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사람 중에 제일 안 유명한 사람은 불행하다. 알려진 정치인 중에 가장 알려지지 않은 정치인이, 인기 있는 연예인 중에 가장 알려지지 않은 연예인이 그렇다. 그것은 다분히 구차스럽다. 그럼 그 반대는 어떨까? 안 유명한 사람 중에 제일 유명한 사람, 골목스타는? 행복하다. 의무와 구속은 없고 인기만 누릴 뿐이다. 말과 행동을 책임질 공인도 아니고 인기에 연연할 필요도 없고 표 관리를 할 이유도 없으니 그저 즐거울 뿐이다.
트위터 안에서 ‘독설(@dogsul)’이라 불린 나는 제법 '유명한 안유명인'이었다. 내 이야기를 듣겠다며 내 트위터를 구독(following)한 사람만 4만5천명이었다. 내가 올린 글은 전달(RT-retweet)되고 전달되어 100만명의 트위터 이용자들에게 금세 퍼져나갔다. 트위터 안에서 나는 ‘빅 마우스’였다. 그리고 풍부한 RT(전달)와 다양한 REPLY(답변)으로 되돌아왔다. 미디어 종사자에게 이런 강한 리액션은 매력적인 것이다.
트위터에서 나에 대해 올린 정보는 몇 년 전 찍은 프로필 사진과 ‘라 만차의 돈키호테’를 연상시키는 다음의 바이오그라피뿐이었다. ‘묻지 말아야 할 것을 묻고 / 알리지 말아야 할 것을 알리며 /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고 /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며 / 쓸모 없는 것들의 쓸모와 / 힘 없는 자의 힘을 모아 / 정의를 살린다는, / 이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위해 /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고 / 참을 수 없는 것을 참는다’
알듯 모를 듯, 애매모호한 자기소개를 올려놓고 하루에 100꼭지 안팎의 글을 올렸는데(30%는 직접 올린 글이었고 70%는 남이 올린 글에 적당히 추임새를 넣어 전달한 글이었다) 사람들은 ‘폭풍 트윗’이라고 투덜거리면서도 받아 읽었다. 단순히 산술적으로 환산하면 4만5천 명에게 100회 전달된 것이고, 기하학적으로 환산하면 전달 과정을 거쳐 환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에게 전달되었다고 할 수 있다(때로 내 글이 영역되거나 일역되어 전달된다).
정보를 전달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보를 집적하는 데에도 트위터는 탁월하다. 트위터는 나의 입을 확장시켜줄 뿐만 아니라 눈과 귀도 확장시켜주고 손과 발도 대신해 준다. 이런 식이다. ‘시사IN 지면 디자인을 위해 전 세계 박재범 팬들의 사진을 모으고 싶다’라고만 올려도 팬들이 이 글을 각 국의 언어로 번역해서 전파해준다. 내가 할 일은 이메일에 들어온 사진을 확인하는 일 뿐이다.
마치 요술램프같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 때부터 트위터를 시작한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도 이와 유사한 경험을 했다. 보름 남짓 사용한 후 그는 트위터에 "트위터는 우리의 좌뇌와 우뇌 외에, 우리 밖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외뇌'다"라고 올렸다. 이 글을 받아 “네트워크로 연결된 집단지성의 속성으로 보았을 때 '외뇌' 보다는 '합뇌'가 적확한 표현이 아니겠는가”라고 멘션(mention)을 보냈는데, 그가 인정한다는 답변(reply)을 올렸다(이 사건으로 나는 IT 종사자들로부터 부러움을 받았다. 신과 접선한 것이라며).
나의 아이디어가 한나절 만에 실현되고 일주일 만에 기사화 되었던 적도 있다. ‘세종대왕이나 이순신장군 같은 역사인물 계정이 있었으면 좋겠다. 세종실록이나 난중일기를 그날 그날 올린다면 E H CARR가 말한 역사가 과거의 현재의 대화라는 명제를 실현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제안했더니 몇몇 역사 연구가들이 관련 계정을 만들었고, 순식간에 수천 명이 이들을 팔로워했고 결국 기사화 되었다.
간단하게 천재적인 저작물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다음은 트위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내가 재구성한 정치인 패러디물이다. 위에서 아래로 읽을 때와 아래에서 위로 읽을 때 전혀 상반된 의미를 갖게 되는데, 원래 아르헨티나 정치광고에 등장한 아이디어를 한 트위터 이용자가 부부관계(결혼 전후 차이)로 응용했고 내가 다시 정치인 선거 전후 차이로 응용했다.
