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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그 후/촛불 1주년 기념, 독설닷컴 촛불문학상

'촛불어록'을 모아보았습니다.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9. 5. 9.


'독설닷컴' 방문자 천만명 기념 이벤트로 '촛불문학상'을 공모했습니다.
보내주신 글과 촛불 설문조사에 응해주신 분들의 글을 모아 '촛불어록'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보시고 직접 심사해주시기 바랍니다.

심사 방법은 간단합니다.
공감하는 글을 꼽아주시고 공감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댓글로 남겨주시면 됩니다.
그 글에 적절한 상 이름을 붙여주셔도 됩니다.  

(단 악평은 사양합니다. 칭찬만 올려주세요.)





(벗님)

촛불

큰 바람이 불었던가,
촛불은 꺼졌던가.

은은하게 어둠을 밝히던
그 아름답던 촛불은
생명을 다하였는가.
불씨를 잃었는가.

열망이 폭이,
욕심의 폭이 어떠했기에
은은한 불씨조차 감내하지 못하고
사그러뜨리고 마는가.

노후한 늙은이,
진정한 조언조차 받아들지 못하는
꽉 막힌 외곬수가 되어
눈 멀고  귀 닫은
탐이 가득한 괴물이 되었구나.

멀고 먼 옛 시절,
괴물을 잡으려면
창과 활과 검, 든든한 방패.
불굴의 의지와
용맹스런 용기가
기사의 힘이 되고 정의가 되었건만.

오늘 날의 괴물은
맞지도 않는 기사 옷을 두르고,
기사들을 괴물이라 꾸짖고 있구나.

괴물이 두려워하는 건
은은하게 어둠을 밝히는 촛불이라.
어둠을 좋아하기에,
정의롭지 않기에,
그토록 어둠으로 뒤덮힌 세상을 좋아하기에.

어둠과 친구하고,
거짓과 친구하고,
불의과 친구하고,
비슷한 족속들을 끌어모아
그렇게 친구를 이루누나.

차가운 바람이 깃 사이로 스며드는 겨울 날,

은은한 향과
은은한 빛이
아름다운 그 촛불이
다시금 그리워지누나.

(박휘서)

내가 본 촛불의 가능성은 바로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의 시국미사였다.

정확히 날짜는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날은 평일 이였고 난 야자 중이였다. 하지만 쉬는 시간에 오마이TV를 통해 본 모습이 정확히 거리 행진을 시작하기 위해 준비하던 참이였고 빨간 사제복을 입으신 신부님들의 모습과 행진곡 ‘함께 가자 이길을~’로 시작되는 민중가요를 들으며 온몸에 전율이 흘렀고 십자가와 함께 잔디광장을 가로지르기 한 시점에선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70년대 80년대 90년대 초반의 거리의 대학생 형 누나들의 느낌이 이랬을까? 87년 6월 민중항쟁에 참여했던 시민들이 느꼈을 법한 감정을 난 그 짧은 쉬는 시간 20분에 느끼고 펑펑 운 이유일 것이다.

좌절 또 좌절 촛불집회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지쳐가던 나 그리고 또 다른 참여자들에게 분명 시국미사는 단순한 종교단체의 위로 그 이상이었다. 지금은 비록 힘들지만 함께 간다면 분명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나에게 큰 비전을 던져주었다.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언론인이 되어 세상의 올바른 눈과 입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강수영)

시위하면서 참 많은 이들을 마주쳤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을 나누어주던 어느 대학생들과 큰 고무대야에 주먹밥을 산더미처럼 쌓고 나눠주시는 아주머님, 아무 생각없이 살아가고 있을 줄 알았던 내 대학 후배들도 꽤 마주쳤다.  복잡한 심경에 대열에서 조금 벗어나 외진 곳에서 앉아 쉬려는 찰나, 누군가 내 뒤통수를 후려치는 것이었다.  뒤돌아보니 어떤 할머님이 도끼눈을 하고는 나에게 소리를 치셨다.  "이 사탄에 빠진 어린 놈아. 지금 하는 짓이 무슨 짓인지 알어? 하나님을 따라가야지, 멍청한 짓거리를 하고 있어. 사탄의 자식이야?"

