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PK(부산경남) 지역 지방선거와 관련해 한나라당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바로 친노 정치인이 후보로 나오는 것이다. 지방선거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10일 뒤에 치러지기 때문이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을 끝까지 옆에서 보좌했던 문재인 전 비서실장의 출마 여부에 관심이 모아진다. 그가 출마할 경우 정치적 구심 역할을 해서 진보·개혁 세력이 결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사IN>이 6월22일~23일 실시한 자동 전화조사 결과, 친노후보가 만만치 않은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 문재인·김두관 등 친노 후보가 현직인 허남식 부산시장(33.3% 대 39.3%)과 김태호 경남지사(26.75 대 41.5%)에게 지는 결과가 나오기는 했지만, 여러가지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이들이 동반출마할 경우 PK 민심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한나라당 후보로 권철현 주일대사나 서병수 의원이 나올 경우 이긴다는 결과가 나왔다. 문 전 비서실장이 출마 의사를 밝히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 결과가 나온 것은 이례적이다.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은 김태호 지사나 박완수 창원시장,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이 한나라당 후보로 나올 경우는 지지만 하영제 농식품부 차관, 이방호 전 의원, 황철곤 마산시장 등이 출마하면 이기는 결과가 나왔다.
주> 이 글은 <시사IN> 94호에 게재한 글입니다.
노풍에 김태호 경선지사 3선가도 흔들흔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야당이 부산·경남(PK) 지역에서 거둔 성과는 미미했다. 귀향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노간지’라 불리며 인기를 얻은 덕분에 친노 후보였던 조경태 의원이 부산 사하을에서 당선한 것과 최철국 의원이 경남 김해을에서 당선한 것이 전부였다. 가까스로 야당 ‘알박기’에는 성공했지만 안정적인 교두보를 마련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민주당 지지율은 여전히 20% 내외(부산 22.3%, 경남 18.5%)로 40% 이상인 한나라당 지지율(부산 45.3%, 경남 44.5%)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의 경쟁력은 만만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지방선거 가상 대결에서 문 전 실장은 허남식 부산시장 외에 다른 한나라당 후보와의 가상 대결 결과에서는 모두 이긴다고 나타났다. 김 전 장관은 김태호 경남지사나 박완수 창원시장에게는 지지만 이달곤 행정자치부 장관이나 하영제 농림수산식품부 차관과는 오차범위 내에서 각축하고, 황철곤 마산시장이나 이방호 전 의원과의 대결에서는 앞서는 것으로 나왔다.
이는 김태호 지사에게 가장 위협적인 결과라 할 수 있다. 문 전 실장은 아직까지 출마 의사가 없다고 말하지만 김 전 장관은 출마가 유력하기 때문이다. 박완수 시장도 출마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서 당 안팎에 유력 경쟁자를 둔 형국이다. ‘젊은 개혁 지사’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김태호 경남지사의 3선 가도에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김 지사 앞에는 빨간불이 대략 세 개 켜져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박연차 리스트’ 문제다. 태광실업 박연차 대표는 김 지사의 싱크탱크였던 뉴경남포럼의 창립회원으로 김 지사도 ‘박연차 리스트’에 연루되어 수사를 받았다. 김 지사 측은 해외 거주 참고인 진술이 남았지만 사실상 불기소 처분이 내려졌다며 명예회복이 되었다고 주장했지만 개혁 지사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다.
람사르 총회 개최와 남해안 시대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시행해 좋은 평가를 받았던 김 지사는 대권 다크호스로까지 거론되었지만 이미지 타격으로 정치적 미래가 급속히 어두워졌다. 이는 허남식 부산시장과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허 시장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부정적인 평가보다 많았지만, 김 지사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긍정적인 평가보다 많았다.
허남식 시장이 시정운영 평가와 관련해 잘하는 편(매우 잘하는 편 포함)이라는 답변이 41.4%가 나왔는데 반해, 김태호 지사의 도정에 대해서는 잘하는 편(매우 잘하는 편 포함)이라는 답변이 33.8%밖에 나오지 않았다. 잘못하는 편(매우 잘못하는 편 포함)이라는 응답은 허 시장이 33.3%였던 데에 비해 김 지사는 43.9%로 10% 포인트 이상 높았다.
