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했더니, 다들 말렸다.
유명 방송인도 선배 기자도 심지어 ‘독설닷컴’ 애독자도.
표현은 달랐지만 논리는 비슷했다.
변희재를 키워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들의 충심어린 만류에도 불구하고 변희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다만 이들의 충고를 받아들여 변희재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에서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변희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변희재는 이미 컸다’는 것을, 그리고 그가 큰 비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누리꾼들은 ‘변듣보’가 진중권 교수를 공격하는 이유는 진 교수를 까는 것으로 크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누리꾼들은 변희재와 ‘듣보잡’을 합쳐서 ‘변듣보’라고 부른다)
그러나 변희재는 이미 컸다.
그의 현재를 짚어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변희재는 현재,
온라인신문 빅뉴스와 오프라인 미디어비평지 미디어워치의 대표다.
(비록 콘텐츠가 상당히 겹치기는 하지만...)
그는 또한 인터넷미디어협회의 정책위원장이고 미디어발전국민연합의 공동대표다.
실크로드 CEO 포럼의 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얼마 전 한나라당 추천 몫의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의 위원이 되었다.
진보진영에서, 서른다섯에 이 정도 스펙을 가진 사람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그는 욕먹어서 큰 것이 아니라, 욕먹을 만큼 컸다.
이슈를 중심으로 보아도 그는 충분히 컸다.
온라인신문과 오프라인잡지를 발행할뿐만 아니라 그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수시로 기고를 하기도 한다.
이슈를 밀어붙여 TV토론 아이템이 되게 하거나 그 이슈를 주제로 국회 토론회가 열리게 해서 부각하거나, 또는 그런 논의를 바탕으로 입법이 되게 하는, 일련의 ‘이슈 디벨로핑’ 과정에 그는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일련의 이슈 확산 과정과
이슈와 관련된 정책 수립 과정에 대한 간섭 능력에서,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진보진영에 이 정도 ‘오지라퍼’가 없는 것이 아쉬울 정도다.
요즘 그는 ‘진보 저격수’ 역할을 맡고 있다.
(정확하게는 ‘반이명박 혹은 비한나라당 유명인 저격수’라고 불러야 하겠지만)
그는 언론노조총파업에 동참한 MBC 여성 아나운서들을 공격했고
MBC 신경민 박혜진 앵커의 클로징멘트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 민원을 제기했고
진중권 교수 손석희 교수 등 이명박 정부에 비협조적인 유명인들을 공격했다.
‘그를 욕하는 것 자체가 그를 키워주는 것’이라고 말 하지만,
그는 욕먹을 만큼 충분히 컸다.
이미 뜰만큼 뜬 그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것은
위험을 부정하기 위해 땅 속에 머리를 처박는 타조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제대로 집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그가 진중권 교수나 손석희 교수를 공격하는 이유는
그런 공격을 통해서 크려는 ‘찌질이’여서가 아니라,
일종의 전과를 올리려는 행위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
정권에 비협조적인 ‘반이명박, 비한나라당’ 인물을 공격하는 데 있어서 그는 가장 효과적인 공격을 하고 있다.
나는 진보진영에도 변희재와 같은 존재가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자신이 속한 온오프라인 미디어와
자신이 주도적으로 만든 단체에 속한 인터넷 미디어와
그리고 자신이 주도적으로 만든 단체와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단체와
자신이 칼럼을 쓰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을 활용해 그는 이슈를 확대재생산한다.
TV 시사토론 토론회든 학자들의 토론회든
관련 토론회를 조직하고
국회의원 한 명을 세워 법안 입안까지 기획하는 과정에,
그는 매우 익숙하다.
다른 논객들이 ‘차린 밥상’ 위에서 활약한다면
그는 밥상을 차리는 논객이라고 할 수 있다.
밥상을 차린다는 것은 프레임을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그가 다른 사람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변희재를 욕하는 사람은 많다.
심지어 그와 함께 하는 사람 중에서도 뒤에서 그를 욕하는 사람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변에는 사람이 많다.
그가 벌인 판 위에서 떡고물을 주워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보진영에도 변희재와 같은 ‘판메이커’가 나왔으면 좋겠다.
판을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값어치 있는 일이다.
지금은 ‘진보의 사카모토 료마’가 절실한 시점이다.
그래서 변희재의 오지랖이 아쉽다.
