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나 소셜 미디어를 통한 사용자 평가 형태의 상품 홍보 사례가 늘고 있다.
기업의 마케팅 차원에서 수행되는 제품 평가는 명백한 광고이며,
그런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려야 한다.
이와 관련해 시사IN <메스 미디어> 필진인 허광준님의 글을 게재한다.
블로거와 광고주 관계 명시하게 한 미국을 본받자
허광준 (위스콘신대학 신문방송학 박사과정)
미국에서 라디오를 듣다보면 재미있는 장면을 만나게 된다. 라디오 광고 중에, 상품 홍보가 끝날 즈음 사람이 입으로 하는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광고문을 읽어나가는 경우가 있다. 누구도 알아듣기 어려운 이 광고문은, 청취자에게 상품을 홍보하고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광고 본연의 목적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는 듯하다.
미국 잡지의 의약품 광고는 대개 앞뒤 두 쪽에 걸쳐 게재된다. 앞쪽은 흔히 보는 일반적 광고다. 페이지를 넘기면 뒤쪽에는 읽기도 힘든 깨알 같은 글씨가 빼곡히 차 있다. 광고를 내기 위해 값비싼 잡지 지면을 산 것치고는 너무 무성의하거나 무책임하게 보인다.
이런 광고를 하고 싶어서 하는 광고주는 드물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광고의 내용에 따라 소비자에게 반드시 알려야 하도록 규정된 사항이 있다. 예컨대 광고에서 상품의 우수성을 주장하려면 합리적인 근거를 함께 제시해야 한다. 의약품이라면 과학적 증거까지 제시해야 한다. 이런 규정을 최대한 ‘경제적으로’ 지키려다 보니, 짧은 시간에 정신없이 읽거나 좁은 지면에 깨알 같은 글씨를 채워 넣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모두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강제된 조처이다.
정보 흐름에 컴퓨터와 인터넷이 합류하면서, 광고 시장도 달라졌다. 최근 인터넷을 통한 광고의 주요 방식으로 등장하는 것은, 블로그나 소셜 미디어를 통한 사용자 평가 형태의 홍보다. 일반 소비자가 제품을 직접 써보고 쓴 평가가 다른 사람의 구매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많은 연구를 통해 입증된 사실이다. 기업 쪽에서 보면, 일반 이용자의 평가를 빌린 홍보는 제품에 대해 입소문을 내고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훌륭한 방법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전통적인 방식의 광고에는 엄격한 규정이 달려 있는 데 비해, 이 같은 신종 홍보는 명백한 광고인데도 무법지대나 다름없다. 예컨대 제약회사의 위임을 받아 진통제를 써본 유명 블로거가 “제가 써본 결과, 기존 진통제보다 훨씬 잘 듣고 부작용도 전혀 없었습니다”라고 평가를 올리면 강한 광고 효과가 발생하지만, 법으로 규제할 방법이 없다.
문제의 핵심은, 기업 의뢰로 수행된 제품 평가가 일반 사용자의 자발적인 사용 후기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비자들은 블로거의 사용 후기를 읽으면서, 정직하게 제품의 장단점을 지적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기업으로부터 평가료나 제품 따위 대가를 받고 작성된 글에서 객관적인 평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기업들은 ‘제품 이름 5회 노출’ 등 구체적인 지침까지 딸려 보내는 실정이다. 이렇게 쓰인 사용 후기를 일반 사용자의 평가로 둔갑시키거나 혼동하도록 하는 것은 비윤리적이고 불공정한 일이다.
지난해 10월 미국의 광고 규정을 총괄하는 연방거래위원회(FTC)는 블로거의 상품 리뷰나 추천 때 광고주와의 관계를 명시하도록 한 새로운 규정을 만들었다. 범람하는 사용자 평가형 광고를 규제의 틀 안으로 끌고 오기 위한 정책이다. 한국의 경우, 적절한 규정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홍보 전략과 기업 윤리, 블로거 윤리, 이윤, 수익성 따위가 뒤엉켜 복마전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결과 사용자 리뷰와 관련한 잡음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문제의 해결은 의외로 간단하다. 기업의 의뢰를 받아 사용 후기를 작성하는 경우, 의뢰 사실을 명백히 밝히도록 하면 된다. 신문·잡지가 본문 기사와 광고를 구분해 편집하듯, 블로그나 소셜 미디어에서도 어떤 형태로든 기업 후원을 받는 글에는 그런 사실을 분명히 밝히도록 규제하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한 마케팅이 점점 중요해지는 세상이다. 관련 규정의 정비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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