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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기자들, PD들

미네르바 사건으로 본 기자의 취재윤리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9. 3. 23.

기자의 취재윤리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일이
최근 몇 건 있었다.

하나는, 신동아의 미네르바 오보 관련 껀이다.
다른 하나는, 고대 출신 청년실업자의 자살 사건 보도다.
마지막 하나는,
장자연 전 매니저를 방문한 서세원씨에 대한 것이다.

신동아 미네르바 오보와 관련해서 
'독설닷컴'도 블로그에서 오보를 했다. 
고대 출신 청년실업자의 자살과 관련해서는
보도 태도에 대한 자살자 친구의 항의를 들었다. 
(내가 보도한 사건은 아니지만...)

장자연 전 매니저를 방문한 서세원씨의 사연과 관련된 이야기는 조금 복잡하다. 
서세원씨와 함께 인터뷰를 간 주진우기자가 앞뒤 정황을 밝혔지만, 
주기자의 독점 인터뷰에 대해서 새로운 논쟁이 전개되었다. 

각각의 것들을 풀어보면 이렇다.   





먼저, 미네르바 오보껀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지적이 있었다.

고재열님 죄송한데,

"신동아 보도가 검찰 수사보다 더 신빙성이 있는 이유 (미네르바 진실 공방)" 에 대해 사과, 정정문 쓰셨나요? 자신이 그렇게 증오하던 조중동을 옹호하면서 지금 구속된 미네르바님에게 엄청난 명예훼손을 자행하셨는데, 블로그라고 왜 어물쩍 넘어가려고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행동하는 분인줄 알았는데, 말로만 기성 언론인들 비판하고 본인은 같은 구태를 반복하시군요. 조중동을 먼저 바로세우기 전에 먼저 자신을 바라보셨으면 좋겠습니다.

PS. 그렇다고 전 님이 불리할 때마다 말씀하시는 '알바' 같은 건 아닙니다, 전 고재열님께서 PD수첩 번역자 정모씨에 대한 엄청난 인신공격 때문에 분노를 느낀 사람일 뿐입니다.


이 지적을 받고 그 글을 다시 읽어 보았다. 
그 글은 당시의 내 판단을 적은 글로, 사과가 아니라 '반성'이 필요한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결론이 났으니 '정정'은 덧없다. '교훈'을 얻어야 할 일이다. 

내 글이 미네르바에 대해서 명예훼손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의 글을 분석한 결과, 일반인이 아니라 전문가 혹은 업계 종사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고 그 근거를 밝혔다. 그래서 신동아 미네르바 인터뷰가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인터뷰에서 전문가들도 대부분 그렇게 밝혔다. 

어찌되었건 대부분 그런 의문을 품고 있는 가운데
신동아는 과감히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고,
나는 상자를 연 김에 적극적으로 따져 보자며 논의를 전개했다. 
(당시 다른 일로 바빠서 논의를 제대로 진행시키지는 못했다.)   

중요한 것은 '반성'해야 할 지점과 '교훈'이 무엇인가 하느냐다.

나는 신동아가 오보를 인정하기 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미네르바 편을 보고 신동아 보도가 오보라는 것을 직감했다.
한 국문학자의 분석 때문이었다.
그 국문학자는
미네르바 텍스트의 전체 글이 시기 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문법적 비문법적 실수, 습관적 표현이 반복되는 것이 관찰된다고 말했다. 
한 사람이 쓴 글이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뒤통수를 얻어맞는 기분이 들었다. 
미네르바의 글을 여러 번 살폈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야 했는데, 왜 나는 다르게 생각했을까?
핵심적인 글을 쓸 때와 신변잡기적인 글을 쓸 때의 글이 달랐다고 생각했을까...
분명히 느꼈을 그 힌트를 왜 간과했을까...

여기서 '교훈'이 나왔다.
기자라면 자신이 생각하려고 하는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도 의심을 던져야 했다.
내적 크로스체크가 필요하다.
거기에서 소홀했다.


두번 째, 고대출신 청년실업자 자살과 관련된 이야기다.

그 자살자의 과 동기인 친구가 우연히 술자리에서 물었다.
기자라면 답해달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궁핍함이 낱낱이 까발려지는 것을 고인이 원했다고 생각하느냐,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는냐,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해치는 것 아니냐, 라는 것이었다.
자신을 포함해 다른 과 동기들이 대부분 기자들에게 취재 공세를 당했다고 했다. 

