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트위터에 관한 제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현대건설 사외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 트위터에 대한 진실 혹은 거짓
‘트위터가 세상을 바꾼다고? 웃기는 소리 말아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트위터 만능론’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트위터 회의론’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단풍 절정인 설악산에 올라서 운무까지 보고 내려오는데 매표소 주변에서만 알짱거렸던 사람이 “설악산 별거 없네”라고 말하는 것을 보는 기분이 든다.
산은 산 입구에서, 산기슭에서, 계곡에서, 능선에서, 정상에서 보이는 풍경이 다르다. 트위터 팔로워 숫자도 비슷한 점이 있다. 10명일 때 100명일 때 1000명일 때 10000명일 때, 관계의 아우라가 달라진다. 비단 숫자뿐만이 아니라 팔로워들과의 관계가 깊어지는 질적 성장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 차이가 생긴다.
누구도 레스토랑에 가서 샐러드만 먹어보고 그 음식점을 평하지는 않는다. 블로그와 트위터를 잠깐 해보고 규정하는 것은 샐러드만 먹어보고 음식점을 평하는 일이다. 제대로 음미해보지 않고서 음식이 썩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발효되어 익어가고 있는 것인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트위터에 대해서 저평가 하는 사람이나 트위터의 위험성을 과장(오보의 빠른 확산, 사고의 편향성, 사생활 노출)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이처럼 트위터를 띄엄띄엄 겪어보고 함부로 단정한다는 것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것처럼. 누구든 자신이 경험한 것에 대해 인상비평적인 평가를 할 수 있겠으나, 이를 학문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
블로고스피어와 마찬가지로 트위터스피어도 쉽게 규정할 수 없는 것은 ‘생태계’이기 때문이다. 그 생태계는 누가 설계하는 대로 짜여지는 곳이 아니다. 블로고스피어의 경우 몇몇 메타블로그를 숙주로 해서 형성되긴 하지만 트위터는 다르다. 방향도 깊이도 알 수 없이 무한 확장된다.
블로고스피어와 마찬가지로 트위터스피어를 살필 때에는 숲도 봐야 하고 나무도 봐야 한다. 이 숲이 어떤 모양으로 어떻게 펼쳐져 있는지도 봐야하고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의 특징도 살펴야 한다. 그런데 장님 코끼리 더듬듯이 슬쩍 더듬어보고 규정해버리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특히 활동반경이 지극히 좁은 블로거/트위터러의 입장에서 규정하는 것은 더욱 그렇다.
@ ‘이해와 설득’에서 ‘공감과 교감’으로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핵심은 공감과 교감의 확장이다. 메스미디어가 구원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소외다. 보고 듣는 것은 충분하다. 아니 넘친다. 필요한 것은 말하기다.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할 곳이 없다. 들어줄 사람이 없다. SNS의 핵심은 말 하고 싶은 사람과 말 들어줄 사람을 연결해 주는 것이다.
트위터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현대인의 소외’다. 가정에서 가족으로부터 소외되고, 직장에서 동료로부터 소외된, 그런 소외감을 극복할 수 있는 감성 치료제다. 누군가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해해주고 심지어 위로까지 해준다는 사실은 현대인에게 충분히 매력적이다.
물론 이런 일이 트위터 아니어도 가능한 일이라고 할지 모른다. 맞는 얘기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인터넷 이용자의 이용 패턴이 트위터 등 SNS로 통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핸드폰이 전화 기능 말고도 카메라 기능 MP3 기능 녹음기 기능 다이어리 기능 등 다양한 기능을 통합하듯 SNS가(그중 트위터가) ‘모바일 인터넷 라이프’를 통합하고 있다.
