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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투항'한 MBC 노조의 변명과 이에 대한 언론계 비판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0. 3. 7.


낙하산 사장 퇴진운동을 벌이던 MBC 노조의 백기투항에 대해 의견이 분분합니다. 
이에 대해 이근행 노조위원장의 해명글과 
이를 비판하는 '미디어행동'의 성명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조만간 제 생각도 정리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후배들에게 MBC를 지켜달라며 화이팅을 외치며 떠난 엄기영 사장.




1> 이근행 위원장 해명



어제의 일에 대하여 

- 김재철 사장과의 협상에 대한 평가와 책임의 문제 - 


 갑작스런 상황에 대해 충분히 설명드리지 못했던 점에 대해 조합원 동지 여러분에게 사죄하고, 또 양해를 구합니다. 그러나 상황의 진행이 급박했다는 이유로 저와 집행부의 판단에 대한 동지들의 평가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도 안 되고요. 


  MBC 사수라는 저희들의 추상적인 목표에는, ‘황-윤 두 이사 퇴진’, ‘김재철 낙하산 퇴진’, ‘김우룡 퇴진 및 방문진 개혁’, ‘정권에 대한 심판’이 구체적 목표로 존재합니다. 


 황희만 윤혁 출근저지 25일째, 그리고 김재철 사장 출근 저지 6일째였습니다. 휴일을 포함해서요. 어제 제가 김재철 사장과의 회동을 통해 ‘대화를 위한 최소한의 전제조건’으로써 두 이사 교체에 합의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고 보면 저는 가장 낮은 수준의 목표를 얻고서 ‘낙하산 김재철 사장을 인정’한 셈입니다.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실체를 인정했으니까요. 말도 붙이지 말아야 사람과 협상을 했으니까요. 

 그에 대한 냉혹한 평가는 조합원 동지들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전해지는 조합원 동지들의 평가를 조합간부들을 통해 듣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피할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과오라면 바로 잡아야 하고,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다면 마땅히 져야 하는 것이지요. 


 제 생각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게는 두 개의 길이 놓여 있었습니다. 집행부에게도 같은 길이지요. 물리적 충돌에서 총파업 투쟁에 이르는 분명하고도 장렬한 길. 다른 길은 끈질기고도 오랜, 그러나 앞날이 어찌될지 잘 모르는 길. 그러고 보니 ‘이길지도 모르는 길’은 언뜻,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장렬한 최후만이 그래서, ‘자랑스런 역사’이고 ‘승리’로 기록되는 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두 개의 길 중에 어느 것을 선호하거나 꺼리지 않았습니다. 두려워 피할 것도, 어려워서 포기할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집행부도 같은 생각일 것입니다. 


 저는 후자를 택했습니다. 두 이사를 교체하는 것도 성과이고, 우리가 한 발 나아가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정당성이 작은 성과를 얻은 것이고, 대화를 하는 것도 투쟁의 한 측면이라 생각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가야할 길이 멀다는 것을, 산화(散華)로써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고통스럽게 생각합니다. 


 삶이 그렇듯, 투쟁도 다 과정이고, 그래서 모든 것은 오래 지속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고 이기는 것에 대한 평가를 매 시간 매 국면에서 더욱 엄격하게 해야 하는 것인데, 제가 너무 순진한 것인가요. 


 평가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리고 주어진 책임을 할 수 있는 날까지 다하겠습니다. 어제의 일은 어제의 일이고, 또 하루가 시작 되었습니다. 우리 앞의 현실도 분주한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치욕도, 영예도, 영원한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집행부와 함께 최선을 다해 닥쳐 올 날들을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년 3월 5일   이근행 올림 



2> 미디어행동 성명



[논평]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김재철 관제사장의 폭거


이근행 MBC 노조위원장이 김재철 관제사장을 조건부로 받아들임으로써 이명박 정권의 방송장악에 또 한 획이 그어졌다. 이명박 정권의 지령을 받은 방문진은 엄기영 사장을 몰아낸 자리에 김재철 관제사장을 내려앉혔고, 김재철 관제사장은 여세를 몰아 인사권 행사에 돌입할 태세다. 절체절명의 시기, 김재철 사장의 폭거가 속도를 내기 전에 시민사회가 마지막 배수진을 친다는 각오로 응대해야 한다.

이명박 정권의 MBC 장악 시나리오는 방문진 이사회 장악 -> MBC 경영진 교체 -> 편성.제작 환경 장악 -> 노조 무력화 -> 사유화로 마무리 된다. 바야흐로 방문진과 김재철 관제사장은 경영진 교체와 편성.제작 환경 장악의 능선에 올랐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 경영으로부터 편성의 독립성을 유지해온 공영방송 MBC의 존립이 근원적으로 위협받고 있다. 김재철 관제사장이 인사권 행사에 돌입하는 순간 MBC 노조의 무력화와 사유화는 가속도를 낼 것이다.

김재철 관제사장은 방문진이 임명한 황희만 보도본부장과 윤혁 제작본부장을 정리함으로써 방문진의 인사권 행사를 원점으로 돌리고, MBC노조로부터는 사장 자격을 얻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누리게 됐다. 그러나 김재철 관제사장은 명백히 이명박 대통령의 피가 흐르는 사람이며, 공영방송 장악을 마무리하기 위해 파견된 이명박 정권의 점령군이다. 이병순 불법사장과 김인규 사장이 그러했듯이 김재철 관제사장은 권력과 자본을 감시.비판하는 공영방송의 저널리즘 기능을 봉쇄하는 임무로 프로그램된 로봇일 뿐이다.

MBC 노조위원장은 낮은 수준의 목표인 보도.제작 본부장의 교체를 얻고 사장의 실체는 인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합의는 낮은 수준의 목표조차 온전히 획득하지 못한 데다, 무엇보다 MBC 구성원과 시민사회가 충분히 교감하며 대응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뼈저린 반성이 불가피하다.

그런데 MBC 노조위원장이 실체를 인정한다고 하여 김재철 관제사장이 공영방송 MBC의 사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명박의 사람, 정권의 방송 점령 로봇인 김재철 관제사장은 MBC의 편성.제작의 어떤 부분에도 손 댈 권리가 없다. 공영방송 MBC의 사장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정권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되어 편성.제작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사람 뿐이다. 이제 김재철 관제사장을 임명함으로써 사실상 용도가 폐기된 방문진, 그들의 폭거는 시민사회와 역사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며, 차제에 정권의 꼭두각시에 의해 방문진 이사회 장악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는 낡은 질서도 혁파될 것이다. 

시민사회와 MBC 구성원들은 일시적인 실망과 낙담을 뿌리치고 지금보다 더 연대하고 더 힘을 모아야 한다. 김재철 관제사장의 전횡을 봉쇄하는 지략을 짜서 편성.제작 자율성의 꽃이라 할 ‘PD수첩’을 기어이 지켜내고 공영방송 독립성 보장의 요체라 할 단협을 지켜내기 위해 더 힘껏 어깨를 걸어야 한다. 치밀하고 집요한 정권의 방송 장악에 맞서 벌이는 지난한 투쟁에 행여 오판과 실수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방송의 독립성을 지키는 싸움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시민사회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거듭 자신해야 한다.


2010년 3월 6일
언론사유화 저지 및 미디어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 (미디어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