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농사를 짓는 사람도 농가부채에 허덕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귀농한 초보 농사꾼들이 수익을 낼 수 있을까?
제대로 농사를 짓지도 못하는데, 흑자를 낼 수 있을까?
그 답을 찾고 있는 귀농인들을 만나보았다.
답은 농촌이 아니라 도시에 있었다.
도시에서 사람들을 끌어오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었다.
농촌에 농사 잘 짓는 사람은 충분히 있다.
농사 말고 다른 것을 잘하는 사람이 절실하다.
그런 사람이 농촌에 들어갔을 때의 효과를 알아보았다.
엉터리농사꾼에서 대박농사꾼으로 거듭난 박춘성씨.
엉터리 농사꾼, 대박 농사꾼으로 거듭나다
도시인들이 가진 ‘귀농 로망’은 간단하다. ‘적당한 시기에 귀농(혹은 귀촌·귀향)하고 싶다. 그러나 농사는 못 짓겠다(짓더라도 돈벌이가 아닌 자급자족을 위한 농사만 짓고 싶다). 하지만 벌어놓은 돈이 충분하지 않아 적당한 돈벌이를 갖고 싶다’라는 것이다. 이런 ‘달콤한 귀농’은 불가능한 것일까.
귀농 관련 전문가들은 흔히 ‘귀농이 이민보다 힘들다’라고 말한다. 실제 귀농 정착률은 10~20% 수준으로 역귀농하는 비율이 80% 이상이다. 이 수치는 역이민 수치보다 훨씬 높다. 민승규 농림수산식품부 1차관은 “농민 관련 교육 프로그램 중에 귀농 프로그램이 가장 길다. 그만큼 사전준비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귀농 수요는 꾸준히 는다. 은퇴를 앞둔 45~55세 직장인에게는 여전히 ‘귀농 로망’이 있다. 어설프게 자영업을 시도했다가 다 날리느니 귀농을 하면 최소한 살 집과 땅은 마련하고 농산물이 안 팔리면 직접 먹으면 된다는 단순한 셈법이 계속 귀농 계산기를 두드리게 만든다. 과연 귀농이 답이 될까. 충남 서천군과 충북 충주시 일대 귀농인을 만나보고 답을 구해보았다.
농사짓는 것에 자신이 없는 귀농 희망자에게 본보기가 될 만한 사례는 바로 충북 충주시 ‘사과꽃마을’ 농장의 박춘성씨 경우다. 처음 귀농했을 때 박씨는 경치 좋은 계곡 깊숙한 곳에 음식점을 차렸다. 사람들이 많이 찾을 줄 알았다. 아니었다. 아무도 음식점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식당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집중호우 때 기르던 오리를 전부 잃어버리고 나서 박씨는 깨끗이 손을 털었다.
이듬해 박씨는 사과 과수원을 구매했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가을이 되자 사과가 열렸다. 그러나 사과는 사과로되 사과가 아니었다. 일명 ‘뺀질이 사과’라 불리는 불량 사과였다. 껍질은 두꺼웠고 속은 퍼석했고 당도는 형편없었다. 주변 친지에게 공짜로 돌렸지만 왜 맛없는 사과를 주느냐는 핀잔만 돌아왔다.
귀농 수업료를 두 번이나 내고 자포자기할 무렵 농장에 유치원 아이들이 방문했다. 박씨는 아이들에게 상품 가치 없는 사과를 마음껏 따게 해주었다. 아이들이 너무나 좋아했다. 그 모습을 보고 박씨는 머리를 쳤다. ‘그래, 체험농장을 만들자.’ 그 이듬해 박씨는 전국의 유치원에 초대장을 보내고 인터넷 홍보에 전력했다.
