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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언저리뉴스

4월29일 재보궐 선거가 희한한 선거인 이유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9. 4. 23.


4월29일 재보궐 선거는 희한한 선거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심판 선거가 아니라 야당 지도부에 대한 심판 선거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은 반성하고 여당은 공격하는 해괴한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여당이 공격수가 되고 야당이 수비수가 된 까닭을 살펴 보았다.  

 

정동영 전 의원의 출마로 재보선 판이 완전 흐트러졌다.



“참 희한한 선거다. 재·보선이 정권에 대한 심판 선거가 아니라 야당 지도부에 대한 심판 선거가 되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가 4·29 재·보궐 선거에 대해 한 말이다. 재·보선 출마를 위해 탈당한 정동영 전 의원이 자신의 출마를 막은 정세균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를 비난하며 전주에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을 빗댄 말이다.

정 전 의원 등장으로 재·보선의 문법 자체가 바뀌었다.

보통 재·보선은 여당의 ‘국정안정론’과 야당의 ‘정권심판론’이 맞붙는 선거다.
그러나 ‘박연차 리스트’에 친노 세력이 초토화되고,
‘경제 살리기’라는 프레임에 갇히고,
‘정동영 출마’라는 악재까지 겹친 민주당은
공격수가 아닌 수비수 처지에서 재·보선을 치르게 되었다.


재·보선에서 ‘야당 프리미엄’이 사라지게 만들며 재·보선의 문법을 바꾼 정동영 전 의원은 민주당 지도부를 공격하며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4월16일 출정식에서 그는 “MB 정부를 심판하겠다는 이번 선거를 ‘정동영 죽이기’ 선거로 만들어낸 민주당이야말로 바꾸어야 할 대상이다”라고 민주당 지도부를 비난하며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정 전 의원이 바꾼 문법은 최소한 전주에서는 통하는 것으로 보였다. 동정론을 바탕으로 한 ‘민주당 지도부 심판론’은 전주 덕진 지역구 경계를 넘어서 이웃 완산갑까지 번졌다. 정 전 의원과 무소속 연대를 이룬 신건 전 국정원장이 출마하면서 전주가 들썩거린다. ‘정풍’을 차단하기 위해 정세균 대표가 19대 총선 전북 지역 불출마 선언을 했지만 산불이 난 곳에 휴대용 소화기를 들이댄 것처럼 무기력했다. 


정세균 대표, ‘정풍’ 차단 실패. 수도권까지 북상 조짐 

최재성 의원 등 386 의원을 비롯해 여러 의원이 정 전 의원을 비난했다.

최재성 의원은 “정 전 의원이 호남 맹주를 노리고 이런 것을 했다면 시대 가치에 맞지 않을뿐더러 우리 정치사상 가장 잔인하고 치사한 분열이다. 누구에게도 동의받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송영길 의원은 “한나라당 최병렬·박희태도 공천 안 줬다고 탈당하지는 않았다. 정동영 신당은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고,
이미경 의원은 “해당 행위를 한 정동영 전 의원은 공인 자격이 없다”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정풍은 잦아들지 않았다. 오히려 수도권에까지 상경하는 조짐이 보인다. 한 당 관계자는 “친정동영 성향의 조직이 움직이지 않고 있어 부평을 선거와 시흥시장 선거에서 애를 먹고 있다”라고 말했다. 최근 정 전 의원의 측근인 최규식 의원이 자유선진당 이용희 의원을 만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계 개편 이야기까지 나왔다. 경선 당시 정동영 후보를 지원했던 이 의원은 민주당 지도부가 공천을 주지 않은 것에 불복하고 탈당해 자유선진당에 입당한 뒤 당선되었다. 정 전 의원이 강현욱 전 도지사와 불출마 담판을 지어 당선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김완주 전라북도지사 역시 정 전 의원과 함께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된다.

정 전 의원의 탈당 행보는 미국에서부터 기획 되었다고 알려졌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탈당 행보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외곽에서 바람을 일으켜 영향력을 확대하는 전략이다. 재·보선과 지방선거 등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당에 안착한다는 모형인데, 안팎의 비난에도 성공적으로 구현되고 있다. 공천 거부를 명분으로 출마를 강행한 정 전 의원은 당선 이후에는 ‘복당 거부’를 명분으로 독자 세력화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이런 예상은 신건 후보와의 무소속 연대를 통해 가시화되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친박연대’와 비슷한 성격의 ‘친정연대’가 만들어지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정동영 탈당 행보, 박근혜 벤치마킹한 듯

막판 공천 과정에서 정세균 대표는 ‘정풍 차단’에 주력했다.

이를 위한 ‘재·보선 판짜기’에 골몰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MBC 신경민 앵커나 YTN 노종면 노조위원장 등 외부 영입에 공을 들였지만 끌어들이지 못했다.
특히 노 위원장 영입을 위해서는 구치소까지 면회를 가서 설득했지만 실패했다.
아태평화재단 연구위원 출신인 김근식 교수(경남대)를 전주 덕진 지역구 후보로 전략 공천해서
완산갑 지역구의 한광옥 전 의원과 함께 ‘김대중 벨트’를 만들어 정 전 의원을 견제하려 했지만
한 전 의원이 후보 경선에서 탈락하면서 무산되었다.
오히려 친노 성향으로 분류되는 이광철 전 의원이 전주 완산갑 지역구 후보가 되면서
박연차 리스트 정국의 직격탄을 맞게 되었다.