- 정치인 선거 전 -
정치인 : 저는 여러분들이 어떤 생각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반드시 그렇게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유권자 : 좋습니다. 찍어주죠. 그런데 당신을 지지한 것을 후회하는 일은 생기지 않겠죠?
정치인 :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유권자 : 우리를 존경합니까?
정치인 : 당연하죠. 마음 깊숙이 그런 생각을 품고 있습니다.
유권자 : 우리를 배신할건가요?
정치인 : 뭐라구요? 도대체 왜 그런 걸 묻는 겁니까?
유권자 : 우리 목소리에 귀 기울여 줄건가요?
정치인 : 당연하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유권자 : 우리에게 거짓말을 할건가요?
정치인 : 미쳤습니까? 사람 보는 눈이 그렇게 없으세요.
유권자 : 당신을 믿어도 되나요?
정치인 : 네
유권자 : 감사합니다 의원님!
- 정치인 선거 후 - (거꾸로 읽어보세요)
이런 트위터를, 굳이 트위터가 아니더라도 소셜네트워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관련 강의를 가면 나는 10여년 전 인기를 끌던 코믹 조폭영화 사례를 든다. 이메일 주소를 달라는 말에 실제 주소를 알려주는 것은 조폭영화의 단골 소재였다. 지금 자신의 SNS 계정이 없다는 것은 10년 전 이 조폭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경고한다. 교통 통신이 두절된 곳이 오지인데 인터넷을 하면서도 이런 네트워크에서 단절되어 있다는 것은 ‘사이버 오지’에 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트위터란 어떤 곳일까? 7만명 넘는 구독자(follower)를 보유한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는 ‘사이버 광장’이라고 했다. 트위터를 한다는 것은 광장에 반바지 입고 가서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어슬렁거리는 짓이라는 것이다. 이 얘기도 들어보고 저 얘기도 들어보고 때론 맞장구도 치고 끼어들기도 하면서 어울리는 것이 바로 트위터라는 것이다. 반바지를 입고 간다는 것은 스스로 격을 낮추고 가야 잘 어우러질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랬다. 트위터는 광장이었다. 그런데 그 광장은 시시때때로 모습을 달리했다.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도 사람들이 풍선을 들고 올 때면 공원이 되고, 무대가 펼쳐지면 행사 장소가 되고, 매대가 들어서면 장터가 되고, 촛불을 들고 가면 집회장이 되는 것처럼 트위터도 시시때때로 모습을 달리했다.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어우러져서 변화무쌍한 모습을 연출해냈다.
사람들은 왜 트위터를 할까? 외롭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소외가 SNS 대박을 낳은 결정적인 이유다. 외로우니까 접속한다. 가정에서도 소외되어 있고 회사에서도 소외되어 있는 불쌍한 샐러리맨들의 배설구가 바로 트위터다. 세상에 나처럼 외로운 사람이 또 있을까, 하고 기웃거려보면 거대한 외로움의 바다를 만나게 된다. ‘지금 내가 만나야 했어야 할 사람’을 만나는데 트위터가 딱이다.
그런데 때로 실망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트위터를 잠깐 해보고서, 말하자면 간만 보고서 ‘트위터란 이런 곳이다’라며 쉽게 단정짓곤 한다. 누구도 레스토랑에 가서 샐러드만 먹어보고 그 레스토랑을 평가하지 않는다. 트위터를 잠깐 해보고 규정하는 것은 샐러드만 먹어보고 음식점을 평하는 일이다. 제대로 음미해보지 않고서 음식이 썩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발효되어 익어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등산이라고 생각해보자. 산은 산 입구에서, 산기슭에서, 계곡에서, 능선에서, 정상에서 보이는 풍경이 다르다. 그런데 트위터 잠깐 해보고 규정하는 것은 매표소 주변면 알짱거리고나서 그 산을 규정하는 것과 같다. 마치 산을 오를 때 계곡과 능선과 정상에서 보이는 것과 느껴지는 것이 달라지듯, 트위터도 팔로워가 10명일 때 100명일 때 1000명일 때 10000명일 때, 소통의 폭과 달라진다(이것은 단순히 숫자의 문제는 아니다. 질적인 깊이도 달라진다).
트위터는 관계의 거울이다. 트위터가 재미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재미없는 사람을 팔로잉하고 있기 때문이고 트위터가 편향되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편향된 사람을 팔로잉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트위터가 너무 정치적이다, 상업적이다, 저속하다, 라고 말하는 것도 그런 사람을 팔로잉하고 있기 때문일 뿐이다. 눈과 귀를 한 쪽에만 열어둔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트위터는 ‘소셜 부비부비 서비스’다. 그래서 쉽게 영향을 주고 쉽게 영향을 받는다. 똑똑한 사람과 부비면 같이 똑똑해지고, 위트 있는 사람과 부비면 나도 재밌는 사람이 되고, 매력적인 사람과 부비면 나도 매력적이 된다. 트위터를 통한 ‘제2의 사회화’가 인간관계의 폭과 깊이를 더해준다. 비용도 적게 들고 시간도 품도 적게 든다. 밥값과 술값도 안 나가고 오고 가는 시간도 안 걸리고 문장 몇 개로 해결된다.