한여름부터 늦가을까지 사과 수확을 체험할 수 있도록 청사과에서 부사까지 사과를 고루 심었다. IT 기업에서 대규모 교육을 담당했던 그는 최고의 체험교육 선생이 되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사과 한 개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이파리 서른여덟 개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사과를 통해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주니 좋아했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딴 저농약 사과를 5kg짜리 1상자에 3만원씩을 주고 사갔다. 결코 싼 가격이 아니었지만 흔쾌히 산다. 자신이 직접 선택한 사과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주변 사과농장이 냉해를 입을 때에도 그의 농장은 무사했다. 이미 사람들이 사과를 다 따갔기 때문이다. 전체 수확량의 80% 이상을 소비자가 직접 따간다. 입소문이 나면서 농장도 세 곳으로 늘렸다.
박씨는 체험을 다채롭게 구성하기 위해 주변 농민과 함께 충주농촌체험연구회(이하 연구회)를 조직했다. 연구회에는 귀농인뿐만 아니라 지역 농민들도 함께하는데 서로 협조해서 체험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꾸린다. 도자기 체험이 가능한 곳에서는 도자기를 만들어보게 하고, 목장에서는 동물들과 어울리게 하고, 민박이 가능한 곳에서는 사람들을 재워준다. 농촌체험을 온 아이들에게 도자기만들기 체험을 선사하는 이재윤씨.
도자기를 전공한 아내와 함께 25년 동안 도자기를 만들어온 이재윤씨는 연구회에서 도자기 체험을 맡고 있다. 도자기체험학교를 운영하면서 이씨가 힘을 쓰는 분야는 전통주 복원이다. 전통주 숙성에 적합한 항아리를 복원하기 위해 일본 오키나와를 직접 답사하기도 했다. 전통주 ‘삼해주’를 전승한 그는 최근 인근 종가에서 술을 배워 ‘만석지기술’이라 이름 붙였다.
이씨가 술을 개발하는 동안 음식 솜씨가 좋은 아내는 전통음식을 익혔다. 그렇게 정성스럽게 만든 술과 음식을 그들이 직접 만든 술병과 그릇에 담아내면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주막 체험’을 기획 중이라는 이씨는 “지친 도시인을 위한 주막을 만들고 싶다. 편안하게 먹고 즐기고 갈 수 있도록 현대인을 위한 주막을 구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분업이 잘되어 있는 연구회의 완결판은 김종애씨의 술문화박물관이다. 체험 프로그램의 마지막 코스는 늘 술문화박물관이다. 방문객이 직접 수확한 과일을 가지고 이곳에서 자신만의 술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과일을 그냥 소주에 담그는 침출주 방식이 아니라 강판에 갈아서 즙을 내어 만드는 발효주 방식을 사용한다. 그렇게 발효시켰다가 3개월 뒤에 찾아가는데 직접 라벨을 붙여서 자신만의 와인을 만들 수 있다.
김씨의 남편은 우리나라에서 최고 술 고수로 꼽히는 이종기 영남대 식품가공학과 교수다. 양조학 박사인 이 교수는 오비씨그램 연구소에서 25년 동안 근무한 우리나라 술 역사의 대변인이다. 와인·위스키·코냑·맥주·전통주 따위 세계 모든 술에 두루 통달한 그는 태백시 등 지자체들과 함께 전통 명주를 개발한다.
연구회 회원들처럼 도시인이 농촌에 들어가서 잘할 수 있는 일이 바로 농가공품을 개발하거나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다. 도시에서 오래 살아서 도시 소비자들의 기호를 잘 알기 때문이다. 은행에 다니던 남편과 함께 귀농해 ‘희리산다원’을 운영하는 충남 서천군의 박영예씨도 그런 경우다.
남편과 박씨가 주안점을 둔 분야는 농사보다 마을의 농산물을 이용한 농가공품 개발이다. 음식솜씨가 좋은 박씨는 마을에서 기른 약초와 콩을 이용해 각종 건강차와 장류를 제품으로 개발했다. 그리고 소비자가 직접 와서 하룻밤 묵으며 체험하게 해서 단골을 만들었다. 9월12일 천안시에서 열린 ‘귀농한마당’ 행사에 참여했던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도 행사가 끝나고 박씨의 다원에서 숙박했다.
지역 농산물로 다양한 차와 장류를 개발하고 있는 박영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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