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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언저리뉴스

'개헌론'에 대한 유력 정치인들의 정치적 계산법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9. 7. 14.



개헌 논의가 정가를 달구고 있다.
김형오 국회의장,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 등

유력 정치인을 중심으로 개헌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금 왜 갑자기 개헌론일까?
개헌론에 담긴 숨은 계산서와 정치적 함수를 살폈다. 
 
 
 




'개헌 계산기' 두들기는 정치인들, 그 셈법은? 
 
지난 6월29일 저녁, 정치부 기자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한 김형오 국회의장의 화두는 단연 ‘개헌’이었다. 김 의장은 국회의장 취임 일성이 개헌이었다며 7월17일 개헌절을 기점으로 개헌론에 대해 포문을 열겠다고 말했다. 원래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한 모임이었지만 동석한 허용범 국회 대변인은 “개헌과 관련된 발언은 모두 써도 좋다”라고 말했다. 

최근 청와대발 개헌론이 나오고 있는 것과 관련해 김 의장은 “개헌은 대통령이 반대해도 안 되는 것이지만 나서서 하려고 해도 안 되는 것이다. 지금부터 개헌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 올해 말~내년 초에는 개헌안을 만들어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개헌안의 구체적인 모형에 대해서도 밝혔다. 

현직 국회의장이 개헌 담론을 불러일으키기 일주일 전인 7월9일, 전직 국회의장들이 개헌론에 불을 붙여줄 예정이다. 국회 미래한국헌법연구회(헌법연구회)는 김수한 이만섭 박관용 김원기 임채정 등 역대 국회의장을 초청해 개헌 좌담회를 연다. 이 좌담회에서는 권력구조 개편을 중심으로 한 개헌 논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김형오 의장은 지난 6월22일 정래혁 박준규 이만섭 김수한 박관용 전 국회의장과 오찬을 갖고 개헌에 대한 조언을 듣기도 했다.

헌법연구회는 7월10일에도 개헌 토론회를 연다. 이날 토론회에는 한나라당 황우여 의원과 민주당 박상천 의원 등 여야의 중진 의원이 발제자로 나선다. 민주당 이낙연 의원, 한나라당 이주영 의원과 함께 헌법연구회 공동대표를 맡은 자유선진당 이상민 의원은 “대통령제의 존폐 여부, 대통령의 권한 및 임기 등 구체적인 권력구조 개편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헌법연구회에는 현역 의원 186명이 등록되어 있다.

전·현직 국회의장이 나선다고 해서, 여야 중진 의원들이 권력구조 개편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한다고 해서 개헌론에 불이 붙을 것이라고 예단하기는 어렵다. 비정규직법 개정 문제와 미디어법 개정 문제를 놓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치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제헌절 전후로는 미디어법 개정을 놓고 극심한 대립이 예상된다. 국회의원들이 현재의 문제를 제쳐두고 미래의 합의에 관심을 가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런데도 개헌 논의가 폭발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주요 차기 대권주자들이 개헌 관련 견해를 하나둘씩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 방문 때마다 개헌에 대해 언급하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몽골 방문 중인 7월2일 개헌과 관련해 4년 중임제 의견을 기자들에게 거듭 확인해주었다. 박 전 대표는 ‘분권형 대통령제’에 대해서는 반대 견해를 밝혔다.

역시 유력한 차기 주자로 꼽히는 정몽준 최고위원 역시 조기 개헌론자로 꼽힌다. 그러나 정 의원은 선호하는 개헌 모형에 대해서는 아직 밝히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과 영수 회동 후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도 개헌 논의에 본격 합류했다. 6월30일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이 총재는 “이 정권 임기 내에 개헌해야 한다. (개헌은) 21세기형 국가 구조의 대개조를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총재는 평소 지론인 ‘지방분권형 강소국 연방제’론을 재차 주장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개헌에 대한 청와대의 인식 변화다. 그동안 청와대는 개헌에 대한 논의가 이 대통령의 레임덕을 부추길 염려가 있다며 금기시해왔다. 그러나 6월15일 이 대통령이 미국 방문 직전 라디오 정례연설에서 ‘근원적 처방’을 언급한 후 본격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권력구조 개편을 포함한 개헌과 지방행정체제 개편과 연계된 선거구제 개편 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단, 청와대는 개헌론이 정략적으로 비칠까봐 공을 국회로 넘겼다. 개헌은 국회에서 논의할 사안이라는 것이다.

개헌 논의의 키를 잡을 안상수 원내대표는 적극적 개헌론자다. 안 대표는 6월9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지금과 같은 제왕적 대통령제는 문제가 많다. 프랑스식 분권형 대통령제가 바람직하다”라고 밝혔다. 홍준표 전 원내대표 역시 6월18일 세종로포럼에서 분권형 대통령제 도입을 주장했다. 개헌에 대해 미온적인 박희태 대표는 아직 견해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이강래 민주당 원내대표 “개헌은 꼼수다”

이런 여권의 적극적 개헌 논의를 민주당 등 야권은 의혹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 한나라당 출신인  김형오 국회의장과 한나라당 전·현직 원내대표가 잇따라 개헌론을 제기하자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는 6월19일 의원총회에서 “개헌 문제를 지금 시점에 띄우려는 속셈은 너무나 분명하다. 국정기조 전환을 요구받고 있는데 이를 모면하기 위한 꼼수와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라며 폄훼했다.

민주당은 개헌 논의의 진정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개헌을 국면 전환 카드로 쓴다고 해석할 뿐이다. ‘헌법을 수호하지 않는 이명박 대통령이 문제다’라는 ‘반MB 프레임’을 개헌 논의로 희석해 ‘헌법이 문제가 있으니 헌법을 바꿔야 한다’는 ‘개헌 프레임’으로 바꾸려는 것으로 이해한다. 

