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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살벌한 독설

'한국비하' 보도가 진짜 '한국비하' 부른다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9. 12. 31.




다시 ‘한국 비하’ 논쟁으로 인터넷이 시끄럽다. 산케이신문 구로다 기자가 MBC <무한도전> 팀이 뉴욕타임스에 비빔밥 광고를 낸 것을 보고 최근 기명 칼럼을 통해 “비빔밥은 볼 때는 좋지만 먹으면 놀란다. 광고 사진을 보고 비빔밥을 먹으러 나갔던 미국인이 '양두구육'에 놀라지 않겠느냐는 걱정이 든다”라고 말하며 비꼰 것 때문이다.


짧은 칼럼이지만 구로다 기자는 비빔밥을 비하한 것 외에도 두 개의 칼을 더 숨겨 놓았다. 하나는 무조건 비벼먹으려 드는 한국의 음식문화를 통해 식민과 전쟁을 겪으며 척박해졌던 한국의 식문화를 환기시키고 ‘양의 머리를 내밀고 개고기를 판다’는 의미의 ‘양두구육’을 써서 개고기 식문화를 슬쩍 드러낸다.


괘씸한 일이다. 하지만 구로다 기자가 일본인 전체를 대표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에 살고 있는 일본인의 의견을 대표하지도 않는다. 그는 그저 산케이 신문을 보는, 한국을 ‘이류 일본’으로 보고 싶어하는 일본 독자들의 취향에 충실한 기자일 뿐이다. 교묘하게 비틀어서 ‘한식 세계화’에 견제구를 날리고 있는데 이는 오히려 우리에게 ‘희망의 증거’로도 읽힐 수 있는 부분이다. ‘한식 세계화’에 대한 일본인들의 위기의식이 담긴 글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비하’는 우리 언론이 애용하는 기사 ‘앵글’이다. 누구도 이 ‘앵글’에 들어오면 살아나가지 못한다. 그룹 2PM 멤버 박재범도 ‘마이스페이스’라는 자신의 단문블로그에 “korea is gay. I hate koreans”라고 올린 글 때문에 팀에서 퇴출되고 추방당하듯 미국으로 돌아갔다. 누구든 한국을 비하했다는 얘기만 들리면 마녀사냥을 서슴지 않는 한국의 ‘비하 콤플렉스’는 전성기의 ‘레드 콤플렉스’를 연상시킨다.


<미녀들의 수다> 출연자였던 독일 여성 베라 호흘라이터가 고국에 돌아가 쓴 책,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도 꼬투리를 잡았다. “한국의 젊은 여성들은 유행을 광적으로 쫓기 때문에 꼭 미니스커트를 입는데 지하철 계단 올라갈 때 그렇게 난리치고 가리면서까지 왜 입는지 모르겠다”라는 부분이었다.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에는 일본 여성에 대한 더 한 말도 등장했지만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았던 우리 국민들이 우리 자신에 대한 표현은 참아내지 못했다.


‘한국비하’로 검색해보면 인터넷에서는 한국을 비하한 외국 유명인 계보까지 나온다. 한국의 개고기 습식 문화를 비판했던 브리짓도 바르도를 비롯해 자신이 출연했던 한국 광고 제품에 대해서 말도 안 되는 이름이었다고 말한 맥 라이언, 그리고 안톤 오노와 판정시비가 일어났을 때 “김동성이 화가 나 집에 돌아간 뒤 개를 걷어차고 잡아먹었을 지도 모른다”라고 말한 제이 레노까지 계보가 풍성하다.


일본 가수 초난강이 ‘자신과 이미지가 비슷한 한석규가 한국에서 인기가 있는 것을 보고 자신도 한국에서 인기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해 한국 활동을 결심했다’는 얘기도 삐딱하게 해석하고 한국계 모델 지나가 타이라 뱅크스가 진행하는 리얼리트쇼에서 한국 남자는 자신보다 키가 작아서 싫다고 말한 것까지 잡아낸다. 이 정도면 ‘네티즌수사대’라 불릴 만하다.


누리꾼들의 이 사소한 분노를 보면서 문득 김수영 시인의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가 떠올랐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 옹졸하게 욕을 하고...”

 

언론은 ‘한국 비하’에 대한 보도로 누리꾼들의 애국심을 낚는다. 애국심이라기보다는 집단적인 자기 보호의식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확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우리 언론의 비정상적인 반응에는 진정제가 필요하다. 어찌 보면 그런 한국 비하가 있었다는 것보다 그런 비하에 대해서 언론이 그런 보도를 하고, 그런 보도를 보고 누리꾼들이 그런 반응을 하는 것이 더 수치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그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는 외국인이라면 한국인들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조소를 느꼈을 것이다.


이렇게 ‘한국 비하’는 참아내지 못하면서 외국 권위지에 한국 비판이 실리면 무슨 계시라도 받아낸 양 섣부르게 ‘자성론’을 외치는 행태 또한 우리 언론의 병폐다. 외국언론 칭찬에 널뛰기 하는 꼴도 우습다. 우리 스스로 우리의 모습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데 누가 우리를 제대로 평가해주겠는가. '한국비하'에 대한 우리의 원초적 분노, 너무 옹졸하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