  내가 사탄의 자식일까.  예수 믿는 자는 시위에 나가면 유다가 되는 것일까.


(박태인)

저에게 있어 타오르고 있던 촛불은 '실천'의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한국을 떠나기전 한국 사회에게 할 수 있던 최소한의 보답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토플 책을 덮고 친구들과 함께 직접 거리로 나아갔습니다. 처음 촛불 집회를 나가던 날 부모님에게 온 문자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실망이다, 지금은 공부를 해야할 때다, 네가 또 이렇게 나에게 실망을 주는구나." 라고 말입니다. 저는 그날 핸드폰을 꺼놓았습니다.


(이종현)

그 날 내가 들고 있던 촛불은 새벽녘에 태양에게 자리를 내줬지만, 나는 그 촛불이 꺼졌다고 말하지 않겠다. 오히려 그 날 나는 하나의 촛불을 다시 켰다. 오래전 손가락으로 비벼 껐던 마음의 촛불, 이 세상을 밝히는 민주주의의 주인으로서 촛불을 나는 다시 켰다.


(정욱진)

- 촛불집회에 참석한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보다보다 못해' 참석했다 할 수 있다.
'보자보자 하니까' 이란 표현을 써도 되겠다.
인사청문회와 대운하부터 시작해서 이 정부가 하는 짓을 '보다보다 못해' 참석했다.


(박아제)

-촛불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습니까?

  촛불은 저에게 이름 그대로의 '촛불'이었습니다. 눈은 떠있지만 주위가 어두워서 제대로 현실을 보지 못하던 저에게 제대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습니다. 또한, '아, 말만 민주화가 된거였지 제대로 된 건 아직 아니었구나', '정치라는 게 나와 그렇게 멀리있는 게 아니었구나' 하는 느낌을 주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만 생각해선 안된다.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만들었습니다.


(오승주)

-촛불집회에 참석한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쪽팔려서'라는 네 글자가 대답을 해주지 않을까 합니다. 선거 패배감에 젖어서 현실에 대해서 전혀 관심을 갖지 않다가 촛불소녀들이 촛불을 들고 '행동'하자 자극을 받아서 촛불을 들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촛불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습니까?

  소설가 지망생으로 소설 구상과 취재 등을 끝내고 집필을 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촛불 이후에 펜을 꺾었습니다. 지금은 블로그 포스팅이나 리뷰, 기사 등의 글만 쓰고 있습니다. 촛불 이후에 인생이 바뀐 것 같습니다. 촛불의 희미한 흐름을 따라서 몸을 기울였습니다. 지금은 직장을 그만두었는데, 촛불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김동환, 국민대 총학생회장)

-촛불이 당신의 생활을 변화시켰는가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굉장히 늦게 자는 버릇이 생겼다(웃음) 인터넷 시사 검색도 많이 하던 편은 아니었는데 가장 먼저 하루의 시작을 인터넷을 통해 시사 문제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8 11월의 총학생회 선거의 당선은 나의 진로, 생활패턴을 모두 바꿔놓았다. 개인만을 바라보던 관점을 바꾸게 된 것도 큰 변화였다.


(김지윤, 고대녀)

-촛불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습니까?

제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과 또 확신을 심어주었습니다. 교과서에서 87년 항쟁을 보며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시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민주주의를 성취하기 위해 모였던 것일까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2008년 제가 바로 그런 역사적 현장에 있는 걸 보며 '역사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구나' 하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교과서에서, 책에서만 보던 민주주의, 저항 이런 것들에 대한 생생한 현장 학습이었던 셈입니다. 그래서 몸은 힘든데 새벽까지 거리에서 촛불을 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신나고 가슴벅찬 경험이었습니다.

또 저같은 경우는 일명 '고대녀'로 유명해지면서 이제껏 겪어보지 못했던 다양한 경험도 할 수 있었습니다. 촛불 시민들의 지지도 받고 6월 10일 집회에서 연설했던 것은 제 평생 잊지 못할 경험입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이 앞으로도 제가 진보적 가치를 위해 일해야 겠다는 확신을 심어준 것 같습니다.


