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전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변희재씨가 화제의 중심에 있더군요.
'변희재 얘기는 그만 하겠다'고 선언을 했지만, 미리 썼던 글이 있어 올립니다.
변희재씨의 주문을 받고 쓴 변희재 비판 글인데, 제발 트집좀 그만 잡으라고 비판했습니다.
(형식상 <미디어워치> 비판이지만 사실상 변희재씨 비판 글입니다.)
노무현 추모 정국에서 충분히 떴으니 이제 그를 '변듣보'라고 부르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트집의 달인'인 그를 '변트집'이라고 부를 것을 제안합니다.
아울러 변희재-신지호-지만원-조갑제, 이 네 명이 보수논객을 묶어서
'변신지조'으로 부를 것을 제안합니다.
(변신지조...많은 것을 연상시키죠?)
일단 변희재씨가
자신의 칼럼 <노대통령 장례식에 국민세금 들이지마>과 관련해 정리한
다섯 가지 해명 사유에 대해 간단한 코멘트를 던집니다.
변희재씨 해명에 대한 '독설닷컴'의 각주
첫째, 1999년 서울대 초청강연에 응해준 개인 노무현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
- 일단 이번 칼럼을 통해 ‘변듣보’의 굴레를 벗어난 것을 축하드린다. 실시간 검색어 수위를 차지했으니 이제 더 이상 ‘듣도 보도 못한 잡놈’이라는 비난을 들을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둘째, 그러나 국민들이 다들 힘들어도 살아가고 있는데, 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분이 자기 가족과 측근들이 검찰수사로 위험에 처하자, 이들의 안위를 위해 목숨을 버린 것은 최선을 다해서 오래살아야 할 대통령의 1차 의무를 저버린 것이다.
- 전직 대통령에게 ‘장수의 의무’가 있다는 것은 금시초문이다. 만약 이순신 장군의 죽음이 자살로 밝혀진다면 '오래살아야 할 영웅의 1차 의무'를 져버렸다고 비판할 것인가.
나에게 전직 대통령의 의무를 부과할 권리를 준다면 ‘쪽팔리지 않게 살아줄 의무’를 부여하고 싶다.
셋째, 이러한 노대통령의 사고는 재임 기간 내내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영남민주화세력의 안위와 이권만을 위해왔던 그의 통치 방식의 연장선이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를 영남민주화세력의 안위와 이권만 걱정하는 것으로 읽어내는 변희재씨의 사고는 인물의 일면을 극대화해서 비판해왔던 논리 전개 방식의 연장선이다.
넷째, 그러므로 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통령의 의무를 저버린 노대통령의 장례에 국민세금이 투입되는 것을 반대한다.
- 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가 부여한 ‘쪽팔리지 않게 살아줄 의무’를 충실히 수행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 세금이 투입되는 것을 찬성한다.
다섯째, 한겨레신문과 진중권 등 노무현 정권 당시 혜택을 받았던 언론사와 논객들이 바로 노대통령의 모욕적인 언사에 자살한 일반 국민 남상국 사장 등에 대해, “시체 치우기 짜증나니 자살세 걷자”며 조롱하고 비웃었으면서도, 노대통령이 죽으니 “그의 죽음의 뜻을 이어받자”는 식의 정치적 선동술을 부리는 것에 대해, 정치적 이해에 따라서 죽음을 차별하는 이들의 이중적 태도를 언론이 비판 및 감시해야 한다.
- 변희재씨는 한겨레신문-진중권-남상국 자살-정몽헌 자살을 뭉뚱그려서 혼용해 텍스트를 오독하도록 유도하고 있으니 이를 비판 및 감시해야 한다.
내가 <미디어워치>의 ‘호독자’가 된 이유
언제부턴가 주간 미디어비평지, <미디어워치>의 ‘호독자’가 되었다(애정어린 관심을 가진 ‘애독자’가 아니라 호기심어린 관심을 가졌다는 의미에서 ‘호독자’라 이름을 붙여 보았다). ‘호독자’가 된 이유는 <미디어워치>를 통해서 이쪽 얘기가 아닌 저쪽 얘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언제부턴가(정확히 말하면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우리 사회는 이쪽 저쪽으로 나뉘었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내부에서는 빛의 속도로 소통이 되었지만 진영을 관통하는 소통의 흐름은 없었다.
<미디어 워치>는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창’이 되겠다고 했는데, 최소한 나에게는 ‘다른 창’이 되어 주었다. 직접 속내를 들을 수 없었던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추부길 전 홍보기획비서관, 조갑제 전 월간조선 사장, 정수채 MBC 공정방송노조 위원장의 목소리를 <미디어 워치>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같은 언론계에 종사하면서도(혹은 종사했으면서도) 언론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흥미롭게 읽었다.