라이프 스타일을 통합했던 IT 기기가 핸드폰이었다면 서비스는 포털사이트였다. 다양한 인터넷 서비스(메일 커뮤니티 뉴스 블로그 등)를 즐겼던 유저들은 점차 포털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식으로 패턴이 바뀌었다. 포털 아이디에 한번 로그인해서 원샷으로 이용하는 패턴이 나타났는데 이런 양상이 트위터 등 SNS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 ‘토종불패’ 신화 깬 ‘TGIF(트위터 구글 아이폰 페이스북)
요즘 화두가 된 TGIF(트위터 구글 아이폰 페이스북)의 공통점은 해외 서비스라는 점이다. 한국은 그동안 해외 인터넷서비스의 불모지였다. 라이코스 알타비스타 핫메일 msn메신저 등 기라성 같은 서비스들이 한국에서는 힘을 못 썼다. 이유는 한국 시장이 투자할 만큼의 시장이 못되는, 말하자면 계륵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해외서비스를 카피한 국내 서비스가 시장을 장악했다.
그런데 왜 유독 TGIF는 각광받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인터넷 이용자들의 경험이 충분해서 이 서비스가 한국 시장에 맞게 커스터마이징 해주지 않더라도 효과적으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아고라와 같은 토론사이트, 다음과 네이버 카페 등 커뮤니티, 네이트온 등 메신저, 싸이월드와 같은 SNS, 티스토리 등 블로그, 포털사이트의 검색과 뉴스 등을 충분히 활용해 보았기 때문에 한국 인터넷 이용자들은 TGIF를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트위터도 그렇다. 한국 지사도 없고 한국 직원도 없다. 그런데 100만명이 넘는 한국인들이 트위터를 큰 문제 없이 사용하고 있다. 그러면서 트위터를 싸이월드와 같은 블로그처럼, 혹은 ‘소셜 검색’ 도구로, 혹은 메신저처럼 수다방으로, 혹은 아고라처럼 토론방으로, 혹은 특별한 뉴스를 얻는 곳으로 활용한다. 트위터는 간단하지만 트위터를 활용하는 방식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이는 바둑과 장기로 비유할 수 있다. 바둑은 두는 방법이 간단하다. 반면 장기는 복잡하다. 그런데 바둑이 훨씬 수가 많다. 단순하기 때문에 다양하게 응용될 수 있는 것이다. 트위터도 그렇다. 트위터의 기본 기능은 아주 간단하다. 팔로잉 언팔로잉 디엠 블록 RT 등 기본 개념만 익히면 누구든 쉽게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활용 방식은 무궁무진하다.
@ 트위터, 하는 만큼 보인다
이렇게 트위터가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트위터가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웃기는 소리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하나는 세상을 바꾸는 것을 보지 못할만큼 SNS의 변방에 있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을 바꾼다는 것을 너무 크게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동막골에 살아서 전쟁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전쟁이 나지 않은 것이 아니며, 핵전쟁만 전쟁이 아니다.
트위터에 이런 말이 있다. ‘트위터가 재미없다고? 그건 당신이 재미없는 사람만 팔로잉하기 때문이다. 트위터가 너무 정치적이라고? 그건 당신이 정치적인 사람만 팔로잉하기 때문이다’ 교통 통신이 연결되지 않는 곳을 오지라고 한다. 자신을 오지로 만들어 놓고 ‘왜 이렇게 심심하고 불편해’라고 말하면 뭐라 말해야 할까?
나는 보았으므로 말할 수 있다. 트위터는 세상을 바꾸었다. 전 세계 2억명이 구독하는 강력한 미디어다. 5억명이 이용하는 페이스북은 이미 구글의 페이지뷰를 능가했다. 이란 여대생이 촉발한 반정부 시위와 오바마 당선처럼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다. 트위터는 우리 사회를 바꾸고 있다.
진보언론마저 외면한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이 10만권이나 팔릴 수 있던 과정에서, 타블로가 아이튠스 차트의 전세계 힙합순위 1위를 했던 과정에서, 귀양간 박재범을 팬들이 금의환향 할 수 있게 만들어준 과정에서, 6월2일 지방선거에서 20~30대 막판 투표율을 높이는 과정에서 트위터가 어떤 힘을 발휘했는지 보았으므로 감히 세상을 바꾸었다고 말할 수 있다.
