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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지못미' 프로젝트/'국립오페라합창단' 부활하라

음악도인 내가 파업 성악가들의 희망음악회에서 펑펑 운 사연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9. 5. 17.


오직 해직자만이 오를 수 있는 무대가 있었습니다.
해직 성악가, 해직 교사, 해직 기자…. 해직자만이 오를 수 있는 무대가
지난 4월22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펼쳐졌습니다.

‘거리의 프리마돈나 국립오페라합창단 희망음악회’의 오프닝 무대에서
경비 절감을 이유로 해체된 국립오페라합창단을 위해
해직 단원들, 일제고사 거부를 이유로 파면 해임된 전교조 해직 교사들, 낙하산 사장 퇴진운동을 벌이다 해임된 YTN 해직 기자들(34년째 복직 투쟁을 벌이는 ‘동아투위’ 선배 기자들도 함께했다)이 함께 <사랑으로>를 합창했습니다.

공연을 보며 많은 관객들이 울었습니다.
해직 단원들도 공연 내내 울었습니다.
그들 중 몇몇은 생계를 책임져야 할 가장이었고 몇몇은 한창 조심해야 할 임산부였습니다.

국회에서 열린 첫 번째 희망음악회 모습.


'독설닷컴'은 이들이 다시 무대에 오를 때까지 함께 할 것입니다.
지난 5월15일, 국립오페라합창단의 두 번째 희망콘서트에
'독설닷컴 - 국립오페라합창단 부활 프로젝트'의 프로젝트인턴인 김한나씨가 다녀왔습니다.
김한나씨 역시 피아노를 전공한 음악도입니다.
김한나씨는 공연 내내 펑펑 울었다고 했습니다.



“성악을 공부한 것이 죄인가요?”

국립오페라합창단의 두 번째 희망음악회에 다녀와서 

(기획 - 고재열, 글 - 김한나, 독설닷컴 프로젝트 인턴)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지난 5월15일, 투쟁 95일째인 해체된 국립오페라합창단의 두 번째 희망음악회가 열렸다. 투쟁 초기 32명에서 시작했으나 지금은 19명이 남아있다. 벌써 15명이 포기했지만 남은 19명은 더 강해졌다. 비록 적은 인원수였지만 그들이 전하는 감동만큼은 결코 적지 않았다.

음악회에서 상영한 동영상에서 한 단원은 부당해고를 겪으면서 어른이 되가는 것 같다고 했다. 10년 넘게 성악 공부를 하고 무대에 서는 순간이 생의 전부라고 여겼는데 무대를 빼앗겨 버린 지금, 혹시 성악을 공부한 것 자체가 잘못된 선택인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했다.

해외에는 절대 오페라합창단 같은 것 없다고 하시는 유인촌 장관님 덕분에 한 음악도가 본인의 선택을 되짚어보게 된 것이다. 한 단원은 “우리는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 이번 일을 통해서 사회가 얼마나 무서운지 깨달았다. 예술마저 정치적인 영향을 받고 그로 인해 예술가로 살아왔던 나는 더 이상 예술가가 아닌 노동자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보통 음대생들은 적어도 중학교 때부터 음악을 공부해 10년 이상은 음악공부를 한 사람들이다. 고등학생 때에는 진로를 결정하니 그 때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레슨을 다니고 수개월 연습한 곡으로 실기시험을 3분여 정도 치른다. 그 3분에 대학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렇게 진학한 대학에서 또 4년 동안 음악 공부를 더 하고 선택에 의해 유학까지 다녀와 평생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음악인이다.

할 줄 아는 것이 노래밖에 없어서 노래가 직업이고 노래가 일인 사람들이다. 선택의 폭이 좁다 넓다 말할 것도 없이 그냥 할 줄 아는 게 노래여서 노래가 일인 것이다. 그래서 즐겁게 일하고 싶은데 일하는 만큼의 정당한 대우를 받기는커녕 그 일자리마저도 부당하게 빼앗기니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어 설마 내가 성악을 선택한 것이 잘못이었나 하는 생각마저 들게 된 것이다.

이들이 왜,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정부에게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해 음악에 대한 확신이 흔들려야하고 왜 무대에서 쫓겨나야 하는가.


이 날 단원들은 싸움에서 지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로 노래를 불렀다. 더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경쟁에서 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아닌, 내 무대를 뺏어간 이들에게 지지 않겠다는 의지로 다져진 노래였다. 우리나라의 으뜸가는 오페라 합창단원들이 처한 상황이 이러하니 우리나라 예술계가 발전할리 만무하다.

서럽고 안타까운 목적을 가진 슬픈 음악회였지만 결과만큼은 슬프지 않았다. 공공노조 국립극장지부의 국악 찬조 공연과 <향수> <사공의 그리움>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객석을 즐겁게 해주었다. 또한 연주에 목이 말라있던 연주자들의 시원시원한 음량과 그들이 처한 상황과 맞물리는 노래에 대한 대단한 감정이입으로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이어지는 박수갈채와 기립박수로 인해 앵콜은 세 곡이나 연주되었다. 티켓을 예약해 후원금을 모아준 관객은 1000명 정도 되었고 실제 온 관객은 400명가량 되었다.

희망음악회에서 상영된 투쟁 동영상을 보며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노래로 많은 이들에게 행복을 주고 또 그래서 행복을 느끼는 음악가들이 무대를 되찾기 위해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같은 음악도로서 서럽고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중 특히 눈에 띄었던 곡은 <히브리 노예의 합창>이었다. 바벨론의 왕에게 잡혀간 유대인들이 왕의 독선 밑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히 살아간다는 내용의 오페라<나부코>에 나오는 이 노래는 이제 해체된 국립오페라합창단의 주제가나 다름이 없게 되었다.

 “날아라 생각이여 금빛 날개를 달고
비탈과 언덕에서 날개를 접어라
그곳은 부드럽고 온화한 공기
조국의 공기가 향긋한 곳
맞이하라 요르단 강둑과 무너진 탑
오, 내 조국, 빼앗긴 내 조국…” 
<히브리 노예의 합창> 가사 일부

5월20일은 오페라합창단원들이 투쟁한지 100일이 되는 날이다. 앞으로 100일 후에는 해체된 국립오페라합창단의 희망음악회가 아닌 <국립오페라합창단 정식 단체 승인 기쁨 음악회>가 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