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어른의 여행, 트래블러스랩
  • 어른의 여행 큐레이션, 월간고재열
  • 어른의 허비학교, 재미로재미연구소
달콤 살벌한 독설/독설닷컴 칼럼

서울, 기억의 시효를 묻다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3. 5. 30.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인기를 끌면서 강남을 찾는 외국인이 늘었다는 보도를 보았다. 기자는 신사동 가로수길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을 인터뷰하면서 <강남스타일>의 인기가 강남의 관광산업을 견인하고 있다는 것처럼 보도했다. <강남스타일>에 가로수길이 나왔냐는 것은 논외로 하고 이 보도를 보면서 문득 ‘서울은 기억의 시효가 얼마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 보도를 보고 떠올린 곳은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였던 계동 중앙고등학교 앞 거리였다. 빛바랜 배용준 사진들이 문방구에 걸린 그 거리는 이미 쇠락해 있었다. 간간이 일본 관광객이 찾기도 했지만 옛 영화는 잊은 지 오래였다. ‘이렇게 <겨울연가>가, 배용준이 저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강남스타일’의 QR코드를 설치하는 그 곳도 그렇게 곧 저물 것이다. 


안타깝게도 댄스가요는 발라드보다 시효가 짧다. 불꽃처럼 타오르지만 연기처럼 잊혀진다. 드라마도 영화보다 시효가 짧다. 마치 장강의 앞물결이 뒷물결에 밀리듯, 새로운 드라마에 의해 잊혀진다. 어느덧 서울은 대중문화의 상징화에 의존하는 도시가 되었다. 그런데 그 상징화가 영원무궁한 것이 아니라 패스트패션처럼 일시적인 것이라는 것이 문제다. 


물론 계속되는 잔치는 없다. 잔치가 끝나도 새로운 잔치가 벌어진다. 기억은 지속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새롭게 갱신되는 것이기도 하다. 새로운 유행가와 새로운 드라마로 서울은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강남스타일>의 화끈한 여름과 겨울연가의 애잔한 겨울을 이을 새로운 봄과 가을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기억이 갱신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애초부터 서울이 위대한 음악가의 활동무대였던 도시라면 어떨까?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고향이라면 혹은 비틀즈와 롤링스톤즈의 활동무대였다면 그 시효는 얼마나 될까? 서울이 드라마의 무대가 아니라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소설의 배경이었다면 어떨까? 시효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좀 더 나가면 인류가 공유하는 신화와 전설의 무대였다면 어떨까? 그 시효가 영원무궁하지 않았을까? 기억의 시효가 무한대로 늘어났을 것이다. 


물론 이런 물음에 함정은 있다. 우리의 문화를 세계화 하려는 노력이 충분하지 못한 상황에서 서구문화만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면서 갖게 된 얕은 경외심일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이 남긴 것이 적어서가 아니라 오늘의 우리가 건진 것이 적어서 서구에 밀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안타까움에 반드시 감안해야 할 요소다.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느냐가 바로 문화적 수준이다.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은 겸손해지는 것이다. 혹은 진지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 겸손함과 진지함이 주는 과실은 지대하다. 오늘의 고민과 현재의 욕망은 과거의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과거를 들여다보는 것은 오늘의 물음에 답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오만하다. 과거를 기억하기보다 미래와 겨루려고 한다. 서울의 건축물을 보면서 한 프랑스의 문화평론가가 말했다. “프랑스의 건축가들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한다. 그것 만으로도 그들은 중요한 문제에 대한 답을 얻는다. 그런데 한국의 건축가들은 미래의 후손과 다툰다. 미래와의 싸움은 언제나 패배하고 그들은 ‘낡은 미래’를 창조한다” 


미래와의 싸움은 패배가 예고된 싸움이다. 미래를 이기겠다는 것은 우리 후손들의 무능을 전제하는 것이다. 구현된 미래는 ‘낡은 미래’다. 용산 아이파크, 영등포 타임스퀘어, 송파 가든파이브를 보라. 미래를 구현하려고 했던 그것은 더 나은 미래 앞에 ‘낡은 미래’가 될 것이다. 조금 기우뚱하기는 했지만 용산 개발이 마무리되면 그 한 가운데 있는 아이파크에서 미래를 느낄 수 있을까? 


서울의 건물들을 보라. 얼마나 차가운지. 미래와의 섣부른 싸움이 서울을 차가운 유리도시로 만들었다. 차가운 도시를 더욱 차갑게 해서 얻고자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쓰나미를 닮은 서울시청 건물은 무엇을 삼키려 저리도 위태롭게 서 있을까? 서울의 건물들은 왜 우리의 체온을 낮추지 못해 안달일까? 


서울은 망각의 도시다. 매일같이 부수고 밀고 짓는 이 도시에서 과거의 기억을 복원하는 것은 쉽지 않다. 서울은 어제가 없는 도시다. 내일만 바라보는 도시다. 그래서 서울이 고향이라는 것은 고향을 상실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부끄러운 어제를 기억하는 것을 서울은 허락하지 않는다. 


김수영이 아내를 비닐우산으로 때리며 느낀 비루함을 맛볼 수도 없고, 박태원이 유유자적 거닐며 천변풍경을 만끽했던 그 청계천을 느끼지도 못하고 김승옥이 세 명의 허술한 사내를 만나게 한 허름한 술집을 찾을 수도 없다. 기형도가 ‘햇빛은 분가루처럼 흩날리고 / 쉽사리 키가 변하는 그림자들은 / 한창 열풍에 말려 둥글게 휘어지는구나’라고 탄식했던 가는 봄날을 느낄 수도 없다. 


