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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파업기자가 본 YTN 투쟁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8. 7. 20.







지난 7월14일과 7월17일, YTN의 운명을 갈랐던 그 날, 현장에 함께 있었다. 이 날은 낙하산 사장 선임을 위한 주주총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7월14일은 노조가 주주총회를 막아냈지만, 7월17일은 막아내지 못했다. 날치기 주총에서 대통령 방송특보 출신이 사장으로 선임됨으로써 YTN은 ‘24시간 편파방송’이 될 수 있는 초석을 놓았다.


현장에서 YTN 투쟁을 ‘시사저널 파업’과 비교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노조 집행부는 이야기를 할 때 “우리가 시사저널 파업 때처럼 할 수는 없겠지만...”이라는 전제를 달곤 했고, 집회를 지원하러 온 언론단체 분들도 “YTN 노조도 시사저널 파업 때처럼 잘해야 할텐데...”라고 얘기하곤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추억이란 참 아름다운 것이구나.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만을 기억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삼성기사 삭제 사건’ 이후 벌어진 항의 집회와 파업, 그리고 결별선언과 창간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우리가 얼마나 갈팡질팡 했는지, 그 ‘개와 늑대의 시간’ 동안 얼마나 포기하고 싶어했는지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시사IN 창간을 이뤄낸 ‘신화’가 되어 있었다.


그런 이야기에는 늘 싱거운 대답을 해주었다. “우리는 결국 졌잖아요. 우리처럼 지면 안 되죠. YTN이 우리처럼 방송사를 새로 차릴 수도 없는 것이고. 그리고 우리처럼 길어져서도 안 되죠”라고. 국민 여론에 힘입어 구본홍 사장 선임을 막고 빨리 정상화되기를 바랬다. 그래서 블로그를 통해 꾸준히 YTN 낙하산 사장 선임 문제를 제기했다.


YTN 투쟁이 ‘시사저널 파업’처럼 길어지면 안 된다. 6개월의 반대 집회와 6개월의 파업 2개월의 창간 준비와 창간 후 10개월에 이른 지금까지, 하루도 쉬운 날이 없었다. 우리를 지지해주던 동아투위 선배들은 술자리에서 “어떤 수모와 치욕을 안고서라도 꼭 돌아가라”라고 충고했는데, 나중에야 그 의미를 헤아릴 수 있었다.


신화가 되어버린 ‘시사저널 파업’을 완주하고 시사IN 창간의 주역으로서, 감히 YTN 투쟁을 평가한다면 나는 100점을 주고 싶다. 내부의 총화를 이끌어낸 집행부에는 200점을 주고 싶고, 앞장서서 몸을 던진 현덕수 박경석 노종면 임장혁 등에게는 300점을 주고 싶다. 그들이 있는 한 구본홍은 결코 YTN 사장실에 ‘착지’하지 못할 것이다(구본홍 체제에서 이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는지, 국민이 눈 부릎뜨고 감시해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시사저널 사태’와 YTN의 낙하산 사장 저지 투쟁이 닮음꼴이라는 점이다. ‘삼성기사 삭제 사건’은 금창태 당시 시사저널 사장이 고려대 후배인 이학수 전 삼성 전략기획실장에게 불리한 기사를 편집국 몰래 인쇄소에서 빼서 발생했다. YTN 사태는 구본홍 내정자(그를 사장으로 선임한 주주총회가 정식 의결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YTN 노조의 주장을 받아들여 나는 그를 YTN 사장으로 표기하지 않겠다)가 고려대 선배인 이명박 대통령의 방송특보 출신이라는 점과 편집국 기자들(간부진 제외)과 노조의 반대를 무시하고 불법적인 날치기 주총으로 임명하면서 발생했다.


문제의 본질은 아니지만, 구본홍 내정자와 금창태 전 사장이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는 점과, 이명박 대통령과 이학수 전 삼성 전략기획실장이 고려대학교 상대를 졸업했다는 것도 닮아있다. ‘시사저널 사태’ 당시 금 전 사장에게 줄을 선 고려대학교 출신 간부와 기자들이 있었는데, YTN에도 비슷한 상황인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펜은 돈보다 강하다’는 구호를 외쳤던 우리는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문제가 우리시대 언론의 최대 현안이라고 주장했다. 그때 우리는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문제는 이미 확립된 문제라고 보았다. 그래서 ‘청와대는 기사를 뺄 수 없어도 삼성은 뺄 수 있다’며 우리 사회를 옥죄고 있는 ‘삼성권력’의 병폐를 고발했다.