(정성헌)

- 촛불이 당신의 생활을 변화시켰는가요?
 
그 안에서 정말 많은 걸 배웠던 것 같습니다. 그냥 나 같은 사람, 그리고 동네 옆집 같은 사람들도 정말 주권을 가지는 국민으로서, 무언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구나. 그리고 나와 같이 ‘위험하지만 당연한 상상’을 하는 사람이 정말 많구나, 하는 연대감이랄까요. 정치학을 지망하던 입장에서 반드시 출세를 해야만 무언가를 할 수 있다 - 지금도 완전히 그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 라는 생각을 종종 했었는데, 그런 오만한 생각도 조금 바뀌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주변에서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좀 보여주고, 뜬금없이 선물을 보낸다던가 소액의 현금을 보낸다던가- 하는 지지표명을 하는 등 안 하던 짓도 하게 되었고요. 지금은 삼수라는 긴 입시 경험을 살려서, 주로 저소득층을 위한 입시 칼럼을 써주고 있습니다.


(양상두)

-촛불은 승리했다고 생각하는가요? 아니면 패배했다고 생각하는가요? 이유는 무엇인가요?

승리했다고 본다. 촛불이 패배한 것이라면 정부가 미네르바를 고소하고 mbc pd들을 체포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촛불의 승리에 대한 보복이라고 본다.


(김우섭)

- 촛불은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촛불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과 동시에 한계도 존재합니다. 개성 있는 촛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큰 촛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제가 만들 수 있는 개성 있는 큰 촛불이 바로 '잡리스'입니다(잡리스는 ‘우리반 반장 임영박’을 개사해서 불렀다).


(강남아줌마)

-촛불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습니까?

정치에 소극적으로나마 참여하며,
대중은 우매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목소리를 냈다


(이재선)

-촛불집회에 참석한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이명박이 싫어서


(라쿤)

-촛불이 왜 꺼졌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도저히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정부의 폭력에 대한 허탈감, 포기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실정법의 잣대만을 가지고 촛불집회의 참여하는 이들을 수사하고 벌금형을 내리는 것은 충분히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원인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 보지 아니하고 또 자신들이 되돌이켜 보아야 할 부분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단지 잠재우고 막으려는 정부의 태도에 국민들은 공포를 느낀 것이 아니라 어이가 없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시는 분들은 막연한 촛불만이 아닌 보다 더 현실적인 대안 마련과 선전전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촛불집회는 광우병 파동사태의 촛불의 연장선이 아닌 이 사회의 부정한 모습에 대해 언제라도 시민들이 들고 거리로 나올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촛불이 영원히 꺼지지는 않을 것이고 언제라도 잘못된 점을 인식하게 된다면 다시 들게 될 것입니다.


(장우식)

-촛불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습니까?

촛불은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모든 부조리의 반대편에 서 있는 존재들입니다. 법질서를 말하는 정부에게는 헌법을 지키라 하고, 외세의 잘못된 행동을 고발하고, 값싸고 질좋은 고기 먹으란 말에 '너나 먹어 이명박!' 을 외치는 존재들입니다. 고맙고 미안하고, 소중하고, 지켜주고 싶은 하나하나의 존재들이죠^^


(이웃소년)

-촛불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습니까?

'소통' 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기득권층 등 일부 계층의 목소리만 편파적으로 듣고 실천하는 MB에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목소리도 있다 들려주려고 했으나, 한겨레 만평에 표현되었던 것 처럼 귀에 쐐기를 박았는지 저를 포함한 촛불현장에서의 소통 요구는 전혀 먹혀들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나비효과)

-촛불은 승리했다고 생각하는가요? 아니면 패배했다고 생각하는가요? 이유는 무엇인가요?

촛불은 전쟁이 아니었다. 전쟁으로 규정하고싶은 사람들은 촛불이 패배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촛불은 한국 민주주의의 절정이자 애국심으로 만든 '불바다'였다. 촛불이 발생한 목적을 충족시켰건, 충족시키지 못했건 촛불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승패를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