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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 글라디에이터

누리꾼수사대가 문제라고? 문제는 언론이야, 멍청아!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0. 9. 16.




며칠 전 <백지연의 끝장토론>에서 누리꾼수사대(NCSI)에 대한 토론을 하고 왔다. 황우석 줄기세포 파문을 비롯해 각종 의혹 사건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려서 누리꾼수사대로까지 불렸던 누리꾼들이 타블로 괴롭히기나 루저녀 폐륜녀 명품녀 등 일반인 '신상털기'를 즐기는 등 악플러로 퇴화하고 있다며 짚어보자는 토론이었다.  


토론에서 ‘선의의 의병’을 ‘악의의 역적’으로 몰아갈 수도 있으므로 두 가지를 구분하자고 했다. 일단 ‘수사대’라고 명예로운 이름을 붙인 것은 이들이 범죄에 대해서 조사를 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렇지 않고 단순히 호기심 충족이나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개인정보를 취득했다면 ‘누리꾼흥신소’라 불렸을 것이다. 그러니 사회적 범죄나 공인의 비리 등에 대해서 조사했던 사례에 국한해서 이야기를 하자고 햇다. 


그런데 토론자들은 누리꾼수사대와 악플러를 구분하지 않았다. 특히 ‘누리꾼행동대’가 되어 공갈 협박을 일삼는 이들과의 구분도 하지 않았다. 수사와 처벌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수사관이 처벌까지 하는 것은 일종의 직권남용이다. 게다가 대상도 범죄가 아니라 비도덕적 행위다. 개인의 도덕적 일탈에 대한 문제 때문에 개인 정보를 털고 이들을 엄벌하자며 행동하는 ‘마녀사냥’과 사회적 의혹 사건에 대해 사설 탐정이 되어 조사를 벌이는 ‘집단지성’이 혼용되어 있었다.  


누리꾼수사대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는 먼저 누리꾼수사대의 출발 동기를 살필 필요가 있다. 일반인들이 ‘사이버수사’에 나선 것은 언론과 수사기관이 역할을 방기했기 때문이다. MB정부 들어서 언론이 할 말을 못한다, 수사기관은 정권의 의혹을 제대로 수사 못한다, 하는 불신이 컸기 때문에 스스로 나선 것이다. 누리꾼들 스스로 진실을 찾아 나서게 만든 것은 바로 사정기관의 임무 소홀, 그리고 언론의 친정부적 보도 행태와 그렇게 보도하도록 언론을 길들인 MB정부다. 


조선시대 영남에서 만 명의 선비가 연서한 ‘만인소’가 만들어졌던 때도 노론 독재가 심화되어 삼사의 언관들이 간언을 제대로 못했을 때였다. 누리꾼들을 수사대로 내몬 곳은 사회였다. 낙하산 사장 퇴진운동을 벌인 YTN 기자들은 해직되고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을 비판한 <PD수첩> PD들은 연행되고, 정권 홍보방송이 되어 가는 것에 반대하는 KBS 기자와 PD들을 지방에 귀향보내는 모습을 보며 시민들이 직접 나선 것이다.  


그런데 이제 언론이 누리꾼수사대를 나무란다. 루저녀 폐륜녀 명품녀... 누리꾼수사대가 마녀사냥을 하면서 신상정보를 털고 있다며 비난한다. 그런데 언론이 이들을 나무랄 자격이 있을까? 이들이 비도덕의 아이콘이 된 것은 언론이 검증절차 없이 이들에 관한 내용을 인용보도했기 때문이다. 매스미디어를 통해 전파되면서 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낙인이 찍혔다. 


화장실에 낙서하는 사람도 나쁘다. 하지만 그 낙서를 확인도 하지 않고 그대로 보도하는 것은 더 나쁘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화장실 낙서 탓만 한다. 학생이 표절해서 레포트를 냈다고 해보자. 그 레포트를 베껴서 교수가 논문을 썼다면 누가 더 나쁜가? 교수에게 더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인터넷 게시판을 표절한 언론이 고상하게 누리꾼을 꾸짖고 있다. 


사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사이버 테러는 10년 전에도 있었다. 처음에 정의감을 가지고 시작한 집단행동이 단순한 재미가 되면서 여러 문제가 발생했었다. 이름이 ‘미녀’인데 얼굴이 예쁘지 않다면서 그 학교 게시판에 악플을 남기는 경우가 있었다. 똑같은 일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데 훨씬 크게 반향이 나타나고 있다. 10년 전과 지금의 차이가 있다면 이런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는 점이다. 포털사이트를 활용한 속보 싸움을 하느라 언론은 이런 의혹을 확인도 안하고 곧바로 보도하고 있다. 


박재범이 ‘Korea is gay'라고 말한 것을 확대 해석해 마녀사냥을 부추겼다. 루저녀나 명품녀가 방송을 위한 ‘설정녀’였음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내용을 파악하기도 전데 누리꾼들의 반감에 편승하는 기사를 주로 작성했다. 언론이 공론장을 열어주지 않고 누리꾼들의 ‘복수심리’만 부추겼다. 이런 파도가 지나간 뒤에 거룩한 분노로 거병한 누리꾼수사대는 ‘의병’서 생사람 잡는 ‘역적’으로 몰리게 되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부작용도 나타낙 되었다. 


그래서 누리꾼수사대도 변질되었다. 장관 국회의원 등 진짜 공인은 놓아두고 명예 공인인 연예인과 일반인을 겨냥해서 레이더를 돌리고 더 높은 수준의 도덕성 요구되는 공인(이재오 특임장관)의 문제는 간과하고 유명인인 연예인(타블로)만 물고 늘어지는 것은 기형적인 일이다. 병역기피한 MC몽과 꾀병을 부린 신정환도 잘못이지만 MC몽과 비슷한 잘못을 한 안상수 의원은 한나라당 대표가 되었고 게이트에 휘말리면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는 재벌총수나 정치인들은 신정환처럼 진료기록이 털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렇게 변질된 것 역시 누리꾼들만의 책임은 아니다. 누리꾼들이 진짜 풀어야 할 사회적 난제를 팽개치고 이렇게 신상털기에만 집중하는 이유 중 하나는 미네르바 구속이나 촛불누리꾼 벌금형 등 정권의 탄압이다. 탄압의 트라우마가 누리꾼들을 변질시켰다. 그동안 언론은 무엇을 했는가? 역할도 제대로 못하고 섣부르게 활용만 하고 이제 와서 의병을 역적으로 몰고 있다. 참으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이다. 
 

주> PD저널에 기고한 칼럼을 조금 수정 보완해서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