 아니구나 싶었단다. 나도 청바지에 그림을 그리고 다니던 우리 과에서 알아주던 ‘돌아이’였지만, 재기발랄한 네 모습에 그냥 혀를 내두르고 말았지.
종이컵에 따른 소주에 안주라고는 새우로 만든 과자밖에 없었지만, 잔디밭에 둘러앉아 서로의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던 그날 밤은 아직도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단다. 그로부터 16년 후 넌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예능PD가 되었고, 나도 부끄럽지 않은 언론인이 되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중이지.
태호야! 근데 이상한 사람들이 MBC를 민영화해야 된다는 둥 자꾸 헛소리를 해대서 요즘에는 마음이 좀 심란하다. 자막 없는 <무한도전>을 내보낼 수밖에 없었던 네 마음도 그렇지 않을까 싶어.
우리는 신문방송학을 공부한 사람들이잖아. MBC가 만약 공영방송이 아니었다면 <무한도전>이나 <PD수첩>같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을까?
대한민국 최고의 예능프로그램인 <무한도전>도 시청률이 낮아서 고전한 적이 있었잖아? 만약 MBC가 돈 버는 게 제일 목표인 민영방송이었다면, <무한도전>은 제대로 피지도 못하고 진작 폐지되지 않았을까 싶어. 세상은 1등만 기억한다며 1등이 되기를 강권했던 대기업이 MBC를 가지고 있었다면,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캐릭터만 모인 <무한도전>이라는 기획이 윗선에서 까이지 않고 전파를 탈 수 있었을까? 그리고 유머감각이라고는 쥐뿔만큼도 없는 보수족벌신문이 MBC를 가지고 있었다면, <무한도전>의 백미인 ‘자막’도 높으신 분들 심기불편하게 하는 게 없는지 검사를 받아야 했겠지.
만약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 또는 유통하는 기업이 MBC의 대주주라면 작년에 내가 만들었던 <PD수첩-미국산 쇠고기 안전한가?>를 방송하게 놔뒀을까? 작은 제작비로 돈 벌려고 저질 프로그램을 양산하는 몇몇 케이블TV를 가지고 있는 재벌들이 MBC의 주인이라면 국제시사프로그램 <W>는 고환율 때문에 진작 폐지했을 것이고, 명품다큐로 칭찬 듣는 무려 20억이나 제작비를 들인 <북극의 눈물>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꿨을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MBC가 민영화가 된다면 아마 지금처럼 프로그램 만들기는 힘들 것 같아. 그럼 시청자들도 지금 같은 MBC 프로그램을 보지 못할 거구...
내 친구 태호야! 16년 전 어느 날처럼 오늘밤도 우리는 안에든 내용물이 바뀌었을 뿐 종이컵을 같이 들고 있구나. ‘술 권하는 사회’에서 ‘촛불 권하는 사회’로, 대한민국은 그동안 진보한 걸까? 퇴보한 걸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뉴스데스크> 신경민, 박혜진 앵커의 멋진 클로징멘트를 계속 듣고 싶다면, 퇴근하고 집에 가서 가족들과 <PD수첩>, <불만제로>를 보고 싶다면, 주말에 깔깔 웃으며 배꼽잡고 <무한도전>을 보고 싶다면 우리 MBC가 계속 공영방송으로 남아야한다는 거겠지.
국민들이 많이 도와주셔야 가능하겠지만 ‘촛불 권하는 시대’가 끝이 나고 따뜻한 봄날이 오면 신촌이든, 안암동이든 다시 한 번 만나서 소주 한 잔 마시자꾸나.
아~ 물론 MBC의 주인인 국민들께는 더 멋진 프로그램으로 보답해야겠지. 추운데 감기 조심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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