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5월20일)은 국립오페라합창단 해직단원들이 거리집회를 시작한지 꼬박 100일이 되는 날입니다.
경영합리화를 이유로 해체된 이후 이들은 거리의 '프리마돈나'가 되어 거리 무대에서 노래해 왔습니다.
그러나 100일이 되어도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풀리지 않고 문화체육관광부는 방관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절박한 심정을 담은 글을 정찬희 단원이 보내왔습니다.
해직된 국립오페라합창단 단원은 42명이었습니다.
그 중 32명이 부당한 해직에 항의해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100일이 지난 지금, 22명이 남았습니다.
이들이 다시 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많은 지지 부탁드립니다.
'독설닷컴'은 이들이 다시 무대에 오를 때까지 함께하겠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잊혀지는 것일까?
글 - 강유미 (국립오페라합창단 해직단원)
요즘은....노래할 기회보다 발언하고, 글을 써야할 기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무슨 말을 또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앞섰습니다. 의도 하지 않았는데, 그저 제 이야기를.. 솔직하게 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가식이라고, 배부른 투쟁이라고, 손가락질을 하고 악플을 달고.. 그러더군요.. 왜 쓸데없이 이런 힘든 투쟁을 하면서 남들에게 안 들어도 되는 이야기 까지 들으며 상처받아야 하나.. 많이 속상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분들인데도, 저희를 위해 연대해 주시고, 용기 주시는 많은 분들이 있기에.. 오늘도 이 글을 씁니다..
저는 얼마 전 없어진 국립오페라 합창단 단원입니다. 지금은 여러분들이 아시는 대로 실직자의 입장이구요... 솔직히 이런 입장에 처하기 전까지는... 세상 돌아가는 일에는 그다지 관심도 없고 그저 주어진 일만 하면서 살던 평범한 국민 이었습니다. 그렇게 내 몫의 일만 열심히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대통령이 바뀌고 단장이 바뀌더니.. 하루아침에 저희는 불필요한 사람들이 되더라구요..
저희의 사정을 잘 모르시는 분들이 아직 많으신 것 같아서.. 간략히 저희 합창단 얘기를 조금 하겠습니다.. 2002년에 전 단장님으로 계시던 정은숙 단장님께서 국립오페라단의 저변 확대와 지방 문화예술의 발전을 위해서는 오페라를 더욱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그 동안 외부 합창단과 이루어졌던 계약의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느끼셔서, 국립오페라단 산하에 합창단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외부 시립합창단 들은 공연 때 마다 계약을 따로 해야 했는데, 스케줄이 맞지 않거나, 지방 공연이 많이 잡혀 있을 시에는 여러 가지로 고충이 따랐기 때문이지요. 저희의 월급이 어디서 나온 건지는 저희도 잘 알지 못했습니다. 국립오페라단에서 합창단 공고를 냈기에 저희는 오디션을 봤구요, 정정당당히 실력으로 들어와서 지금껏 오페라단 공연의 질을 높이기 위해 애써왔습니다. 돈을 많이 받지 못했기 때문에 열심히 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시는 분이 한 명이라도 계실까요? 저희는 공연이 성공적으로 이루어 져야만 저희의 입지도 높아진다고 생각했기에 모든 공연에 정말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국립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기에 저희가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을 거라 생각했죠. 그 때는 내 얼굴에 침 뱉는 것 같아서 차마 저희의 입장을 다 밝힐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1년씩 재계약을 해야 하는 비정규직 단원 이었구요, 실제로 오디션을 통해 떨어진 단원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그런 대우를 받으면서도 조금만 더 있으면 정규직으로 바뀔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지요. 하지만 2008년 7월 새로 부임한 이소영 단장님께서는 그 전 단장이 편법적으로 운영하던 단체니 없애고 규정대로 돌아가겠다.. 이렇게 하루아침에 무 자르듯이 40명이 넘는 사람을 내보냈습니다..
저희는요.. 이 단체에서 적어도 1년에서 7년간, 대학을 갓 졸업하고 풋풋하던 시절에... 이젠 노래로 전공을 살려서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그 기쁨으로 청춘을 바쳐 노래해 왔던 사람들입니다. 돈을 보고 돈을 벌기위해 있었던 거라면 다들 진작에 다른 직장을 알아보았겠지요. 하지만 저희는 오페라가 좋아서, 최고의 가수들과 한 무대에 설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러워서.. 그것을 자랑 거리 삼으며 버텨왔습니다. 예술의 전당에서 오페라를 올리고 나면 인터넷을 뒤져 리뷰가 어떻게 실렸는지 확인하고, 호평이면 서로 기뻐하고 그랬었지요.. 왜.. 왜냐구요?? 저희는 국립오페라단을 그저 돈 받고 노래 불러주는 직장이라고 생각 하지 않았으니까요.. 저희는 국립오페라단 식구라고 생각했어요..