두 번째 빨간불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폭풍이다. 봉하마을이 있는 김해시를 중심으로 불기 시작한 노풍이 PK 지역을 덮치고 있다. 영결식 전후로 추모 열풍이 다소 식기는 했지만 조직화된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봉하마을에서 만난 한 참여정부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부산·경남 지역 민주개혁 세력의 움직임이 활발해진 것 같다.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함께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봉하마을에서 진보개혁 세력 결집 시작
세 번째 빨간불은 한나라당 내 역학관계다. 김태호 지사가 ‘박연차 리스트’ 수사 대상에 포함되면서 주류에서 배척당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앙 정계에서는 친이 계열이 김 지사 대신 대항마를 키우고 김 지사는 이에 대비해 박근혜 전 대표 진영과 거리를 좁히고 있다고 본다. 김 지사의 입지가 좁아지면서 차기 주자 5~6명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박완수 창원시장·황철곤 마산시장·이방호 전 의원·이주영 의원·하영제 농식품부 차관·이달곤 행안부 장관이 바로 그들이다. 문제는 이들 중 한두 명은 경쟁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가장 강력한 차기 주자는 박완수 창원시장인데, 김두관 전 장관과의 가상 대결에서 김태호 지사(41.5% 대 26.7%)와 비슷한 수치(39.5% 대 28.7%)로 이기는 것으로 나왔다. 특히 박 시장은 창원·마산·진해·통영 등 도시 지역 유권자에게 선호도가 높았다.
박 시장이 중앙 정계에서 본격 주목되기 시작한 것은 ‘자전거 대축전’ 폐막식이 창원에서 열리고 이명박 대통령까지 참여하면서부터다. 이 대통령이 추진하는 ‘녹색성장’과 ‘자전거 부흥’이라는 국정 기조가 박 시장의 시정 중점 사항이었기 때문에 주목받을 수 있었다. 창원을 ‘환경수도’로 만들겠다고 공언한 박 시장은 ‘누비자’라는 공용자전거 1000대를 마련해 ‘자전거도시’ 창원의 기틀을 마련했다.
박 시장 다음으로는 최근 관권선거 개입 논란을 일으켰던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이 경쟁력이 있다고 나타났다. 김 전 장관과의 가상 대결에서 32.9% 대 31.2%로, 오차범위 이내지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장관이 지역에서 인지도가 높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 밖에 하영제 차관(30.7% 대 32.6%), 이방호 전 의원(29.4.% 대 35.6%), 황철곤 마산시장(28.6% 대 35.3%)은 김두관 전 장관에게 진다는 결과가 나왔다. 경남도민일보의 한 고참 기자는 이런 결과에 대해 “지역 정서와 대체로 일치하는 결과가 나온 것 같다. 지역에서도 박완수 시장과 이달곤 장관이 유력한 차기 주자로 꼽힌다”라고 말했다.
이런 한나라당 스타 후보 군단과 각축하게 될 야권 후보로는 대표적 친노 정치인인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과 민주노동당 문성현 전 대표가 꼽힌다. 김 전 장관의 경우 출마는 기정사실이 되었지만 민주당 후보로 나설지는 아직 결정이 되지 않았다. 그는 “경남 지역 정서는 ‘한나라당은 우리 당’이고 ‘민주당은 남의 당’이라는 것이다. 지금처럼 영남 개혁 세력이 민주당에 더부살이하는 모습으로는 출마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전에도 지역을 돌며 자치단체장과 도의원·시의원을 만나고 다니며 세력 연합을 꾀했다. 서거 이후 추모 열풍이 불면서 재기 발판을 만들 수 있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친노 정치인들에게 정치적 밑천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그런 일을 하신 것이 아니다. 폐족이었던 우리가 제대로 복권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일단은 어떻게 그분의 유지를 받들지 먼저 고민하고 있다. 정치는 그 다음 문제다”라고 말했다.