안방 선거가 힘들어진 정 대표의 정치적 승부수는 부평을의 홍영표 후보다. 한나라당 역시 경북 경주시와 울산 북구의 안방 선거가 여의치 않자 인천 부평을 선거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이 지역 현안인 GM대우 회생 문제를 풀어낼 주자로 대우자동차 출신인 홍영표 의원을 공천하는 것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민주당은 GM대우 회생자금으로 6500억원 지원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송영길 의원은 ‘경차에 대한 자동차세 한시 면제’를 골자로 하는 ‘지방세법 개정안’과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민주당을 ‘투쟁하는 야당’이 아니라 ‘대안 야당’으로 만들겠다던 정 대표에게 홍 후보는 코드가 맞는다. FTA 국내대책본부장을 맡았던 홍 후보 역시 ‘대안 후보’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우고 ‘경제 살리기 후보’라는 이미지를 부각하는데 주목하고 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이번 재보선에서 '심판하는 자'가 아닌 '심판받는 자'가 되었다.




'이명박 정부 심판'에서 ‘경제 살리기 선거’로 프레임 변화

그러나 이런 선거 전략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 선거 캠페인 전문가는 ‘뉴타운 딜레마’가 재현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뉴타운 공약을 들고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뉴타운 프레임에 갇혀 한나라당 후보에게 참패했듯이
‘경제 회생’을 내세울수록 민주당 후보가 불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뉴타운을 위해서는 여당 의원이 낫다’는 것처럼
‘GM대우 회생을 위해서는 여당 의원이 낫다’고 생각해 여당에 투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나라당은 ‘경제 살리기’를 내세웠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인천 부평을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에서 이번 재·보선을 ‘경제 살리기 재·보선’으로 규정했다.홍영표 의원이 선거에 패배한다면 이는 대안야당을 주창했던 '정세균 프레임'의 종말을 고할 수 있다. 한편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노무현 황사가 물러나고 대한민국이 깨끗한 하늘을 볼 수 있을 것이다”라며 박연차 리스트 정국을 활용해 민주당을 공격했다.

수비수 처지여야 할 여당이 이슈를 주도하고 오히려 공격수가 되어 있는데, ‘박연차 리스트 정국’에 움츠러든 민주당 의원들은 스스로 ‘노무현 심판 프레임’에 갇힌 모습을 보여주었다. 민주당 원로 정치인으로 구성된 ‘민주시니어’ 모임에서 김영진 의원은 “재·보선에 임하면서 국민에게 유감을 표명하는 정도로는 안 된다. 개과천선급에 해당하는 진실한 참회가 필요하고 그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진솔하게 표명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다른 원로들도 김 의원과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정 대표는 야당이 공격수가 아니라 수비수가 되고, 여당이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야당이 반성하는 희한한 재·보선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이 안방도 지켜내지 못할 처지가 되고 ‘정권 심판’을 위한 큰 판을 짜지도 못했다는 비난이 쏟아지자 정 대표는 원로들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정 전 의원이 신건 전 국정원장과 연대하는 등 ‘합종’에 나서자 정 대표는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한명숙 전 총리, 김근태 전 의장을 묶어 ‘연횡’을 만들었다. 정 대표의 러브콜에 다들 화답하며 흔쾌히 지원 유세에 나섰다. 

민주당 지도부가 걱정하는 것은 낮은 투표율이다. 야당으로서는 재·보선 판을 키울수록 유리한데 박연차 리스트 정국에 막혀 ‘심판 선거’ 분위기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투표율이 좋은 연령층에서 지지율이 높은 한나라당 후보가 유리하리라 예상한다. 재·보선을 도약의 계기로 삼기는커녕 민주당 지도부는 오히려 ‘전패 공포증’을 앓고 있다. 텃밭에서 정동영·신건 무소속 연대에게 지고 인천 부평을 선거에서마저도 패하면 0대5로 전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지도부도 비슷한 형편이지만 상황은 다르다. 한나라당 지도부가 ‘엄살’을 부리는 것이라면 민주당 지도부는 ‘공포’를 느낀다고 할 수 있다.



한나라당의 걱정은 재·보선을 통해 ‘이상득 파벌’과 ‘박근혜 파벌’의 갈등이 극단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그동안 두 세력은 ‘이재오 견제’라는 공통의 정치 목표를 놓고 어느 정도 힘의 평형상태를 유지해왔지만 경주 선거를 놓고는 한 치의 양보 없이 정면으로 대립했다. 경주 선거는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지는 '소탐대실' 선거가 될 수 있지만 두 파벌은 사활을 걸고 대립하고 있다.

선거 결과가 나오면 4·29 재·보선이 갖는 의미가 재해석되겠지만, 당선자는 있어도 정치적 승자는 없는 선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정동영 전 의원이 당선하더라도, 친이상득 후보나 친박근혜 후보가 당선하더라도, ‘상처뿐인 영광’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이상한 선거에서 정치인 팬클럽은 다시 활개를 치고 있다. ‘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정통들)’은 정 전 의원 귀국 전부터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직접 발송하는 등 호들갑을 떨며 판을 달궜고, ‘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박사모)’은 경주에 상주하면서 선거판을 휘젓는다. 정치인 팬클럽에 다시 정치의 계절이 왔다.


주> 이 글은 <시사IN> 84호에 게재된 제 기사를 재구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