2007년 12월 라보엠 공연을 하면서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에 불이 난 적이 있었습니다. 저희 공연이었지요.. 저희는 2막에 합창신이 있었기에 무대 밖에서, 대기실에서 대기 중이었습니다. 단체 대기실은 거의 3층에 위치하고 있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3층에 있었죠. 저는 그때 무대 바로 밖에서 모니터를 보며 대기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무대 화면에 불꽃이 보이더니 불길이 치솟아 올랐어요.. 사고가 난 것이지요.. 불을 끄러 내려오는 스텝들에게 소화기를 건네주며 불이 꺼지길 기다렸어요.. 하지만 불길이 천장에 매달려있던 소품들로 옮겨 붙으면서 더 거세어 졌습니다.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으러 대기실로 올라가 상황을 알리고 다들 침착하게 옷을 정리하고 나오려고 문을 열었어요... 하지만 복도는 한치 앞을 바라 볼 수 없을 정도로 새까만 먼지와 그을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너무 무서웠어요..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나마 다행 이었던 건 저희 모두 그 곳의 구조를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앞사람 어깨에 손을 기대고 한 줄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어요..
다들 응급실로 갔죠..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저희는 그런 몸으로 바로 며칠 후 공연을 해야 했어요.. 저희의 인권... 아무도 그런 것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식구의 문제였으니까요.. 오페라단이 위기에 처해 있는데, 그게 걱정이었지.. 저희는 괜찮았어요... 보상금이요?? 그런 건 주지도 않았고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잘 해결되기만을 기다렸어요.. 저희가 바보 같나요? 아니요.. 저희는 그렇게 순수한 사람들이었어요.. 세상 물정을 너무 몰랐죠.. 그런 오페라단에 단장이 바뀌더니... 단에 온지 7개월 도 안 된 사람이 7년이나 있었던 사람들을 내보내네요.. 어디에다가 하소연을 해야 할지.. 누구에게 얘기하면 저희의 답답한 심정을 알아줄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저희의 투쟁이 배부른 투쟁인가요? 음대 나온 사람들은 다 부자니깐 일자리 하나 쯤 잃어도 상관없는 건가요? 저희도 한 집안의 가장이고 부모에요. 음악 하는 사람들... 그렇게 다 부유하지도 않습니다...
미국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도 저희처럼 오페라 합창단이 있어요. 하지만 그 곳에는 정년이 없답니다. 모두들 무대에서 노래하다 죽는 게 소원이라 하네요.. 그 나라가 저희보다 무엇이 뛰어난지는 모르겠는데요.. ‘당신들 더 이상 좋은 소리 못 내니깐 이제 그만 둬 주었으면 좋겠어!’ 라는 말을 하지 않는 다는 거죠. 그들의 연륜과 그들의 열정을 존중하니까요.. 적어도 예술가들을 소모품처럼 다루지 않는 다는 거죠.. 저는 제가 이런 일을 겪고 나니, 새삼 미국이란 나라가 참 부러워 졌습니다. 우리나라도.. 정말 자랑스러운 내 나라도.. 저렇게 사람을 소중히 여기면 좋겠다.. 그렇다면... 월드컵 때 보여주었던 우리의 애국심으로.. 우리의 저력으로... 이정도 경제 위기쯤 금방 이겨낼 텐데 말이죠.. 아직도 세상을 잘 모르는 소리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이런 일을 겪고 나서 저희처럼 억울하게 힘이 없다는 이유로, 해고당하신 분들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저희보다 오래 투쟁하고 계신 분들도 많이 봤구요.. 그동안 배우지 못했던 세상사를 열심히 배워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조금씩 지쳐 가네요.. 끝이 보이지 않는 것만 같고, 저희 얘기가 잊혀져 가고 있는 것 같아서요.. 아직 저희 얘기를 모르시는 분들이 훨씬 많은데 말이죠..^^;;
여러 누리꾼 여러분.. 멀리서 나마 이 글을 읽으신다면,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힘을 보태주세요.. 정말 저희에게 큰 힘이 됩니다.. 저희 모두 끝까지 힘낼 수 있도록.. 응원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오늘(5월20일) 오후 세 시,
문화체육관광부 청사 앞에서 100일 집회가 있을 예정입니다.
많은 격려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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