헤르만 헤세가 말년을 보낸 스위스의 루가노 호수 지역을 다녀온 적이 있다. ‘헤세를 판다’는 말이 불경할 정도로 그들은 정성스럽게 헤세에 대한 기억을 제공하고 있었다. 풍부한 기억은 막연했던 헤세를 선명하게 해주고 마치 헤세가 되어본 듯한 경험을 제공했다. 나와 잘 맞지 않았던 헤르만 헤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헤세가 땅을 좀 볼 줄 알았구나’하는 허망한 생각부터 그가 걸었던 산책로를 걸으며 헤세의 고민에 대해서 조금은 생각해볼 수 있었다. 


1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의 볼테르와 영국의 제임스 조이스, 그리고 러시아의 레닌 등이 망명했던 스위스는 망명자들의 나라였다. 마치 조선왕조의 유배자들이 남도의 학풍을 일궜듯이 이들 역시 망명지에서 나름의 문화와 사상의 생태계를 구축했다. 예술가들은 ‘카페 볼테르’를 중심으로 다다이즘이라는 예술 생태계를 구축하기도 했다. 스위스는 이 소중한 기억창고를 꼼꼼하게 복원했다. 


스위스의 관광 안내원들은 가방에 꼭 그 도시의 과거 지도와 흑백사진을 넣고 다녔다. 많이 변한 도시도 있었고 별반 변화가 없는 도시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과거에 비추어 오늘을 보았을 때 그 도시에 대한 감성이 풍부해진다는 것이었다. 잠깐 동안의 시간여행이 그 도시에 대한 느낌을 더 풍성하게 해주었다. 


과거가 미래다. 이 생각에 빠져있을 무렵 서울연구원 이창현 원장의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발견했다. 서울의 각석(표지석) 탁본을 정리하는 프로젝트였다. 각석 중에 오래된 것은 천년 전 것도 있다고 했다. 머리를 돌로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경박한 후손들의 난개발을 우려해 조상들은 천 년 전에 서울의 기억을 돌에 새겨 두셨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년의 기억’을 안겨준 조상들의 꼼꼼함에 감사했다. 


과거를 보면 미래를 볼 수 있다. 우리는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가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심해 낙원’에 대한 원형을 가지고 있었다. 심청이의 효심에 감탄한 용왕, 토끼가 별주부를 따라가서 고치려고 했던 용왕은 바로 그 ‘심해 낙원’의 지배자였다. 서구문화에서 심해는 무시무시한 크라켄이 사는 지옥으로 묘사된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투영된 것이다. 우리는 그 심해에 용궁이라는 상상력의 궁궐을 지었다. 이 원형을 오늘에 되살리려는 노력을 했다면 ‘니모를 찾아서’는 우리가 먼저 만들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윌리엄 깁슨의 말처럼 미래는 이미 와있다. 다만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한 외국인이 한국 산의 산신령 이야기를 모으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국의 산이 좋아 백두대간을 종주하고 북한쪽 백두대간까지 종주한 그의 마음을 붙든 것은 바로 산신령 이야기였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좀체로 접하기 힘든 것이어서 흥미가 느껴졌단다. 


산신령을 서양식으로 표현하면 ‘할아버지 요정’ 정도 될 것이다. 삼신할망은 ‘할머니 요정’이 될 것이고. 서양의 요정들은 주로 어린아이이거나 젊은 여성이었다. ‘할아버지 요정’이나 ‘할머니 요정’이라는 상상력은 얼마나 발랄한가! 요정은 신과 인간의 중간자적 존재다. 그렇다면 인간보다 원숙할 것이고, 할아버지 할머니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더 합당하지 않을까?


산의 지형 때문에 우리가 산에서 ‘할아버지 요정’ 산신령을 상상할 때 일본은 요괴를 상상했다. 상상력에 우월은 있을 수 없는 것이겠지만 울창한 산을 보며 음습한 요괴를 상상한 일본인들의 조상보다 든든한 암보험같은 ‘할아버지 요정’을 상상한 우리 조상들의 상상력이 더 정겹지 않나? 


요즘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서울의 기억을 더듬는 일이다. 멍하니 서울의 고지도를 본다. 그리고 그 윤곽선을 지금의 서울에 대입해 본다. 서울의 산세와 물길을 머릿속에 넣어두고 현장에 갔을 때 꺼낸다. 그렇게 서울을 품어보려 노력하니 조금씩 서울의 과거가 보이기 시작했다. 서울 성곽길을 걸으면서 서울의 윤곽선을 조금씩 더듬을 수 있게 되었다. 


<강남스타일>과 <겨울연가> 이야기를 꺼낸 것은 단순히 ‘짧게 팔리는 서울을 길게 팔아보자’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서울을 기억하는 방식, 그리고 서울을 만끽하는 방식에 대해서 짚어보자는 얘기다. 남들이 서울을 어떻게 기억해주느냐의 문제는 우리가 오늘의 서울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의 문제다. 모든 사라져가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갖는 것은 오늘의 나를 사랑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주) <문화 + 서울>에 기고했던 글입니다.