@ 트위터, 일상의 혁명을 일구다
다음으로 생각해 볼 것은 세상을 바꾼다는 것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할 때의 문제다. 세상의 변화보다 일상의 변화가 더 의미 있을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세상의 변화 보다 일상의 변화가 미치는 영향이 더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트위터는 다양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트위터는 ‘이슈의 패자부활전’을 통해 세상을 변하게 하는 것과 동시에 ‘전국민 비상연락망’을 가동해 일상의 기적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이슈의 패자부활전’과 ‘전국민 비상연락망’은 1년 남짓한 트위터 경험을 통해 얻은 두 가지 키워드다. 이것이 얼마나 의미가 큰 지는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긴급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다.
어느 일요일 일본에서 유학 중인 한 트위터 이용자가 급히 디엠(트위터 쪽지)을 보냈다. 어머니가 오늘이 생일인데 3년 째 생일을 못챙겨드렸다는 것이었다. 지금 교보문고 잠실점에 있는데 누군가 내 대신 축하해 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이 내용을 트위터에 올리고 도움을 요청했다. 무려 다섯 명이 축하를 해주었고 잠실점에서는 특별 선물까지 주었다.
지인이 택시에서 노트북 가방을 놓고 내렸을 때도 마찬가지다. 트위터에 올렸더니 집단지성을 발휘해 주었다. 택시 분실물을 찾는 방법이 그렇게 많은 지 처음 알았다. 차 번호만 알려주면 경찰서 지구대에서 차적조회를 해준다는 사실, 차번호를 모르면 교통방송에 연락해 방송으로 수배할 수도 있다는 사실 등을 새삼 알게 되었다.
억울한 사람이 진짜 억울할 때는 아무도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몰라줄 때다. 그러나 이제 ‘억울해 죽겠다’고 올려놓으면 최소한 억울해서 죽지는 않게 알아주고 위무해주는 세상이 되었다. 이제 관건은 두 가지다. 전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얼마나 절실한 뉴스인가 하는 것과 이를 전하려는 소통의 의지가 얼마나 진정성이 있나 하는 것이다. 그 억울한 목소리를 발견해낼 눈과 귀가 열렸고 전달해줄 손과 발은 풀렸다.
@ 트위터 모르면 조폭? 안하면 원시인?
인터넷은 미지의 공간이다. 미지의 세계는 때로 두려움의 대상이다. 이를테면 누구나 ‘개똥녀’가 될 수 있다는 공포다. 단순히 개를 데리고 지하철을 탔다가 개똥을 치우지 않았을 뿐인데, 매도당하며 모든 신상정보가 털리는 여대생의 모습을 보면서 인터넷은 ‘한 방에 훅 가는 곳’으로 각인 되었다. 그러나 그 ‘개똥녀’가 트위터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어떨까?
트위터가 어렵다고 꽁무니를 빼는 사람들이 많다. 단지 영문사이트일 뿐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질 뿐이다. 그런 분들에게 10여년 전 유행했던 ‘조폭영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그때 단골로 나오는 장면 중 하나는 조폭 보스에게 이메일 주소를 물으면 집주소를 대는 장면이었다. 지금 트위터 아이디가 없으면 10년 전 조폭과 다를 것이 없다.
트위터도 유행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분들에게 되묻고 싶다. 이메일도 유행인가? 그래서 유행일 때만 쓰고 지금은 안 쓰는가? 트위터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그 수단을 갖고 있지 않을 때 불편한 사람은 바로 나다. 그 수단이 없으면 정보를 줘도 받아 먹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은 트위터를 보름 정도 해보고는 이런 이야기를 올렸다. "트위터는 우리의 좌뇌와 우뇌 외에, 우리 밖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외뇌'다" 모두가 <아바타>의 신령스런 나무처럼 씨줄과 날줄로 얽혀 ‘집단지성’을 발현하고 있는데, 굳이 자신을 왕따시킬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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