'악역을 맡은 자의 비애'가 느껴지는 질문이었다. 
술자리인 만큼 그에게 맞장구를 쳐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가 그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였다고 하더라도 그리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다만 방식에 있어서 예의를 지키느냐 그렇지 않느냐 차이만 있을 뿐...

씁쓸했다.
답은 없었다.
기자의 숙명이 있을 뿐이었다.


세번 째, 주진우 기자가 서세원씨와 함께 장자연 전 매니저 유씨를 만나러 간 이야기는, 내가 알기로는 이렇다. 

주진우 기자는 그 전주부터 장자연리스트를 확보하고 취재를 시작했다. 
그러나 신영철 대법관 기사 때문에 취재를 중단해야 했다.
다른 언론에 장자연리스트 관련 기사가 나왔다. 
그 다음주에 장자연리스트 관련 취재를 다시 시작했다.
장자연 전 매니저 유씨와의 인터뷰가 몇 번 미뤄진 가운데 어렵게 성사되었다. 
이 자리에 서세원씨를 불러서 함께 갔다. 
서세원씨는 2002년 연예계비리 수사 때 검찰의 강압수사를 받았던 경험이 있어서 유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유일하게 서씨의 억울한 사연을 전해준 사람이 바로 주진우 기자였다.)
주기자는 서씨를 통해 유씨의 신뢰를 얻어 좀더 심도있는 인터뷰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서씨와 함께 인터뷰를 하러 병실에 들어가는데, 병실 앞의 다른 취재기자들이 보았다.
서씨가 기자회견을 준비없이 했다가는 오히려 더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이것저것 코치를 했는데, 밖에 있던 기자들이 이 말을 오해했다.
마치 서씨가 기자회견을 의도적으로 말리고 있는 것처럼 보도가 나왔다.
주기자가 나서서 이것이 오해라고 설명해 주었다.
(오해가 다 풀어지지는 않았다. 누리꾼들은 불교신자인 유씨에게 왜 기도를 해주냐며 따지기도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주기자의 '인터뷰 독점'을 문제삼았다.
자신의 인터뷰를 빛나게 하기 위해 공식 인터뷰는 짧게 하도록 종용했다는 것이었다.

서세원씨에 대한 오해는 주기자가 풀어주었으므로,
나는 주기자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고 싶다.

1) '서세원 빽으로 인터뷰를 했다' -> 서세원씨는 유씨와 일면식도 없었다. 서씨와 함께 간 것은 서씨가 경험자이기 때문에 유씨가 마음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비유하자면 '빽'이 아니라 '옵션'으로 함께 간 것이라 할 수 있다.

2) '기자 회견을 일부러 막았다.'  -> 전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던 유씨가 시사주간지 마감을 감안해서 기자 회견 내용을 정할까? 그는 서씨의 충고대로 괜히 말을 많이 해서 문제를 키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기자회견을 짧게 하고 질의응답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상황은 꼬일대로 꼬여서 그 자신도 고소된 상황이었다.

3) 수많은 기자들을 제치고 유씨가 주기자와 4시간 동안 인터뷰를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이전에도 수많은 연예부 기자들을 제치고 정선희씨가 주기자와만 인터뷰를 했다. 고 최진실씨 어머니도 주기자와만 만났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를 연예부 기자들이 잘 헤아렸으면 하는 바램이다. 수백명의 연예부 기자들이 달라붙은 사건에 별 상관도 없는 시사주간지에 입을 연다는 것, 그것은 현재의 연예기사 취재 시스템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에 대한 방증이라고 생각한다.  

한 스포츠신문 고참 연예부기자가 주기자를 비판하면서 그가 정의로운 척 한다며 이죽거렸다. 그 글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 연예부기자가 근무하는 스포츠신문은 '시사저널 사태' 당시 '짝퉁 시사저널'에 기고하는 것으로 앵벌이를 했던 곳이었다. 시민사회단체 분들이 '짝퉁 시사저널 취재 및 기고 거부 운동'을 벌이며 우리를 돕고 있을 때, 기자들이 썩은 고기를 무는 하이에나처럼 '짝퉁 시사저널'에 기생해 돈벌이를 하는 모습을 보며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고...
그들이 이번에는 우리에게 정의로운 척 한다며 깐죽거렸다. 

우리도 
정의로운 척 하면서 기자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세상이 너무 막나가서 그러기가 쉽지 않을 뿐이다.

시사IN을 창간하고 주변에 선포했다.
이제 정의의 저편에 서서 묵묵히 지켜만 보겠노라고,
정의는 이제 당신들의 몫이라고.
그 각오를 실천했으면 이런 말을 듣지도 않았을텐데...
참 입맛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