<미디어오늘> <미디어스>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나는 그래서 오히려 <미디어워치>를 더욱 열심히 읽었다. <미디어오늘>이나 <미디어스>의 기사는 나도 알고 나도 동의하는 내용이었지만 <미디어워치>의 기사는 내가 알지 못하거나 내가 동의할 수 없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꼼꼼하게 읽었다.
흥미로운 지점은 기사와 현실의 관계였다. 이쪽(<미디어오늘>이나 <미디어스>)에서 하는 이야기는 정반대로 되는데 저쪽(<미디어워치>)에서 하는 이야기는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미디어워치>는 마치 예언서 같았다. 진중권 교수의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의료를 문제 삼자 강사료를 반납하라는 조치가 취해졌고, 황지우 총장을 문제 삼으니 사퇴했다. <미디어워치>에서 앵커멘트를 문제 삼았던 신경민 앵커와 박혜진 앵커 역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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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디어워치>의 다른 예언도 주목하고 있다. 최근 성신여대 손석희 교수와 MBC 엄기영 사장에 대해서 문제삼는 기사가 실렸는데, 그들에 대한 예언도 적중할 것인지,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이 예언까지 적중한다면 <미디어워치> 기사는 언론계 ‘살생부’가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미디어오늘> <미디어스>등 기존 미디어비평지가 조중동의 문제와 이들의 방송장악 문제를 우려할 때 <미디어워치>는 한겨레와 경향의 문제와 방송장악을 막고 있는 MBC 노조의 문제를 제기했다. <미디어오늘>과 <미디어스>가 정권의 포털간섭을 우려할 때 <미디어워치>는 포털권력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정반대였다.
네이버 뉴스캐스트 서비스에서 선정성 문제로 국민일보 쿠키뉴스가 제외된 것을 포털권력의 문제로 바라본 것이 이채로웠다. 다른 미디어비평지들이 쿠키뉴스를 비롯해 ‘트래픽 강박증’에 걸린 언론사 편집을 문제삼을 때 <미디어워치>는 포털에 화살을 돌렸다. 동의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관전포인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전 포인트의 차이는 네이버가 이명박 대통령 관련 댓글을 자의적으로 결정했다는 것을 폭로하는 기사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네이버 전직 직원이 폭로한 내용은 댓글 관리 규정이 엄격했는데, 그래서 대통령 관련 악성 댓글은 거의 블라인드 처리되었는데, 위에서 지시가 내려와서 완화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엄격하게 관리되던, 그래서 언로를 막던 이전이 잘못되었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을, 포털이 상업적 판단을 한 것이라며 문제삼는 것이 독특했다.
<미디어워치>의 포털권력 비판은 최근 구글에까지 확장되었다. 정부의 실명화 정책에 반기를 든 구글에 대해 미디어가 무분별한 ‘구비어천가’를 남발하고 있다고 비판한 기사였는데, 이것 역시 독특했다. 인터넷기업협회가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에 보낸 공문을 소개하며 ‘협박’이라고 비판했는데, <미디어워치>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사안을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미디어워치>의 관전포인트 중에는 주목할 것이 많았다. 그러나 그 관전포인트를 풀어가는 방식, 주장의 내용과 주장을 전개하는 방식에는 동의하지 못할 것이 너무나 많았다. 내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일수도 있겠지만, ‘트집을 잡는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간단한 인상비평을 곁들이자면, <미디어워치>는 한편의 미디어 칼럼집 같았다. 사실과 의견이 혼용되어 사실과 의견의 경계가 불분명했다. 처음 정착 단계에서야 어쩔 수 없었겠지만 이제 10호를 넘긴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 체계를 잡아야 할 때가 되었다. 보수적인 시각의 문제의식을 담은 미디어비평지이지 보수단체의 팜플렛이 아니지 않은가.
하나 더 요구하자면, 미디어 본질의 문제에도 좀더 깊은 관심을 보였으면 하는 것이다. 미디어의 본질은 언론 자유에 대한 것이다. YTN 해직기자 문제 검찰의 PD수첩 <광우병편> 수사 등에 대해 정면으로 다뤄야 하지 않을까? <미디어오늘> <미디어스>가 다루는 문제와 다른 문제를 발굴하는 것도 좋지만, 여기서 제기하는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다뤄야 할 것이다. 비록 다른 시각을 담아내더라도.
약자가 반드시 선한 것은 아니다. 약자가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언론은 늘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미디어워치>는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물론 약자를 약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물론 거대한 피라미드에서 그들도 누군가에게는 강자로 군림하는 사람일 수 있다. 그러나 거대 권력에 의해서 핍박받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들의 악함과 그름에 조명하는 빛보다 더 강한 빛을 그들을 탄압하고 억압하는 자들에게 비춰야 할 것이다. 좀더 차분해진 <미디어워치>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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