나는 변희재의 바닥을 보았고 기억하기에
지금 그가 얼마나 급성장했는지를 알 수 있다.
포털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제기로 자신의 매체가 포털에서 버림받아 전혀 힘을 못쓰게 되었을 무렵, 그는 정치권에도 뛰어들었다.
구 민주당 지도부 경선에 그는 김경재 전 의원 대변인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이때가 아마 내가 본 그의 바닥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변희재는, 정말 잡초처럼 컸다.
대자보-서프라이즈-브레이크뉴스-빅뉴스 창간에 관여한 변희재는,
인터넷 논객이면서 포털과 각을 세우고
서울대 미학과 출신이면서 서울대 미학과 출신인 황지우와 진중권을 공격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그는 단련되었다.
변희재는 ‘소송 매니아’이기도 하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그는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주말에 집에서 목욕 재개한 후에 조용히 소장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하다”라고.
거친 토론을 거친 뒤 소송 난전까지 펼치는 그를 사람들이 꺼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토론 밖의 토론에서 그는 강했다.
변희재는 ‘대인논쟁’을 즐겨한다.
‘당신이 그런 것을 논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라고 논증하는 것이다.
어떤 절대적인 기준을 언급하고,
이런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것은 잘못 아닌가, 하고 공세를 취한다.
절대적인 기준 앞에, 흠 없는 사람은 없다.
이를 방어하는 쪽은 구차스런 현실론을 드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한 것은,
자신의 행동에는 도덕적 금기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존 스튜어트 밀에 ‘자유사상론’을 사상으로 삼고 있다는 그는 말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고 사상이 바뀌는 것에 스스로 자유롭다.
‘사상이 바뀐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사상이 바뀌었다고 무슨 욕을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의 존재감이 커진다면 그도 자기자신에 대한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아마 그가 거친 단체 혹은 매체를 나열하고
그 매체의 물주들을 나열하고
그때그때 변한 그의 주장을 나열한다면,
아마 흥미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가 김경재 대변인으로 나섰을 때, 매체와 정치를 함께 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었다.)
논객으로서 변희재는 장점과 단점이 분명하다.
토론과 관련해서 그의 장점은 새로운 사실을 시의적절하게 들이댈 줄 안다는 것이다.
(비록 사실관계와, 사실관계에 대한 해석 문제가 많지만)
토론에서 ‘내 생각을 잘 정리해서 표현해준다’ 혹은 ‘내가 받아들일만한 생각이야’ 보다 더 힘이 센 것은 ‘그런 사실이 있었어, 그럼 그렇게 생각해야지’ 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실에 근거한 논리는 힘이 있다.
진보진영 논객에게서 제일 부족한 것이 바로 충부한 ‘구체적 사실’이다.
논리의 얼개는 촘촘하지만 그에 대한 ‘구체적 사실’을 꼼꼼히 살피지 않는다.
잡초처럼 컸기 때문에 변희재에게는 ‘구체적 사실’과 관련한 케이스를 많이 가지고 있다.
듣도 보도 못한 예를 드는 변희재의 주장을 상대방이 반박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변희재는 자신의 주장을 논리정연하게 펼치는데,
혹은 자신의 주장을 방어하는데, 많은 맹점을 노출하곤 한다.
그것은 일부분을 과잉해석하는 버릇 때문인데, 이것이 상대방을 공격할 때는 제법 먹힌다.
그래서 그의 쓰임새는 상대 진영 논객에 대한 공격에 적합하다.
지금 보수진영에서 변희재의 존재감은 작지 않다.
그러나 나는 그가 곧 ‘토사구팽’ 당하리라고 보고 있다.
미디어 악법이 통과되면,
전리품을 놓고 내부투쟁이 벌어질 것이고,
뿌리가 견고하지 않은 그가 내부 견제를 버텨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장 많은 성취를 이루고 있는 지금이 변희재의 진정한 바닥일 지도 모른다.
지금 변희재 옆에는 사람이 많다.
변희재가 먹을거리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찌질이’와 ‘듣보잡’은 바로 그들이다.
그들이 나중에 변희재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할지, 두고 볼 일이다.
주> 다음 편에서는,
‘진보의 제갈량 진중권, 조자룡 되어 헌칼을 쓰다’라는 주제로
진중권 교수에 대한 글을 풀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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