그런데 불과 6개월 남짓 지났을 뿐인데, 그저 대통령 하나 바뀐 것 뿐인데, 청와대가 기사를 뺄 수 있는 시대로 퇴보했다.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니라 다시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 상황으로 후퇴했다. 이명박 정부 수뇌부가 KBS를 정권 홍보기관으로 치부하는 말을 하는 것을 들어보면, 도대체 어디까지 언론자유가 후퇴한 것인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1년여에 걸친 투쟁 기간 동안 나는 금창태 전 사장에게 말 그대로 질려버렸다. 그 몰염치와 후안무치함에 두손 두발 다 들었다(법원이 그가 한 행위에 대해 ‘몰상식의 극치’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판결했을 정도다). 살아가면서 금창태 같은 사람을 다시는 만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는 “편집권은 편집인의 것으로 편집인이 기사를 뺀 것은 정당한 편집권 행사다”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모자라 노조의 파업에 대해 “편집권은 편집인의 것으로 경영권의 일환이다. 그러므로 ‘편집권 독립’을 주장하는 파업은 경영권 간섭이므로 불법 파업이다(법적으로 파업은 임금과 근로조건에 대한 것만 할 수 있다)”라는 박정희 시대나 통할 주장을 했다.


그런데 구본홍은 금창태보다 더 강적이다. 비유하자면 금창태 전 사장의 행위가 ‘생계형 범죄’라면 구본홍 내정자의 행위는 ‘권력형 범죄’다. “언론사가 마지막에 의지할 곳은 삼성밖에 없다. 이학수 실장에게 부탁을 하면 안 들어주는 것이 없었다”라고 말하던 금 전 사장은 삼성과의 관계 중요성을 역설했다. 세 자녀가 삼성관계 회사(정확히는 중앙일보 자회사), 삼성관계 대학, 삼성관계 비영리 재단에서 일을 했었던 금 전 사장은 삼성 비판 보도에 지극히 취약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구본홍 내정자는 뻔뻔한 것으로 금창태 전 사장보다 한 수 위다. 그는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 언론의 생명인 ‘공정성’과 ‘객관성’을 침해했다. 그가 언론사 사장으로 나서는 일은 축구 경기에서 전반전에 선수로 뛰었던 사람이 후반전에 심판으로 나서는 것이나 똑같은 일이다. 오바머나 매케인이 대통령이 되고 난 뒤 그의 참모를 CNN 사장으로 앉힌다면, 그것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일이겠는가?


‘시사저널 파업’이 끝나고 많은 기자들이 PTSD(정신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시사저널 파업’과 관련된 마지막 소송에서 ‘선고유예’ 판결이 나와 자유로워진 것이 불과 한 달 전의 일이다. 6번의 징계위원회 끝에 내린 ‘무기정직’의 징계, 그리고 회사가 고소 고발한 각종 소송으로 인해 가족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시사IN>이 정상화되기까지 과정도 쉽지 않았다. ‘한국기자협회’에서는 시사저널을 회원사에서 제명하며 시사저널의 정통성이 시사IN에 계승되었음을 인정해 주었지만, 시장은 냉혹했다. 창간 1년이 다 되어가고 있지만 아직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다음이나 네이버와 같은 포털사이트에서 시사저널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시사IN과 재계약을 해준 덕에 힘이 좀 붙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주주총회 전 YTN 노조 집행부를 만났을 때 ‘완장’을 조심하라는 충고를 해준 적이 있다. ‘시사저널 파업’ 때도 금창태 편에 선 완장들 때문에 힘들었다. 그들의 방해 공작에 힘들었고, 그들의 배신에 역겨웠고, 바닥까지 추락하는 인간의 추한 모습을 보는 것이 괴로웠다. 금 전 사장의 고려대 후배인 김재태는 ‘시사저널 사태’ 당시 기자들을 등지고 금 전 사장을 도운 공으로 3계급을 특진하며 영전했다. 


YTN에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진상욱 경영기획실장과 채문석 경영기획팀장은 날치기 주총을 주도했다. 홍상표 보도국장은 보도국 간부들을 이끌고 주주총회 장에 가서 낙하산 사장 임명을 도우려 했다. YTN 노조는 진 실장과 홍 국장에 대한 사퇴를 공식 요구했다(좀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들의 줄타기 성공을 축하해 주어도 좋을 것 같다).


YTN 노조에게 깊은 지지를 보낸다. 부디 그들의 투쟁이 길어지지 않길 바란다. 노조는 사장실에 ‘구본홍 출입금지’라는 푯말을 붙이고 X자 모양의 나무로 대못질을 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구 내정자를 막지는 못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관심과 지지다. 언론독립의 최전선인 YTN 낙하산 저지 투쟁이 승리할 수 있도록 국민이 다시 촛불을 들어주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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