민주당은 개헌 카드가 내년 6월2일 치러지는 지방선거 판을 바꿀 수도 있다고 염려한다. 지방선거가 이명박 정부의 국정 독주에 대한 ‘심판 선거’가 되어야 하는데, 개헌에 대한 국민투표가 함께 이뤄질 경우 이런 선거의 성격이 희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미디어법 등 현안의 이슈화를 막고 장기적으로는 지방선거 성격을 바꾸는 개헌은 민주당에게 최악의 카드가 될 수 있다. 

민주노동당·창조한국당·진보신당 역시 민주당과 비슷한 입장이다. 진보 정당 중에는 개헌 문제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상황이다. 진보신당이 지난 6월25일 ‘개헌의 범위와 내용, 진보 세력의 개헌 전략’이라는 주제로 공개 토론회를 여는 등 개헌 문제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개헌 논의가 본격화하면 진보 정당도 인권 이슈 등을 제기하며 개입하리라 예상한다.

어찌되었건 야권의 일치된 인식은 ‘개헌론’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7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개헌 카드를 던졌을 때 한나라당 유력 후보들이 ‘시기상조론’으로 빠져나갔듯이 민주당 지도부도 시기 문제를 거론하며 대응을 피하고 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개헌은 필요하지만 아직 본격적으로 논의할 시점은 아니라는 견해를 밝혔다. 야권의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는 정동영 의원과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대표적인 개헌론자이지만 말을 아끼고 있다. 유 전 장관은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대통령이 되면 ‘헌법개정추진위원회’를 설치해 개헌안을 발의하겠다”라고 공약하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당 내에도 ‘개헌파’가 적지 않다. 헌법연구회 공동대표를 맡은 이낙연 의원을 비롯해 박지원 의원, 박준영 전남도지사 등 주로 구 민주당 출신이 적극 주장한다. 박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뒤 가진 불교방송 인터뷰에서 “분권형 대통령제나 내각제를 추진해야 한다는 국민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개헌 문제를 본격 논의할 시기다”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안팎의 친노 정치인 대다수도 ‘개헌파’로 분류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의 직접적 원인 중 하나가 바로 현행 대통령제의 권력 중심 문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백원우 의원은 “현행 단임제 대통령 중심제는 불행한 대통령을 만드는 구조다. 이 불행한 구조를 바꿀 수 있는 근본 고민이 필요한 때다”라고 말했다. 부산시에 지역구를 둔 조경태 의원은 “개헌 논의 때 지역감정을 극복할 수 있는 중대선거구제 문제도 논의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친노 정치인들이 개헌 이슈를 전면에 내세울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비록 청와대가 용인하고 국회의장이 키를 잡고 한나라당 지도부가 장단을 맞추고, 자유선진당과 민주당 일부까지 동조하고 있지만 ‘개헌론’이 단시일 내에 탄력을 받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민주당 등 야권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시기상조론’을 펴며 논의를 회피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표 진영이 나서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박 전 대표 진영에서는 박 전 대표와 관련한 총리 기용설이나 당 대표 추대설 등에 대해서는 일절 반응하지 않는다. 그러나 개헌 문제에 대해서는 다르다. ‘4년 중임제는 찬성하지만 이원집정부제 등 분권형 대통령제는 안 된다’는 견해를 명확히 하고, 더 나아가 선제적 담론을 던질 가능성도 내비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 태도가 개헌론 좌우할 듯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개헌에 관해서라면 박근혜 전 대표는 가장 진지한 고민을 하는 정치인 중 한 명으로 ‘원조 개헌론자’라 할 수 있다. 10여 년 전부터 개헌 문제를 연구해왔다. 개헌에 대해서 입장을 밝히는 정도가 아니라 바람직한 개헌안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부총재 시절 박 전 대표는 ‘중임제 개헌은 정치의 구조조정’이라는 주장을 해왔다. 정치개혁이라는 면에서 개헌론을 적극적으로 받을 수도 있다고 예상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딜레마가 있다. 박 전 대표가 반대하는 ‘이원집정부제’ 부분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공감대를 넓히고 있는 것은 바로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키는 문제다. 이를 위해 ‘분권형 대통령제’ 혹은 ‘이원집정부제’가 논의되고 있고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 등 많은 정치인이 이에 동조한다. 개헌론의 각론으로 들어갔을 때 외톨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차기 집권을 염두에 두고 권력욕을 부린다는 비판을 들을 수 있어 조심스럽다.

정치권에서는 제헌절을 전후로 개헌 논의가 펼쳐지더라도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본다. 개헌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보다 유력 정치인들이 ‘나는 우리 정치 현실과 헌법의 문제에 대해 이렇게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정치 개혁을 위해서 개헌을 찬성한다’는 견해를 밝히는 수준의 ‘개헌 알리바이’ 만들기에 그치리라는 것이다. 다른 국회의원들이 비정규직법 개정과 미디어법 개정 문제를 놓고 멱살잡이를 하는 동안 개헌에 대한 고담준론을 나누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자신에게 나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 허깨비 놀음은 청와대도 바라는 바일 수 있다. 개헌이 구체적으로 진행되어 이 대통령의 레임덕을 앞당기는 부작용 없이 개헌에 대한 담론이 회자되는 것으로 ‘반MB 프레임’을 약화시키는 효과만 볼 수 있다면 가장 좋은 경우의 수이기 때문이다. 유력 정치인들이 대부분 참전하는 개헌 판짜기는 미디어법 개정 문제와 함께 올여름 국회를 들여다보는 최대 관전 포인트가 되리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