중요한 것은 ‘갑과 을의 공식’에서 자유롭다는 것이다. ‘트위터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컨센서스가 있기 때문에 관계맺기의 문턱이 낮다. 중고등학생들에게 트위터로 유명인을 인터뷰 해보라는 실험을 해본 적이 있는데 한 여고생이 하루 만에 10여명이 넘는 유명인을 인터뷰해냈다. 국회의원 보좌관을, 연예인 매니저를, 대기업 회장의 비서를 거치지 않고도 유명인과 접촉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흔쾌히 이 여고생의 숙제를 도와주었다. 이런 일은 오프라인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어떻게 이런 기적 같은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 지극히 기능이 단순한 트위터에서 말이다. 그것은 바둑과 장기의 특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바둑은 장기에 비해 두는 방법이 단순하다. 그러나 훨씬 수가 많다. 단순하기 때문에 오히려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트위터도 마찬가지다. 기능은 단순하지만 사람들이 창의적으로 써서 복잡한 여러 현상이 나타난다.
한국 인터넷 시장에는 ‘토종불패’ 신화가 있었다. 검색 서비스든 이메일 서비스든 메신저 서비스든 해외 서비스는 번번이 실패하고 이와 유사한 국내 서비스가 시장을 장악했다. 해외 서비스업체에 규모가 작은 한국시장은 계륵이어서 현지화를 안 해준 반면 토종 서비스들은 한국인의 성향에 맞게 고쳐서 시장을 장악했다. 그런데 이 공식이 깨지기 시작했다. TGIF(트위터 구글 아이폰 페이스북)를 필두로 해외 서비스가 우리 생활에 안착하고 있다.
TGIF ‘4대천왕’ 중 구글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한국사무소도 없다. 한국 시장에 맞게 현지화 시켜주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왜 이 서비스는 외면당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한국 유저들의 인터넷 서비스 이용 실력이 진화했기 때문이다. 한국시장에 맞게 현지화 시켜주지 않더라도 적절히 효과적으로 쓸 줄 아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의 다양한 인터넷 서비스 이용 경험이 이를 가능하게 해줬다.
트위터에서도 이런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이용자들은 해외 이용자들보다 훨씬 더 다양한 용도로 트위터를 쓴다. 블로그에서 폭발한 '표현욕구', 아고라 게시판에서 폭발한 '논쟁욕구', 메신저에서 폭발한 '친교욕구',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폭발한 '전달욕구' 등 다양한 욕구를 트위터를 통해서 푼다. 물론 블로그의 저장성, 아고라의 집중력, 메신저의 사생활보장성, 커뮤니티의 안정감이 결여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듯 트위터를 활용해 충족하고 있다.
이 트위터가 140자의 기적을 만들고 있다. 트위터가 세상을 바꾸는 것인지,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트위터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거대한 에너지원이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힘은 이슈의 패자부활전을 가능하게 해주고 전국민 비상연락망이 되어 위급한 사람을 돕는다. 그래서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과 ‘행동하는 양심’이 발현되게 해준다. 이제 10년 전 오마이뉴스가 말한 ‘모든 시민은 기자다’의 명제를 넘어 ‘모든 시민은 미디어다’라고 선언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트위터를 어떻게 해야 잘할까? 직접 해봐야 한다. 자전거 타는 법을 책으로만 배울 수 없듯이 트위터도 부대끼며 배워야 한다. 트위터엔 왕도가 없다. ‘사란유법불가 무법역불가(난을 칠 때 일정한 법도가 있어서는 안 되지만, 일정한 법도가 없어서도 안 된다)‘라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말처럼 해보면서 자신만의 원칙과 비원칙을 정립해야 한다. 가장 좋은 선생은 길에서 만나게 된다.
이 글을 읽고 당신이 해야 할 딱 한 가지 일이 있다면 트위터 계정을 만드는 일이다. 주저할 이유가 없다. 트위터는 디지털 생필품이다. 또 하나의 명함이다. 없으면 조폭이 되어 코미디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얼른 만들고 소통의 바다에 뛰어들어라. 아니면 영원히 침묵하든가.
주> 우리은행 사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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