내년 지방선거 직전 추모 열풍이 관건
내년 지방선거가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년이 되는 날로부터 10일 후에 치러지기 때문에 추모 열풍이 어느 정도 선거에 영향을 끼치리라고 예상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2% 부족하다. 김 전 장관이 제대로 된 승부를 펼치기 위해서는 이것 외에도 세 가지 정도 전제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하나는 문재인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부산 출마다. 대중에게 인기가 좋고 마지막까지 노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문 전 실장이 부산에서 출마해야 ‘민심 쌍끌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문 전 실장은 불출마 의사를 밝혔고 거주지도 부산시가 아닌 양산시라 출마를 기대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른 하나는 선거연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경상남도 지역에서 당선되거나 출마할 비한나라당 후보 선거연합을 만들어서 공동전선을 구축해야 세를 형성할 수 있다. 현역 중에서는 엄용수 밀양시장·천사령 함양군수·정현태 남해군수 등이 연대 대상으로 꼽힌다. 출마 예상자 중에서는 김동진 전 통영시장을 비롯해 김해시장·양산시장 후보로 나올 사람들이 꼽힌다. 성경륭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의 경우 진주 출신이라 진주시장에 출마할 경우 연대가 예상된다.
다음 지방선거는 교육감과 교육위원 선거까지 겹치기 때문에 이들 후보와의 연대가 필요하다. 김 전 장관은 이들은 물론이고 도의원·시의원 출마자까지 만나고 다니며 연대의 틀을 만들어가고 있다. 김 전 장관은 “경남 지역은 지역운동을 하면서 정치적으로 성장한 곳이다. 출마를 하지 않더라도 백의종군한다는 생각으로 이들에 대한 지원 유세를 계획하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마지막 하나는 ‘후보 단일화’다. 민주노동당 후보로 나설 것으로 유력시되는 문성현 전 대표와 단일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만만치 않은 일이다. 경남 지역에서 민노당은 10.7%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문 전 대표의 경우 가상 대결에서 15% 내외의 지지율을 얻었다. 민노당 도의원·시의원 후보의 선거를 위해서라도 민노당이 후보 자리를 내줄 수 없는 상황이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도 김 전 장관이 후보 단일화를 요청했다가 일언지하에 거절당하기도 했다.
이를 풀 수 있는 키워드는 ‘빅딜’이다. 민주당이 민노당에게 울산광역시장 후보를 내주고 범야권 경상남도지사 후보로 김두관 전 장관을 추대하는 것이다. 대신 조승수 의원에게 국회의원 후보 자리를 내주었던 김창현 울산시당 위원장이 야권 후보 중에 당선 가능성이 가장 크므로 그를 울산광역시장 단일 후보로 추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문성현 전 대표는 창원시·마산시·진해시가 통합된 곳의 통합시장에 출마하는 방식이다.
한나라당 분열과 창원·마산·진해시 통합도 변수
이는 내년 지방선거 전에 창원시·마산시·진해시가 통합된다는 전제 아래 가능한 시나리오인데, 현재 이와 관련한 움직임이 빠르게 진행된다. 정부가 의욕을 가지고 이를 추진하고 있고, 통합되면 사실상 광역시급이 되기 때문에 시민들도 이를 원한다. 이 경우 박완수 창원시장은 통합시장 출마가 유력하므로 한나라당 후보도 교통정리가 될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차기 경남지사 후보로 거론되는 이달곤 행안부 장관이 바로 이 통합 작업의 주무부처 장관이라는 점이다. 야권뿐만 아니라 여권도 ‘PK목장의 결투’를 놓고 물밑 계산이 복잡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산시장 후보(문재인)-경남지사 후보(김두관)-울산시장 후보(김창현)-통합시장 후보(문성현)로 ‘영남 벨트’를 만들자는 것인데, 이런 시나리오는 그동안의 관행대로라면 실현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 결정적으로 이 시나리오가 만들어지려면 민주당이 입당도 안 한, 일종의 ‘친노 연대’ 후보인 문재인과 김두관을 용인해주어야 한다. 통합보다는 분열을 잘하는 진보의 생리상 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선거를 열흘 앞둔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1주년이 되는 2010년 5월23일, 그 답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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