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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봉춘 지키미 게시판

이근행 MBC 노조위원장에게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0. 3. 10.


김재철 사장의 출근을 막으며 설전을 벌이고 있는 이근행 위원장




안다. 다 안다. 왜 모르겠는가? MBC노조 이근행 위원장이 그동안 얼마나 고군분투 해왔는지를, MBC노조 집행부가 언론노조 본진 역할을 하면서 세 차례나 파업의 선봉에 섰던 것을, MBC노조원들이 그 파업에 얼마나 헌신적으로 참여해 왔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 결론을 내린 이유를 잘 안다.


이해한다. 다 이해한다. 겪어보았기 때문에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한다. ‘시사저널 파업’이 그랬듯 MBC의 방송독립을 지키는 것도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더라도 싸워야 하는 싸움이기 때문에 이때껏 싸우고 있다는 것을 잘 이해한다. 그래서 그렇게나마 답을 얻어냈다는 것을 이해한다.


왜 그랬는지 알고, 이해할 수도 있지만 받아들이지는 못하겠다. 그럼 ‘낙하산 사장 반대’를 외치다 해직된 YTN 기자들에게 뭐라고 말할 것인가? 오늘(3월9일)로 600일째 버티고 있는 그들은 무엇이 되는가? 역시 ‘MB 특보는 사장이 될 수 없다’며 새노조를 만들어 맞서고 있는 KBS 새노조는 어떻게 되는가?


MBC 노조가 황희만 윤혁 본부장의 용퇴를 내걸고 김재철 ‘관제사장’을 받아들인 것은 ‘어설픈 출구전략’이었다(그나마 윤혁 본부장 용퇴는 방문진이 받아들이지 않아 공전하고 있다). 싸움엔 잔머리를 써야할 때가 있고 굵은머리를 써야 할 때가 있다. MBC는 지금 굵은머리를 써야 할 시점이다. 왜? 이길 수 없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이길 수 있다면 잔머리를 써도 되지만 장렬히 전사해야 할 때 잔머리를 쓰면 그르친다.


결국 이번에 드러난 것은 MBC 노조라는 두꺼운 외피에 싸여있던 속살이 얼마나 무른가 하는 것이었다. 결전의 순간 정작 안에서는 성문을 열 핑계만 찾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어쩌면 그것은 각 부문에서 징발되어온 노조 집행부가 할 수 있는 최대치였을 지도 모르겠다. 회사 노무팀에서나 구상해 봄직한 꼼수가 노조에서 나왔다는 데에 솔직히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표를 내고 후배들에게 MBC를 지켜달라며 화이팅을 외치고 있는 엄기영 사장




그동안 MBC 노조는 사내정치를 동력으로 삼아 위태로운 줄타기를 해왔다. 엄기영 사장과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의 갈등을 축으로 한 본부장 인사 힘겨루기에 걸쳐서 영향력을 행사하다 엄 사장이 사퇴하자 이번에는 ‘김재철 인선안’에 개입해 회군의 명분을 확보했다. 하마평에 오르거나 임명되었던 간부들이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지만 그것은 MBC 독립과 직접 관련된 것이 아니었다.   


모양만 이상해졌다. 사장을 사장으로 인정하지 않는 투쟁을 하던 노조가 그 사장과 협상을 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MBC 노조는 김재철 사장을 통해서 김우룡 이사장을 견제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로망’이거나 ‘미망’이다(김 사장과 김 이사장이 갈등하는 ‘척’하는 모습은 이번 기만극의 백미다). 김 사장을 이용하는 것은 ‘되’로 이용하고 ‘말’로 이용당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MB뿐이다.


물론 이근행 위원장의 고뇌도 이해한다. 파업 찬반 투표에서 찬성 응답률이 그리 높지 않았다. 파업 의지는 있지만 성공을 확신하지 못하는 노조원들을 보면서 그가 낼 수 있는 수는 분명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시민들의 관심도 예전만 못했고 … 아마 ‘남한산성’에 고립된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 절망의 사지에서 그는 기꺼이 최명길이 되어 삼전도의 굴욕을 감당했다.


두 본부장의 용퇴를 조건으로 관제사장을 받아들인 MBC 노조의 결정에는 진정성이 없었다. 이기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지는 것은 용인할 수 있는 것이지만 지기 위해서 살짝 이기는 것은 그저 '기만'일 뿐이다. MBC노조는 이기기 위해서 져야 했다. 지기 위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때론 이기기보다 지는 것이 더 어려울 때가 있다. 그때 진정성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길 수 없을 때는 잠깐 져주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나 지는 것에도 최선을 다해서 져야 한다. 그러나 MBC 노조는 지는 것이면서 이기는 것 같은 모양을 연출하려 했고, 그리고 그 악역을 노조위원장에 맡기는 우를 범했다. 그의 어깨 위에 놓인 짐이 너무 무거웠던 것 같다. 그 짐을 덜어주지 못한 것을 뒤늦게 후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